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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7월 22일] 루가 10“38-42 우선순위와 균형
  • 청지기
    조회 수: 2461, 2007-07-31 10:16:36(2007-07-31)
  • 38절, “예수의 일행이 여행하다가 어떤 마을에 들렀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모셔 들었다.”

    “예수의 일행이 여행하다가”

    - 여행 ? 전도여행 = 단기선교
    이 시간 아프카니스탄 단기선교 중 피납되어 있는 형제자매들을 위해 잠시 기도합시다.
    - 예수님의 일행은 그 규모가 얼마나 됐을까요?
    10장 1절 = 72제자가 나옵니다.
    그들을 돌려보내셨다면 모를까 그 규모가 상당했을 것입니다.
    루가 8장 :1-3, “그 뒤 예수께서는 여러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는데 열두 제자도 같이 따라다녔다. 또 악령이나 질병으로 시달리다가 나은 여자들도 따라다녔는데 그들 중에는 일곱 마귀가 나간 막달라 여자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신하 쿠자의 아내인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라는 여자를 비롯하여 다른 여자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은 자기네 재산을 바쳐 예수의 일행을 돕고 있었다.” ~ 12제자와 여러 여인이 일행.

    “어떤 마을에 들렀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모셔 들었다.”

    - 요한 11장 1절(“마리아와 마르타 자매가 사는 베다니아 동네에 라자로라는 병자가 있었다.”)의 기록을 보면, “어떤 마을”은 예루살렘에서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베다니아’라는 마을입니다.
    -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이 나서서 집을 개방하고 자기 집에 모시어 들인 것을 보면, 마르타는 상당히 활동적이고 적극적이었던 여성인 것으로 보입니다.
    - 예수님을 모셔 들인다는 것은 마르타를 비롯하여 그 가족이 예수님을 주님을 영접한 신자의 가정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 요한 11:5(“예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고 계셨다.”)을 보면 마르타의 가족 ; 오빠 나자로와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과 절친한 사이로 신학자들은 ‘재가제자’라고 합니다.  
    - 예수님을 모셔 들인다는 것은 또한 예수님의 일행을 대접하기 위해서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잠자리까지 제공해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르타가 이 수고를 자원하였다는 것입니다.

    - 사복음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마르타의 가정은 언제든지 주님께 열려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 주님께 열린 가정은 은혜가 넘칩니다. 주님께 폐쇄적인 가정은 집안에 은혜의 온기 대신 심령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차가운 냉기가 감돕니다.

    - 우리의 가정도 주님께 개방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이 은혜의 주님께서 항상 임재하시는 아름다운 처소가 되도록 믿음으로 활짝 열어야 합니다.
    - 또한 같은 주님을 섬기는 성도들 간에도 서로 가정을 개방하여야  합니다. 성도를 섬기는 것은 곧 우리 주님을 섬긴 것입니다. 마르타처럼, 주님 섬기는 마음으로 지체들을 손 대접하는 모습이 주님 앞에서 아름답습니다.

    - 초대교회는 이런 열린 가정공동체였습니다.
    사도 2:46. “그리고 한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 초대교회는 가정을 돌아가며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고 교제하는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 여름 이후 개편할 우리 교회 소그룹공동체들이 바로 이런 공동체이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누추한 가정이라 할지라도 필요할 때에는 믿음의 교우들이 언제든지 함께 하는 사랑의 쉼터가 되기를 바랍니다.

    39절, “그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 마르코 1:21-22, “예수의 일행은 가파르나움으로 갔다. 안식일에 예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듣고 놀랐다. 그 가르치시는 것이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 주님의 가르침은 그 가르치는 것이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놀랐다고 합니다. 저자직강이니까요!

    - 마리아는 그 은혜의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주님이 좌정하시자 그 발아래에서 주님만을 응시하고 앉아 있습니다.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들으려는 강렬한 열망이 보입니다.
    - 우리 안에도 말씀향한 갈망, 주님을 향한 열정이 흘러 넘쳐야 합니다. 은혜의 생활을 유지해 가는 유일한 방법이 마리아의 삶입니다.

    - 마리아의 모습이 담겨있는 노래 ;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함께 불러보겠습니다.

    40절,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던 마르타는 예수께 와서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주라고 일러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던 마르타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개역 개정)

    - '마음이 분주하다'는 말은 매우 혼란스럽고 안정이 되지 못한 감정 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할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 큰 손님상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이 지극한 마르다로서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대접하고 싶습니다. 양고기  송아지 요리도 해야 하고 빵도 구워야 하고 마실 음료수도 내놓아야 합니다. 몸이 열 개라고 힘이 듭니다.

    - 이 마음이 매우 귀합니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다만 한 끼라도 예수님을 정성껏 대접하고 싶어 하는 마르다의 마음이 아름답습니다.우리에게도 주님께 최고의 것을 드리고 마르타의 마음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 하지만 한편 경황이 없어 하는 마르다가 안쓰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국 마르타는,
    “예수께 와서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주라고 일러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던 마르타가 시험에 빠졌습니다. 손님 대접으로 많은 일에 경향이 없어 힘든데, 그저 주님 발치에 앉아 말씀만 듣고 있는 동생 마리아를 보니 화가 납니다.
    - ‘나와서 나 좀 도와’고 눈치도 주고 손짓도 했건만 동생은 요지부동! 오직 주님께만 집중하고 있으니 마르타가 폭발한 것입니다.
    - 마르타의 말을 마르타의 입장으로 한번 읽어 보십시오.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주라고 일러주십시오.’
    - 마리아에게 화난 마음이 이제는 예수님가지도 섭섭하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발전했습니다.

