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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8월 12일] 에페 4:4:25-5:2, 요한 6:35, 41-51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먹는 삶이란?
  • 청지기
    조회 수: 2092, 2012-08-14 14:16:26(2012-08-14)
  • 1.

    2.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미사를 드리는데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성체가 떨어지고 밟히게 되어 이에 오열하는 천주교 문규현신부님의 모습입니다.

    3. 천주교는 미사 중에 사제의 성체기도 강복 후에 면병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뀐다는 화체설을 믿고 있습니다.

    4. 그래서 천주교인들은 성체 중심의 신앙생활을 합니다. 고해성사를 안하면 영성체에 임할 수 없습니다. 성체조배기도 등이 있습니다.  

    5. 문규현 신부님이 성체를 보듬어 안고 오열하는 이유는 축성된 성체가 곧 예수님의 살임을 믿기에 성체가 밟힌 것은 곧 예수님이 곧 예수님이 짓밟힌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6. 우리 성공회는 면병과 포도주가 실제 예수님의 살과 피로 실제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제의 강복기도 후에 예수님이 성령에 의해서 실제적으로 임재하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7. 천주교나 성공회나 개신교까지 성체와 보혈을 먹고 마시는 성만찬이 중요한 의식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8.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35,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 예수님으로 만족하는 삶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 만족함을 주는 생명력은 예수님을 먹을 때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9. 그러면 성체와 보혈을 먹고 마시는 것 자체가 자동적으로 신자들에게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축복을 준다는 말일까요?

    10.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실제 허다한 크리스챤들은 성체와 보혈을 먹고 마셔도 만족감이 없는 삶을 살아가며 예수 생명력이 나타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11.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어온 한 어머니의 기도 요청 - “큰 아들은 예수는 잘 믿어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고 착하게 사는데 가난해요. 작 아들은 예수님은 믿지 않아도 출세도 하고 잘 살고 있어요. 신부님- 우리 큰 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12. 분명히 예수님을 생명의 빵이신 그분을 먹으면 더 이상의 허기짐과 목마음도 없는 삶을 살아가는 생명력 넘치는 인생을 살게 된다고 약속하시는데, 그렇다면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먹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13. 초대교회 고린도교회가 직면했던 여러 문제 중에 하나가 성찬의 문제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권면합니다.
      고전 11:29-30, “주님의 몸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사람은 그렇게 먹고 마심으로써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몸이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죽은 자도 적지 않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14. 주님의 몸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알지 못한 채, 성만찬을 거행하니까 주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받아 누리기는 커녕 오히려 아프고 병들고 죽어간다고 충고합니다.

    15. 주님의 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16. 이 말은 곧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됐는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17. 성경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 5:6, “우리 죄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때가 이르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이사야 53:5-6,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주었구나. 우리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며 제멋대로들 놀아났지만, 야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

    18. 예수님이 그 몸에 채찍을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그 살이 찢기고 그 피를 흘리신 이유는 바로 나의 죄를 대속하고 나를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9. 주님의 몸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나를 향하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로마 5:8,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 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20, 축성기도 제정사에 보면, 예수님은 성만찬을 행하면서 ‘기억하라. 기념하라’고 하십니다. 십자가는 내가 죽을 자리인데 나를 대신해 죽으신 예수님의 거룩한 희생을 통해서 내가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살아났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21. 우리가 주님의 성체와 보혈을 먹고 마신다는 것은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그 몸을 희생제물로 바치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을 받은 자임을 알고, 그 사랑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22. 성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내 안에 그 사랑이 차오르면 나는 예수님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성경은 이것을 영생이라고 말합니다.

    23. 요한 17:3,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24. 안다라는 말은 관계하다는 뜻으로 하느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질이 영생입니다.

    25. 오늘 서신은 세상 속에서 새로운 존재가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모습을 제시해 줍니다.

       에페 4:25, 그러므로, 즉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으므로

    26. 화를 다스립니다.
       스스로 노동하여 얻는 소출로 가난한 자들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이로운 말을 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서로 용서하며 삽니다.
       하느님을 닮아갑니다.
       사랑의 생활을 합니다.

