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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11월 7일]필립 4:4-13 2010년 추수감사주일 - 감사의 능력
  • 청지기
    조회 수: 2199, 2010-11-08 10:54:59(2010-11-08)
  •   이필근 교우께서 홈페이지에 올린 글입니다.

      <11월7일은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말씀도 있지만 일년에 두 번 (맥추, 추수) 감사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도시에 있는 교회나 교인들은 농작물을 추수하는 것이 없어 추수감사주일이  마음에 크게 와 닿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일 년 동안의 삶에서 감사한 것 기록하여 예물과 함께 봉헌하던 적이 있습니다. 예물만 봉헌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을 함께 봉헌하는 것 입니다.

    불만과 부족한 사회에서 살지만, 꼼꼼히 생각해보면 참으로 감사한 것이 많아요.

    큰 것보다  작은 것에  감사 ...
    물질보다  평안에 감사 ...
    남과 비교하기보다 하느님이 날 사랑하는 것  감사 ...
    감사한 마음  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
    특히,  성공회 제자교회   다니는 것에 대한  감사...  아 ~ 멘>

    교우님은 열흘 전에도 가족이 금식기도하면서 이사 문제가 해결되고 또 아내되신 이동숙 교우님이 경기일보에서  주는 경기공직대상  주민복지분야 대상자로 선정된 것을 간증하며 감사하신 적이 있습니다.

    은혜 나눠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처음 가르치는 말이 ‘엄마 아빠’입니다. 그 다음의 말은 ‘고맙습니다.’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이 말을 가르치는 이유는 그 말 속에 인류의 지혜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지혜란 감사하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 인류가 오랜 역사 속에서 깨달은 삶의 지혜! 감사입니다. 행복은 결코 재물에도 명예에도 권력에도 있지 아니하고 감사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오늘 감사함을 고백하고 선포하신 분들은 분명히 삶의 환경과 조건을 뛰어넘어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계시는 분이라고 확신합니다.

      많은 격언과 속담 속에 이 지혜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영국속담 : ‘감사는 과거에게 주어지는 덕행이 아니라, 미래를 살찌게 하는 덕행이다.’
      탈무드 :  ‘참된 지자는 모든 교육을 배우는 자요, 참된 강자는 자신을 제어하는 사람이요, 참된 부자는 자신의 것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주님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필립 4:6,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살전 5:18,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의 원어를 살펴보면, 동사의 시제는 ‘계속 반복해서, 그리고 약속된 시간뿐만 아니라 항상’을 뜻합니다.
      감사는 어떤 상황 속에서든지 우리를 향하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바울은 계속 주님의 뜻을 전합니다.
      골로 3:17, 여러분은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나 모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바울로는 감옥에 갇혀서도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자신의 삶을 모범으로 보이며 모든 성도들에게 감사의 삶을 살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에페 5:20, 또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 드리십시오.

      그런데... 사람들은 행복해지는 이 단순한 지혜를 실천하지 않습니다. 감사하기를 어려워합니다.
      
      에릭 호퍼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산수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을 헤아리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기독교 신앙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을 헤아리는 눈을 갖도록 도와줍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인정하는 삶이죠. 물론 전능하신 하느님은 나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감사함은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줍니다. 그래서 ‘지금 나의 삶’이 나를 향하신 주님의 좋은 뜻 가운데 하느님이 허락하신 최선임을 믿게 합니다.
      
      감사함은 우리의 문제들을 하느님의 뜻대로 하느님의 시간에 하느님의 방법으로 하실 수 있도록 내려놓게 됩니다. 그래서 서신의 말씀처럼 감사는 우리를 주님의 평화를 누리는 삶으로 회복시켜줍니다.

      우리가 감사하기만 하면 주님의 평화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줍니다. 평화는 방어벽을 쌓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흐트러뜨리는 나쁜 영향력으로부터 나를 지켜줍니다.

      시편을 노래한 다윗의 삶이 그랬습니다. 다윗은 감사하는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즉 주권자 하느님에 대한 절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왕에게 쫓기는 상황 속에서도, 전쟁에서 어려운 싸움을 할 때에도, 가슴 아픈 가족의 일 앞에서도 다윗은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시편 18:49, 그러하오니, 야훼여! 그 고마움을 어찌 만민에게 알리지 아니하고 당신의 이름을 노래하지 않으리이까?
      시편 30:11-12, 당신은 나의 통곡하는 슬픔을 춤으로 바꿔주시고 베옷을 벗기시고 잔치옷으로 갈아 입히셨사옵니다. 내 영혼이 끊임없이 주를 찬미하라 하심이니 야훼, 나의 하느님, 이 고마우심을 노래에 담아 영원히 부르리이다.

      이렇게 감사는 우리의 삶을 어려움과 의미없는 일상을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사람의 됨됨이나 신앙생활의 척도가 어떤 면에서는 감사의 생활로 측정되기도 합니다. 감사의 생활을 많이 하는 사람은 뜨거운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매 주일 감사를 하고 하느님에게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늘 감사하며 삽니다.

    사실 우리들이 드리는 모든 예배는 감사의 예배입니다. 예배를 드리기를 권하시는 주님은 우리들에게 늘 감사의 생활을 하도록 명령을 하고 계신 것과 같습니다.

    성공회 예배의 공식 명칭이 ‘감사성찬례’입니다. 우리가 매주일 예배하는 것은 감사하는 삶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를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의 초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조차도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이 많습니다. 걱정하며 염려합니다.

      위대한 감사의 사람 코리 텐 붐 여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염려는 내일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오늘의 힘을 빼앗을 뿐이다.”

