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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07년 12월 16일] 마태 11:2-10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
  • 청지기
    조회 수: 2755, 2007-12-17 22:05:21(2007-12-17)
  • 원유 유출 사고로 고통 받고 있는 서해 어민들과 하느님이 만드신 자연 위에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어제 각 가정으로 긴급 연락을 드렸는데, 헌 옷 - 작업복용과 기름제거용 - 과 성금을 모아 수요일에 자원봉사를 가고자 합니다.

    주보에 나와 있는 대로 수요일 오전 10시 15에 교회에서 출발하여  만리포로 가서 성공회 형제교회 교우들과 합류하여 3시간 정도 기름수거 작업을 진행할 것입니다. 시간을 내실 수 있는 분들은 함께 해 주시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신 분들은 주 중이라도 헌옷과 성금으로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벌써 대림 3주일입니다.
    대림의 주제는 성탄과 재림이라고 했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면서...  
    대림 1주일에는 우리 모두가 지체되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대림 2주일에는 우리가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셨음에도 주님의 말씀, 주님의 마음, 주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했던 삶을 회개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이신 것처럼 서로 받아들이라!’
    뜨거운 관심으로 서로 받아들이는 공동체가 되어 그 사랑의 빛이 이 어두운 세상을 비추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이 한 주간에는 대림절특별새벽성찬예배를 드리면서 ‘나의 성탄’을 이루기 위한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이제 오늘의 성경말씀을 통한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감옥에 갇힌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히게 된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하느님이 그에게 주신 사명에 충실한 삶을 살다가 권력에 의해 갇히게 된 것이죠.

    본래 세례 요한은 아버지 즈가리야가 사제였기에 요한도 성전에서 사제직을 이어가도록 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성전에서 그 직분을 감당한 것이 아니라 광야로 나가 철저한 금욕의 생활을 하면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제사장이란 하느님과 백성들을 화해시키는 중보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를 통해 화해를 이루어 갔다면 요한은 광야에 나가 불의하고 부패한 삶을 지적하고 회개를 외치며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했습니다.

    당대 영주였던 헤로데가 자기 동생 필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이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에 대해 세례 요한은 추호도 두려움없이 왕에 대항하여 그 일과 그 밖의 저지른 잘못들을 꾸짖었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헤로데의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의 요청으로 참수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삶은 구약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선지자의 삶이었습니다.
    마태 3:3,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들린다.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세례 요한 자신도 이런 자신의 사명을 알았기에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는 고난의 삶을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예수일 것이라고 확신했었습니다.
    마태 3:11-12,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그분은 나보다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그분은 손에 키를 드시고 타작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그런데 감옥 안에 갇혀 있는 세례 요한에게 강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나는 분명 예수를 메시야로 생각하고 그의 길을 닦는 회개를 선포하다가 감옥 안에 갇혀 죽음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예수가 진짜 메시아일까?’

    이 의문 가운데 세례 요한은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묻습니다.
    3절,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하고 묻게 하였다.”

    감옥에 갇히고 후에 참수형을 당할 정도로 하느님의 정의감에 충실했던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가 생각했던 메시야는 소멸하는 불로 세상을 심판해야 했습니다. 이 땅에 있는 하느님이 기뻐하지 않는 모든 불의와 부패를 척결하는 것이 그가 그리는 메시야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들려오는 예수님의 이야기는 심판, 저주 같은 메시지가 아닌 용서와 자비 등의 말씀과 사역이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기대했던 메시야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질문하는 것입니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자신의 전 존재가 담겨있는 처절한 질문입니다.
    이렇듯 처절한 세례 요한의 이 질문에 예수님은 답해주셨습니다.  
    5절,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하여진다.”

    이사야 61장의 말씀을 답으로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오래전 예언자 이사야가 메시야가 이 땅에 와서 어떤 일을 하실지를 예언한 말씀입니다. 누가 예언자인가? 이사야 61장의 일을 행하는 바로 그 사람이 하느님이 보내신 메시야이다.

    루가 4장을 보면,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를 마치고 돌아오시어 공생애-구체적으로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회당에서 읽으셨던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너희가 듣고 본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고 하신 말씀대로  ‘그래 내가 바로 너희가 기다리던 메시야가 맞다.’는 긍정의 대답이면서도   예수님이 이사야 61장을 인용하여 답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요한이 알고 있던 메시아 상을 바로 잡아 주시고자 함입니다.

    이사야 61장을 보면, 2절에 ‘야훼께서 우리를 반겨주실 해’라는 표현과 또 ‘우리 하느님께서 원수 갚으실 날’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메시아가 어떤 성격의 일을 하는 것인지를 나타내는 표현들입니다.

