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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8월 2일] 에페 4:1-16, 요한 6:24-35 예수 앞에 나오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
  • 청지기
    조회 수: 2036, 2012-11-20 01:03:31(2009-08-02)
  •   천국 문에 적혀있는 성구가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데 그 문을 통과하여 뒤돌아보면 이렇게 적혀있다고 한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믿음이 무엇인지를 말하고자 하는 예화입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내가 믿어 신자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깨달아 알게 되면
      내가 믿은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나를 택하시고 부르시어
      구원받았다는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이 단계가 비로소 올바른 믿음을 갖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이 찬양이 마음에 공명을 줍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 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저는 이 찬양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라며 기도하며
      말씀을 선포합니다.
      천국 문의 예화를 생각해 보면,
      예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이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로 구분이 됩니다.

      첫 번째 부류, ‘구원받으리라!’

      살다보면, 나의 필요를 채워줄, 나의 소원을 만족시켜줄
      구원자가 간절하게 필요합니다.
      인생살이가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만만치 않은 인생살이는 두려움을 주고
      그것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으로 신을 찾게 됩니다.
      문명국가인 일본에만도 8만개에 이르는 신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 신이 예수여도 좋고 부처여도 좋다.
       내 소원만 들어주면 되고, 내 문제만 해결해 주기만 하면 된다.’

      예수 그리스도 - ‘죄 사함과 영혼 구원의 주님이다.’이라고
      교리 수업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는 머리로만 아는 지식일 뿐입니다.
      실상 교인들에게 예수는
      문제 해결, 소원 성취를 위한 구원자일 뿐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수? 내 필요에 의해서 내가 믿은 것입니다.
      신앙생활? 여전히 내 중심으로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보이지 않는 천국, 영원한 생명?
      있으면 좋고 가면 좋은 곳이지만,  
      당장은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두 번째 부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예수님을 구원자로만 바라보는 신앙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신앙의 단계가 있고
      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처절하게 깨닫고
      지옥이라는 영원한 형벌에서 건져주신 구원자 예수가
      이제 그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국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다는 확신으로
      이제는 자기 자신이 하느님 아버지의 존귀한 자녀임을 확신함으로
      흔들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나의 필요를 구하는 삶을 넘어서서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이 의롭게 여기시는 것들을
      구하며 살고 싶은 열망이 있습니다.

      때로는 실수도 하고
      자주 옛사람의 습관이 그를 흔들 때도 있지만,
      그 내면에  주님을 더 깊이 알고 싶은 갈망이 있고
      그 삶이 주님의 기쁨이 되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읽은 복음과 서신을 보면,
      이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군중들은 첫번째 부류의 사람들이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군중들이 주님 앞에 나온 목적이 분명합니다.
      철저히 자기들의 필요 때문입니다.

      요한 6:26,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요한 6:2, 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예수를 따라갔다. 그들은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기적을 보았던 것이다.

      그저 예수는 배불리 먹여주고
      병도 고쳐줄 수 있는 문제 해결사 - 구원자일뿐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은 그냥 기적Miracle이 아닌
      그것을 통해 영적인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표적Sign입니다.

      26절,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기적을 베풀어 주신 주님의 마음에는
      군중들이 깨닫기를 원하는 하느님의 메세지가 있었습니다.

      광야의 오병이어 = 출애굽 광야의 만나
      ~ ‘나 예수는 모세보다 큰 자다.’
      초장에서의 풍성한 식사 = 시편 23편,
      ‘나를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목자없는 양떼같은 군중들에게 목자로 오신 예수.

      그래서 예수님은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 6:29,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예수 안에서 풍요로움이 실제가 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육신의 필요와 욕심이 앞서는 군중들은
      비록 지금 예수님 앞에 있지만
      그가 진정 누구신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상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러한 군중이 허다합니다.
      군중에게 필요한 것이 소원성취 문제해결이니
      예수는 문제해결사일뿐입니다.

      성당 안에 자리를 가득 채우고 앉아 있어도
      그들의 관심은 자기 밖에 없습니다.

      나와 내 가정의 행복, 성공, 인정, 형통함, 건강....등 등 등.
      사도 바울은 이런 사람들을 육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했다.

      고전 3:1-3,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적인 사람을 대할 때와 같이 말할 수가 없어서 육적인 사람, 곧 교인으로서는 어린 아이를 대하듯이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나는 여러분에게 단단한 음식은 먹이지 않고 젖을 먹였습니다. 여러분은 그 때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은 아직도 그것을 소화할 힘이 없습니다. / 여러분은 지금도 육적인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서로 시기하고 다투고 있으니 여러분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들이고 세속적인 인간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내 필요와 욕심,
      자기중심이기에 시기 질투 싸움,
      말씀을 들어도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영적인 어린 아이들....

      마치 ‘씨뿌리는 비유’에 나오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마르 4:18-19, 18 그리고 씨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와서 그 말씀을 가로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필요를 채우고자 나오는 사람들은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COMPASSION하시고 돌보아주셨습니다.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보다 높은 차원의 인생을 살기를 원하시죠.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며 살아갈지를 보여주십니다.
      서신성경 에페소서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에페 4:1, 주님을 위해서 일하다가 감옥에 갇힌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주셨으니 그 불러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의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
      나를 택하시고 부르시어 구원하여 주님,
      바로 그 주님의 부르심의 목적이 무엇인가가
      그 삶에 우선순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부르심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에페 4:13, 마침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1)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에페 4:2,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
      에페 4:12,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 활동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자라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2) 말씀으로 든든히 선자가 되는 것입니다.
      에페 4:14, 그 때에는 우리가 이미 어린아이가 아니어서 인간의 간교한 유혹이나 속임수로써 사람들을 잘못에 빠뜨리는 교설의 풍랑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 사명을 다하는 자입니다.
      에페 4:16, 우리의 몸은 각 부분이 자기 구실을 다함으로써 각 마디로 서로 연결되고 얽혀서 영양분을 받아 자라납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도 이와 같이 하여 사랑으로 자체를 완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4)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자라나게 하는 자입니다.
      에페 4:12, 자라나는 것
      에페 4:16, 완성되는

      하느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목적을 정리하자면
      개인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고 그와 동시적으로 그리스도의 모인 교회 공동체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키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웃에 덕이 되는 신자가 되어
      세상에 복이 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부르심의 목적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삶을 살 때 인생에 허기짐, 목마름이 없게 됩니다.
      요한 6:35,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삶의 가치와 행복이 있게 됩니다.

      군중입니까? 신자입니까?
      예수님이 당신의 인생에 문제 해결을 위한 구원자로만 보이십니까?
      삶의 주인으로 믿고 따르고 싶으십니까?

      주님은
      우리가 불러주신 주님의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으로 자라나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든든히 서고
      몸 된 교회의 지체로 역할을 충실히 함으로
      세상에 복이 되는 교회를 세워가는
      이웃에 덕이 되는 신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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