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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9월 6일] 이 가을에 참된 믿음으로 다시 섭시다
  • 청지기
    조회 수: 1858, 2009-09-06 22:52:41(2009-09-06)
  •   사람들의 심보가 참 고약합니다. 지난 주일 복음 마르코 7장 21-23절에 있는 예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21 안에서 나오는 것은 곧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음행,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이다. 23 이런 악한 것들은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참 악한 마음으로 죄 가운데 사는 인생들입니다. 그런데도 예수 믿기만 하면 구원받아 천국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 루터는 로마 가톨릭의 수사이며 신부였습니다. 루터는 그 당대의 교회의 부패와 부정과 잘못된 교리를 바라보면서 섬광처럼 떠오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로마서 갈라디아서가 말하는 "사람은 공로와 선행에 의해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받는다." 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바티칸에 성베드로 성당을 건축하다가 부족한 건축기금을 충당하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했습니다. 면죄부 판매에 앞장섰던 당대의 웅변가이며 장사꾼인 테첼은 군중들을 향하여
      "면죄부를 구입한 돈이 헌금함에 떨어지는 순간 그 영혼은 천국으로 올라간다."라고 외쳤습니다.

      젊은 신부 루터는 분노했습니다. 그는 비텐베르크성 입구에 95개 항목의 반박문을 내걸고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루터는 "면죄부가 인간의 죄를 대속할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회개를 통해서 죄가 용서된다."는 성경 말씀을 외쳤습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라는 교리를 주장한 루터의 ‘솔라 피데!’라는 구호는 여전히 한국기독교 안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것의 교리적인 표현이 ‘이신칭의’입니다.
      
      그런데 오늘 서신 야고보서를 보면, 루터의 주장과는 다른 관점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14절, 나의 형제 여러분,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17절, 26절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

      그러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 루터의 주장이 틀린 것일까요? 루터의 교리를 뒷받침해 주는 수많은 성경구절들과 야고보서는 서로 상반되는 주장일까요?

      참된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야고보서는 ‘구원에 이르는 진정한 믿음은 행함이 따르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두 가지 성경의 사건들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첫 번째 예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치는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아들이 없던 아브라함은 이미 자식을 출산할 수 없는 나이에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창세기 15:5-6, 그리고는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어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보아라. 네 자손이 저렇게 많이 불어날 것이다." 그가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갸륵하게 여기시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결정적인 사건은 하느님이 주신 그 아들 이삭을 하느님의 명령대로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비상식적이고 반인륜적인 명령이지만 아브라함은 순종합니다.

      아들 이삭을 데리고 사흘 길을 걸어 모리아산에 도착합니다. 땔나무들을 쌓아놓고 아들을 눕힙니다. 그리고 칼을 들어 아들에게 내리칩니다. 바로 그 순간에 ‘멈추라’는 하느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22:12,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게 하지 말아라. 나는 네가 얼마나 나를 공경하는지 알았다. 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도 서슴지 않고 나에게 바쳤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는다고 고백을 하면서도 실제로 이삭을 바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그 믿음은 진짜일까요?
      아브라함의 이신칭의의 믿음은 이삭을 바치는 행동 속에서 실현되었던 것입니다.

      야고보 2:23,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다.'라는 성서 말씀이 이루어졌으며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친구라고 불리었던 것입니다.

      야고보는 두 번째 또 다른 예로 라합의 이야기를 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향해 진군해 갈 때 요르단 강을 건너기 전 예리고 지역을 살펴오라고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바로 이 때 라합이 등장합니다. 그는 창녀였습니다. 정탐꾼들은 들키지 않으려는 생각에 창녀인 라합의 집에 머물면서 예리고를 정탐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예리고왕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군인들이 수색을 나왔습니다. 그 때 라합은 정탐꾼들을 지붕에 숨겨주고 이스라엘이 예리고를 정복할 때 ‘우리 가족은 살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이 출애굽의 사건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 2:9-11, "9 나는 야훼께서 이 땅을 당신들에게 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는 당신들 때문에 겁에 질려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당신들 때문에 어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10 야훼께서 홍해의 물을 말리시어 당신들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신 이야기를 우리는 들었습니다. 또 당신들이 요르단 강 건너편에 있는 두 아모리 왕 시혼과 옥을 어떻게 해치웠고 어떻게 전멸시켰는지 그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11 당신들 소식을 듣고 우리는 모두 넋을 잃었습니다. 당신들의 하느님 야훼야말로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을 내신 하느님이십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또 간증의 나눔을 통해 하느님과 그분이 하신 일을 듣는 것이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적합한 방법이 됩니다.

