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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10월18일]요한 17:20-26 공동체를 만들라. 누군가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라!
  • 청지기
    조회 수: 2399, 2012-11-20 01:01:50(2009-10-18)
  •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대표적인 모습이 외로움인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타인의 삶을 들으면서 공감할 인격적인 공간이 없어 외로움 가운데 지쳐가고 병들어 갑니다. “군중 속의 고독”

      심지어 가족 원초적인 관계인 부부, 가족 관계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 행복한 가정 세미나는 우리 인생에 아주 중요한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관계를 갈망합니다. 그래서 공동체라는 단어만큼 현대인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단어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어려운 단어가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관계를 갈망하는 현대인들의 실존을 간파하고 정확하게 접근하는 곳이 기업만한 곳이 없습니다.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윤의 극대화이지만 가장 인간적으로 공감되는 방법으로 다가옵니다.

      커피전문점인 스타박스라는 곳이 있습니다. 스타박스가 구인광고를 낼 때 사용한 문장이 이렇습니다.
      “공동체를 만들라. 누군가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라!”

      구인광고에 공동체라는 개념이 사용되었습니다. 그 광고지의 뒷면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스타벅스에서 일하십시오, 근사한 커피로 하루를 즐기면서 이웃과 친구들이 함께 어울리고 다시 가까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세요. 당신은 누군가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커피전문점이 이제 현대인들에게 앚 익숙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서울만 올라가 봐도 대단히 성업 중에 있습니다. 그곳을 들어가 보면 한 잔에 4000원 정도하는 비싼 커피를 시켜놓고 삼삼오오 긴 시간 수다 떨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저도 대성당에 모임이 있어서 올라가면, 동료 신부님들과 근처에 있는 ‘홀리스’라는 커피전문점에 가서 서로 이런 저런 수다를 떱니다. 목회 일상의 이야기, 이슈가 되는 것에 대한 의견, 또 가정의 이야기 등등. 그렇게 서로 떠들다 보면 시간이 금새 흐르고 귀가할 시간이 되어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스타벅스의 광고처럼 실제, 커피전문점은 고독한 현대인들에게 관계를 형성해 주고 삶의 질을 채워주는 환경으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스타박스는 자신들이 고급 커피를 판매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의미있게 연결시켜주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그들의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자신들의 기업 목표라고 믿는 것입니다.

      스타벅스가 구인광고 카피로 내 놓은 글 - “공동체를 만들라. 누군가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라!”
      - 사실 이것이 현대 교회가 잃어버린 본질적인 사명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신앙을 절대자와 개인적인 관계로만 내면화시킴으로 하느님과의 관계는 깊지만, 교우들 지체간의 관계는 스타벅스에서 만나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만도 못한 것이 현실이 아닌가 쉽습니다.

      “공동체를 만들라. 누군가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라!”
      “공동체를 만들라. 당신은 물론이고 누군가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라”

      제가 존경하는 고 대천덕신부님이 강조하여 가르치신 교회의 본질을 표현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코이노니아!

      예수원을 다녀오신 분은 아시겠지만, 예수원은 성공회의 예전에 기초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침에는 조도, 저녁에는 만도를 드립니다. 조만도를 마칠 때 드리는 축복기원문이 있습니다.
      고후 13:13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

      그런데 대천덕 신부님은 기도문에 코이노니아를 친교라는 단어로 번역하지 않고 헬라어 원어를 그대로 사용하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코이노니아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

      그 이유는 코이노니아를 친교로 번역하여 사용하는데 그 의미가  너무 약화된다는 것입니다. 평화의 인사 시간에 앞 뒤 좌우로 돌아보면서 웃음의 인사를 나누는 것 정도? 공동식사를 함께 하며 나누는 몇 마디의 대화 정도?

      친교, 교제, 사귐, 상통 등의 단어로 번역되는 코이노니아라는 말은 우리가 교회에서 경험하고 알게 되는 것 그 이상으로 깊은 내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대신부님은 그 단어를 번역하지 않았고 예수원이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그 단어의 본질을 회복하시고자 실험하셨습니다.

      코이노니아의 모습이 실현되어 나타난 곳이 초대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 4장에 그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사도 2:42-47, “42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43 사도들이 계속해서 놀라운 일과 기적을 많이 나타내 보이자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44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45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다. 46 그리고 한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47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갔다.”

      사도4:32-37, “32 그 많은 신도들이 다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33 사도들은 놀라운 기적을 나타내며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신도들은 모두 하느님의 크신 축복을 받았다. 34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그 돈을 35 사도들 앞에 가져다 놓고 저마다 쓸 만큼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다. 36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 사람으로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인 바르나바라고 불리는 요셉도 37 자기 밭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다 바쳤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초대교회의 모습과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코이노니아입니다.

      대신부님은 한국교회가 교회의 본질이 되는 코이노니아를 잘못 이해한 것이 교회를 쓰는 한자어 나타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한자로 쓰면 敎會입니다. 학교의 개념이지만, 코이노니아가 본질이 되는 교회의 바른 한자어 표기는 交會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주고 받는 사귐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느님과의 사랑을 경험하며 성도 간에 그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코이노니아를 이루는 사랑의 공동체를 세워가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동안 교회가 너무 학교 같았습니다. 예수제자훈련학교, 성경학교, 주일학교....  가르칠 敎 모일 會였습니다.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상명령으로 주신 말씀에 ‘내 말을 지키도록 가르쳐라’고 하셨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성경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 됩니다.
      
