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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5월17일] 1요한 5:1-6, 요한 15:9-17주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게 하소서!
  • 청지기
    조회 수: 2010, 2009-05-18 18:06:20(2009-05-18)
  •   가정의 달, 오월도 벌써 3번째 주일입니다. 사랑의 하느님은 우리가 사랑이 흘러넘치는 성가정을 세워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바람으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5월 첫 주일 - ‘네 자녀를 복음화하라’
      ‘너희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게 하고 하느님을 알게 하고 하느님을 예배하게 하는 삶을 살도록 양육하라!’
      지난 주일에는 고르넬리오의 가정을 통해서 하느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어떤 가정인지를 들었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하느님을 공경하는 가정, 구제에 힘쓰는 가정, 기도하는 가정!’

      우리 모두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행복이 넘치는 성가정을 세워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외쳐봅시다.
      “천국을 경험하고 천국을 확장하는 가정을 세우자!”
      “천국을 경험하고 천국을 확장하는 교회를 세우자!”

      사랑의 장인 고린도전서 13장을 패러디한 신며느리전서 13장이란 것이 있습니다.

      “내가 시어머니에게 애교있는 말로 안부전화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세상지식과 지혜로 교회의 집사가 됐을라도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재물을 풀어 시어머니에게 용돈을 드린다할지라도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시어머니가 무리한 요구를 할지라도 참고,
       시어머니가 좀 심한 말을 할지라도 온유하며,
       시어머니 앞에서 남편이 재롱을 떨어도 투기하지 아니하며,
       시어머니 앞에서 친정자랑을 하지 아니하며,
       시어머니 앞에서 교만하지 않으며,
       시어머니에게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시어머니에게 따지지 아니하며,
       시어머니가 실수해도 성내지 아니하며,
       시어머니가 빨리 죽기를 바라는 악한생각을 하지 아니하며,
       친구들의 옳지 못한 시어머니관을 기뻐하지 아니하며,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_^”

      사람은 관계를 맺고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적인 존재입니다. 가족과 교회가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공동체죠. 그 공동체를  세워가고 움직여 가는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계 속에서 힘들어 하고 공동체가 깨져나가는 아픔을 겪으면서 괴로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주신 새계명이죠. 거듭 명령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해 주셨는지를 알고 우리가 그대로 사랑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제자의 삶이며 성공적인 인생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배우고 그렇게 살아가기를 결단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대로 사랑할 수만 있다면 구호로 외친 그대로 천국을 경험하는 삶, 천국을 확장하는 행복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요?

      1. 주님의 사랑은 용서입니다.

      예수님은 마태오복음 18장 23절부터 비유로 용서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왕이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 값을 능력이 없는 것을 아시고 그 빚을 다 탕감해 주었습니다. 달란트는 금 46kg을 말합니다. 1만 달란트는 10톤짜리 트럭 46대의 분량의 금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그런데 탕감 받은 그 사람이 자신에게 한 데라니온 빚진 사람을 만나자 빚을 갚을 때까지 감옥에 집어 넣어버렸습니다. 한 데라니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정도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이 분노하여 탕감해 준 사람을 불러 형리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하느님은 일만달란트보다 훨씬 더 큰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신 사랑의 하느님입니다. 이 사랑이 나타난 곳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본질상 하느님의 진노를 면치 못할 죄인인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았습니다.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 우리 인생에서 사라졌습니다.
      십자가는 내가 너의 죄를 용서한다는 사랑의 초청장입니다.
      이사야 1:18,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오라, 와서 나와 시비를 가리자.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어지며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을 경험한 사람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편 103:8-14, “8 야훼께서는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시며 화를 참으시고 사랑이 넘치신다. 9 끝까지 따지지 아니하시고 앙심을 오래 품지 않으신다. 10 우리 죄를 그대로 묻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을 그대로 갚지 않으신다. 11 높기가 땅과 하늘에 비길 수 있고, 경외하는 자에게는 그 사랑 그지없으시다. 12 동에서 서가 먼 것처럼 우리의 죄를 멀리 치우시고 13 아비가 자식을 어여삐 여기듯이 야훼께서는 당신 경외하는 자를 어여삐 여기시니 14 우리의 됨됨이를 알고 계시며 우리가 한낱 티끌임을 아시기 때문이다.”