    27. 이렇게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질인 영생을 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 바로 말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말이란 그 사람의 변화된 내면과 인격이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8. 며칠 전 장미란 선수의 인터뷰를 보면서 영생을 누리는 사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매일 매일 얼마나 많은 훈련을 하며 최선을 다했겠습니까? 하지만, 교통사고로 연약해진 몸으로 인해 4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29. 장 선수는 주어진 객관적 조건을 탓하기 보다는 그 속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경기를 치를 수 있어서 그리고 부상 없이 경기를 마칠 수 있어서 감사하다.”

    30. 장 선수의 발언은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말씀이 채화된 신자의 기품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원망 없이, 핑계 없이, 불평 없이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가 흡족하지 않더라도 결과에 감사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31. 시 한편을 읽으며 마치려고 합니다.
    * 나를 키우는 말 - 이해인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나는 알지.

    32. 이 한 주간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 그 사랑으로 사람을 살리고 나를 키우는 유익하고 아름다운 말을 하며 지내시기를 축복합니다.

    33. 찬양을 드리며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에 채우시길 바랍니다.
       - 그 사랑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아버지 은혜 내가 노래해
      그 사랑 변함 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상한 갈대 꺽지 않으시는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는
      그 사랑 변함 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사랑 그 사랑 날 위해 죽으신 날 위해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실 그 사랑
      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하늘의 어떤 권세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그 사랑 예수.


    ------------------------------------------------------------------------------

    * 생략한 설교문

      또한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먹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성육신 하신 말씀이십니다.

      요한 1:1,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고로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빵의 유혹 앞에서 하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마태 4:4, 예수께서는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하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만약 말씀이 아닌 빵을 구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저 배만 채우고자 빵만 구하는 군중일 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복음 위에 서서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그저 머리에 담아두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넘쳐나는 설교, 성경공부, 제자훈련 등으로 말씀을 먹는듯하지만 머리의 지식으로만 머물러 있습니다.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곧 주님의 말씀이 머리가 아닌 마음에 담겨지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에 새겨져야만 삶이 변화되고 그 말씀대로 삶이 살아지기 때문입니다.

      심장은 또 다른 기억장치라고 합니다. 심장이식수술을 받는 사람이 원래 심장의 주인이 살아간 습관대로 산다고 합니다. 심장은 삶을 움직여내는 기억장치입니다. 말씀이 마음의 중심 - 심장에 새겨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느님의 말씀이 새겨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레 31:33, “그 날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맺을 계약이란 그들의 가슴에 새겨줄 내 법을 말한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그 마음에 내 법을 새겨주어,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에제키엘 11:19-20, “나는 그들의 마음을 바꾸어 새 마음이 일도록 해주리라. 그들의 몸에 박혔던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피가 통하는 마음을 주리라. 그래서 나의 규정을 따르고 나의 법을 지켜 그대로 실행하도록 만들겠다. 그제야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40년 광야생활을 했던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매일 매일 공급해 주시는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이는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우리는 매일 하느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욕심과 세속에 따라 사는 육적 존재로 살아 여전히 목마르고 허기질 뿐입니다. 그 안에 생명력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먹는 것을 묵상이라고 합니다.
      묵상이란? 하느님의 말씀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렉시오 디비나!
      시편 1:2,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묵상의 결과는?
      시편 1:3, “그에게 안 될 일이 무엇이랴! 냇가에 심어진 나무 같아서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하고 제 철 따라 열매 맺으리.”

      모세의 뒤를 이어 광야의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하느님이 주신 말씀도 이것입니다.
      
      여호수아 1:8, “이 책에 있는 법이 네 입에서 떠나지 않게 밤낮으로 되새기며 거기에 적혀 있는 것을 어김없이 성심껏 실천하여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네 앞길이 열려 모든 일이 뜻대로 되리라.”

    ----------  

      우리 성공회 예배는 말씀의 전례, 성찬의 전례로 예수님을 먹고 마시게 합니다

      말씀의 전례를 통해서 생명의 말씀을 마음에 새깁니다. 성찬의 전례를 통해서 성체와 보혈을 영하며 하느님의 사람을 채웁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나간다. 새로운 존재로 새로운 삶을 살며 복음의 증인이 됩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누리며 살게 하는 은총의 수단이 바로 우리가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생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소 대신 예배를! 예배를 생명처럼 여기라! 예배에 목숨을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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