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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10월 26일] (루가복음 12장 22-34) 김진세부제
  • 청지기
    조회 수: 2271, 2003-11-03 09:01:29(2003-11-03)
  • 어떤 분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며칠 전에 하더라구요

    요즘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까?
    사회의 부조리 가운데 많은 부분이 교회에서 발생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세상보다 교회가 더 세속화 돼있는 건 아닙니까?

    여러분 어떻습니까?
    그러면 제가 여러분들께 질문해보겠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교회는 희망을 선포합니까?

    여러분들은 믿는 사람들로서 여러분들의 이웃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최고의 실업률과 불안정한 근로환경
    세계에서 가장 왜곡된 교육구조
    세계최고의 낙태율과 이혼률..

    부의 편중이 계속 심화돼 정상적인 근로를 통해서는 평생 집 한채 마련할 길 없는 이세상에서 여러분이 크리스챤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 분명한 대답을 주실 수 있는 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참 무기력해보이고 아무런 힘이 없는 듯한 사람들이 요즘의 크리스챤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우리는 매주 주님을 만나러 교회로 옵니다.
    그리고 교회에, 희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즉 믿는 이들의 모임 가운데 하느님께서 주시는 살길이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 주님이 그 답을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는 자에게 복이 임하느니라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라크 파병문제를 놓고 온 국민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합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는 설교하지 말라는 설교 지침이 있기는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감히 이야기하건대, 설령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위협과 불이익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파병하면 안된다는 입장입니다.

    육이오때 미국이 왜 한국에 참전했습니까?  남한의 자유수호를 위해 미국이 이땅에서 피흘려 싸웠다고 우린 어려서 배웠지만 지금도 그렇게 믿는 이들은 없습니다.
    그때 이후로 미국은 한국에서 점령군으로서의 지위를 단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고, 작년에 미선이와 효순이 사건 때문에 널리 알려졌던 한미행정협정은 주둔군, 즉 점령군 지위협정에 기반한 그들의 기득권은 조금도 포기될 수 없는 것임을 미국은 주장하고, 그런 배경에서 미국은 절대로 북한과 정전협정을 체결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미국이 파병했으니 우리도 미국이 필요할 때 파병해야 한다 - 이건 아무 생각없는 동네 잡종개도 웃을 일입니다.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고 있는 한기총에서는 파병촉구를 위한 기도회를 했다고 합니다. 참 이상한 세상입니다.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일하라고 뽑아놓은 대통령은 늘 잔꾀만 부리고, 숫자가 많아서 깡패짓을 일삼는 무소불위권력의 야당은 대통령을 공공연히 무시하고 혹평합니다.  또 자기들만의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는 언론권력은 무기력한 정권을 매일매일 그들의 매체를 통해 난도질하고 온통 비리에 뇌물에 오리발에....나라에 정의도 신의도 없고, 애 어른 할 것 없이 음란의 영에 사로잡혀 점점 더 불신앙과 미신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있고..
        저는 요즘들어 우리나라에 전쟁이 나도 하나님 팔장끼고 구경하실 것 같애요 그때가서 아무리 주여주여 하고 애타게 불러봤자 나는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 하셨던 주님의 반응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되지 않을까해서 두렵습니다.
        나라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때가 요즘인 것 같습니다. 나라를 휘감는 사단의 세력들에 우리가 대항해야 우리의 개인의 영성생활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나만 골방에서 기도 열심히 하면 내 영성에는 문제가 없어가 아닙니다. 조국이 파멸의 구렁으로 떨어질 때, 그 안에 거하는 거민은 모두 그 영향아래 놓이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닙니까?

    요즘 주일마다 예배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우리 형제교회인 수원나눔의 집 식구들이  본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환영하구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처럼 우리 삶에 희망을 주는 메시지도 드뭅니다.
    먹을 거, 입을 거,  걱정하지마..
    먹마잠시초(먹고 마시고 자고 시집장가가고, 초상치루고) . 아모 걱정하지마..
    이런거 걱정하지마라  걱정안하고 사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걱정해요..안해요
    하지요..그럼 둘중에 하나

    예수님의 말씀이 뻥이던지
    아니면 우리가 불순종하고 있던지
    우리 솔직히 오늘은 우리 예수님이 뻥쟁인지 아니면 우리가 믿는 사람으로 잘못 살고 있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합시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요

