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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13년 7월 14일 연중 15주일 설교
  • 조회 수: 2874, 2013-07-17 10:14:54(2013-07-17)
  • 오늘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내가 하느님을 믿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느님께서 우리 앞에 나타나신다면 무엇을 원하시겠습니까? 참 중요한 질문인데도 우리는 이 질문을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을 만나야 하는 이유, 하느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없이 우리는 얼마나 그 분을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을까요? 오늘 예배 가운데 또한 여러분도 이 질문을 하느님 앞에서 진실하게 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주님이 주시는 축복을 온전히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모태신앙이기 때문에 교회를 나의 선택으로 다닌 것이 아니고 그냥 이미 내 삶에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구원에 대해서 배웠고 여러 가지를 듣고 배우면서 하늘나라와 영생에 대한 소망이 제 안에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렸던 저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하느님 나라에서보다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 필요한 것들을 구하는 기도가 더 많았고 나의 책임과 의무보다는 하느님이 주시는 축복과 능력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오늘 율법학자가 예수님에게 물어본 것처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라는 말이 저에게도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율법학자는 영원한 생명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좀 더 엄밀하게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의미보다는 이스라엘 민족이 기다리던 때가 와서 자신들의 나라가 회복되고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구원을 받는다,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 성령을 받고 거듭난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하느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다 등 이 모든 말들이 우리가 하느님을 믿을 때 바라는 것들의 표현이고 결국 조금씩은 다르지만 같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저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물었을 때, 제 대답은 “행복 하고 싶다”였습니다. 하느님을 믿게 될 때, 진정한 자유와 기쁨 그리고 평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점점 알아갈수록, 성서를 깊이 연구하고, 기도의 깊이를 더해 갈수록 “하느님”을 만나고 그 분으로 인해 변화되는 삶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드리는 기도는 ...을 해 주세요. ...을 주세요가 아닌 “하느님 저에게 당신을 주소서. 당신만 있으면 됩니다”라는 주님 자체를 바라는 기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율법학자가 대답한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처럼 내가 바라는 그 어떤 것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동시에 가장 큰 축복임을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는 아까 잠시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 가지 말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회개하고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는 것,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 하느님 한 분만을 섬기는 것 등등... 예수님은 율법학자의 대답에서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다르지 않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대답에 옳다고 하시며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학자는 자신을 옳다고 하시는 그 말에 귀를 더 기울였지만 저에게는 실천하라는 말씀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나를 버리고 이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내야 합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 간단한 원리가 중요합니다. 성서를 통해서 또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기도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기도생활을 하게 되면서 하느님을 만난다는 것, 하느님과 교제한다는 것이 특별한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나는 기적이 아니라 바로 일상의 삶 안에 늘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바로 내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 안에 계시고 우리의 관계 속에 계십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하느님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비유는 바로 우리의 호흡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이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야훼라는 말이 숨을 들이키고 내 쉬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말이 참으로 신선하고도 깊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하느님을 날마다 새롭게 발견하는 사람이 바로 신앙인입니다. 깊은 신앙심을 가진 사람일수록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발견합니다. 심지어 하느님이 없는 것 같은 절망과 고통 가운데서도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신앙인은 그 무엇보다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결국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어떤 경계도 넘을 수 있고, 그 어떤 대가 없이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며, 그 어떤 장애물도 그 사랑을 막지 못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는 바로 이러한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서로 판단하고 미워하는 관계를 뛰어 넘어서는,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뛰어 넘는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사마이라 사람은 사회의 통념과 가치관보다 그 사람의 아픔과 필요를 먼저 보았습니다. 자신도 처할 수 있는 위협과 두려움 보다 그 사람의 곤궁함을 먼저 보았습니다. 경제적인 효율과 이익보다 그 사람의 아픔을 먼저 보았습니다. 자신의 행동으로 얻게 될 이익과 보상보다 그 사람의 상처를 먼저 보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이 사랑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당신의 삶이며, 우리가 따라가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전해주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모든 것을 뛰어 넘어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와 만나셨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며 닮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의 모습으로 이 땅에 또 하나의 예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너의 도움이 필요한 너의 이웃에게 지금 가서 사랑을 행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말에 순종하여 하느님과 이웃 안에서 사랑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의 삶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느님의 놀라운 통치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 안에 살아계신 주님을 날마다 새롭게 경험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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