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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8월 15일]루가 12:49-53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 청지기
    조회 수: 1743, 2010-08-16 17:25:17(2010-08-16)
  •   사회에 불만이 가득하여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닌 사람들이 때때로 불을 지릅니다. 국본 1호인 남대문이 이런 사람에 의해서 소실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현대사를 보면 이들과는 다른 이유로 불을 지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언론이 통제되고 진실이 은폐되는 현실에서 사회적인 불의를 고발하고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어떤 진실을 드러내고자 극단적인 방법으로 불을 지르기도 했던 것입니다.

      일찌기 1970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치며 자기 몸에 불을 질르며 분신했던 전태일열사가 있었습니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고통받는 어린 여공들의 비참한 삶을 세상에 알리고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타오른 불길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노동현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몸에 불을 사르는 아픔이 반복되어 왔었습니다.

      1982년에는 혈맹 우방으로만 여겼던 미국을 반대하며 일어났던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이 있었습니다.

      1985년 11월 18일에는 190여명의 대학생들이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정당 가락동 연수원을 점거하고 방화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 땅의 민주화를 가로막고 있는 군사정권의 통치수단인 파쇼헌법을 개정하라고 주장했었습니다. 이 사건의 주모자 중의 한 사람이 저였습니다.
      다시는 이런 방화범들이 나오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니 또 한명의 방화범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나는 이 땅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외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불을 지르러 오신 분이십니다.

      앞서 한국의 현대사에서 일어났던 사건에서는 인권, 민주화, 통일 등을 위한 불길이었다면,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서 불을 지르러 오신 것일까요?

      지난 주일 서신 말씀이었던 히브리서 11장 3절을 보면,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교회 본당인 콜롬바성당이 참 아름답습니다. 콜롬바 사제회장님이 중학교 이후로 성당을 건축하여 주님께 봉헌하고자하는 거룩한 마음을 품으시고 기도해오시면서 그 마음에 담겨진 생각이 스케치로 나오고 설계가 되고 이렇게 건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듯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우리의 마음의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실 또한 그 누구가 아닌 우리 인간들의 마음에 있는 생각들이 나타나 오늘의 모습을 이룬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선하고 아름답습니까? 공의가 다스리고 평화가 넘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부패하고 불의가 만연한 사악한 사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이지 않는 우리 인간의 마음의 생각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듯 사악한 사회를 만들고 그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내 모는 근본적인 문제로 인간의 부패한 마음과 사악한 생각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죄악된 마음과 생각을 소멸시키는 불을 지르러 오신 것입니다.

      히브 12:29, 사실 하느님은 태워버리는 불이십니다.
      신명기 4:24,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는 삼키는 불길이시요 질투하는 신이시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으로 우리 마음을 정화시키는 불을 지르시는 것일까요?
      오늘 서신 예레미야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레 23:29, “내 말은 정녕 불같이 타오른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간 마음의 죄악을 소멸케 하는 불을 지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어 하신 사역 중에 많은 것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그 나라에 합당한 삶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 22:37-4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요한 13:34,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1서 3:16-18,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의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마음의 문을 닫고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 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

      최후의 지상명령도 다름 아닌 말씀을 지키는 제자를 세우라는 명령이셨습니다.

      마태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4:4, 예수께서는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하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타락한 세상 가운데, 탐욕으로 살아가는 죄인들에게 주님의 입에서 선포되는 진리의 말씀은 그것을 듣는 자의 생각과 마음 가운데 있는 죄를 지적하고 그 마음과 생각을 바뀌게 하는 정화의 불길입니다.

      여러분이 그동안 수 없이 들어온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말씀들이 얼마나 여러분의 부패한 마음과 그릇된 생각을 불사르고 태우며 여러분을 정결케 하였습니까?

      그러나 실상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인 진리를 듣기를 거부하고 외면하였습니다.

      요한 6장을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는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군중들과 제자들이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60절) 투덜거리며 주님을 떠나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렵다’는 말은 ‘내 마음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겠는가?’는 의미인 것이죠. 자기 생각을 주님의 말씀대로 바꾸지 않겠다는 자기 중심의 표현인 것이죠.

      말씀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진리를 선포하여도 그것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께 돌아오는 백성들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한탄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예수님 당시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그 옛날부터 사람은 그랬습니다.
      
      오늘 1독서의 말씀은 예수님 훨씬 전 유다의 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부정과 부패, 물량주의가 만연된, 그리고 부정한 권력에 줄을 대기에 급급했던 유다 말기 시절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상황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칩니다. 야훼 신앙을 회복하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깔보고 무시하였습니다. 그저 재물과 권력의 바알 신앙만을 추구합니다. 오직 그것들만이 자신에게 평화를 주고 안락함을 줄 것이라고 여깁니다. 재력, 권력만을 축복으로 여깁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이런 사람들의 영적인 요구에 응합니다. 그것도 간교하게 신앙적으로 위장합니다. 그저 많은 소유와 높은 지위만이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예레 23:25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언자라는 것들이 내 이름을 팔아 예언하는 소리를 나는 다 들었다. '꿈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고 하면서 거짓말하는 것도 나는 들었다.”
      
