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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6월 9일 설교문
  • 2013년 6월 9일 루가 7:11-17

    회복시키시는 예수님의 은혜

     

     

    1. 어제 2여선교회에서 어른 8명, 어린이 8명이 오전에 봉사활동을 하고 오후에는 친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교회 별로 이렇게 봉사를 하면서 친교하는 좋은 시간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2여선교회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2. 지금 연세가 86이신 저의 아버님은 회갑이 넘어 신학대학에 편입하시어 60대 중반에 목사 안수를 받으셨습니다. 아버님과 같이 안수 받으신 목사님들 중에는 스님 출신의 목사님이 계십니다. 오늘 복음을 읽다보니까 그분의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불경에도 오늘 복음서와 같은 과부의 아들이 죽어 장례를 치르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3. 인간에게 가장 큰 슬픔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이고 더욱이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남은 여인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다 자란 외아들마저 죽었으니 이 이상 가는 비극이 없을 것입니다. 불교는 108번뇌 가운데 생로병사하는 인생을 고해라고 하는데 아들이 죽은 과부의 이야기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인간의 삶의 한 자락을 표현해 주는 것이지요.

     

     

    4. 그런데 오늘의 복음을 보면 죽은 아들이 끝내 무덤에 묻히는 슬픔 가득한 비극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친히 개입하시어 회복시켜주시는 은혜로 마무리합니다.

     

     

    5.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죽음의 행렬, 슬픔과 절망이 가득한 장례 행렬에 찾아오십니다.

    루가 7:11-12, 11 얼마 뒤에 예수께서 나인이라는 동네로 가시는데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도 함께 따라 갔다. 12 예수께서 성문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마침 죽은 사람을 메고 나오는 장례 행렬과 마주치시게 되었다. 죽은 사람은 어떤 과부의 외아들이었고 동네 사람들이 큰 떼를 지어 과부와 함께 상여를 따라 오고 있었다.

     

     

    6. 나인이라는 동네로 오신 예수님의 목적이 분명합니다. 13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울지 말라’ 하고 위로하시며”

    극심한 슬픔 가운데 오열하는 어머니를 위로하시고 함입니다. 과부는 당시에 의지할 데 없는 약자 중의 약자였는데, 그녀는 그나마 아들이 살아 있을 때에는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들마저도 세상을 떠났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7. 다른 성경 구절을 보면 누구인가 청했을 때에야 예수님께서 응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스스로 먼저 나서십니다. 측은지심으로 과부를 위로하십니다. 예수님의 깊은 연민과 자애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8.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인 제노바의 앞바다에는 무게가 8톤이나 되는 거대한 그리스도상이 잠겨 있는데, 그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제노바에서 큰 해전이 벌어져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바닷속 깊은 곳에 묻힌 수많은 젊은이를 회상하며 주로 그 부모들의 헌금으로 이 조각을 봉헌하였다고 합니다.

     

    9. 이 그리스도상은 예수님께서 높은 곳에 우뚝 서서 우리를 통치하시는 분이 아니라, 아주 낮은 곳에 내려오시어 우리와 함께 슬퍼하시고, 고통당하시고, 짐을 지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로 이 대목이 이러한 예수님의 깊은 사랑을 잘 보여 줍니다.

     

     

    10.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로마서 12:15,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슬퍼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것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주님은 이렇게 우리 인생과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서로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11 그런데 아들을 잃은 과부에게 “울지 말라”고 위로하시는 예수님은 실제로 그 과부가 더 이상 울지 않을 수 있는 구원의 일을 행하십니다. 성경을 더 읽어봅시다.

    루가 7:14, 앞으로 다가서서 상여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 때 예수께서 "젊은이여, 일어나라" 하고 명령하셨다.

    주검에 손을 대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율법을 범하면서까지 예수님은 구체적인 상황 가운데 들어오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선포하십니다. “젊은이여, 일어나라”

     

     

    12. 어떻게 되었습니까?

    루가 7:·15, 그랬더니 죽었던 젊은이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 주셨다.

    예수님이 명령하시자 죽었던 청년이 살아났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소생의 사건이 3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자로, 회당장 야이로의 딸, 과부의 외아들. 선교지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소생의 기적이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창조주 하느님이시기에 그 이름에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아멘?

     

     

    13. 예수님은 살아난 청년을 어머니께 돌려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마음의 위로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더 이상 울지 않도록 절망의 상황을 회복시키시는 구원자이십니다.

    회복!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14. 먼저 예수님은 죄로 인해 죽음의 운명이 분명한 인간들을 존귀한 하느님의 자녀로 회복시키고자 죄인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저주의 상징인 나무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바치셔서 인류의 모든 죄의 값을 치르심으로 그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느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15. 또한 부활하시어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은 슬픔 가득한 절망의 자리에 찾아오시어 회복시켜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오른 시편과 같은 고백으로 주님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시편 30:11-12, 당신은 나의 통곡하는 슬픔을 춤으로 바꿔주시고 베옷을 벗기시고 잔치옷으로 갈아입히셨습니다. 이는 내 영혼이 끊임없이 주님을 찬미하라 하심이니 주 나의 하느님, 그 은총 노래에 담아 영원히 찬양하리이다.

     

     

    16. 청년이 소생하는 기적 가운데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16상,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 위대한 예언자가 나타나셨다" 고 말하기도 하였고

    - 아마도 오늘 1독서에 나오는 구약의 가장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를 기억했을 것입니다. .

    16하, 또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을 찾아 와 주셨다" 고 말하기도 하였다.

    - 이 표현은 출애굽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용한 표현입니다. 하느님은 자기 백성의 고통과 신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와 구원하시는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17. 그렇습니다. 부활하시어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찾아오십니다. 기억하십니까?

    요한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 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사랑의 하느님은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느님의 때에 우리의 구체적인 상황 가운데로 들어오시고 만지시고. 회복시키십니다. 믿습니까?

     

     

    18. 이 시간 먼저 조용히 눈을 감고 혹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죽어가는 것들, 절망스러운 상황 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자리에 예수님을 초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찾아와 주십니다. 주님이 오시어 만지시면 다 살아나고 회복됩니다. 주님을 기다리십시오. 반드시 오시어 만지시고 회복하십니다. 조용히 침묵가운데 기도합시다.

    (침묵기도 - 2분)

     

    19. 한 가지 더 나누고 싶은 주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며 본문을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진정 다시 살리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그 어떤 절망적인 상황과 처지보다 여러분의 믿음, 하느님을 향한 여러분의 사랑의 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주님의 마음을 느끼면서 불렀던 “여호와의 유월절” 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지난 며칠 간 이 찬양으로 기도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이곳을 지나소서. 이곳을 만지소서.”

    함께 찬양하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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