      예리고성과 관련된 죠크가 있습니다. 어느 주일학교에서 부모들과 함께 하는 분반수업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예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는지 아는 사람?’
      그 때 한 아이가 손을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무너뜨리지 않았어요.’
      뭐 여기까지는 이해할만 합니다.
      그런데 그 수업을 참관하던 그 아이의 엄마가 이렇게 말합니다.
      ‘맞아요. 선생님. 우리 아이는 그런 짓을 할 애가 아니에요.’

      예리고성은 하느님이 알려주신 방법으로 무너졌죠. 6일 동안 성을 돌고 마지막 7일째 일곱 번을 돈후 함성을 지르면 무너지게 되리라는 하느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이 순종함으로 예리고성이 무너지고 함락됩니다. 그때 여호수아 장군은 이스라엘 군대에게 명령합니다.
      
      여호수아 6:17, 저 성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야훼께 바쳐 없애버려라. 다만 창녀 라합의 목숨과 그의 집에 있는 사람만은 살려두어라. 그 여자는 우리의 사명을 띠고 갔던 사람들을 숨겨주었다.

      만일 창녀 라합이 하느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제로 이스라엘의 정탄꾼을 숨겨주지 않았다면 그 믿음이 진짜일까요?

      이 두 가지 성경의 예를 통해서 우리는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믿음이라는 말 안에는 이미 그 믿음에 상응하는 행동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믿는 대로 행하는 능력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믿는데도 그 믿는 데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믿음이 아니라 자기 체면이거나 공염불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귀신도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야고보 2:19, 당신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까?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귀신조차도 믿는 하느님을 내가 믿는다고 나에게 믿음이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믿는 바대로 행동하는 능력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믿음이 참되다면 당연히 그로부터 추론되는 논리적인 결과로서 행동이 따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느님을 아는 만큼 행동하는 것’입니다.
      
      제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글을 읽어드립니다.
      <“믿음과 행함은 대조되는가?”
      오늘날의 믿음은 “증거가 없어도 그저 하나님을 믿기만 하라”는 식의 가르침 속에서 정보에 대한 확신으로 전락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귀신도 아는 바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귀신도 아는 지식이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시대가 가까이 왔다는 소식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믿음이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음을 알고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 신현우. 2009. 『예수와 종교개혁』. 솔로몬. p. 25.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는 소식을 믿는 사람의 즉각적인 반응은 회개입니다.
      
      회개란 심리적ㆍ관념적 현상이 아닙니다. 회개란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실질적 변화입니다. 따라서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믿지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날 믿음이 행함과 대조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기에 예수는 믿되 예수의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에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자들이 많이 모이는 현상을 부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부흥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

      그동안 죄인으로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바꾸고 하느님이 말하시는  바 그대로 행동하는 변화가 믿음이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단어는 명사가 아니고 동사입니다.
      ‘믿는다.’는 말은 ‘믿는 그대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 살아계신 하느님이 제시하시는 구원에 이르는 진정한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1. 믿음의 사람은 ‘물질을 나누는 삶’을 살아갑니다.
      
      읽지 않았지만, 오늘 구약말씀 잠언의 말씀입니다.
      잠언 22:9, 남 보살펴 주는 사람, 곧 가난한 사람에게 제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
      
      콩 반쪽도 나눠 먹는 아름다운 풍습 - 수도가의 공유
      성경이 계시하는 하느님은 고아와 과부의 하느님입니다.
      우리가 믿고 아는 하느님은 바로 그 하느님이십니다.
      바로 이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나누는 삶에 인색하다면 그 믿음은 가짜일지 모릅니다.
      
      야고보 2:15-16,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양식조차 떨어졌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어라." 하고 말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교회는 매달 첫째주일을 선교구제주일로 정하고 선교구제헌금을 봉헌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확증합니다.

      2. 믿음의 사람은 하느님의 공의를 실천합니다.
      
      잠언 22:22-23, 힘없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을 털지 말며 법정에서 어려운 사람을 짓누르지 마라. 야훼께서 그들의 송사를 떠맡으시고 어려운 사람 등치는 자를 목 조르신다.

