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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4월 29일] 묵시7:9-17, 요한10:22-30 선하신 목자 날 사랑하는 분, 그 인도하는 곳 나 따라 가리
  • 청지기
    조회 수: 3393, 2007-04-29 21:01:01(2007-04-29)
  • 새겨볼만한 글 하나 읽어 드리겠습니다.
    제목 : 큰 코 다칠라! / 작자 : 미상
    “사람들의 심리는 대개 다 같아 보인다. 어떤 물건을 갖고 싶을 때는 온통 그것에 관한 것만 눈에 들어온다. 만일 자동차를 사고 싶다하면 ‘어떤 차종이 좋을까?’, ‘저 색깔은 어떨까?’하 고 오직 자동차만 생각한다.
    그러다 그 자동차를 사게 되면 혹시 지나가던 사람이 차를 상하게 할까봐 주차 하나에도 신경을 쓰며, 열심히 세차도 하며 난리도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신경이 무뎌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도 ‘그러려니’하게 된다. 그러다 큰 코 다치는 경우를 본다.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는 오직 그 사람만 생각난다.
    ‘내가 무엇을 해야 호감을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이 좋아할까?’ 그래서 그 성과로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 그 사랑이 무뎌진다. 관심이 없어지고 그저 형식에 얽매여 살게 된다. 그러다 큰 코 다치는 경우를 가끔 본다. 요즘은 자주 본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돌아보자.
    날 구원하여 주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안 보였다.
    ‘감사’와 ‘찬송’이 끝없이 이어지고 모두 예수님 중심이었다.
    남들이 하는 방언이 부러워 산에서 나무를 붙들고 ‘나도 주세요!’하며 울부짖기도 했고, 남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보니 신앙이 무뎌졌다.
    “나도 저렇게 유난떨며 신앙생활 해봤어. 별 거 아냐.”
    점차 신앙이 고자세가 되어 간다. 그러다가는 결국 큰 코 다치게 된다.

    우리의 신앙이 다시 부활해야 한다.
    그리고 삶의 전반에 부활의 대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틀림없이 정말 큰 코 다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다시 부활해야 합니다.
    진정 우리 안에 다시 부활해야 하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부활 4주일인 오늘, 하느님께서는 주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고자 시편23편과 요한묵시록7:9-17, 요한복음10장의 말씀을 읽도록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혹 우리의 신앙이 무뎌진 신앙이라면 다시 회복되며 우리 삶의 전 영역에 부활의 대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먼저 하느님께서는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가 믿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 개인과 공동체에 어떤 분이신가를 바로 알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성경이 밝히 증거 하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들은 선한 목자되신 주님의 성품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 선한목자는 양을 알고 있습니다.
    요한 10:27절, ‘나는 내 양들을 알고’
    여기서 ‘안다’는 말은 ‘야다’라는 단어로 전인격적으로 안다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아시는 것은 그저 이름 정도만 아는 피상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전인격적인 관계입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는 양의 모든 것을 훤히 다 압니다.
    시편 139:1-4, “야훼여, 당신께서는 나를 환히 아십니다. 내가 앉아도 아시고 서 있어도 아십니다. 멀리 있어도 당신은 내 생각을 꿰뚫어 보시고, 걸어갈 때나 누웠을 때나 환히 아시고, 내 모든 행실을 당신은 매양 아십니다. 입을 벌리기도 전에 무슨 소리 할지, 야훼께서는 다 아십니다.

    우리의 필요도 정확하게 아십니다.
    마태 6:8,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남이 나의 속 깊은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주기만 해도 위로가 되고 기분이 좋은데, 우리 주님이 나를 훤히 알고 계십니다. 부활하시어 왕 되신 주님이 나를 일일이 알고 기억해 주시니 얼마나 기쁘고 마음이 든든합니까?

    2. 우리를 아시는 주님은 우리의 삶을 이끌어 주십니다.
    시편 23:3,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 길이요.”

    ‘인도하신다.’는 말은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묵시록7:15에 보면 ‘옥좌에 앉으신 목자이신 주님은 그들의 백성을 ’가리워 준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가리워준다.’는 말씀의 뜻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라.(개역)”, “그들 위에 장막을 쳐 머무실 것이다.(분도)”, “피난처가 되신다.(KJV)”, “임재 하시어 지키신다.”(GNB)는 의미입니다.

