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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9월 16일] 출애 23 / 루가 15:1-12 소명과 사명
  • 청지기
    조회 수: 2695, 2007-09-17 21:03:57(2007-09-17)
  • 매년 정해진 성소주일에는 성공회대학교에서 연합예배를 드립니다. 연합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성직후보생들이 수학하고 있는 학교에서 성직 후보생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 김현석 리도스 형제를 비롯한 성직후보생들이 하느님의 종들로 올바르게 훈련되기를 기도합니다.

    성소주일을 지키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에 있습니다.
    성소 - 거룩한 부르심, 하느님의 부르심.  하느님의 부르심을 소명이라고 말합니다.
    그 소명을 이루어 가는 삶을 사명이라고 합니다.

    가장 행복한 인생은 자신의 인생의 목적을 알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사명의 삶을 사는 것인데, 그 인생의 목적이 주님의 부르심에서 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여러분에게 주신 하느님의 소명은 무엇인지요?

    그 소명을 이루고자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요?

    목숨을 걸만한 사명이 있고, 그 사명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에 근거한 것이라면 그 인생은 가장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 1독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명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 - 모세의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나이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는 40일 동안 산 아래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이 자기들을 출애굽 시켜 준 신이라고 제사를 드리는 우상숭배의 죄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에 하느님의 분노는 이스라엘 민족의 멸망이라는 심판 선언으로 나타났는데, 그 때 모세는 하느님 앞에 서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해 중보 하는 장면입니다.

    이렇듯 하느님을 배반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중보하며 광야의 여정을 전진해 가는 사명자 모세의 모습을 봅니다.

    그 엄청난 고난과 역경, 자기 동포들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고자 기도하고 전진하는 모세의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복음을 통해서는 목자의 모습을 봅니다.
    양을 돌보고 양을 지키고 잃어버린 양을 찾는 사명을 가진 목자.

    먼저 목자 되신 주님이 이렇게 우리 각자를 돌보고 지키고 계심에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나를 사랑하사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내가 하느님의 자녀로 구원받도록 은혜를 주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찾아 불러주지 않으셨다면, 나는 이리 저리 헤매다 필경 짐승의 먹이가 되든지,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게 될 잃어버린 양처럼 죄로 인해 죽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죽어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던 나를 찾아오시어 하느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사명을 주시어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선 목자처럼, 지옥의 문 앞에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이 주님의 사명이었습니다.

    마르코 1장을 보면, 무척이나 바쁘고 힘든 사역을 하신 다음 날 새벽 기도하신 후 주님을 찾아온 제자들에게 "이 근방 다음 동네에도 가자. 거기에서도 전도해야 한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영혼 구원 - 주님의 사명!

    우리도 주님처럼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고 선포할 수 있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영혼 구원의 사명을 이루는 삶이었고 그 삶을 이루고자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걸었습니다.

    크리스챤 -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신자들은 모름지기 예수님을 닮아가고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결국 우리도 사명을 위해 살아야 하고 사명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수요일 우리는 또 다른 사명자를 보았습니다.
    조현철 집사.

    척추장애자로서 난쟁이 보다 작고 연약한 그였지만, 모든 사회적 냉대와 가난을 극복하고 영혼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품고 전도자로 사명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우리도 모세처럼, 예수처럼, 그 집사님처럼 사명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이 될 수 있을까요?

    사명을 알고 사명을 이루고자 살아가는 인생이 행복한 삶일진대 어떻게 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벨 캄벨 존슨의 ‘목숨을 걸 사명을 발견하라’는 책이 있습니다.
    프롤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누구에게나 하나님이 예비해두신 사명이 있다!   이제까지 하나님은 항상 세상에서 자신의 거룩한 일을 감당하도록    사람들을 부르셨으며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불러서    교회와 세상에서 특별한 사역을 감당하게 하신다.    목숨 걸 사명을 발견하기 위해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 머릿속에는    ‘지금 하나님께서 이 일을 맡기려고 나를 부르시는가?’에 관한    의구심이 떠나지 않고 끈질기게 자리 잡고 있다.    이 사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가,   아니면 나의 무의식적 갈망이나 두려움으로 인해 이 일을 하려는 것인가,    심지어 문화적 요인이 나의 인식과 결정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하려는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다.    이런 의문에 부딪힐 때
    우리는 ‘분별’의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이 경우에 있어서 분별이란, 어떤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고    어떤 것이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면    확신을 가지고 사명을 수행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엉뚱한 데서 세월을 허송할 수가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제대로 분별한 자는 그 사명에 목숨을 건다.”

