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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3월 22일] 하느님의 자기 대리의 결과
  • 청지기
    조회 수: 2071, 2009-03-22 21:04:37(2009-03-22)
  •   오늘 복음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 - ‘이 성전을 허물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우리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러 오신 것입니다.
      이 죽음을 ‘하느님의 자기 대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마치 다이아몬드가 여러 면을 가지고 빛을 내듯이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에게 허락된 구원을 우리가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지만, 4가지의 이미지로 그 의미를 새겨보려고 합니다.

    1. 성전의 이미지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사람이 자기의 죄를 처리하는 방법이 나옵니다. 제사법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흠 없는 어린 양에게 손을 얹어 자기의 죄를 전가합니다. 어린 양을 죽여 각을 뜨고 피를 뿌리며 태워버립니다.

      죄인인 사람이 죽어야 하지만, 자기를 대신하여 양을 죽이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양을 보며 실상 죽어야 하는 존재는 자기 자신임을 각인하며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순종의 삶을 결단합니다.

      속죄의 제사, 번제라고 합니다.
      이것이 성전에서 드려졌던 구약의 예배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대신하여 동물을 죽이는 희생제물의 제사는 불완전한 것입니다.
      히브리 10:1, “율법은 장차 나타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고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해마다 계속해서 같은 희생제물을 드려도 그것을 가지고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 사함의 완전한 희생제물로 죄 없는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것입니다.
      히브리 9:12, “그리스도는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아닌 당신 자신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히 속죄받을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 성전을 허물라는 주님의 말씀은 이런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양 예수의 거룩한 피는 우리를 깨끗하게 합니다.
      히브리 9:14, “하물며 성령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흠없는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데나 죽음의 행실을 버리게 하고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단 한번’ 바쳐진 예수님의 피는 반복적으로 계속하여 우리 죄인을 깨끗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믿고 하느님께 나아가면 하느님은 죄와 그 결과로 오염된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삶을 깨끗하게 씻어주십니다.

      십자가에서 거룩한 피를 흘리신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현장에서 잡혀온 창녀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 8:11, ‘나도 너의 죄를 묻지 않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2.  시장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어떤 물건을 그 가치에 해당하는 값을 지불하고 사게 됩니다.

      노예 매매가 있던 시기에는 잘 생기고 건장한 청년은 값이 좀 매겨졌습니다. 아마 종으로 팔려온 꿈쟁이 요셉의 가격은 다른 노예들보다는 비쌌을 것입니다.

      사람이 죽고 화장을 하면 단지 한 줌의 재로 남습니다.
      이런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느님은 엄청난 값을 치르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느님이 지불한 몸값은 그의 독생 성자 예수입니다.

      요한 3:16,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마르코 10:45,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스스로 자기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열등감.
      혹은 자기만 의롭고 타인을 업신여기기도 합니다. 교만함.

      하지만 우리 모두의 가치는 동일합니다.
      우리 육체의 쓸 만한 것들의 무게가 비록 세븐 파운즈일지라도 우리 존재의 가치는 예수님짜리입니다.
      우리가 어떤 모양과 처지에 있을지라도 하느님은 우리를 예수님짜리로 보시고 그분의 자녀로 대하여 주십니다.

      오늘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내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고 산 나의 존귀한 자녀이다.’
      
      이사 43:1, “그러나 이제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의 말씀이시다. 이스라엘아, 너를 빚어 만드신 야훼의 말씀이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건져주지 않았느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사람이다.’”
      
      이사 43:4,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 그러니 어찌 해안 지방을 주고라도 너를 찾지 않으며 부족들을 내주고라도 너의 목숨을 건져내지 않으랴!”

    3. 법정의 이미지이다.

      법정이란 공의가 집행되는 곳입니다.
      공의에 따라 심판이 내려집니다.
      하느님은 이미 하느님을 떠난 이 세상 사람들을 죄인으로 판결하셨고 영원한 죽음으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만은 죄 없다고 판결하십니다.
      그저 내가 한 일이라고는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뿐인데,
      하느님은 너는 죄 없다고 의로운 나의 자녀라고 하십니다.
      以信稱義 - justification

      우리가 이성적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은 내용이기에 이런 비유를 들어봅니다.

      어떤 절친한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대학을 졸업 후 수년이 흐른 뒤에 한 명은 범죄자가 되었고 한 명은 판사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법정에서 판사와 피고의 신분으로 만났습니다.
      피고로 선 친구를 사랑하는 판사는 괴로움이 컸습니다.
      사랑한다고 공의를 집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그냥 눈감아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나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신다고 죄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를 그저 용납하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공의는 명확합니다.
      죄의 대가는 죽음입니다.
      하느님도 자신의 말대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친구 판사는 피고를 향해 법에 따라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우리 돈으로 1억이라고 하면 될까요?
      그리고 그 친구는 법복을 벗고 판사의 자리에서 내려와 친구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여보게 친구, 내가 대신 그 벌금을 내어 주겠네. 이제 자네는 자유일세. 이제는 우리 우정을 나누며 함께 잘 살아가자구.’

      공의가 집행되는 가운데 사랑이 꽃피어난 사건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는 의롭다 함으로 얻고 죄에서 우리는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자기 대리로 죽음으로 공의가 집행되면서 그 속죄함의 은혜로 죄 없다고 인정해 주시는 놀라운 하느님의 사랑!

      에페소 2:8,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입고 그리스도를 믿어서 된 것이지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이 구원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4. 가정의 이미지

      하느님과 나 사이를 갈라놓았던 죄가 그 값이 치러짐으로 사라졌습니다.
      고후 5:19, “곧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인간과 화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화해의 이치를 우리에게 맡겨 전하게 하셨습니다.”

      무섭고 두려운 멀리 계시던 하느님이 이제는 나의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아빠, 아버지 하느님’

      로마서 8:15,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

      또 놀라운 은혜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지면 우리의 모든 관계가 회복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도표 1)
         하느님

             나           너

      도표 2)
                   하느님

         나        너      다른 사람

      성전의 이미지 /  시장의 이미지 /  법정의 이미지 /  가정의 이미지

      이 모든 은혜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 -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여기 수표를 준비했습니다.


      지 불 란 : 용서, 죄 사람, 영원한 생명
      금 액 란 : 하늘의 모든 부요함
      지불보증인 : 예수 그리스도

      지불 날짜  : 2009년 3월 22일
                                                       천국은행

      
      
      이것을 받고 사용하는 것이나, 이것을 믿지 않고 찢어버리는 것은 우리의 자유입니다.

      이 시간 이 수표를 받아쓰기를 원하는 사람은 작은 소리를 내어 나의 기도를 따라 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나는 죄인입니다.
       이 시간 나의 인생에서 잘못한 모든 일을 회개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합니다.
       내 마음에 들어오시어 내 인생에 주님이 되어 주십시오.
       이제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따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 -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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