    당신의 양떼들이 머무는 척박한 땅에 목자이신 예수님은 친히 당신의 장막을 치고 함께 머무시며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임재하심으로 당신의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시편23)’로, ‘생명의 샘터(묵시록7:17)’로 인도하여 주시어 당신의 백성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도록 해 주십니다(요한 10:10).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로 풍요로운 생명을 누리도록 척박한 우리 인생 한가운데 장막을 펼치시어 함께 하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이심을 굳건하게 믿는 신앙으로 부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럼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임을 믿는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예수님은 나 자신이나 공동체가 선한 목자에게 속한 양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말씀하십니다.

    요한 10:26-27, “너희는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믿지 않는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 온다.”

    그 기준은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주님을 따라 가는 삶을 사느냐?’라는 것입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목자와 함께 있는 양은 자기가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사나운 맹수가 나타나도 겁은 나지만 목자가 물리쳐 줍니다. 선한 목자를 따라가기만 푸른 초장에 가서 풀을 뜯고 쉴만한 물가에서 물을 먹으며 자유와 평화가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이나 판단대로 길을 가면  정말 큰 코 다칩니다. 혹 운이 좋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에 갈 수도 있겠지만 항상 그 삶이 항상 보장되는 삶이 아니기에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사나운 이리가 나타나도 스스로 대항하여 싸울 힘이 없습니다. 길을 몰라 헤매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고 가시덤불에 걸려 다치는 등 지치고 곤한 삶을 살아가다가 결국은 그렇게 죽고 맙니다.

    사랑의 예수님은 이렇듯 길 잃은 양처럼 제멋대로 살아가는 우리 인생들의 선한 목자가 되시고자 우리를 찾아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임을 당하시고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은 바로 지금 그를 의지하는 연약한 인생들 삶 속에 장막을 펼치시고 임재하시고 보호하시며 지켜주십니다.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십니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도록 흘러 넘치게 채워 주십니다.

    로마서 8:31-32, “그러니 이제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느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의 선택이 남아 있습니다. 목자이신 주님을 신뢰하고 그 분의 음성을 들으며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내 생각과 경험을 의지하며 이리 저리 헤매는 길 잃은 양처럼 살 것인가?
    우리 인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선한 목자 예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매사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느님의 말씀을 가운데 기도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풍요로운 인생을 살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자기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방식을 보면 진짜 그가 하느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하며 살아갈 길을 주님께 묻고 그분의 음성으로 살아가는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인생사 앞에서 하느님께 묻지 않는 이유는 그분으로부터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듣지 못하는 이유는 순종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의 계획을 하느님께 맡기지 못하는 이유는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교만이라고 하고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큰 코 다치는 인생이 됩니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삶의 선하신 목자임을 신뢰한다면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 각자의 삶에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에페2:10).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 삶에 가장 좋은 것을 바라십니다. 우리 삶에 대한 하느님의 뜻은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것입니다’(로마 12:2).

    예레미야 29:11, “너희에게 어떻게 하여 주는 것이 좋을지 나는 이미 뜻을 세웠다. 나는 너희에게 나쁘게 하여 주지 않고 잘 하여 주려고 뜻을 세웠다. 밝은 앞날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알고 싶다면, 하느님께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목자 되신 주님께 묻는 것부터 인도함을 받는 양의 삶이 시작됩니다.
    물론 예수님 스스로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아가신 가장 훌륭한 본보기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성령에게 이끌려’(루가 4:1) 다니셨으며, 오직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고 그대로 할 뿐이었습니다(요한 5:19).

    우리가 실수하는 것은 주님께 물어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옳다고 고집을 부릴 때보다는, 그의 뜻을 행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시편 25:9, “겸손한 자 옳은 길로 인도하시며 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십니다.”
    시편 25:14,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당신의 계획을 털어 놓으시고 당신의 계약을 가르쳐 주시리라.”