    예수님은 평생 총각여서 그런 거 잘 모르고 관심도 없었겠지요..하는 아줌마가 있었어요. 그 분 하시는 이야기가 예수님이 처자식 거느리고 사셨다면 아마 이 얘기 안하셨을거야...그럴까요???
    성경은 예수님을 우리의 맏형이라 합니다. 그런 그분은 우리의 질고를 아셨던 분이요, 그것에 초월하여 사셨던 분이 아니었습니다. 즉 살림살이로 말한다면 늘 열두제자와 수많은 군중들과 함께 계셨기에 그분이 감당해야 했던 살림규모도 대단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네 가족 걱정하며 하루하루 살림하는 이와 매끼 수 천명씩 까지도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사람중에 누구 고민이 더 클까요? 전적으로 걱정 않고 하느님께 의뢰하기가 누가 더 쉬울까요? 내 가족은 하루쯤 굶겨도 큰 안 납니다. 그러나 따르는 무리 수백 아니 수천명은 한끼만 굶어도 난리가 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늘 과도한 스트레스 가운데 살아야 했던 주님은 당신의 충성스런 제자들에게 얘들아 아무 염려하지 말아라....

    이쯤 되면 우리는 주님의 요구와 권면이 예사롭지 않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제자들 , 즉 주님을 따랐던 이들의 면면을 보아도 그들의 믿음과 헌신도 평범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부모와 처자식을 버렸고, 자신의 안정되고 보장된 미래를 팽개치고 주님을 따랐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억만금을 모았다가도 주님을 만나서 자신의 재산을 털어 그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따른이도 있구요,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바치고 주님을 따른 그들이였지요, 그래서 그들가운데 70명의 제자들은 온갖 기적을 행하기도 하였습니다.(10장17이하)
    그런 그들이었지만 역시 일상의 나락으로 떨어져 그들은 또다시 육신의 일에 얽매여 있게 되었고 그들을 향해서 주님은 새로운 삶의 지침을 주시는데 그것이 오늘 복음의 장면이고 이 말씀은 오늘 이 자리에 앉아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여러분과 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육신의 소욕을 채우는데 너의 재능과 힘을 쏟지 말라는 것이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본문을 잘 보면 먹지말라 입지말라 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런데에 크게 고심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삶의 주된 관심의 대상이 집 차 옷 직장 건강장수식품 뭐 이런 것 이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후로 이런일에 너무 몰두하지 말길 제 자신과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요 며칠 주택문제로 고민했던 제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집니다. 필요한 것이면 하나님께서 채우실것이요 내가 거기에 고민하고 골몰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오늘 복음의 메시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 것 보다는 ... 즉 뭘 먹을까 어디가면 뭐 맛있는게 있더라 그렇게 고민하지 말고, 어디에 돈을 투자할까? 하지 말고, 그  대신 하느님의 나라와 그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렇게 돼 있는데 실은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너의 최우선의 관심거리로 삼는다면 네 필요한 모든 것을 그분이 주실 것이다”
    우리 삶의 최우선의 관심대상이 하느님 나라 입니까?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 나라가 최우선의 고려대상인 사람 손들어보세요
    교회나 사역이 반드시 하느님 나라와 동의어는 아닙니다.
    교회나 교회사역이 최우선의 관심인 사람 손들어보세요
    또는 전도나 교육, 교회성장이 최우선의 관심인 사람??
    예배나 기도, 하나님 말씀이 내 삶의 최고가치?

