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09년 4월12일] 고전 15:1-11, 요한 20:1-18부활신앙으로 산다는 것!
  • 청지기
    조회 수: 1940, 2009-04-13 08:18:48(2009-04-13)
  •   성경이 증언하고 있고 드라마로 본대로 성금요일 예수님이 묻히셨던 무덤은 비어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으로 빈 무덤 - 그 이상 가는 것이 없습니다.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고 하느님은 예수님을 죄와 죽음의 권세로부터 다시 살리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이것이 우리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오늘 서신에서 사도 바울은 강조합니다.
      고전 15:3-4,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서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인생들에게 가져온 결과는 무엇일까요?
      별세감사성찬례 감사 특송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몸소 죽음을 겪으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복된 부활의 희망이 비쳤으니, 죽음의 운명이 분명하여 슬퍼하는 우리에게, 후세 영원한 삶의 약속은 큰 위로가 되나이다. 주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이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다만 새 생명으로 옮아갈 뿐이며, 이 세상의 나그네 집을 떠난 후에는 하늘의 영원한 거처로 옮아가게 하시나이다.”

      ‘이 땅의 삶이 다가 아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다. 천국이 있다.
      영원한 거처가 있다.’
      
      우리로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안응식 야곱 형제를 주님께 보내드리면서 아픈 마음으로 기도할 때, 주님이 주신 마음이 이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그 믿음대로 천국 소망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상 이것은 우리만이 아니고 한국교회 성도들이 회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신앙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소위 한국사회의 지성인들이 한국교회의 신앙을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많이 합니다. 신앙이 타계적이고 기복적이라는 것입니다.
      
      ‘타계적’이라는 말은 천국을 소망하는 믿음이 강하다는 말입니다.
      ‘기복적’이라는 말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중심 가치에 두는 세속적인 믿음으로 샤머니즘과 같다는 말입니다.
      
      ‘한국기독교인들이 지나치게 세상적인 축복에만 매달려 믿지 않는 사람들과 꼭 마찬가지로 잘 먹고 잘 사는 일에만 신경 쓰고,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다. 기복신앙에 매달려 있다.’
      동의하시나요?
      이 비판은 상당한 부분 정확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복신앙을 비판할 때 항상 붙어 다니는 비판이 타계신앙입니다. 한국교인들이 지나치게 내세지향적이어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는 몰라라하고 천국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대의 지성인들은 한국교회 성도들의 문제점으로 기복신앙과 내세지향적인 신앙, 이 두 가지를 같이 묶어서 비판을 합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을 향한 이러한 비판이 맞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 교인들이 기복 신앙에 빠져버린 이유가 타계신앙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즉 예수 믿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것이라는  부활신앙이 없어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된 성공회 제자교회 가족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우리들에게 보여주시는 영원한 나라를 믿습니까?
      천국이 있다고 믿으세요?
      예수님을 믿은 우리가 이 땅의 삶의 마감하면 들어가 영원토록 살 하느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나요?

       “몸소 죽음을 겪으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복된 부활의 희망이 비쳤으니, 죽음의 운명이 분명하여 슬퍼하는 우리에게, 후세 영원한 삶의 약속은 큰 위로가 되나이다. 주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이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다만 새 생명으로 옮아갈 뿐이며, 이 세상의 나그네 집을 떠난 후에는 하늘의 영원한 거처로 옮아가게 하시나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말은 주님의 재림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는다는 말은 심판과 영생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심판 때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신자들은 심판을 통과하여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 살게 될 것입니다.

      요한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가 정말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믿음으로 천국의 영생을 믿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바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관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게 됩니다.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를 소망하게 됩니다. 삶의 목적이 바뀌게 됩니다.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삶을 살며 진정 이웃들을 섬기는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필립 3:10-11,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같이 나누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골로 3:1-4,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서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여러분은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는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참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있어서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루가14:13-14, 그러므로 너는 잔치를 베풀 때에 오히려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같은 사람들을 불러라. 그러면 너는 행복하다. 그들은 갚지 못할 터이지만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느님께서 대신 갚아주실 것이다."
      마르 10:29-30,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의 복도 백 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한국교회 신자들 안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는 물질주의, 세속주의, 성공주의, 개인주의, 인본주의 등등 반 성경적인 가치관들로 인해 예수님을 그저 복의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기복신앙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무엇 때문 이라구요?
      바로 부활신앙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의롭게 산 성도들을 위해서 영원한 보상의 세계, 영원한 처소, 천국을 준비하셨다.’

