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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10월 19일] (출애굽 20:8-11) 건강한 주일성수
  • 청지기
    조회 수: 2739, 2003-10-20 08:07:28(2003-10-20)
  • 며칠 전 제주도성공회 홈페이지를 보다가 제주성공회 주일학교 학생이 자유게시판에 올려 놓은 글을 하나 보았습니다.

    제목은 “힘든 일 --그러나”입니다.

    "이론이야 어찌 되었든지,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수주일'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지켜 내야 할 일이다. 신앙에서 타락한 사람의 십중팔구는, 주일을 지키지 못하고 세속화된 것이 그 출발점이다. .... 주일이 살아야 일주간이 살고 일생이 살아나고 내세의 생명이 확보된다.   보라, 봄날의 싹은 이미 작년 가을에 낙엽과 함께 준비되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일생의 계획과 내세의 삶을 위한 준비는 과연 되어 있는가 ?  인생의 성패는 '성수주일'에 달려 있다." 김교신 선생의 "성서조선"에서 옮긴 글입니다.

    오늘 저는 예배에 관한 설교 중 네 번째로 ‘주일성수’에 관한 성경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주일성수란 말 그대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일일까요?

    1, 먼저 주일이란 어떤 날인지를 알아 봅시다.

    문자 그대로 주의 날입니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거룩한 날입니다. 구약에서는 야훼 하느님이 주인이요, 신약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날입니다.  출 20:11, “야훼께서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훼께서 안식일을 축복하시고 거룩한 날로 삼으신 것이다.”

    마태 12:8,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일을 놓고 ‘왜 구약의 가르침대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을 지키느냐?’ 는 질문이 있습니다.

    분명히 주일에 대한 논의는 구약의 안식일 전통에서 시작합니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예수님께서 다른 율법과 마찬가지로 안식일의 정신을 계승하셨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에는 생계를 위한 어떠한 일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쉼과 안식을 위한 거룩한 날로 모든 생물이 일을 멈추고 하느님 안에서 쉬는 날이었습니다.   주님은 안식일의 정신을 그의 부활로서 완성하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은 구약의 안식일을 새롭게 계승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초재교회는 안식일 후 첫날에 모여 성찬을 거행하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사도 20:7, “안식일 다음 날 우리는 주의 만찬을 나누려고 한 자리에 모였다.”

    이 전통이 ‘매주일 첫날’로 발전해 갔습니다.  고전 16:2, “내가 여러분에게 간 다음에야 비로소 헌금하느라고 서두르지 말고여러분은 일요일마다 각각 자기 형편에 따라 얼마씩을 미리 저축해 두십시오.”(“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그리고 ‘주의 날’로 정착되었습니다. 묵시록 1:10, “나는 주님의 날에 성령의 감동을 받고 내 뒤에서 울려 오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성경과 다른 기록들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의 날에 모여 말씀을 나누고 성찬을 거행하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일을 예수께서 명하신 안식일의 규례의 연장선 상에서 이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2. 주일이란 안식의 날, 즉 쉬는 날입니다.

    하느님께서 그 날을 거룩하게 하신 이유는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께서 창조를 마치시고 그 날에 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하느님께서 우리들도 쉬기를 원하십니다.

    신 5:14, “이렛날은 너희 하나님 야훼 앞에서 쉬어라. 그 날 너희는 어떤 생업에도 종사하지 못한다. 너희와 너희 아들 딸, 남종 여종뿐 아니라 소와 나귀와 그 밖의 모든 가축과 집안에 머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하지 못한다. 그래야 네 남종과 여종도 너처럼 쉴 것이 아니냐?”

    이 명령은 쉬는 날 없이 일해야 했던 모든 종들과 가축들을 위한 명령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던 목적 그래도 주의 날도 사회적인 약자들을 위한 날입니다.    마르 2:27, “예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쉼이란 새로운 일을 위한 재 충전을 말합니다. 쉼에도 비생산적인 쉼이 있고 생산적인 쉼이 있습니다. 육체의 쉼을 위해 늦잠을 자거나 종일토록 티비 앞에 누워있거나 영화나 비데오를 봐도 몸이 회복되지 않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 나와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드리며 죄사함을 받고 예배가운데 하느님의 임재를 경험하면 우리의 영혼은 주의 은혜로 충만해 지고 우리의 지성은 주의 말씀으로 새오와 지며 속으로부터 올라오는 성령의 새 시운으로 우리의 영혼과 육체는 새 힘을 얻으며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주일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 날입니다.

    마르코복음 3장 4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을 향하여는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하고 물으셨다.”

    에스겔 홉킨스라는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일이 안식과 휴식의 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땅히 해야하는 수고가 세가지 있다. 첫째는 경건의 수고요, 둘째는 필수적인 일의 수고요, 셋째는 사랑의 수고이다.”

