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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6월 10일] 야고보 3:1-12, 마태오 12:33-37
  • 청지기
    조회 수: 3421, 2007-06-11 00:21:49(2007-06-11)
  • 지난 주일이 성삼위일체주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사도신경이나 니케아신경에 고백되어 있듯이 성부 성자 성령 세분의 하느님이 하나라는 진리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말하고 있지 않지만, 성경 안에서 하느님은 삼위로 자신을 계시하시며 삼위의 하느님이 온전한 일치 가운데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진행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하느님이 공동체라는 말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이 사랑으로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세우신 인간의 조직은 그 본질상 사랑으로 하나 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으로 완전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계신 하느님이 디자인하시고 세우신 공동체로 가족과 주님의 피 값으로 세운 교회가 있습니다.

    이 두 공동체를 향한 하느님의 마음은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예수님의 기도에 잘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21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될 것입니다. 22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나도 그들에게 주었읍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 내가 이 사람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이 사람들을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며 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이 사람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를 향해 기록된 서신들을 읽어보아도 동일한 하느님의 마음이 나와 있습니다.

    에페소서 4:1-6, “1?주님을 위해서 일하다가 감옥에 갇힌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셨으니 그 불러 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 3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4?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안겨 주시는 희망도 하나입니다. 5?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6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십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을 대적하는 사탄은 가정과 교회, 하느님이 세우신 공동체가 분열되고 깨지는 것을 원하고 분열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교회나 가정 등 공동체가 깨져나갈 때 주님의 마음이 가장 아프고,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확장되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지연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가정의 파괴와 교회 공동체의 분열의 배후에는 바로 이런 사탄의 궤계가 있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부담감이 공동체의 문제였습니다.

    주님의 피 값으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인 우리 교회가 진정 주님의 사랑으로 하나 되어가고 있는가? 주님이 주신 비전인 예루살렘교회비전 : 사랑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를 세워가는 비전이 우리의 기도와 헌신으로 성취되고 있는가?

    이 비전이 무색하도록 서로 돌아봄이 약하고 오히려 공동체 지체들 간에 틈이 발생하고 있지는 않은가? 인간적으로 보면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고 그 갈등으로 인한 관계의 벽과 틈이지만, 사탄은 그것을 비집고 들어와 교회 공동체를 약화시키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교회는 새 신자가 본 교회를 출석하기로 결정하면 101반-‘등록교인이 되려면’이라는 새 가족반을 진행합니다. 101반의 핵심 내용은 ‘교회는 가족이다’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고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신 가족이기에 교회의 핵심가치는 사랑에 있습니다.
    101반 수업 내용 중 일부를 유인물로 드리니 집에서 복습해 오시기 바랍니다. 숙제!

    “교회공동체 는 가족이다. 가족은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이다.”
    이 명제 앞에서 어떻게 하나 됨을 이루고 지켜갈 수 있을까요?
    관건은 성령께서 이루시는 하나 됨을 지켜가는 것입니다. 일치를 깨뜨리는 요인들을 제거해가면 공동체는 하나 됨을 지켜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에페소 4:3,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성령께서 이루신 일치를 깨뜨리는 요인이 두 가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고 또 하나는 ‘지체를 용납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다 죄입니다. 이 죄가 공동체 안에 그대로 있으면 분열의 영이 움직이고 공동체는 깨져나갑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일치를 깨뜨리는 요인들이 제거되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1. ‘말’을 조심하십시오.

    야고보서 3:2, “우리는 모두 실수하는 일이 많읍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완전한 사람입니다.”

    마태오 12:36, “잘 들어라. 심판 날이 오면 자기가 지껄인 터무니없는 말을 낱낱이 해명해야 될 것이다.” - 무익한 말.

    아무렇게나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습니다. 내가 무심코 한 말에 상대방은 마음에는 대 못이 박히고 상처가 되고 ... 그 영혼이 공동체에서 멀어지고 마침내는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기도 합니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 -권 연수-
    모든 인간이 소속된 집단의 틀 속에서 자신이 하는 말 한마디의 잘못 때문에 서로 다툼이 생기고 울고불고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단번에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린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공동체에서나 항상 주변인에게 말을 함부로 하며 사는 이를 아주 쉽게 많이 보며 살아가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함부로 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늘 세 치도 안 되는 혀를 잘 다스려서 사람을 죽이는 말을 하는 대신에 항상 사람을 살리고 힘을 주는 언어만을 사용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서 내 생애 주어진 이 한 세상을 참으로 아름답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서로 배려하면서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세상이 얼른 다가왔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 글을 보면 말을 함부로 하지 않기 위해 명심해야 하는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서로 배려하면서’, ‘사람을 살리고 힘을 주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1) 배려는 상대방을 존귀하게 여기는 태도를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지체를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만약 부부관계에서 아내의 아버지가 대통령이면 남편이 아내를 함부로 말하고 대할까요? 교우 관계에서 지체의 아버지가 대통령이라면 그 지체를 함부로 대할까요? 그런데 사실 부부사이든지, 지체들이든지 그분들의 아버지가 위대하신 창조주 하느님입니다. 그분들은 하느님이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고 값을 치르고 사신 하느님의 아들 딸입니다. 그 지체 안에 존귀하신 주님이 살아계십니다. 이 사실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 진리로 지체를 대하는 것이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옆에 계신 지체를 보십시오. 이분의 아버님이 하느님 이십니다 바오 이분이 하느님의 존귀한 아들 딸입니다. 지체를 계속 바라보십시오. 이 분 안에 성령 하느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존귀한 하느님의 형상입니다.

