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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10월 24일]루가 18:9-14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바른 기도
  • 청지기
    조회 수: 1786, 2010-10-24 22:12:13(2010-10-24)
  • 1.

      지난 주간 제 마음을 아프게 했던 충격적인 뉴스가 있습니다. 서울 하왕십리에 사는 만 13세 소년이 집에 불을 질러 아버지 엄마 여동생 할머니 등 일 가족 4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소년은 공부하라며 골프채로 찌르고 자신을 때린 아버지에게 앙심을 품고 미리 석유를 사서 불을 길렀다고 합니다. 불을 지른 후에는 밖으로 나가 배회하다가 뒤늦게 돌아와 통곡까지 했다고 합니다. 인터뷰를 보니 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소년의 마음에 가족에 대한 사랑? 그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어보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소년은 평소 춤추기 좋아하고 사진찍기를 종아해서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판검사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는 아들을 자주 때리고 공부를 강요해 왔다고 합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사랑과 신뢰는 없고 그저 아버지는 돈 벌어다 주는 기계로, 아들은 공부하는 기계로 전락해 버린 깨어진 관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대화방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네요. 아가씨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남자들이 들어오면 룸으로 들어가 남자가 무슨 말을 하든지 다 들어준다고 합니다. 시간에 10만원을 받고요.

      인터뷰를 보니, 그곳에 드나드는 남자들은 집에 돌아가도 대화할 상대가 없다고 합니다. 가족들은 그저 돈만 많이 벌어다 주기를 바랄뿐  제각기 뿔뿔이 흩어져 지내면서 마음의 대화를 나누지 못하다 보니.... 대화방이라는 것까지 생겨났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평안하신지요? 부부사이, 부모와 자녀사이 관계는?

      인간의 행복은 올바른 관계 속에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부모와 자녀가 서로 사랑하면, 돈이 좀 없고 내 아이가 공부를 좀 못해도 행복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근본적인 관계보다는 여타의 것에 더 가치를 두면서 목말라하고 아파하고 결국에는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올바른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필요로 합니다. 서로가 마음으로 다가가 그 마음을 나누는 대화가 있을 때 그 관계는 그 어떤 것으로도 줄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제가 홈페이지에 퍼다 실어놓은 글이 있습니다.
      < 내가 아프다고 할 때 "약먹어!" 하지 말고  
        "어디가 아프니? 많이 아파?" 라고 해주세요.  
        내가 사랑한다고 할 때 "그래" 라고 하지 말고  
        "나두 사랑해" 라고 해주세요.  
        내가 보고 싶다고 할 때 "응" 하지 말고  
        "나두 많이 보고 싶다" 라고 해주세요.  
        내가 힘들다고 할 때 "나두 힘들다" 하지 말고
        "힘들 땐 내 어깨에 기대"라고 해주세요.  
        내가 헤어지자고 할때 "그래 헤어지자" 하지 말고
        "사랑해, 가지마" 라고 해주세요. 꼭 그렇게 해주세요.>

      최근에 누군가와 마음에 있는 것을 진솔하게 나누었던 시간이 있었는지요?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하려면 먼저 내 마음이 정직하고 풍요로 와야 하는데, 내 마음이 메마르고 차갑고 딱딱하고 비어있다면?
      마음을 나누는 대화가 불가능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갈등, 미움, 시기, 용서하지 못하는 것 등으로 병들고 아파하고 파괴되는 것이 인간관계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현대 성인병의 90%가 마음에서 오는 병이라고 합니다.
      지위가 높아지고 풍족한 생활을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마음에는 채울 수 없는 어떤 허전함, 공허함이 자리하고 항상 어딘가 구멍이 뻥 뚫린 공간이 있습니다.
      이 공간은 어느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실존적 공허’라고 하는데 바로 여기에서 병이 생깁니다. 현대의 온갖 병의 시작은 바로 마음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허함은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지식,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떻게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어느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이를 채울 수 있는 분은 하느님뿐이십니다.

      그래서 성인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이 날 내셨으니, 나는 하느님 안에서 쉬기까지 늘 불안합니다.’