      디모테오후서 3장을 보면, 이렇게 염려하고 근심하고 감사치 않는 사람의 모습은 말세의 인간상이라고  말합니다. 딤후 3장 2절을 보면,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감사할 줄 모른다.’고 합니다. 원어로 '아카리스토스'라고 하는 말인데 이 말은 은혜를 모른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자기가 얼마나 빚지고 있는가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고'라는 말을 중심에 놓고 그 앞뒤에 나오는 말씀들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인간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은 이기주의에 흐르고 돈을 사랑하고 뽐내고 교만해지고 악담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감사할 줄 모르고 경건하지 않고 무정하고 무자비하고 남을 비방하고 무절제하고 난폭하고 선을 좋아하지 않고 배신하고 앞뒤를 가리지 않고 자만으로 부풀어 있고 하느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할 것이며 겉으로는 종교 생활을 하는 듯이 보이겠지만 종교의 힘을 부인할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멀리하시오.”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타락한 인간상입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가 결코 이런 사람이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원래 추수 감사절이라고 하는 것은 만사가 다 잘 돌아가고 형통하기 때문에 너무 고마워서 하느님 앞에 예배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추수 감사절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입니다. 청교도들이 1620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 117일 간의 험한 항 해 끝에 미국 동부의 플리머스에 상륙을 했습니다. 146명이 배에서 내렸습니다.
    그들 앞에는 황무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디안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대륙의 기후 조건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들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지만, 어떻게 지어야 될지 잘 모르니까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흉년이 들었습니다. 양식이 모자라서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게다가 전염병까지 번져 결국은 배에서 내린 146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들은 모여서 하느님 앞에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신대륙으로 도망친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가족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참다못해 배를 타고, 요사이 말로 하면 보트 피플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대서양을 건너 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는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금식하면서 하느님 앞에 매달렸는데 하느님은 어디에 계셨는지, 어디에 숨어 버리셨는지 금방 응답을 안하셨습니다. 그 다음해 농사를 지었더니 또 반타작이었습니다. 그래서 또 금식을 선포하고 하느님 앞에 매달렸습니다.

    이렇게 한 2, 3년 거듭하는 중인데 여전히 상황이 바뀌지를 않았습니다. 농사가 잘 안되고 굶주리는 사람은 많고, 병든 사람들이 속출하였기 때문에 또 총회로 모였습니다.
    '우리가 좀 더 하느님 앞에 베옷을 입고 금식하면서 기도하자. 우리가 부르짖으면 하느님이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이다.' 서로가 이렇게 격려하면서 금식하려고 하는데, 그 때 어떤 농부가 일어나서 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제 생각에는 어려울 때마다 금식 기도를 하는 것은 하느님께 불평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많이 해 봤지 않습니까? 이제 그만하고, 우리는 하느님 앞에 불평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이곳에 와서 살기 때문에 이전에 누리지 못하고 있던 정치적인 자유도 누리고 있고, 이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신앙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제 금식은 그만하고 하느님 앞에 감사를 드리는 축제를 엽시다. 비록 어렵지만 우리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축제를 열고 하느님의 이름을 부릅시다.'

    이 말이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금식하려고 하던 생각을 바꾸어서 축제를 열었습니다. 여위고 해쓱해진 모습들이었지만 그들은 모여서 하느님 앞에 눈물로 감사했습니다. 그것이 추수감사절의 기원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항상 내 뜻대로 잘 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얻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잃을 때도 감사해야 됩니다. 감사는 성공했기 때문에 내가 항상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할 때도 할 수 있는 것이 감사입니다.

    한신대교수님을 하셨고 지금은 치유목회원을 운영하고 계신 정태기 교수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한때 심각한 신앙의 위기를 경험하면서 나병환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소록도를 찾아갔습니다. 소록도에 도착해서 가까운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마침 수요 낮 기도회 통성 기도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교수님도 기도를 하려고 했지만 마른 심령에서는 기도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뒷사람의 기도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습니다. 그 기도소리는 잠든 교수님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메마른 가슴을 후려치게 충분한 만큼 간절하였습니다.
      “하느님 제게 주신 은혜가 어찌 이리 크신지요? 어떠해야 이런 주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을 길이 있는지요?”
      교수님은 기도소리의 주인공이 너무나 궁금해졌습니다.
      ‘이 저주받은 섬에서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저렇게 특별한 주님의 은총을 누리고 살고 있단 말인가. 아마 섬을 찾아온 돈 많은 기부자거나 천사 같은 마음을 가진 의사가 아닐까?’ 궁금해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뜻밖에도 그 자리에는 흉측한 몰골을 한 나병환자 노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얼마나 병을 심하게 앓았는지 노인의 얼굴은 이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짓뭉개져 있었습니다. 노인은 교수님이 쳐다보는 줄도 모르고 손가락이 다 떨어져나간 주먹으로 연신 얼굴을 훔쳐가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면서 통곡이 터져 나왔습니다. 상처받은 한 마리 들짐승처럼 한없이 울었습니다. 얼마 후, 그 감사의 할아버지에게 교수님이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뭐가 그렇게 고마우신 것입니까? 무슨 은혜를 그렇게 많이 받으셔서 그런 기도를 드리시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한참 생각에 잠기셨다가 “내가 문등병에 걸리자 세상도 피붙이도 나를 버렸고 친구들도 모두 나를 떠나버렸죠. 그런데 이런 나를 버리지 않고 이 소록도까지 따라 와 준 분 이계셨어요. 그분은 내게 기쁨과 소망을 주셨죠.”
      “할머니가 따라오셨군요?”
      “아니야, 예수님이 따라오셨지”
      교수님은 이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 받은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것을 보고 한없이 회개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서신 말씀 필립 4:6-7을 함께 큰 소리로 읽어 봅시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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