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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8월 13일] 요한 6:35, 41-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 청지기
    조회 수: 2886, 2006-08-13 22:53:38(2006-08-13)
  • 남자만도 5천명,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2만 명은 족히 넘을 큰 군중들이 예수님 앞에 모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소년이 가져온 오병이어로 그들을 배불리 먹이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엄청난 기적을 경험하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그 낌새를 알아채신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피해 가셨습니다.

    이튿날 예수님께서는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군중들은 호수를 건너와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이 때 주님이 하신 말씀이 우리에게도 도전이 됩니다.

    26-29절,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군중들은 또 묻습니다.
    ‘모세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다가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는 기적을 베풀었는데 당신은 어떤 기적을 보여 우리로 하여금 믿게 만들 것인가?’

    이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오늘의 복음입니다.

    35절,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는 것입니다.
    빵. 떡, 밥!

    우리는 한 끼만 굶어도 허기짐에 힘들어합니다.
    며칠 밥을 굶으면 보이는 것이 없게 됩니다.
    장발장이 굶어 죽어가던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치면서 시작되는 레미제라블이라는 소설에서 보듯이 인생의 많은 아픔이 빵 한 조각에서 시작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듯 밥은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었을 때 만족과 행복을 느낍니다.

    함포고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래 중국 요순(堯舜)시대의 태평연월(太平烟月),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상징하는 말로서 실컷 먹고 배를 두드린다는 뜻에서?배불리 먹고 삶을 즐기는 평화로운 모습?을 이르는 말입니다.
    “남전북답 기경(起耕)하여 함포고복(含哺鼓腹)하여 보세(烈女春香守節歌).”

    “등 따스하고 배부르면 정승 부러울 게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즈음 티비를 보면 웰빙 열풍 가운데 맛있는 음식, 영양가 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즐비합니다.
    온통 육적인 욕망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들입니다.

    밥이 모든 인간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문제는 아무리 배불리 먹고 등 따뜻하게 누워도 거기에 진정한 만족과 행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글을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돈으로 좋은 집은 살 수 있어도 행복한 가정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좋은 침대는 살 수 있어도 편안한 잠자리는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근사한 시간은 보낼 수 있어도 평화는 누릴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굶주림이 있고 허기지고 목마른 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영혼의 허기짐이 있습니다.
    영혼의 메마름이 있습니다.
    영혼의 목마름이 있습니다.
    파스칼의 말처럼 오직 하느님만이 채울 수 있는 영혼의 빈공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들은 배고픔과 허기짐을 어디에서 채워야 할 지 모릅니다.
    예수님에게 와서 돌을 빵으로 만들라고 했던 사탄은 이 땅의 사람들을 온통 땅의 것으로만 살아가도록 유혹해 버렸습니다.
    오직 땅에서 나는 것들로 채우고자 발버둥치며 살아갑니다.
    물질주의, 세속주의, 황금만능주의 속에 포로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직 참된 생명의 빵을 먹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생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선포하고 계십니다.
    35절,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51절,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나에게 나오는 자는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다.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나를 먹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자신을 빵이라고 말하신 것은 갑작스러운 표현이 아닙니다.
    이미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예수님을 표현하는 상징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고을의 이름이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의 뜻은 ‘빵집’입니다. 빵집이라는 베들레헴에 예수님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으로 탄생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빵은 하느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한 가지 증표였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성소에 진설병이라는 빵이 있었습니다.

    민수기 4:7, “제사 상 위에는 자줏빛 천을 펴고 그 위에 대접, 종지, 술잔,
    제주 병들을 얹어놓고 떡도 거르지 말고 차려놓아라.”(공동번역)
    “진설병의 상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대접들과 숟가락들과 주발들과 붓는 잔
    들을 그 위에 두고 또 항상 진설하는 떡을 그 위에 두고”(개역개정)

    ‘진설’이란 ‘보인다.’는 뜻이므로 진설병은 ‘보여주는 빵’ 또는 히브리어 의미
    로 ‘얼굴 빵’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자신의 신성한 상징이
    었습니다.

