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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5월 22일]요한 14:1-14 인류의 소망, 오직 예수
  • 청지기
    조회 수: 1689, 2011-05-23 09:43:41(2011-05-23)
  •   여행 중에 있던 어떤 사람이 주일이 되어 예배들 드리려고 거리를 나섰습니다. 그는 거리에서 만난 경찰에게 교회가 어디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경찰은 친절하게 자기 차로 여러 교회를 지나더니 한 교회 앞에 내려 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궁금했습니다. 차를 타고 오면서 교회 몇 개를 지나쳐 왔는데, 왜 굳이 가장 멀리 있는 교회로 자기를 데려다 줬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경찰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나는 어느 교회가 좋은 교회인지는 직접 다녀보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 그러나 꽤 오랫동안 주일에 교통 정리를 해 왔는데, 이 교회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가장 밝고 기뻐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를 소개한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여러분의 표정이 이렇기를 바랍니다.  아니 이 한 주간도 이렇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드리며 하느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거룩의 능력으로 회복되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유언장을 적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삶을 정돈하고 정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유언장을 써보기’를 하기도 합니다. 또 관속에 들어가 누워보는 죽음 체험도 해보고, 묵상 중에 자신의 장례식 장면을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주보에 어느 시인의 유언을 적어보았습니다.
      “나 죽으면 바다에 던져 고기밥으로 주어도 좋고 산에 뿌려 금수들의 한 끼 겨울양식이 되어도 좋다. 쓸만한 장기는 세상에서 낮은 동무에게 기증하고 화장을 해 흔적을 남기지 말아다오. 죽은 날은 지키되 형제간의 우애의 자리가 되게 하고 제사는 지내지 말아다오.
      내 아들 하영아, 딸 지영아!
      너희를 키우기 위해서란 변명을 아무리 둘러대고 아비의 본성은 양의 가면을 쓴 늑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죄를 방귀처럼 달고 다녔고   알면서 저지른 비열한 죄가 인생의 그물에 가득하구나.
      몸이 가루가 되도록 사용하지 않은 인생을 허비한 죄. 인생은 근본은 하느님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면서 회의한 죄. 자연을 업수히 여기고 능멸한 죄.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지 않은 죄. 오직 몸의 평안만을 위하여 살아온 시간들이 우 우 일어나서 나를 비웃고 있구나.
      짐스러운 하루를 접으며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를 빼앗기고 터벅 터벅 걸어가는 자들의 말동무 같은 삶이라면....“

      언제 주님 앞에 앉아 조용히 기도 가운데 유언장을 써보는 기회를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복음 말씀이 바로 예수님의 유언입니다.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까지를 예수님의 고별담화라고 합니다.

      고별담화에는 이제 죽음을 앞둔 사람이 가족이나 추종자들을 불러 모으고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선언하고 것, 그리고 축복, 예언이나 약속, 최후의 가르침과 기도를 전하는 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부터 앞으로 세 주일 계속 요한복음 14장과 17장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남기신 유언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듣게 되는 예수님의 첫 번째 유언은
      ‘죽음 앞에서 걱정하지 않는 당당한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14장 1절에서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사용된 ‘걱정하다’는 단어는 요한복음의 다른 세 곳에서도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11: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he was deeply moved in spirit and troubled.
      12: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Now my heart is troubled, and what shall I say? '
      13: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After he had said this, Jesus was troubled in spirit and testified,

      이 세 곳에서의 단어는 모두 죽음의 세력과 그것의 영향력에 고통을 받고 있는 예수 자신에 관련되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슬픔이나 어떤 형태의 감상적인 생각을 표현하기보다는 죽음의 세력이 인간에게 가하는 불안과 혼란에 대한 깊은 인식을 반영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인생들에게 가장 근본적인 두려움은 죽음이죠. 그래서 루가복음에 나오는 즈가리야송가를 보면, “죄와 죽음의 그늘 밑 어둠속에 사는 인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조차도 그가 직면해야 하는 죽음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가시면서  자신에게 엄청난 고뇌를 안겨주었던 죽음의 세력에 직면할 준비를 갖추도록 제자들을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하여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느님을 믿고 나를 믿음으로 죽음 앞에 두려워 말라!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게 하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2-3절에 나옵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는 이유가 천국에 우리가 있을 곳, 거처를 예비하기 위함이고 그곳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가기 위하여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는 것, 죽음이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를 결코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맞이하는 죽음이 패배가 아니라 궁극적인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은 부활하시어 죽음의 세력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서 확증된 천국과 재림의 약속이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의 내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주일 감사성찬예배를 드리면서 이 믿음의 내용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신비를 선포합니다. /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지난 주간 신문에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천국은 없다고 말했다고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는 천국이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동화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인터넷 상에 많은 논쟁이 있었고 어제 한겨례신문을 보니까 3명의 학자들이 호킹의 발언에 대한 논평을 적은 것이 신문 한 면을 장식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루살이와 메뚜기, 개구리의 우화가 있습니다. 하루살이와 함께 하루를 재미있게 지낸 메뚜기가 ‘내일 만나’ 하고 인사하자, 하루살이가 ‘내일이 뭐야?’ 묻습니다. 심심해진 메뚜기가 개구리를 만나 여름 가을 재미있게 지냈는데 겨울이 오자 개구리가 메뚜기에게 ‘겨울잠 푹 자고 내년에 만나’ 인사합니다. 그러자 메뚜기가 ‘내년이 뭐야?’하고 묻습니다.