      우리가 믿고 아는 하느님은 공의로우신 하느님이십니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느님이 세우고자 하신 나라는 하느님의 공의가 제도적으로 실현되는 나라였습니다.

      영국성공회의 ‘윌버 퍼스’ 같은 신앙인은 국회의원이 되어 노예제를 폐지하는 법안을 만들면서 하느님의 공의를 세워갔습니다.
      
      인도 선교의 아버지인 ‘윌리암 캐리’도 인도 땅에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이방종교로 인해 만들어진 카스트 제도와 같은 여러 가지 불의한 사회제도를 바꾸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더 이상 용산참사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더 이상 불의가 용납되지 않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3. 믿음의 사람은 ‘용서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 복음은 신앙인의 삶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권면해서 바로 잡아 주고 용서하라!’

      용서란 내가 보복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수 갚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저히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이 바른 길로 가도록 권면하지 않고 그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불신앙인 것입니다.

      4. 믿음의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의 세계는 깊고 넓기에 한 마디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단순하게 이해하는 기도란 ‘살아계신 하느님 아버지 앞에 나가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나의 소원을 들으실 수 있는 분임을 믿고 그 믿는 대로 하느님 앞에 나가 부르짖는 것이 기도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이들이 간절함으로 예수님 앞에 나왔을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마르코 2장을 보면 어떤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들고 와 지붕을 뚫고 예수님 앞에 달아내려 보냅니다. 이 때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죄 사함과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마르코 5장에 보면, 12년 동안 하혈병을 앓아 가산도 탕진하고 병으로 고통 중에 있던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예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자기의 병이 나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믿음으로 군중을 헤치고 예수 앞에 나와 옷에 손을 대자 마자 출혈이 그치고 병이 나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은 가던 길을 멈추시고 자기의 몸에서 기적의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멈추어 서서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옷에 손을 댄 여인을 찾으셨습니다. 여인은 두려워 떨며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병이 완전히 나았으니 안심하고 가거라.’

      이런 주님의 음성을 듣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사람은 예수님 앞에 나와 자기의 소원을 간구합니다.

      홈페이지에 제주도 성공회 신자회장의 간증을 퍼서 실어 놨습니다. 3편이 올라와 있는데 안 읽으셨다면 읽어보십시오. 인생의 밑바닥에서 하느님을 믿고 기도함으로 주님의 축복을 받은 삶을 간증한 글입니다.

      <왜 어려울 때 기도하지 않습니까..  왜 주저앉아 한숨만 쉬고 있습니까..  왜 어려울 때 하나님께 길을 열어달라고 매달리지 않습니까..
       전 하나님의 축복을 정말 많이 받은 당사자입니다.. 주님을 영접하고..자녀가 된 후.. 주님은 제게 분에 넘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복 받으려고 믿는 거냐..  열심히 기도하는데.. 축복받지 못한 사람은 뭐냐..  이런 비난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욕먹을 각오로 말하겠습니다..
      
      축복받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누가 그걸 가능케 해줍니까..
      노력해서 됩니까.. 노력해서 안됩니다..
                              --- 중략---
      주님과 의논하고.. 주님께 매달리고.. 주님께로부터 해결 받으십시오..  이 방법말고는.. 인생을 역전시킬 방법은 없습니다..
      인생을 역전시키십시다..
      자꾸 어렵다 어렵다 주변 원망.. 남 원망.. 처지 비관 하지 말고..
      주님께 매달려서.. 인생 역전시키시길 바랍니다..

      주님.. 외람되게.. 주님을 욕 보인게 있다면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 제 마음 아시죠??  주님..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입니다..
      제가 더 일해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지 잘 아는데.. 그렇지 못한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저를 더 채찍질해 주십시오.. 제게 더 힘을 실어 주십시오..
      
      새벽 기도든.. 밤 기도든.. 주님께 매달리십시다..
      그리고 해결 받으십시다!!!>                      

      특히 오늘 복음은 합심기도를 하라고 권면합니다.
      마태 18:19-20,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실 것이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부부가 마음을 합하여 기도합시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마음을 합하여 기도합시다.
      살아계신 하느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믿음은 그 믿는바 그대로 살아가는 행동이 내포된 개념입니다.
      
      나누고 구제하는 삶!
      하느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삶!
      용서하는 삶!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는 삶!

      이렇게 사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삶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가을에 건강한 믿음의 사람으로 우뚝 서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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