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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9월 13일] 야고 3:1-12, 마르 8:27-38 말에는 권세가 있다. 말이 인생을 결정한다.
  • 청지기
    조회 수: 1851, 2012-11-20 01:02:52(2009-09-20)
  •   이것은 친구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이것은 남을 웃기기도 하며 울리기도 한다. 이것은 건설의 초석이기도 하고 파괴의 방망이기도 하다. 이것은 용기의 씨앗이기도 하며 좌절의 뿌리이기도 하다. 이것은 거친 파도를 잔잔케도 하고 잔잔한 파도를 거칠게 일으키기도 한다. 이것은 척박한 상황을 개선시키기도 하고 넉넉한 상황을 악화시
    키기도 한다. 이것은 또한 꿀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말’입니다.

      철학자 이규호박사가 지은 철학책 ‘말의 힘’이라는 소책자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언어철학, 언어에 대한 철학의 관심은 지대하다. 언어는 이제 철학의 가장 기초적인 중심문제가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철학에서 논리학이 차지하고 있던 위치를 근세에는 인식론이 그리고 이제는 언어철학이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언어철학자들은 그들의 연구를 통해서 언어가 어떠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일정한 상황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한 말이 삶을 창조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언어철학자들은 이것을 현실을 형성하는 ‘말의 힘’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언어는 창조적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언어철학자들이 말의 힘을 발견했다고 흥분하기 3천 년에 이미 언어에는 힘이 있다고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언어철학자들이 사유의 과정을 통해 말에 은력이 있다고 발견했지만, 이것은 이미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진리인 것입니다.
      잠언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끝에 달렸으니 혀를 잘 놀려야 잘 먹을 수 있다.”(공동)  /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개역)
      
      '혀의 권세‘ - 혀의 힘, 곧 말의 능력, 말의 힘, 말에는 능력이 있다는 성경의 선언입니다.

      오늘 서신 야고보서는 말 한마디가 인생을 결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증언합니다.
      야고보 3:6, “혀는 불과 같습니다. 혀는 우리 몸의 한 부분이지만 온몸을 더럽히고 세상살이의 수레바퀴에 불을 질러 망쳐버리는 악의 덩어리입니다. 그리고 혀 자체도 결국 지옥 불에 타버리고 맙니다.”
      
      야고보는 말이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힘이 있음을 몇 가지 예를 들어 깨닫게 합니다.
      야고 3:3-5, 말은 입에 재갈을 물려야 고분고분해집니다. 그래야 그 말을 마음대로 부릴 수가 있습니다. / 또 배를 보십시오. 거센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크디 큰 배라도 아주 작은 키 하나로 조종됩니다. 그래서 키잡이는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 배를 마음대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 이와 같이 혀도 인체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엄청나게 허풍을 떱니다. / 아주 작은 불씨가 굉장히 큰 숲을 불살라 버릴 수도 있습니다.

      말에게 물리는 재갈 / 배의 키 / 작은 불씨가 큰 숲을 사르는 것.
      유사한 것들이 있습니다.
      자동차의 핸들,  비행기의 조종간.

      이것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그 역할이 무엇일까요?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그 사람이 내 뱉는 말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이 어떤 쪽으로 흘러가기를 원하십니까?
      좋은 날을 보기를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인생의 방향을 잡기위해서 그쪽으로 키를 돌려야 합니다.
      핸들을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날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키는 말입니다.
      당신의 말이 인생의 핸들입니다.

      늘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그 인생이 부정적인 힘에 잡혀 버립니다. “나는 못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이미 늦었다. 나는 망한다.”라고 말하면 그 말의 부정적인 힘에 사로잡혀서 그나마 있던 지혜도 나오지 않고 재능도, 용기도 없어져서 결국 그 말대로 ‘쪽박’차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지금도 늦지 않았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하면 없던 지혜와 총명이 생겨나고 힘과 용기가 솟아나 결국 그 말대로 ‘대박’을 터트리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입술의 말로 묶이고 입술의 말로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따라 해 봅시다. ‘모든 것은 주님의 은총 안에 있사오니 모든 일이 잘 됩니다. 다 잘 됩니다.’ (하루 7번 기도문 중)  아멘?
      

      문제는 내가 하는 말이 나에게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들이를 가게 됐습니다. 한참 걷다가 피곤함을 느낀 할머니가 ‘영감, 나 좀 업어줄 수 없소?’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싫었지만 나중에 들을 잔소리가 겁나 할머니를 업어주었습니다. 업혀 가던 할머니는 조금 미안해서 ‘나, 무겁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대답했습니다. ‘그럼, 무겁지! 머리는 돌덩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으니까 무거울 수밖에.’
      