      하루살이는 내일을 모르지만, 내일은 존재하지요. 메뚜기가 내년을 몰라도 내년이 있습니다. 영원이 있습니다. 천국이 있습니다.

      호킹이 천국이 없다고 하고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지지할지라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성도는 죽음 이후에 돌아갈 아버지 집, 천국이 있고 영원한 삶이 있음을 믿습니다.

      초대교회 이후 수많은 순교자들은 이 믿음으로 죽음 앞에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천국의 소망으로 죽음 앞에서 보다 자유하고 당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게 되는 예수님의 두 번째 유언은 천국은 오직 예수님 자신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폴 틸리히는 인간은 항상 세 가지 공포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즉 의미 없음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 죄에 대한 공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공포들과 정면으로 맞서시고 승리하시어 이 공포 속에 사는 인생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분이십니다. 그는 잃어버린 창조주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이시고,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실재가 되는 진리이시고 , 그리고 죄의 속박과 죽음의 공포 속에 사는 우리에게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우리가 주목해 보는 단어가 있습니다.
      the와 through입니다.

      the라는 단어를 정관사라고 하죠. 유일한 only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예수님만이 하느님과 화해하고 천국에 가게하시는 유일한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만이냐고? 예수가 아니고 부처를 믿어도 마오메트를 믿어도 선하게 살고 정의롭게 살면 사랑하며 살면 다 천국에 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이 세상 사람들이 반문합니다. 관용의 시대에 기독교는 참으로 편협하다고 욕합니다.

      일면 그런 것 같습니다. 무슬림들의 철저한 신앙생활 - 하루 5번기도와 선행, 불교가 지닌 철학적인 깊이와 현실적인 지혜 등 타종교이지만, 부분적인 진리가 있고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2 더하기 2가 4라면 그것은 동시에 23이 될 수 없습니다. 23이라는 답에 동의하지 않고 정확한 답이 4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관용없는 사람이라고 간주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남의 의사를 존중하고 그의 권리를 귀히 여기며 들어줄 수 있는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나 서로 모순되는 것을 포함한 모든 관점까지 똑같이 옳다고 찬성하라는 관용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이 하느님과 화해하고 천국의 영생을 누리게 하시고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시지만, 예수님을 희생제물로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방법 외에는 우리를 구원할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고 예수님의 죽음이 그 값을 치러내는 대속의 죽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확증하는 표현이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 through라는 표현입니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참 사람이시고 참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하느님과 화해할 수 없고 구원의 진리를 깨달을 수도 없고 영생의 축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사도 4:12, “이분에게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느님께 이르는,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의 이름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예수 이름밖에는 없습니다.

      이 진리를 마음에 새겨 우리 자신의 구원을 온전히 함과 아울러, 아직도 엉뚱한 곳에서 구원과 영생의 길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벧전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개역개정)

      이제 2011년도 반을 향해 갑니다. 남은 2011년 동안 예수님의 유언에 따라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금년이 다 가기 전에 적어도 1명이라도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며 주님께 인도하는 전도의 열매를 맺는 우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일학교 찬양이 있습니다.
      1.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후렴>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2.벼슬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지식으로 못가요 하나님 나라
      
      비록 어린이 찬양이지만 기독교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구원의 확신, 천국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당당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매일 십자가 은혜를 감사하며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함께 우리교회 사명선언문을 읽으면서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코이노니아로 한 몸 된 우리는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예배자, 중보자, 빛과 소금,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다음 세대를 일으키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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