    - 교회 안에 이런 일이 얼마나 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까?
    어느 교회든지, 마르타처럼 손과 발을 움직여 땀 흘리는 수고가 없다면 교회는 절대 돌아가지 않습니다.
    - 특히 우리 교회는 손과 발로 섬기는 사람들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1700평의 땅을 깔끔하게 관리하는 일부터 성당과 교육관 청소, 공동식사, 설거지, 각자 은사대로 섬기는 여러 가지 사역 등 등.
    - 당장 주일학교 여름성경학교도 장난이 아닙니다. 매주 토요일마타 하루종일 준비하는 교사들의 손길, 그리고 행사 기간 중에는 여선교회원들이 끼니마다 성당에 와서 맛있는 밥을 해 줘야 하는 수고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 그런데 가끔, 마르타처럼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시작하다가 힘드니까 그만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주님께 대한 섭섭함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 어찌해야 할까요?

    41-42절, “그러나 주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마르타, 마르타”

    - 마르타의 한 마디에 은혜로웠던 분위기가 싸늘해졌습니다. 마르타의 감정이 아주 격해져 있었던 같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마르타의 격앙된 감정을 가라 앉혀 주시려고 두 번씩이나 이름을 부릅니다.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 주님이 보시기에 마르타가 화가 치밀어 오르게 된 것은 너무 많은 일에 신경을 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을 최고로 대접하고 싶은 사랑 때문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과잉불급!
    - 마르타가 마리아에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보니 마르타가 완벽주의자의 면모를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흔히 완벽주의자들은 무슨 일이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기준과 방식대로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에게 화가 나고 분노를 폭발하게 됩니다.
    -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지만, 일에만 집중하고 그 일을 자기 기준가 방식대로 완벽하게 하려고 하다 보니 관계에 균열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힘이 듭니다.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개역개정)
    -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권면하십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
    감당할 만한 분량만큼만 처리하라고 가르치십니다. 너무 욕심을 내지 말고 필요한 부분만 하라고 하십니다.
    - 자기 자신의 능력을 알고 또한 분위기를 잘 파악하고 적절하게 일을 추진하고 처리하는 편이 지혜로운 자의 모습입니다.
    -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이런 ‘삶의 지혜’입니다. 이런 삶의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  시편 119:97-100, “당신의 법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자나깨나 나는 그 말씀을 되새깁니다. 계명을 주심으로 당신은 내 것이 되어, 원수들보다 더 지혜롭게 나를 만드십니다. 당신의 언약을 되새기어서 나의 모든 스승보다도 더 현명해지리이다. 당신의 법령들을 내가 지키어 노인들보다도 더 슬기로워지리이다.”
    - 주님 발치에 머물러 묵상하는 삶에서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 마르코 3:14-15, 제자 됨의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뽑으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 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복음을 선포하려면 먼저 예수님 곁에 머물면서 가르침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발치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그들이 스승과 제자 사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 그렇다면 마리아야말로 예수님의 제자답게 행동하였고 예수님은 마리아를 당신의 제자로 생각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렇다고 예수님의 이 말씀이 마르타를 나무라신 것은 아닙니다. 필요한 것 한 가지 ~ ‘참 좋은 몫을 택하는 것’이란 곧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 그것은 당신의 말씀,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가르치신 것뿐입니다. 주님과의 관계에서 그 무엇보다도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삶이 우선순위라는 말씀입니다.

    * 결론 : 우선순위와 균형!

    -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리아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마르타가 되기도 하며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 즉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부르심을 받는 때가 있는가 하면 형제들을 섬기기 위해 많은 일을 하며 바쁘게 움직이라는 부르심을 받는 때도 있습니다.
    - 신앙의 삶에는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기도생활과 마르타처럼 이웃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봉사생활이 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도생활이 결여된 봉사생활이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  예수님도 이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를 앞자리에 두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마르타에게 말씀하신 ‘더 좋은 몫’입니다.
    - 예수님은 우리가 매일 하느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하느님을 알 수 없고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하느님의 일을 잘 행할 수 없게 됩니다. 삶의 지혜를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사람만이 그분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말씀을 듣는 묵상과 기도, 그리고 들은 말씀을 삶에 옮기는 사랑의 실천은 함께 가는 것으로 이것이 우리 안에서 조화를 이룰 때 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에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 십자가는 그 균형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먼저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교우들과 이웃 세상과의 관계.
    - ‘더 좋은 몫’을 택하는 우선순위와 마리아의 영성과 마르타의 영성을 구비하는 균형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 Our Savior Church ; 수많은 사회선교 현장을 감당해 가는 신자들, 그 비결은 매일 1시간씩 갖는 관상기도입니다.
    - 천주교 CLC공동체 ; 다리로서의 CLC, 세상속의 교회로서의 CLC. ; “현대 세계를 보다 인간적이고 복음적인 질서로 이끌기 위해서는 세상에 속하면서도 세상을 넘어설 수 있는 영적인 지혜가 필요합니다. CLC는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식별하는 영적인 힘을 길러가는 것에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들은 평신도 공동체로 익나시오의 영성수련을 기본으로 하고 매일 아침 저녁 드리는 기도의 시간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주님 앞에 머무르는 기도와 묵상은 주님과의 관계에서 결코 빼앗어서는 안되는, 그리고 빼앗겨서도 안되는 가장 우선순위라는 것입니다.

    - 우리는 교회 내적으로나 대사회적으로도 우리의 손과 발로 섬기는 수고를 많이 요구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땀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습니다.

    - 저의 목회 경험으로 볼 때, 신앙적으로 더 성숙한 사람은 몸으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성숙한 사람이 몸으로 하는 수고를 감당합니다. 미성숙한 사람은 입으로만 합니다. 몸으로 섬기면서 말이 없는 사람이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입니다.

    - 교우 여러분 모두가 “우선순위와 균형”으로 이런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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