    지체를 존귀하게 여기는 태도를 마음에 지니고 있다면 우리의 언행심사가 삼가 거룩하고 덕스러워질 것입니다.

    마태오 12:35,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마음에 쌓아 두었다가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을 마음에 쌓아 두었다가 악한 것을 내놓는 것이 아니겠느냐.”

    지체들을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지닌 선한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사람을 살리고 힘을 주는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을 의지해야합니다.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기질이나 인격이나 습관으로 무십코 말을 뱉지 마십시오. 지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를 반드시 성령님께 묻고 그분이 주시는 생각으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파라클레토스이십니다. 파라클레토스 - 위로자, 상담자로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께 묻고 말하고 행동하면 나는 오랄 랭귀지, 바디 랭귀지를 통해 지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주님의 말씀으로 묵상하며 성령님으로부터 말솜씨를 배우십시오.
    이사야 50:4, “주 야훼께서 나에게 말솜씨를 익혀 주시며 고달픈 자를 격려할 줄 알게 다정한 말을 가르쳐 주신다. 아침마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배우는 마음으로 듣게 하신다.”

    2. 크게 두 번째 지체들을 용납하고 용서해 주십시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용서하는 자가 하느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고 바로 그가 성숙한 사람이고 주님의 제자입니다.
    혹시 우리들 안에 용납하지 않아주고 용서하지 못해 갈들이 있고 실족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하느님 앞에서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허물을 안으시고 우리를 용납하셨고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오늘 이렇게 변화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년 전 강준민 목사님이 쓰신 ‘목회서신’이라는 책을 보면서, 사랑에 관한 설교를 하면서도 사랑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목사님의 모습에 공감했던 적이 있다.
    ‘나는 과연 설교한 대로 완벽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분명한 하느님의 말씀을 포기해야 하는가?’
    강준민 목사님은         어느 날 헨리 나웬의 글을 읽다가 이 문제를 해결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말입니다.
    “과거의 나쁜 습관에 여전히 지배받으면서도 말로만은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가르치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혹시 자기 한 말을 통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언젠가는 자신의 가르침을 행하기 시작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용납, 용서라는 말은 부족한 우리를 늘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수식어입니다.

    사제인 저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런 중에 그 많은 사람들과 갈등 없이 지낸다는 것은 기적이 일어나야 가능한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교회를 섬겨온 지난 7년 동안 갈등으로 인해 아파하고 밤새 곰곰이 생각하느라 이리 저리 뒤척이던 날도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 자신이 설교한 그대로 살아가지 못해서, 관계와 갈등 속에서 그 사람을 용납하고 용서하지 못해서 힘들어 한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평안히 잠을 잡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제가 깨달은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용납과 용서가 바로 사랑이다. 그래서 갈등하며 보낼 시간에 하느님께 사랑을 구합니다. 나를 용서하여 주신 아버지의 마음을 부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저를 신부라고 하지 않습니까? 영적인 아비입니다. 그렇습니다. 제 마음 속에 교인들이 아들과 딸로 다가올 때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갈등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갈등을 바라보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집니다.
    ‘큰 아들이 심통이 좀 났구나. 막내가 삐쳤구나. 둘째가 배가 고프구나.’
    이런 아들 딸 들에게 매를 들 부모가 있겠습니까? 심통이 나고 삐친 아이들에게는 장난감을 주며 달래고 배고픈 아이에게는 먹을 것을 주겠지요. 물론 엄히 꾸짖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사랑이 있는 가족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가족입니다. 그래서 사랑해야 한다. 어떤 지체가 나를 힘들게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사랑해야 한다.

    생떽쥐뻬리의 책 ‘어린왕자’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있어서 그래”
    그렇습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아름다운 것은 완전해서가 아니라, 용서하고 용납해 주는 사랑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며 칭찬과 격려와 사랑의 말들이 흘러넘치는 공동체, 나와 너의 실수와 부족함에 불구하고 용납하고 용서해 주는 공동체!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이런 공동체가 될 때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참된 사랑을 찾는 영혼들이 사랑의 하느님을 만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 우리가 아름다운 주님의 공동체를 세워가도록 도와주세요.’

    함께 기도합시다. 먼저 이 시간 성령님께 물어봅시다.
    혹시 내가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를 입고 힘들어하는 지체가 있다면 알게 해 주시고 용서를 구하는 내가 되게 해 달라고. 또한 이제 앞으로는 가정이나 교회에서 상대방을 존귀하게 여기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을 하는 내가 되게 해 달라고.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상처를 받고 내 안에 미움이 있다면 주님께 사랑의 능력을 부어달라고 기도합시다.
    찬양 -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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