      하지만, 이제 또 다른 중요한 본질이 되는 코이노니아를 회복해야 합니다. 사귈, 주고받을, 서로 - 交, 모일 - 회.

      주님의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깊이 알아가고 험난한 인생 여정의 동반자로 함께 살아가는 가족 공동체로 교회가 자리매김을 해야만 합니다.

      창조의 원리도 이것입니다. 창조주 하느님은 사람이 홀로 독처하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으셔서 부부라는 관계의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한대로 현대인들은 군중 속에서 독처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교회의 수많은 사람들 안에서도 홀로 외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병적인 증상이 있습니다.
      1) 삶에 대한 건강한 관점을 상실하게 됩니다.-자존감은 더 낮아지면서 교만은 더 높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건강한 삶의 방향을 잘 잡지 못하게 됩니다.
      2) 친밀한 관계를 두려워합니다.-사귀는 방법도 모르고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3) 이기적인 사람이 됩니다.-자기 중심주의
      4) 그리고 실험에 의하면 실제로 건강이 악화됩니다.

      창조주 하느님이 보시기에 진짜로 좋지 않은 병적인 삶을 현대인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의 피값으로 세워진 교회가 사람들의 병을 치유해가는 공동체로 세워지기를 간절하게 원하십니다.

      오늘의 복음에 그 마음이 나와 있습니다.
      요한 17:20-21, “20 나는 이 사람들만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21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될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느님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완전한 일치를 이룬 것처럼 교회 안에서 그 사랑으로 허다한 허물을 덮고 상처를 치유하며 교회가 코이노니아로 하나가 되는 것이 주님의 꿈이었습니다.

      이 주님의 꿈에 따라 교회를 코이노니아의 공동체로 세워가려고 하면 두 가지 영적인 힘이 작용하게 됩니다.

      1) 먼저 여전히 사람들을 개인주의 이기주의 병적인 삶으로 가둬두길 원하는 사탄이 더 준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쉽게 상처를 주고받게 하고 관계를 어렵게 만듭니다. 코이노니아의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참 귀찮고 힘들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그저 적당한 관계로 묶어두고 더 깊은 공동체로 발전하지 못하게 합니다.

      2) 하지만, 교회의 생명의 숨결이신 성령님도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코이노니아가 회복된 건강한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며 이웃들에게 스타벅스 이상의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결단과 헌신의 정도에 따라서 성령님은 힘과 지혜와 사랑의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우리는 매주일 예배를 마치면서 ‘성체후기도’를 드리면서 이런 사랑의 공동체를 회복하겠다고 결단해 왔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주께서는 그리스도의 성체와 보혈을 신령한 양식으로 우리에게 먹이심으로써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가 되게 하셨으니 감사하나이다. 간절히 구하오니, 우리를 성령으로 도우시어 사랑 가운데 상통하며 주께서 명하신 일을 이루게 하소서.’

      이제 이 기도가 우리 공동체 안에 실제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실천이 요구됩니다. 그동안 기도해온 바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기도가 실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좋은 환경은 우리가 소그룹으로 모이는 일입니다. 이런 소그룹을 우리는 셀이라고 부릅니다. 건강한 몸의 기초가 활동하고 번식하는 생명력있는 셀에 있듯이 건강한 주님의 몸된 교회도 셀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셀을 통해서 ‘서로 섬기고 - 서로 용납하고 - 서로 용서하고 - 서로 인사하고 - 서로 짐을 나누어지고 - 서로 헌신하고 - 서로 존경하고 - 서로 가르치고 - 서로 순종하고 - 서로 격려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배워갑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과 열방에 흘러 보내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인생에게 주는 10가지 교훈을 정리한 것이 있습니다.
      1, 일하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그것은 성공의 대가입니다.
      2, 생각하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그것은 능력의 근원입니다.
      3, 운동하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그것은 끊임없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4, 독서하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그것은 지혜의 원천입니다.
      5, 친절하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그것은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6, 꿈을 꾸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그것은 대망을 품는 것입니다.
      7, 사랑하고 사랑받는데 시간을 내십시오. 그것은 구원받은 자의 특권입니다.
      8, 주위를 살펴보는데 시간을 내십시오. 이기적으로 살기에는 너무 짧은 하루입니다.
      9, 웃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그것은 영혼의 음악입니다.
      10, 기도하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그것은 인생의 영원한 투자입니다.

      이 중에 7번째 항목 - ‘사랑하고 사랑받는데 시간을 내십시오, 그것은 구원받은 자의 특권입니다.’ 이것을 교회 생활에 적용한다면, 소그룹 셀로 모이는 것일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10:24-25, 24 서로 격려해서 사랑과 좋은 일을 하도록 마음을 씁시다. 25 그리고 어떤 사람들처럼 같이 모이는 일을 폐지하지 말고 서로 격려해서 자주 모입시다. 더구나 그 날이 가까이 오는 것을 아는 이상 더욱 열심히 모이도록 합시다.”

      오늘로 새로 시작하는 셀모임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성령의 코이노니아를 깊이 경험하며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를 세워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지치고 외로운 세상 사람들에게 또 다른 안식과 쉼의 보금자리가 되어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해지는 주님의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공동체를 만들라.
       당신의 인생은 물론이고
       누군가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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