      마태오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용서에 관한 비유 끝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진심으로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일찌기 주님은 명령하셨습니다.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고 용서하라”

      누군가 나의 인격을 손상하는 말과 행동을 했을지라도,
      누군가 나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했을지라도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자는 용서하는 사랑의 삶을 살아갑니다.

    2. 주님의 사랑은 용납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알고자 기도하면 하느님은 자주 말씀하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내게 나오라.’
      
      더 나은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세상을 살다 보면 실족합니다. 주님께 더 드리고 싶고 헌신하고 싶은데 마음에 있는 욕심이 그것을 가리웁니다. 그래서 나의 삶에 덕지 덕지 얼룩이 지고 주님 앞에 죄책감만 더 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오시오
       하느님은 당신이 있는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나오길 원하십니다.‘
      
      지난 주일 주례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지 천사와 결혼하는 것이 아니다.
      100점의 배우자를 기대하지 말고 합하여 100점을 만들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천사들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죄인입니다. 연약합니다.

      다만 신자들은 자신이 연약한 죄인임을 알고 주님의 말씀에 회개 하고 새로운 결단을 하며 주님 닮기를 애쓰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오늘도 그 기대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납하며 판단하고 정죄하지 마십시오.’
      
      로마 15: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들여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3.  주님의 사랑은 영혼 사랑입니다.

      두 주전 설교에 신자의 자녀사랑은 영혼 사랑의 관점으로 행해야 함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때의 말씀은 부모들의 자식 사랑이 육적인 사랑에서 머무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자녀들의 영혼의 구원과 영적인 성장과 성숙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자녀들이 진정한 예배자로 주님 앞에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영혼 사랑의 말씀은 그 반대의 내용입니다. 단순히 영혼을 구원하는 것에만 관심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삶을 보면 주님을 만난 모든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우정이 필요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세리와 창녀와 같은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병자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자 제자들과 함께 전도를 다니신 주님은 늘 구제하셨던 같습니다.
      요한 13:39, 유다가 돈주머니를 맡아보고 있었기 때문에 더러는 예수께서 유다에게 명절에 쓸 물건을 사오라고 하셨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하신 줄로만 알았다.