    그래서 주일만은 자신을 위한 일을 멈추고 하느님의 일을 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의 날에 여러 가지 사역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은 그것이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일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매달 둘째 주일에 신명보육원에 가서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애다부제님과 약사이신 김엘리야교우님이 우리성공회 의료선교회와 함께 매달 둘째주일에 포천까지 가서 외국인농자들을 진료하고 돌보는 일이 그것입니다.

    엘리야교우님을 심방하는데, 이렇게 간중하시더군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나를 위해 돈버느라고 분주하게 지내다가 한달에 한번이라도 먼거리이지만 포천에가서 나를 위한 노동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노동으로 섬길 때 전혀 피곤하지도 않고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주일에 나의 일을 멈추고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일할 때 누리게 되는 은혜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더욱 많은 일들이 계발되고 그 일들 가운데 참여함으로 또 다른 주님의 은혜를 누리데 되기를 바랍니다.

    주일예배와 관련하여, 요즈음 주 5일제 근무가 시행되고 주말문화-여행이나 레포츠 등-가 활성화 되면서 주일예배를 토요일이나 금요일 저녁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일찍이 관면미사가 주말에 설치되어 시행되어 있는 현실입니다.

    시대의 변화를 선교적으로 수용하는 교회의 몸부림입니다. 주일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죄책감을 가지고 놀러가게 하느니 주일예배 시간대를 옮겨서 예배드리고 놀러가게 하자는 입장입니다.    교우 여러분은 이 입장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현실적으로는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교회의 변화라고 생각됩니다만, 저는 반대합니다.

    우리가 살펴본대로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안식을 완성하신 주의 거룩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이들이 주의 날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앞에 모여 그를 찬양하고 경배하며 영광돌리는 것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라고 믿습니다.     비극적인 이야기를 전하면서 오늘의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10 수년 전의 일로 기억합니다만, 자기의 부모를 살해한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박한상군 사건입니다.

    박군의 아버지는 모교회 안수집사님으로 중고등부 부장교사로 봉사하셨다고 합니다. 박한상군은 그 교회 학생회회장으로 열심히 봉사하는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어느해 선교사님을 모시고 학생회 여름수련회를 하면서 성령받고 충만해진 박한상군은 동료 학생들 앞에 나와 자신이 술 담배를 했던 것을 고백하며 진짜 거룩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후로 진짜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같은 학년 친구들끼리 기도모임을 가지면서 공부도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뜨겁게 신앙생활다가 고 3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수집사이고 학생회 부장교상이셨던 박군의 아버지는 박한상군에게 이제 고 3이 되었으니 집에서 먼 본교회 학생회에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신앙 양심은 있어서인지 집 앞에 있는 교회 새벽예배를 나가고 공부만하라고 했습니다.

    은혜충만했던 박군은 자기의 교회에 가서 예배도 드리고 친구들과 기도모임도 하면서 주일을 보내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강압으로 본교회 출석하지 못하면서 점차 주일예배를 빼먹게 되고 점점 믿음이 식어가면서 자꾸 나쁜친구들과 어울려 다시 술 담배를 하고 당구 치러 다니고 그렇게 고3를 보내다가 그만 아버지의 기대에 못미치는 대학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박한상군을 재수 삼수를 시켰지만, 원하는 대학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고 한의사로 100억대의 재산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는 박한상군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대조적으로 함께 기도모임을 가졌던 친구들은 모두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국비장학생으로 유학도 갔지만, 미국에 간 박군은 여전히 공부는 뒷전이고 술 담배 빠찡코 등을 하면서 쾌락에 빠지고 미국에서 돈을 흥청 망청 쓰며 타락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박군에게 그렇게 지내면 유학을 중단시키겠다고 말을 했고 이 말에 박군은 몰해 한국에 들어와서 친구와 함께 자기 부모를 살해하는 비극을 저질르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은 박군의 사건이 있은 후에, 대두교도소에 면회를 갔다고 합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흉악범 사형수인 박한상군은 뜻밖에 찾아온 선교사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선교사님, 제 동생이 너무 불쌍해요.    선교사님, 저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예배가 무너진 삶이 가져온 가슴아픈 이야기입니다.     주일예배를 지키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다 사탄적인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방해하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입니다.   박군의 아버지가 학생회 부장교사였어도 그분의 사탄의 하수인으로 이용되어 한 가정의 몰락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성서를 존선에 조선을 성서에!” 외치며 일제를 살아갔던 김교신선생의 말처럼 영원까지 포함한 인생의 성패는 주일성수에 달려있습니다. 믿습니까?

    주일예배를 생명처럼 여기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느님께서는 예배하는 백성을 결코 망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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