      이 사실을 참으로 믿는다면 세속적인 어떤 작은 이윤이나 이익에 매달려서 몸부림을 치는 그런 life style을 가져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단 말입니다.
      
      우리는 부할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타계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초대교회를 살았던 순교자들의 그 대담한 신앙의 모습이 바로 이 부활신앙에서 왔던 것입니다.  야생동물의 밥으로 그들의 몸뚱이가 던지움을 받으면서도 그들의 신앙을 부인하지 않고 찬양을 부르면서 원형 경기장을 걸어가던 초대교회 신자들의 그 담대함, 바로 그것이 부활신앙, 천국신앙인 것입니다.
      
      그들은 천국 믿었던 것입니다. 그 믿음이 로마를 정복하고 세상을 변혁시켜 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타계신앙이라는 것은 단순히 죽어 천국에 가는 것만이 아닌 오늘의 내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우리 안에 현세의 내 삶을 바꾸는 하느님의 능력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제임스 그레이라는 유명한 신학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고향길 가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 길 도상에서 조그만 어려움이라야 내 얼마든지 견딜 수가 있지 않겠는가?’

      우리가 추석 때 혹은 구정 설 날 때 보면 이 고속도로가 꽉 메워 지잖아요. 고향 가는 사람들 아마 그 고생을 하면서 가면서 많은 사람 들이 그런 결심을 할 것 입니다.
      ‘내가 다시는 고향에 가나 봐라. 금년 이 마지막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또 갑니다. 네, 고향에 딱 도착하는 순간 다 잊어버리거든요. 고향에 찾아온 기쁨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활하여 살게 될 우리의 본향, 저 천국에 영원한 소망이 확실한 것이라면 도상에서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견딜만하지 않습니까?

      “주님의 나라 영원하며 주님의 영광 무궁하리
       나그네 된 나의 삶 감사하며 온 맘 다해 주님을 찬양해“

      부활의 믿음은 천국의 소망은 언제나 우리에게 희망을 빛을 비춰줍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이 땅의 환경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렵다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절망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십자가의 죽음과 같은 고통이 있고 절망이 몰려와도 마침내 떨쳐 일어나 희망으로 사는 사람들이 됩니다. 천국을 행해 전진하게 됩니다.
      
      저 유명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말기에 지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사실상 포기하고 자리에 누워 버렸습니다.
      그는 혼자 넋두리처럼 ‘이제 모든 것은 끝났소. 끝났소.’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지혜로운 마틴 루터의 아내가 어느 날 상복을 입고 방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루터가 깜짝 놀라서 ‘아니 누가 죽었소?’하니까,  ‘예. 누가 죽었냐구요? 하느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아니 하느님이 돌아가시다니 무슨 소리요?’  루터의 아내는 정색을 하고 말하기를 ‘아니 하느님이 안 돌아가셨으면 당신이 그렇게 누워있을 탓이 있겠소.’
      이 아내의 한 마디가 루터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렇지. 살아계시지.’ 벌떡 일어났어요. 그리고 그는 다시 그의 사명-종교개혁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모든 것이 아님을 확증해주셨습니다.
      천국의 영원한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곳이 우리가 돌아갈 본향입니다.
      부활신앙으로 천국의 영생을 확신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소망으로 여러분의 삶이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소망으로 이 땅의 나그네된 삶을 의연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진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주님 때문에 손해를 보고 어려움을 겪고 고난이 있을지라도 타협치 말고 낙심치 않고 절망하지 말며 희망을 갖고 일어나며 전진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서 한국교회가 ‘기복적이다 세속적이다’라고 비판하던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가 잠재워지기를 바랍니다.
      
      세상 속에서 인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의 신성한 권위가 회복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그 소망 가운데, 자기를 부인하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감으로  ‘당신은 진짜 그리스도인이군요’ 라는 칭찬을 듣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248 청지기 2237 2009-05-13
247 청지기 2266 2009-05-05
246 청지기 1780 2009-04-27
청지기 1940 2009-04-13
244 청지기 2291 2009-04-06
243 청지기 1785 2009-03-30
242 청지기 2069 2009-03-22
241 청지기 1727 2009-03-16
240 청지기 2921 2009-03-09
239 청지기 1716 2009-03-02
태그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