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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7월 22일] 마르코 6:30-34, 53-56 주님 안에 쉼과 회복이 있습니다.
  • 청지기
    조회 수: 1980, 2012-11-20 00:52:53(2012-07-22)
  •   두 주전 읽은 본문을 기억해보면, 예수님은 12제자들을 파송하여 전도여행을 다녀오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그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께 보고를 합니다.
      마르코 6:30, “사도들이 돌아와서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예수께 낱낱이 보고하였다.”

      제자들이 한 일은 어떤 일일까요?
      마르코 6;12-13, “이 말씀을 듣고 열두 제자는 나가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가르치며 마귀들을 많이 쫓아내고 수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병을 고쳐주었다.”

      제자들의 전도여행에 큰 성과가 있었나 봅니다. 그러니까 신이 나서 낱낱이 보고 하는 것이죠. 이것은 이미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권세를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마르코 6:7, “열두 제자를 불러 더러운 악령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다.”

      2012 전도여행팀 70명이 이번 주 토요일에 출발합니다. 내수 2박 3일, 기장 포항 3박 4일 짧은 일정이지만, 성경에 나오는 제자들의 전도여행처럼 돌아와 낱낱이 보고하는 신나는 전도여행이 되기를 바랍니다.

      떠나시는 교우들은 명심하십시오. 12제자처럼 우리에게도 주님이 주신 권세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특권이 있습니다.

      보내시는 교우들도 명심하십시오. 파송되는 지체들을 위해서 더 간절히 중보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보기도는 미사일입니다. 전도단이 현장에서 싸우는 보병이라면 중보기도자들은 후방에서 미사일을 쏘아내는 든든한 보급기지입니다.

      이제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마르코 6:31,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함께 좀 쉬자.’하고 말씀하셨다. 찾아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들은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함께 좀 쉬자.”

      우리 인생과 사역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쉼입니다. 쉼과 일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 속에서 주님과 함께 쉼을 가지심으로 회복의 은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한적한 곳을 찾아 배를 타고 떠나셨는데, 그만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행이라는 것을 알고는 여러 동네에서 모두 달려나와 예수님의 일행보다 앞서 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배에서 내려 보니 군중이 모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군중의 규모 이어지는 오병이어 기적이야기를 보면 남자만도 오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목자없는 양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라를 잃은 식민지 백성들입니다. 삶의 기반인 토지도 없고 일자리도 변변치 않습니다. 삶의 소망, 살아가는 이유, 의미가 없습니다. 자존감도 없고 마음과 육체에 병들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저 인생이라는 고해에 던져져서 먹고 마시는 것을 해결해 가는 것이 유일한 삶의 목적인 사람들입니다. 당시 갈릴리 백성들이 대부분 이랬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와 자신을 기다리는 군중을 주님은 바라보셨습니다.
      마르코 6:3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 군중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여기서 “보다”는 단어는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목하여 보는 것’으로 ‘존중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쉼을 위해서 한적한 곳을 찾아 떠나온 예수의 일행을 쫒아온 군중들입니다. 예수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을 귀찮아하거나 외면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찾아 이렇게 모여 있는 군중들의 필요를 이해하셨고 그들을 존귀하게 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습니다. 또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부르게 먹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들을 따뜻한 시선을 바라보시고 우리의 영과 육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구원하시는 좋으신 분입니다.

      주님이 오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목자없는 양과 같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여 주시고 하느님 나라의 소망을 주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모든 묶임을 끊어내어 존귀한 하느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시고자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명을 제자들에게 위임하셨고 이것이 바로 교회의 할 일인  것입니다.

      본문 53절 이후의 기록을 보면, 이런 예수님의 모습이 계속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일행은 다시 쉼을 갖기 위해서 벳사이다라는 곳으로 배를 타고 가셨는데, 중간에 풍랑을 만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겐네사렛이라는 동네에 이르게 되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예수님의 일행을 알아본 동네 사람들이 모두 다 예수님 앞에 병자들을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이를 외면하지 않으신 예수님으로 인해 치유를 받았습니다.

      이 스토리에서 두 가지 중요한 것을 마음에 새겼으면 합니다.
      
      첫째는 이렇게 군중들의 형편과 처지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주님의 마음입니다.
      마르코 6:3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 군중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그들을 측은히 여기시어”

      주님의 마음은 측은지심입니다. 영어로 컴패션.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함께 아파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쫒아 다니는 허다한 무리들, 병들고 지치고 자존감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애태움 그 자체입니다.

      이 때 사용된 헬라어 ‘스플랑크니조마이’라는 단어는 ‘창자’를 뜻하는 ‘스플랑크논’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창자는 가장 깊은 마음이 머무는 자리라고 합니다. 애간장이 녹는다. 말할 때 애가 창자입니다.

      이것이 오늘 서신이 말하는 주님의 몸된 교회가 지녀야 하는 마음입니다. 교회는 교회 안의 지체와 교회 밖의 군중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존귀히 여기고 그 필요를 채워주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하여 함께 아파하는 사랑이 우리 교회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꼭 기억하기를 원하는 것은 예수님 앞에 사람들이 보여준 믿음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일행이 탄 배가 겐네사렛 땅에 닿았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예수가 구원자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께 나가면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낫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대로 예수님께 나왔고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은 나았습니다.
      마르코 6:56, “마을이나 도시나 농촌이나 어디든지 예수께서 가시기만 하면 사람들은 병자들을 장터에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만이라도 만지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나았다.”
      
      바로 앞장 마가 5장 나오는 하혈증으로 앓던 여인도 그랬습니다. 12년 동안이나 투병하며 가산을 다 탕진하고 이제 소망이 없을 때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 속에 끼어 예수를 따라가다가 예수의 옷에 손을 대어 치유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마르코 5:28, “그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바오 이 때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마르코 5:34,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병이 완전히 나았으니 안심하고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구원자임을 알고 예수님 앞에 나오는 믿음이 치유와 회복의 기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큰 나무의 그늘에 들어가면 뜨거운 태양빛을 피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가 한 일이 있나요? 없습니다. 그러면 나무가 필요 없나요? 아닙니다. 나무가 있어야 나무 그늘이 있습니다. 태양 빛을 피하기 위해서는 나무 그늘 아래로 가야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나무같은 분이 부활하시어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애타는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의 어떠한 문제라도 능히 치유하시고 회복시키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께 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가듯이 예수님 앞에 나오십시오. 그분을 의지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예수님의 품에 안기십시오.

      주님은 이렇게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마태오 11: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진정한 쉼과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주보에 실린 복음성가 - 주님의 숲이라는 찬양을 틀어드리겠습니다.
      주님의 임재 가운데 머물 분은 조용히 주님만을 바라보십시오.
      영혼과 마음에 주님의 안식이 임할 것입니다.
      문제 해결이 필요하신 분은 주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고 주님께 간구하십시오. 옷에 손만 대어도 나으리라는 믿음으로 삶의 어려움과 아픔을 작은 소리를 내어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의 구원을 경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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