      돌아오는 길에는 할아버지가 다리를 다쳤습니다. ‘할멈, 다리가 아파. 나 좀 업어주라.’ 이젠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업어주었습니다. 미안한 할아버지가 ‘나, 무겁지?’하면 자기가 한 말이 있어 따라 할 것 같아 ‘나, 가볍지?’하고 묻자, 할머니는 ‘그럼 가볍지! 머리는 비었지, 입은 싸지, 허파엔 바람만 잔뜩 들었으니까! 가벼울 수밖에’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생각없이 말을 하는지...무심코 내뱉는 한마디 말이 어떻게 반응이 되는지 알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야고보는 말합니다.
      3:2, 우리는 모두 실수하는 일이 많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몸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완전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같은 혀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도 형제를 저주하는 것이죠.  
      야고 3:9, 우리는 같은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사도 베드로는 조금 전 신앙고백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같은 혀에서 나온 다른 말로 사탄의 하수인이라는 책망을 받습니다. 동일한 입에서 나오는 말들인데도 칭찬을 받기도 하고 책망을 받기도 합니다.

      혀가 통제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마음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혀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마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루가 6:45, 선한 사람은 선한 마음의 창고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사람은 그 악한 창고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속에 가득 찬 것이 입 밖으로 나오게 마련이다
      
      에페 5:3-5을 보실까요.
      3 음행이나 온갖 추행이나 탐욕에 찬 말은 입에 담지도 마십시오. 그래야 성도로서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4 추잡한 말과 어리석은 이야기나 점잖지 못한 농담 따위도 하지 마십시오. 성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성도들에게 어울리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말입니다. 5 음행하는 자와 더러운 짓을 하는 자와 탐욕을 부리는 자는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나라에서 상속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탐욕을 부리는 자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입니다.

      3절, 5절에서 사람의 마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욕심, 정욕, 탐욕 등등이 그 마음에 담겨 있는 사람입니다. GREEDY .
      그러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어떠하냐?
      4절입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입니다.
      Nor should there be obscenity, foolish talk or coarse joking, which are out of place, but rather thanksgiving.

      죄인 된 인간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그 마음이 이렇습니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개역)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다는 신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이래서는 안 된다. 이러지 말자’고 합니다.

      3:10,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내 형제 여러분, 이래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의 성시 시편의 기자도 기도합니다.
      19:14, ‘주여, 나의 생각과 말이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그런데 그리스도를 닮기를 원하고 그리스도처럼 온전하기를 원하는 우리들인데 어떻게 하면 말을 통제할 수 있을까요?
      언어훈련을 받으면 될까요?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 될까요?
      어떻게 나의 혀를 통제하는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본질적인 문제가 내 마음에 있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근본적으로 마음과 생각을 지켜내야 혀가 통제되는 것입니다.

      잠언 4:23,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그것이 바로 복된 삶의 샘이다.
      ‘마음을 지키라!’  

      어떻게 마음을 지켜낼 수 있을까?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한 가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질문( 마르코 8:29,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을 마음에 품고 살면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함으로 내 마음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을 묵상하다보니까 이 질문에는 몇 가지의 교훈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1. ‘예수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 대속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그분을 믿는 나도 그분과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됩니다.
      갈라 2:19, 나는 이미 율법의 손에 죽어서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위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혀는 그 옛날 독을 내 뿜는 혀가 아니라 칭찬하고 격려하고 축복하는 혀가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내게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 나의 하느님’이심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나로 내 말 조차도 내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는 주님의 종임을 고백하게 합니다.

      3. ‘예수님을 기억하라’라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예수님의 말씀을 담아두는 것이죠.
      마음에 담긴 주님의 말씀은 내 입술로 고백되고 선포됨으로 내 삶을 이끌어가는 길잡이가 됩니다.
      시편 119:105, 당신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나의 길에 빛이옵니다.

      4. 이렇게 예수님을 생각하면 내 영이 성령으로 충만해집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영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고 생각하면 그분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 안에 충만하게 됩니다. 내 생각을 지켜주시고 내 언어가 성령의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성령이 시키는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도 2:4,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성령충만하면 이전의 내 언어였던 입술에 악한 말들-부정적인 언어. 불평의 언어, 참소하고 험담하는 말, 거룩하지 못한 말들이 사라지고 성령이 다스리시는 새로운 언어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하지 힘들었던 외국어와 같았던 말들이 나온다.
      ‘미안해요. 감사해요. 사랑해요. 축복해요.’

      여러분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으신지요?
      말 한마디에 여러분의 인생이 달려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말 한마디가 나의 인생을 이끌어갑니다.

      그 말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생각이 인생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말이 인생입니다.
      말은 행동을 낳습니다.
      습관이 인격을 형성합니다.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의 생각이 보입니다.
      생각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이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한주간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을 되새기며 예수님을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 그분의 나의 주되심, 그분이 하신 말씀과 약속. 등을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영이 성령님으로 가득 채집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이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내 입술이 축복과 생명의 언어를 말하게 됩니다.
      그 말은 우리들의 삶을 하느님이 계획하신 행복한 인생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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