    그렇다면 하느님은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실까요?
    알파코스 11과에 나오는 지침을 정리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성경의 예들을 종합해 볼 때 다섯 개의 ‘C.S.’라고 불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1. 성경을 통한 명령(Commanding Scripture)
    보편적인 하느님의 뜻은 성경에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어떤 일들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성경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면 더 이상 찾아 볼 필요가 없는 것이죠.

    따라서 규칙적으로 정성을 들여 성경을 공부하고 묵상하는 습관을 길러 나가면 매일 매일 성경 구절이 우리가 처해있는 특별한 상황에 얼마나 꼭 들어맞는지 놀라게 될 것입니다.

    2. 성령의 통제(Controlling Spirit)
    하느님의 인도하심은 개인적으로 각기 다른 것입니다. 신자가 된 우리 안에는 성령이 살아 계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대화를 나누기를 바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1) 성령님은 종종 우리가 기도할 때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오고 가는 대화입니다. 기도 중에 때로는 어떤 생각이 마음에 떠오르기도 하고 어떤 강한 느낌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것이 성령님의 음성인지를 반드시 시험해 보아야 한다.
    요한1서 4:1, “사랑하는 여러분은 자기가 성령을 받았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다 믿지 말고 그들이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십시오.”

    그것이 성경과 일치하는가?
    사랑을 키우는 것일까?
    덕을 세우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인가(요한1서 4:16)?
    그렇게 결정하였을 때 하느님의 평화를 누리는가(골로 3:15)?

    2) 성령님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강한 소망을 주시는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필립 2:13,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느님께 우리의 의지를 내어 드리면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은 종종 우리의 소망을 바꾸어 놓으십니다.

    3) 성령님은 때때로 특이한 방법으로 인도하십니다.
    육체적인 귀로 하느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사무엘 상 3:4-14)
    천사를 통해서(창세기 18장, 마태 2:19, 사도 12:7),
    예언자들을 통해서(사도 11:28, 신구약)
    환상을 통해서(사도 16:10)
    꿈을 통해서(마태 1:20, 2:12-13, 22).

    3. 상식(Common Sense)
    시편 32:9, “부디 철없는 말이나 노새처럼 되지 말아라.”
    신약의 저자들은 자주 우리에게 생각하라고 격려합니다.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제재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딤후 2:7, “주께서는 모든 것을 다 깨닫는 힘을 그대에게 주실 것입니다.”
    4. 성도들의 조언(Counsel of the saints)
    잠언 12:15, “지혜로운 사람은 충고에 귀를 기울인다.”
    잠언 15:22, “의논 없이 세운 계획은 무너져도 중론을 모아 세운 계획은 이루어진다.”
    잠언 20:18, “중의를 모아 세운 계획이라야 이루어진다. 싸우려거든 먼저 작전을 잘 세워라.”

    조언이 필요할 때 누구와 의논해야 할까요?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므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조언을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조언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선택은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과 하느님 사이의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정은 나의 책임입니다.

    5. 상황적인 증거들(Circumstantial signs)
    모든 사건의 궁극적인 주도권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우리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감에 있어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신뢰 속에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자이신 주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감에 우리 모두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아직 우리가 목자이신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부족하기도 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 그것을 가지고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짧은 시간이든 긴 시간이든, 우리가 가진 것을 그분께 드리고 그분의 영과 협력하면 주님은 우리 삶에 가장 아름답고 좋은 결과를 허락하심으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주님은 천국에서 흰 옷 입은 사람들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는 목자이십니다. 당신의 장막을 척박한 우리 곁에 치시고 그 임재로써 우리를 보호해주시는 목자이십니다. 우리의 전부를 의탁하고 따르기에 합당하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양떼의 인생은 목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가장 행복한 양떼는 좋은 목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얼마나 축복된 사람들입니까?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 오셔서 장막을 펼치시고 그 임재하심으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부활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분의 음성만을 듣고 따르기를 결단하기를 축원합니다.  

    바울로는 로마서 8:28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더듬거리며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깊이 생각하며 대화하고 기다리면서 주님의 뜻을 구하면, 선한목자이신 주님은 우리 삶에 장막을 펼치시고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루도록 역사하십니다.’

    찬양합시다.  
    ‘하느님은 너를 만드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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