    하느님은 우리 각자를 특별한 존재로 지으시고 이 땅에 보내셨다.
    그래서 우리 각자에게는 주님의 소명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사명자이다.
    이것이 우리 원형의 모습이다.

    어떻게 해야 한번 살다가는 인생을 주님의 부르심 가운데 있는 사명을 이루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지난달에 묵상했던 열왕기 19장의 엘리야가 생각났습니다.

    갈멜 산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예언자들 850명을 죽이고 3년 반의 가뭄을 그치게 하는 비를 내리게 하는 엄청난 사역을 했지만, ‘너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왕비 이세벨의 말 한마디에 낙심하고 숨어버렸던 엘리야.

    하느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해 엘리야를 먹이시고 육체적인 힘을 회복시켜 주신 후 호렙산으로 부르셨습니다. 바로 그 산에서 조용하고 여린 소리로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님시의 아들 예후를 북이스라엘 왕으로 세우라는 사명을 받고 산을 내려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이렇듯 소명을 가진 자로 사명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면 소명을 분별하여 알게 되고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엘리야처럼 호렙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모세가 주님을 만난 곳도 호렙산입니다.
    호렙은 주님을 만나는 거룩한 시간과 장소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세상을 만나기 전,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주님만을 만나는 호렙산, 한적한 곳이 있는 인생은 부르심의 이유, 사명을 아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 물어보십시오.
    “주님 나를 통해서 이루실 일을 알게 해 주세요.
    주님, 나를 써주세요.”

    주님을 만나 사명을 분별하고 그 사명을 이루고자 살아가는 사람이 갖는 유익은 그 무엇보다도 그 삶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인격적인 성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모세 - 그 온유함이 지면에서 가장 승했던 사람.
    엘리야 - 하느님의 사람
    예수 - 필립비 2장의 겸손
    조집사 - 사랑으로 섬길 수 밖에 없는 인생

    홈페이지 주필 강피터님이 지난 금요일에 생활 글 남겨주셨습니다.
    부르심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부르심 - 소명
    오랫동안 함께 생활해온 덕분인지 영적으로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용인즉 매주 한편 이상의 글을 쓰면서 얻은 유익에 관한 글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통해서 저는 재미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글쓰기를 통해서 제 마음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얘기냐구요?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비슷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음 주심 곧 부르심에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구요...(그 부르심이 꼭 엄청난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죠....)   따르려면 마음에 부담이나 피해가야 할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그냥 나아가는 것이구요....
    그리고 따르기로 결정했으면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하는 거구요...
    기왕 따르는 중이면 주님의 신실하심을 닮아 끊임없이 해 나가는 거구요...
    여러 가지 제약과 힘든 상황 가운데에서도 붙잡고 나아가야 하는 거구요...  그러다 보면...  그러한 훈련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보여 주시는 것을 알게 된다는...   보여 주시는 만큼 스스로 이미 성장한 것을 알게 된다는...  물론 모두가 다를 겁니다.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그 분이 우리를 풀빵 찍어내듯 똑같은 일을 하도록 만드시지는 않았을 겁니다.  
    다양하게 부르시고...  그 분야에서 열심을 다해 순종하기를 바라시고...  그렇게 부르심에 반응하여 달려 나갈 때... 하늘의 비밀을 엿보게 해 주시고...  그 깨달음들이 모여 온전한 하느님의 교회를 이루게 하시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교우님들, 우리 교회가 그런 하느님의 교회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구요...
    이 찬양 아시면 함께 불러요~  ‘나의 부르심~ 나의 영원한 소망~ 예수님의 형상을 닮는 것~  나의 목적~  나의 높은 부르심~
    세상을 뒤로하고 주 위해 사는 것~  덮으소서~ 품으소서~ 이끄소서~
    주 얼굴 보기 위해 내가 나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성소가운데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성화의 은총이 임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 은혜로 행복할 수 있기를 ----

    찬양합시다.
    ‘나의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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