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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5월 18일 ] 요한 17:1-11 성삼위일체의 신비 - 사랑으로 하나 됨!
  • 청지기
    조회 수: 2844, 2008-05-24 16:18:09(2008-05-24)
  •   오늘은 패밀리서비스-가족예배로 월 1회 전 교우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주일입니다. 성공회 제자교회 가족들이 다 모여 예배드리는 참 기쁜 날입니다.
      
      오늘 예배는 이제 3개월 된 아기부터 84세 되신 테레사 할머니까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인 것을 확인 하는 자리입니다. 오늘 드리는 주일예배를 본받아 작은 가족인 각 가정에서도 가족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는 아이들이 참 많습니다. 주보에 어린이 유아가 평균 45명 정도이니 미래가 밝은 것이지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아이들이 함께 예배드려 조금은 어수선하고 시끄럽더라도 시끄러운 그 소리가 생명의 풍성함을 나타내는 것이니 만큼 기쁜 마음으로 주님만을 바라보며 정성껏 예배드리시길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먼저 주일학교 친구들에게 묻습니다. 지금 신부님이 설교를 시작하면서 누구의 이름으로 말씀드린다고 했나요? 그리고 어떤 행동을 했나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마 다른 개신교 교단에서 신앙 생활하다가 오신 교우 분들이 가장 어색한 부분이 이 십자성호를 긋는 행위일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십자성호를 긋는 것을 보면서 성공회가 천주교로 알거나 천주교의 작은 집으로 여기시는 분들도 있는데, 성공회는 분명히 천주교에서 종교개혁을 하고 새롭게 시작된 개신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성공회는 초대교회부터 내려오는 아름다운 신앙 전통을 계승하면서 그 전통에 담긴 신앙적인 의미를 살려내려고 합니다. 그 한 예가 십자성호일 것입니다.

      십자성호를 그을 때 어떤 생각이나 마음으로 하시나요?
      
      십자성호는 인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상기하며, 그분에 의해 구원되어 그분과 함께 사는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십자가 성호를 머리와 가슴과 양 어깨에 그을 때, 머리를 짚는 것은 모든 생각을 다한다는 것이고, 가슴을 짚는 것은 모든 마음을 다한다는 것이고, 양 어깨를 짚는 것은 모든 힘을 다하여, 성부 성자 성령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이를 위해서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몸임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십자 성호를 긋는 것은 기도를 바치는 필요한 자세를 갖추게 하며 마음과 뜻을 하느님께 돌려주기 때문이며, 기도를 드리고 나서 십자성호를 긋는 것은 하느님이 베푸신 은총을 우리 안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배 중에 십자성호를 긋는 경우가 많은데, 신앙고백을 마칠 때나 성찬 기도 중에 성체와 보혈을 바라볼 때 종이 세 번 칠 때도 하고 사제의 축복기도가 있을 때도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십자성호는 복음 성경을 읽을 때 하는 것입니다. 엄지손가락으로 ‘주께(이마)’ ‘영광을(입술)’ ‘드립니다(가슴)’에 작은 십자가를 그리면서 하는 십자성호입니다. 이는 복음 말씀을 머리로 받아들이며 입으로 고백하며 마음에 새겨 실천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십자 성호를 하면서 보통 함께 드리는 기도가 있는데 이것이 처음 질문을 드렸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는 기도입니다. 이것을 ‘성호경’이라고 합니다.

      성호경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과 초대교회의 세례 신앙 기도문에 기원을 두고 있는 가장 짧으면서도 중요한 오래된 기도입니다.
      
      모든 기도의 시작과 끝,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 바치는 성호경은 모든 일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닌 거룩하신 하느님의 이름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주님과 함께 한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아울러 하느님은 한 분이시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인격을 가지고 계시다는 삼위일체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삼위일체를 흔히 몸은 하나인데 어떤 때는 아빠로 어떤 때는 아들로 어떤 때는 남편으로 역할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양태론이라고 하는데, 장경동목사님이 이렇게 가르치던데,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삼위일체란 성부도 하느님이시고, 성자 예수님도 하느님이시고, 성령님도 하느님이신데 세 인격이 완전하게 하나라는 말입니다.
      삼위를 완전하게 하나 되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온전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요한일서 4:10).
      
      성부 성자 성령 삼위를 하나 되게 하는 그 충만한 사랑이 흘러 넘쳐 우리에게까지 다다른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요한 3:16, 하느님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극진하신 사랑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사랑하라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 가정과 교회에 흘러들어가 삼위일체의 능력으로 온전히 하나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랑은 좋아하지만 사랑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사랑을 무지하게 좋아합니다. 노래나 드라마를 봐도 온통 사랑 타령입니다. 그런데 사랑에 대한 생각은 각각 다르고 사랑의 본질을 잘 알지 못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의 귀에 익은 사랑 타령은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다. 80년대 톱 가수 이용은 ‘사랑이란 왠지 모른 척해도 관심이 있는 것, 그대 믿을 수 없어 애타는 마음이 사랑이야’라고 했습니다.
      휘성은 ‘사랑은 맛있다’고 합니다.
      MC몽은 ‘사랑하다 못해 죽도록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 노래 가사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일차원적 인간들의 세상 사랑을 몰라 그게 우리네 자화상’

      혹시 여러분은 이런 관심, 믿지 못해 애타는 마음쯤으로 사랑을 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요?  혹 사랑을 맛있는 것을 한없이 낭만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안나요?  아니면 죽도록 사랑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내 틀 안에 가두고 있지는 않는지요?

      여러분 사랑이 뭘까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는 것 같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하지만, 사랑이신 하느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보여 주신 사랑은 어떤 것일까요?
      요한 13:34-35,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이신 하느님이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는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고 그 십자가로 구원받은 우리가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으로 살아 우리가 참으로 행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 대상이 제한되지 않는 사랑이었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이, 의로운 사람이나 죄인, 심지어 창녀들까지고 다 사랑하셨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왕따를 경험해 보거나 왕따 당해본 친구들 있나요?
      중고등 학생들은?
      어른들은요? 교회에서 왕따, 소외감 느끼신 적 있나요?
      
      우리 제자교회에서는 왕따가 없으리라고 확신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너희를 보고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한계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삼세번이라고 합니다.
      그 정도 하고도 스스로 참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일흔 번에 일곱 번씩이라도 용서하라며 한계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방법은 십자가였습니다.
      ‘내가 죽고 네가 살아라.’라는 말입니다.
      따라 해 보실래요. ‘공부해서 남 주자!’ ‘돈 벌어 남 주자!’
      이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삶이 우리 신자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시고 십자가를 통해서 몸소 보여주신 그 사랑으로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가족이 서로 사랑하고 교회의 지체들이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천국을 경험하고 확장하는 신나는 믿음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가족끼리 서로 손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어드리는 동안 서로 바라보십시오.
      “4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

      부부들은 서로 고백해 보실래요?
      ‘내가 더 오래 참겠습니다. 내가 더 친절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안에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살아갈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며 손을 잡은 채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랑의 부부관계, 사랑의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를 교훈하는 오늘 서신말씀은 5장 18절에 연결되는 말씀들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만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우리에게 그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로마서 5장 5절,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부어주시는 사랑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삼위가 일체 되는 거룩한 신비처럼 부부가 하나되고 교회가 하나되고 마침내 이 땅이 하나되는 거룩한 신비를 경험하여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손을 맞잡은 채로 성령 충만함을 위해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사랑의 능력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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