      영혼을 사랑하면 그 사람의 전 인격을 사랑하고 필요를 채워주는 돌봄이 있게 됩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이 말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1요한 3:17, 누구든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의 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마음의 문을 닫고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 이전에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가 채워주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영혼 사랑으로 충만했던 초대교회는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자기의 것을 팔아 사도들 앞에 갖다 놓고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유무상통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필요를 채워주는 전인격적인 영혼 사랑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것이 십일조라고 생각합니다. 현대교회는 십일조를 말라기 3:10의 말씀으로 하늘 보물 창고가 열리는 축복을 받기 위한 수단처럼 가르칩니다. 이것은 전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말라기 3:10, 너희는 열의 하나를 바칠 때, 조금도 덜지 말고 성전 곳간에 가져다 넣어 내 집 양식으로 쓰게 하여라. 그렇게 바치고 나서 내가 하늘 창고의 문을 열고 갚아주는지 갚아주지 않는지 두고 보아라.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목적은 말라기에서 말하는 것처럼 축복을 받고자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 영혼이 구원받고 하느님의 자녀된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선교와 구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구약성경이 명령하는 십일조는 전인격적인 영혼 사랑을 제도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느님 하신 명령입니다.
      십일조로 성전을 운영하고 기업이 없는 레위인들을 돌보았습니다.  
      십일조로 나그네와 과부들이 돌봄을 받고 살아갔습니다.
      신명기 14:22-29, 22 너희는 해마다 씨를 뿌려 밭에서 거둔 소출 가운데 그 십분의 일을 떼어두었다가 23 그 곡식과 술과 기름의 십일조를 소와 양의 맏배와 함께 가져다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고르신 곳에서 그를 모시고 먹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너는 너희 하느님 야훼를 길이 공경해야 할 줄을 깨닫게 될 것이다. 24 너희가 너희 하느님 야훼께 복을 받았는데,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고르신 곳이 너희가 있는 곳에서 너무 멀어 그것을 가지고 그 먼 길을 갈 수가 없을 경우에는 25 그것을 돈으로 바꿔 그 돈을 몸에 지니고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 그 돈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사서 먹으며 즐겨라. 소, 양, 포도주, 술, 무엇이든지 먹고 싶은 것을 사서 너희 하느님 야훼를 모시고 너희와 너희 온 집안이 먹으며 즐겨라. 27 너희가 사는 성 안에 있는 레위인을 저버리지 않도록 하여라. 그들은 너희가 받은 유산을 함께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28 너희는 삼 년마다 한 번씩 그 해에 난 소출의 십일조를 다 내놓아 성안에 저장해 두었다가 29 너희가 사는 성 안에 있는 레위인, 떠돌이, 고아,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복을 내리실 것이다. 레위인은 너희가 받은 유산을 함께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구약의 말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기본적인 사랑의 실천인 십일조조차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에 분노하신 주님이 ‘너희가 하느님의 것을 도둑질하고 있다’고 호통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교회 공동체 안과 밖의 가나한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가야하는 것을 내가 소유하고 써 버리는 도둑질인 것이 분명합니다.

      말라기 호통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하고 철저히 십일조를 드리고 구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에 십자가의 사랑이 없었습니다.

      이를 본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루가 11:42, 너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그 밖의 모든 채소는 십분의 일을 바치면서 정의를 행하는 일과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구나. 십분의 일을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이것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예배 때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기에 우리가 받은 것을 하느님께 드립니다. 주여 이것을 당신의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게 하소서’라고 기도드리는데 십일조를 통한 기본적인 사랑의 실천을 외면하고 있다면 거짓 기도를 하는 것이고 서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불순종의 죄를 더하는 것이 됩니다.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할 뿐만 아니라, 필요를 채워주는 자발적인 나눔을 통해 구제가 풍성한 삶이 영혼 사랑의 삶입니다.


    4. 문제는 내게 이 사랑의 능력이 내게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용서는 기껏 삼세번이 전부입니다.
      힘껏 의지를 발동해야 4-5번 정도?
      그것도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며 자기 의에 빠집니다.
      자기 의와 교만은 이내 제체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맙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많은 판단과 정죄가 행해지고 있는지...
      
      주님 앞에 서 있을 때는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선한 마음을 갖지만, 돌아서 세상으로 나가면 이내 욕심이 그 선한 마음을 가로막아 손을 더욱 움켜쥐기만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인색하고 이기적이기만 합니다.
      ‘너가 그렇게 사는 것은 게으르고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으로 너의 책임이니 나와는 상관없다’고 외면하고 무관심합니다.

      도대체 내 안에 사랑의 능력이 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메마르고 이기적이고 속이 옹졸한 죄인인지 주님과 공동체 앞에 설 때마마 부끄럽고 창피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 사랑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우리의 마음이 채워지기를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크신 하느님의 사랑을 바로 깨달아 알고
      그 사랑이 내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켜 우리도 주님처럼 용서하고 용납하고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갈망을 잘 표현해 준 찬양이 있습니다.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게 사랑을 가르치소서
       당신의 마음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주의 성령 내게 채우사 주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 당신 마음 주소서
       주의 성령 내게 채우사 주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 당신 마음 주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사랑의 영이신 성령님이 나를 충만케 채우시어 나를 다스려 주시길 바랍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주님이 나에게 주신 사랑 그대로 용서하고 용납하며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전인격적인 사랑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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