      이렇듯 사람들과의 올바른 관계로 행복한 삶이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2.
      그럼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하느님을 모르며 살던 죄인된 인간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돌아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

      로마 10:9-10,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을 주님을 영접함으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시작되면 그 관계를 유지하고 깊게 하는 것은 올바른 기도로 가능합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내 마음을 주님께 쏟아 붓고 또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필요가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기에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는 기도로 나의 필요를 아뢰고 주님의 도우심 가운데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내 마음의 모든 것을 쏟아놓는 부르짖는 기도를 하면 할수록 우리의 마음이 비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서서히 주님의 성령이 내 마음에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주님께 내 마음을 쏟고 주님의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기도를 하면 할수록 내 뜻과 마음대로 살아왔던 죄된 삶을 돌이키게 되빈다. 주님의 뜻과 마음대로 살려는 새로운 의지가 생깁니다. 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이 내 안에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과 마음을 나누는 올바른 기도는 정직함으로 출발합니다. 정직함이라는 자신이 죄임임을 인정하고 그 죄를 고백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요한일서 1:7-10, “그러나 하느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가운데서 살고 있으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줍니다. 만일 우리가 죄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진리를 저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를 하느님께 고백하면 진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모든 불의를 깨끗이 씻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직함으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오직 주님의 자비만이 필요합니다. 오늘 세리의 기도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저 이 한 마디로 주님 향한 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사실 이 한 문장 안에 우리 마음이 다 담겨있습니다.

      마태 6:7-8,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 줄 안다. 그러니 그들을 본받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주님의 용서가 필요해요. 주님의 사랑이 필요해요. 주님만을 신뢰하며 내 삶을 주님께 맡겨요.”
      
      그러면 주님은 그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사람을 ‘올바르다.’라고 인정해 주시고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느님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주님 앞에 나오는 겸손한 사람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벧전 5:5하,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앞에 나와 ‘죄의 고백’과 ‘기리에’로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에 세리와 같은 마음이 있었는지요?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내가 살아갈 수 없는 죄인임을 정직하게 인정하며 죄의 고백을 드리고 기리에를 기도로 올려드렸는지요?

      아니면, 마음이 없는 그저 입술의 소리로만 노래했는지요?

      오늘 복음에 바리사이 사람은 그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느님을 만나는 예배의 자리에 나왔지만, 자신이 죄인이라는 그 어떤 인정과 고백도 없이 나와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행한 종교적인 실천에 자부심을 느끼고 한껏 ‘자기 의’에 도취되어 서 있습니다. 교만함으로 서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 사람의 기도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람이 올바른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람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지 못한 바리사이파 사람의 삶은  왜곡되어 있습니다. 남을 사랑하고 섬기는 믿음의 삶이 아닌 엎신 여기고 깔보는 교만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9절, “자기네만 옳은 줄로 믿고 남을 엎신여깁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지 못한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로 깨져 버립니다.

      그런데 사실 바리사이파 사람은 하느님 앞에 올바른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바리사이파사람들이 얼마나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욕심이 없다’고 감사하다고 기도하는데,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에 타탐욕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루가 11:39, "너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닦아놓지만 속에는 착취와 사악이 가득 차 있다.“ /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개역개정)

      ‘자신은 음탕하지 않다’고 감사했는데, 실상 그들은 그들의 음란함을 숨기고자 합법적인 이혼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마태 19:8,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져서 아내와 이혼을 해도 좋다고 하였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자신은 부정직하지 않다’고 감사했는데, 지금 보았듯이 그들은 하느님 앞에 정직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위선자였고 거짓말쟁이들이었고 교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3.
      오늘 주님은 우리가 이런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같지 않은가 돌아보기를 원하십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이 아래와 같지는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주일 내내 하느님이 아닌 자신의 욕망을 따라 세상을 것을 구하고 그것을 우상으로 섬기는 영적인 간음이 있고, 아니 실제 마음에 숨겨진 음란한 생각들로 숱한 간음을 벌인 삶을 살아왔는데.....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자임에도,  바리사이파 사람들도 행한 십일조와 구제의 삶을 실천하지 못하는, 그래서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지 않는 죄인임에도....

      이런 나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달려계신 예수님 앞에 나오면서  이렇게 주일예배에 나온 것만 해도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없는 입술로만 ‘죄의 고백’을 드리고 ‘기리에’를 노래했다면?

      그런 사람이 바로 바리사이파 사람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듣고 싶어 하시는 것은 세리가 고백한 정직한 마음의 기도입니다.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세리의 기도 중에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라는 표현은 ‘힐라스코마이’라는 헬라어로 ‘희생제물을 통한 속죄’를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구약에서 제사를 드릴 때 동물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나를 대신해서 죽는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한 희생제물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앞에 언제든지 나와 그 피를 의지함으로 죄사함을 받고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용납하며 섬기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방정교회는 세리의 기도를 예수기도롤 가르칩니다.
      “하느님의 어린 양 주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이 단순한 기도 안에 사실 우리의 모든 고백과 간구가 담겨 있습니다.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시켜주고 그 십자가의 사랑만이 나를 온전케 하는 능력임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삶을 주님께 맡겨드리는 전적인 신뢰가 담겨있습니다.

      우리 모두 정직한 마음을 담아 이 기도를 올려 드려며 주님과 바른 관계로 사랑이 충만해지기를 바랍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예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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