    그것을 ‘임재의 빵’이라고 했습니다.
    Over the table of the Presence
    빵이 하느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임재’라는 말은 하느님 그분이 직접 그곳에 계시다는 말입니다.

    예수가 생명의 빵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주인 되시는 교회가 항상 하느님의
    임재가 충만한 곳이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가 항상 하느님을 보여주는 실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교회의 문제가 있고 우리의 사명이 있습니다.
    거룩하시고 엄위하신 하느님의 임재가 실재로 교회 안에 있느냐 것입니다.
    허기지고 메마른 영혼들을 살리고 영원히 살게 하는 하느님의 임재, 하늘에
    서 내려온 빵이 교회 안에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을 알지 못한 채 술집으
    로 클럽으로 점치는 집으로 몰려다니는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들의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살고픈 그들은 기대했
    던 교회 안에서 빵을 찾지 못해서 다른 곳을 찾아 헤매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신 예수님을 거창하게 떠들었지만,
    실상은 생명의 빵이신 바로 그분이 교회 안에 없는 것입니다. 그분이 보여줬던
    십자가의 사랑, 영혼을 울리던 그분의 가르침, 치유하고 회복하는 그분의 능력
    이 지금 많은 교회 안에 보이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하느님의 임재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보는 것은 사랑의 능력도 없이 자신을 실망시키는
    많은 사람들일뿐, 실상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느님은 이제 우리의 삶과 예배에 ‘두렵고 명백한 임재’를
    회복하시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자주 온 땅을 뒤덮는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고 노래합니다.
    이 일이 어디선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저 바깥에서’ 시작되지는 않습니다.
    ‘여기 안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에제키엘 47장의 환상처럼, 교회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이미 이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를 드리
    는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다윗의 비전입니다.

    이제 빵에 대해서 소문이 퍼져나가야 합니다.
    “빵집에 정말 빵이 생겼답니다.”
    “교회 안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우리는 수많은 영혼들을 우리 건물 안으로 다 수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일마다 몇 번씩 예배를 드려도 부족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할 일은 빵을 되찾는 것뿐입니다.

    그동안 가난하고 길을 잃었던 영혼들을 사실 교회가 문을 막고 있었던 것입
    니다. 우리가 뜨끈하고 고소한 빵이 있다고 끊임없이 외쳐댔지만, 실상은 인간
    의 전통이라는 닳고 닳은 바닥에 떨어진 말라비틀어진 빵 부스러기 뿐이었다
    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갈급함과 영적인 무지로 사탄에 메여 방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빵이 있도록 해야 합니다.
    부스러기 정도가 아닌 실제 배불리 먹을 빵이 넘쳐나야 합니다.

    교회 안에 하느님의 임재가 넘쳐나도록 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예배 안에 있고 충만한 사랑이 성도의 교제 안에 넘쳐나야
    합니다.

    그래서 평생 교회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건 사람들이, 그토록 예수를 반대하
    던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교회로 몰려오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부흥이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신 예수님이 실재로 임재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느님만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책략은 하느님에 대한 갈급함이 없도록 우리를 잡동사니로 가득 채
    우는 것이었고 오랜 세월 그 작전을 특효를 발휘해 왔습니다.

    먼저 우리 안에 하느님의 임재가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면 생명을 살리는 에
    제키엘의 환상 - 부흥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 어떠한 상황과 처지에서든지 오직 주님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끝가지 하느님만을 쫓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딴 것을 쫓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며’
    - 오직 주님만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 오직 주님만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우리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우리의 삶에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무엇이
    든, 실상 우리에게 필요한 분이 오직 주님뿐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을 얻는 길은 갈급해 지는 것입니다.
    임재의 조건은 오직 갈망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태 5:6)
    가난한 심령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갈급해 질 수 있어야 그분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열쇠는 우리의 갈망입니다.
    우리가 갈급함으로 주님 앞에 나갈 때 주님은 임재로 우리를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그럴 때 실재로 빵이 있는 빵집이 됩니다.
    하느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가 됩니다.

    기도합시다.
    갈망의 마음이 없다면 하느님을 갈망하는 마음을 부어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 교회 안에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충만
    하게 넘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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