    ‘야훼께서 우리를 반겨주실 해’라는 것은 개역성경으로 ‘은혜의 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나팔이 울리고 온 이스라엘 땅에 자유가 선포되었던 희년의 때를 연상시키는 표현입니다.
    레위기 25:9-10, “일곱째 달이 되거든 그 달 십일에 나팔소리를 크게 울려라. 죄 벗는 이 날 너희는 나팔을 불어 온 땅에 울려 퍼지게 하여라. 오십 년이 되는 이 해를 너희는 거룩한 해로 정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가 희년으로 지킬 해이다. 저마다 제 소유지를 찾아 자기 지파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7년마다 오는 안식년이 7번 돌아 오십년이 되는 해를 희년이라고 하여 모든 것을 하느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질서와 모습대로 회복시키게 됩니다.

    바로 이 희년의 때와 마찬가지로 메시야의 때도 '구원과 회복'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메시야의 때는 온 세계 인류를 죄의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키는 때라는 것입니다. 은혜의 해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삶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회복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에 ‘은혜의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이후 이 땅의 모든 시간은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 이로다'라는 고후 6장 2절의 말씀처럼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원수 갚으실 날’도 이루실 것입니다. 개역성경에는 ‘하나님의 신원의 날’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문자적인 뜻 그대로 하느님이 보복하시는 그 날입니다. 하느님이 대적 원수의 세력들을 완전하게 멸하시는 바로 그 날을 말합니다.

    이 일은 예수님이 심판주로 재림하시는 그 날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2000년에 있었던 예수님의 부활로 죄와 죽음의 권세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 시작되었지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 하느님이 원수 갚으시는 그 일이 완성될 것입니다.

    모든 악의 뒤에는 악마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지옥을 만드신 이유가 바로 악의 세력인 악마를 영원히 가두시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으로 악마는 지옥에 갇히며 모든 악은 멸될 것입니다. 다시는 이 땅에 악한일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묵시록 20:10, “그들을 현혹시키던 그 악마도 불과 유황의 바다에 던져졌는데 그 곳은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괴롭힘을 당할 것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은혜의 해’와 ‘신원의 날’을 함께 말했건만, 세례  요한은 ‘신원의 날’을 이룰 메시야만을 기대했기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이가 바로 선생님이십니까?’라는 의문을 던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오해를 풀어주시고자 이사야 61장의 말씀을 전ㄹ해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보다 바른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6절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꾸짖음이 아닌 권면이 담겨있는 부드러운 말씀이었다.
    ‘네가 만일 나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나를 신뢰하라.’

    우리도 세례 요한처럼 메시야에 대해서 각자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적어도 이런 모습으로 내가 오셔야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내 삶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경제대통령으로 임하시오’
    ‘내 삶의 곤고함을 채워줄 위로자로 오시오.’
    ‘내 병을 고쳐줄 치료자로 오시오.’

    이러저러한 나의 기대대로 예수가 응답하지 않는다고 그 믿음을 잃어버린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6절에서 ‘의심을 품는다.’는 말은 ‘돌 같은 데 걸려 혹은 부딪쳐서 넘어지다’ ‘실족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구원자 메시야 상으로 주님에게서 떠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비록 지금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나의 기대와 다를 지라도 이것 때문에 실족하지 않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를 때 마침내 영원한 생명과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축복을 받게 될 것이고 이 땅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내게 주시는 바로 그 것이 내게는 최상의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신원의 날’을 이루실 메시아만을 기대하는 반쪽 믿음으로 있었습니다. 이사야 61장을 전해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의 해’도 이루시는 메시야도 믿으며 예수님에 대해서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온전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죽은 영혼이 거듭나는 은혜를 누렸다면 '신원의 날‘이 이루어지는 그날, 주님의 재림의 날을 기대하고 준비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사야 61장 2절에 ‘야훼께서 우리를 반겨주실 해’라는 표현과 또 ‘우리 하느님께서 원수 갚으실 날’이라는 표현 사이에 ‘ ,’ 하나가 찍혀있습니다.
    그 콤마 하나로 2000년이 흘러갔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 콤마의 시간을 우리의 믿음 여하에 따라 정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벧후 3:9-12, “9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미루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러분을 위해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천체는 타서 녹아 버리고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11 이렇게 모든 것이 다 파괴될 것이니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십시오.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12 하느님의 심판 날을 기다릴 뿐 아니라 그 날이 속히 오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힘쓰는 여하에 따라 주님의 심판 날, 재림의 날이 속히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태오 24장 14절을 보면, 우리가 어디에 힘을 써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이 하늘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백성에게 밝히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끝이 올 것이다.”

    온 세상 민족이 복음을 듣도록 힘을 써야한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예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다는 복음을 듣지 못한 6,000종족이 이 땅에 있습니다. 이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도록 중보기도하고 선교에 동참하는 것이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백성들이 힘써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땅 끝까지 전파되도록 선교에 동참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생활과 선교적 삶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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