    직장? 집? 차? 가정생활, 부부금슬, 가정화목? 명예? 학벌? 재산? 지위?
    하루하루를 주님과 그 나라를 위해서 투쟁하는 삶입니다. 그러다보니 직장에서 왕따 당하고 학교에서 뒤쳐지고, 동기생들에 비해 진급이 느릴수도 있다는 것을 감수하는 것이 하늘나라를 고대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무기력한 신앙을 반성하며, 하루 이틀쯤 교회의 기도방에 틀어박혀 진정으로 고민하며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사람이 하늘나라의 시민자격이 있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소외되고 버려진 삶들을 돌보고 내 수입의 적지않은 부분을 털어 그들과 나누는 삶이 하늘나라를 최우선의 관심으로 두고 사는 사람의 태도가 아닙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품고 살면서 일주일에 최소 한번은 공동체로 모여 예배하고 말씀연구하고 신앙의 동료들과 삶을 나누고 하는 것이 천국백성의 진정한 모습 아닙니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속이는 자가 되지 맙시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 즉 , 하늘나라를 네 삶의 최우선의 관심사로 삼아라 하시는 말씀에 정직하게 반응하고 순종합시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고대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 영혼구원의 열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가 곧 이땅 위에 임하시리라는 믿음과 열망이 없이는 믿지 않는 심령을 보아도 애통한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이제 곧 이곳에 임하소서 하는 간절함이 없이는 내 삶의 안락함과 육적인 만족을 포기하고 사역에 투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으리라는 안목과 마음가짐에서 예배는 더 이상 새로워 질수 없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찬양 인도자는 자신이 부르는 찬양이 늘 자신의 마지막 찬양이 될 것임을 마음에 새기며 찬양한다고 합니다. 그는 어떤 찬양이나 찬송이 주어져도 이게 내취향이네 아니네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어진 그것으로 감사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늘 찬양에 임한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자신이 예전에 어떤 찬양을 불렀는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그가 부르는 찬양이 그 생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므로  혼신의 힘을 기울여 한 곡 한 곡 찬양합니다. 그의 찬양 가운데 하느님의 나라가 임재하십니다. 그가 찬양할 때 수없이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여기 청년들이 많은데 청년들에게 한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미래의 진로나 직업선택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을터인데 그 기준을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선택 기준 말입니다. 장래에 여러분이 택할 일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지, 어떻게 주님의 통치하심을 드러낼 수 있을지를 고심하면서 여러분의 직종을 택하시면 틀림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지 관계없습니다. 청소용역업이든지, 운수업이든지, 유통업이든지, 전문직이든지. 직종은 상관없습니다. 다만 그것으로 여러분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봉이 얼마지, 휴가는 며칠이지, 주택대출은 좋은지? 사원후생은 어떤지....이런 것이 여러분의 직업선택기준이 되면 않된다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메시지입니다. 그딴 것들은 주님이 채우신다고 지금 말씀하고 계십니다. 육신의 일을 도모하여 늘 무기력한 신앙인, 유아적 신앙에 머무르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건 김부제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게 주시는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사역이나 봉사를 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저는 우리교회의 각 단체들의 헌신적인 모습과 사역을 볼 때 너무 감사하는 맘이 듭니다. 누가 억지로 시켜서도 아니요, 늘 기쁜 맘으로 남은 하든 하지 않든 자신의 모습에 충실하며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사역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볼 때 이분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나라에 삶의 최우선의 순위를 두는 분들이구나 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정말로 헌신적으로 섬기시는 분들 위에 하나님께서 이루 측량할 수 없는 복으로 채우실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여기서 끝내고 싶지만 성령께서 한가지 메시지를 더 주십니다.
    (개역으로 읽습니다)

    33절의 말씀을 다시 읽어봅시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라”
    34절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느니라”
    이 두 말씀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들어가 그분을 예배하고자 하는 이들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재물이나 돈에 대한 주제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한때는 거룩한 성직자로서 별루 합당해보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예전에 종종했는데요..점점 사역이나 신앙의 연수가 올라갈수록 제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가 바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도 아주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메시지입니다.
    네 소유를 팔아 구제하라!!
    성경은 때로 선언적인 명령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이 본문도 사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잘 새겨야 합니다. 이 말씀에서 명령하시는 주체가 누구냐하는 것과 그 명령의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누가 명령하시죠? 주님이... 내가 잘 아는 주님이 ..나를 잘 아시는 주님이..
    잘 보십시오. ..을 줘라 하시는 분이 주인입니까? 그 명령을 받는 사람이 주인입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뜻이 그렇습니다. 네 소유의 주인이 누구다?  예..하나님이십니다 라는 고백을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34절에 말씀,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라는 말씀은 무얼 의미합니까? 네 마음에 나 말고 보배로운 것 즉 보물처럼 여기는 그 무엇을 두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 믿기 이전에 자신의 삶에 귀중했던 모든 것을 예수님을 믿고 새 생명을 얻고 나서 그것들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내 삶에 있어서 특히나 나의 재정, 내 소유, 내 재산의 모든 주권이 내게 있지 않고 주님께 있나이다. 그리고 저에게는 주님보다 소중한 것이 진정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는 고백을 주님은 오늘 여러분들의 진실한 고백을 통하여 듣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하시는 십일조, 즉 자기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은 사실 이러한 훈련을 주님이 시키시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재물과 소유물에 대한 주권이 주님께 있습니다’ 하고 세상과 이웃을 향해 믿음으로 선포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에서 필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가장 기초적인 신앙훈련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위탁받아 관리하는 것 가운데 제일 싸구려가 사실은 재물입니다. 관계, 사역, 헌신, 직분, 재능....그 어느것도 재물보다 경하지 않습니다. 그 가장 작은 것의 십의 일을 온전히 드리는 훈련을 통과하지 않고서 우리의 신앙이 자라기를 구하는 사람은 오히려 중국산 콩에서 싹이 트기를 바라시는 게 더 가능성 있는 일 일 것입니다.  

      내게 맡겨진 재물의 주권이 온전히 주님께 있고, 주님은 그것을 필요로하는 사람들과 나누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훈련을 잘 치루고 나서 우리는 보다 한 단계 높은 신앙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고 그런 자들만이 의로운 예배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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