      거짓 예언자들은 꿈을 통해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알고 보면 하느님의 꿈이 아니라 자기 생각입니다. 제 욕심을 꿈꾸면서도 하느님이 꿈을 통해 보여주신 계시라고 말합니다. 제 욕심, 재력과 권력의 욕심을 상징하는 바알신앙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거역했습니다.

      이것이 단지 그 옛날,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을 우리는 잘 알 것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 역시 제 입맛에 맞는 말씀을 원합니다. 제 욕심을 정당화해주고 축복해주는 말씀을 원합니다. 재물, 세상적인 성공이 축복이라고 외치는 거짓 예언자를 좇아갑니다. 복음을 따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참된 복음을 전하는 참된 예언자를 오히려 거역합니다.
      
      대천덕신부님의 ‘온전한 복음’이라는 강의 DVD가 있습니다. 우리 영혼의 구원에만 초점을 맞추는 한국교회를 향해서 ‘토지는 하느님의 것’이라는 신명기의 말씀에 따라 이 땅에 하느님의 공의가 임하도록 기도하고 실천하는 것이 온전한 복음고 외치셨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2005년에 ‘종합부동산세’라는 세금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종부세는 종합부동산세법에 따라 부과되며, 고액의 부동산 보유자에 대하여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하여 부동산 보유에 대한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의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지방재정의 균형발전과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것이다.”

      하느님의 것인 토지를 비롯한 부동산을 많이 소유한 사람들에게 세금을 많이 거두어서 가난한 사람들의 사람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취지의 제도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기초한 복음적인 제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 와서 2008년 12월에 개편되고 말았습니다.
      유지 36.4% / 대폭 완화 27.4% / 현행보다 강화 20%

      처가집이 역삼동입니다. 강남입니다. 종부세법이 개정되기 전에 아파트마다 ‘종부세를 폐지하라.’는 플랑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차장에 가보면 낮에도 외제차나 고급차가 즐비합니다. 강남에 사는 제 친구는 자녀 사교육비로 500만원, 방학 때는 700만원을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공의를 위해서 좀 더 거두어들이는 세금에 대해서 그렇게 반대하고 결국은 폐지시켜 버렸습니다. 장로 대통령이 그 법을 없애버렸습니다. 소망교회에서 온전한 복음을 들을 적이 없었던 것이죠.
      
      대천덕 신부님을 영적 스승으로 존경한다고 하는 수많은 강남의 목회자들조차 그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개교회의 성장에만 온 힘을 쏟으면서 온전한 복음은 듣지 않고 가르치지 않았으니 성경말씀을 믿는다는 장로대통령에 의해서 개정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땅의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우실까?

      여전히 주님이 타오르기를 원하는 불길이 타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진리가 이 땅 가운데 온전히 선포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탐욕을 불사르고 하느님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원형을 회복하고자 하는 주님의 말씀이 배척당하고 있습니다.

      탐욕은 자아숭배의 우상숭배의 죄악이기에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두 주 말씀에 예수님은 어떤 탐욕에도 빠지지 말라고 외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오르셨습니다. 하느님의 진리를 외면하고 자아숭배로 탐욕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50절에서 말씀하신 세례란 바로 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을 다 겪어낼 때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모른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믿는다는 말은 나 자신이 바로 탐욕 가운데 살아온 자아 숭배의 죄인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악한 사회를 만들어 온 공범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나만의 성공과 만족을 위해서 살아온 이기적인 삶을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신 진리의 말씀을 살아가겠다는 결단입니다.

      이것이 세례 때 우리가 주님께 언약한 내용입니다.
      “세속과 정욕과 마귀를 거절합니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우리 안에 우리를 정결케 하는 불길,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이 활활 타오르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짓과 속임수로 가득한 이 세상을 향해 그 진리를 선포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소서. 주는 소멸하는 불!
       여호와의 산 그 거룩한 곳 오를 자 누군가?
       허탄한 뜻 버리고 주 가신 의의 길 따르리
       깨끗한 손들어 경배케 하소서.
       주 얼굴 구하리. 주 얼굴 구하리.
       구원의 하느님, 주의 의로 이 백성 일으키소서.
       주는 주의 일, 이 수년 내 부흥케 하소서. 주 영광 나타내소서.
       어린 양 따르리. 어디로 인도하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주 따르리
       주 영광 나타나 모든 육체 보리라.  주 이름 온 세계 위에”  

댓글 1

  • 김장환 엘리야

    2010.08.19 10:47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을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이 나무가 되게 하여 불사르리라.
    예레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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