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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10월19일] 마태 22:15-22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 청지기
    조회 수: 2054, 2008-10-20 11:51:38(2008-10-20)
  • 아~하! 가족이 신앙생활 문제로 갈등하고 있군요.
    여러분 가정에서 자주 겪는 문제입니다.
    한 가족이어도 믿음의 분량이 다르고 각자 생각이 다르니 갈등하게 됩니다.

    이렇게 갈등하게 되는 것은 신앙에 여러 단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알아가는 단계가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해 가는 단계가 있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단계가 있고,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는 단계가 있습니다.

    이런 단계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지만,
    하느님에 대한 태도가 구분의 선이 됩니다.

    일요일을 어떻게 여기는가? 곧 주일예배에 태도가 어떤가?
    십일조에 대한 태도가 어떤가?
    전도나 봉사에 대한 태도는 어떤가?

    이 모든 것을 오늘 복음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대로 하면,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하느님께 드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보십시오. 일요일을 주님의 날, 주일이라고 합니다.
    예배가 생명이라고 합니다.

    봉헌기도에 모든 것은 주님이 주신 것이기에 우리가 받은 것을
    주님께 바친다고 기도합니다.

    주님이 주신 시간이기에 주님을 위해서 드리며 봉사합니다.
    주님이 사랑하는 영혼이기에 주님께 인도하고자
    복음을 전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전도입니다.

    드라마을 보면, 그레도 큰 며느리와 아빠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단계에 있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아빠가 거룩한 영향력이 흘러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은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직 온 가족이 영적으로 하나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엄마와 작은 며느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이 필요한 단계이고
    삼촌은 사실 입문도 하지 않은 단계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단계에 있는 것 같으신지요?

    그런데 오늘 복음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여기 있는 우리 모두에게 기대하는 수준은 명확합니다.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드리라!’
    즉,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는 단계로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되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주님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면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주님이 주신 선물이고 은혜입니다.
    몸, 시간, 아내, 자녀, 재물 등 등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입니다.

    나는 그저 하느님이 주신 모든 것을 감사하며
    하느님의 뜻 가운데 사용하며 주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날 교회에 이렇게 사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하느님의 것을 내 것으로 여기고 내 마음대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이 아닌 내 중심으로 살아가는 죄를 사함 받았음에도 그 죄에 묶여서 살아갑니다.

    내가 진정 예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모신 믿음의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게 하는 다림줄이 있는데, 바로 물질입니다.

    물질은 단지 물질이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

    자식을 위해서는 더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사랑하는 애인을 위해서는 카드를 긁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예수님의 몸 된 교회와 선교를 위해서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 아깝고 막히고 머뭇거린다면
    아직 예수님이 주인 된 온전한 신자가 아닌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더 자라나야 하는 영적으로 어린 아이임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믿음으로 성장하여
    예수님이 주인 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나를 통해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보람된 삶을 살고
    주님이 주시는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많은 이들이 경험하듯이
    주님의 것을 내가 주인 되어 내 맘대로 사용하면
    기쁨도 잠시이고 부감감과 죄책감만 크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결단하며 모든 것을 주님의 것으로 인정하며 주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기 시작하면 주님과 누리는 진정한 평화와 기쁨이 있게 됩니다. 뿌듯합니다.

    오늘 주님은 이러한 관계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기독교신앙의 아주 중요한 내용 중에 하나가 ‘청지기신앙’입니다. 온 우주 만물은 하느님의 것이고 사람은 그것을 위탁받은 관리자라는 가르침입니다.

      요즘 날.샘으로 묵상하는 창세기는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27-28,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정복하고 다스려라.’는 하느님의 명령의 정확한 뜻은 선한 목적을 위해서 땅 속에 포함된 자원을 개발하여 유용하게 사용하라는 문화명령입니다.

      하지만 창세기 3장을 보았듯이 선한청지기로서 지음 받은 사람은 자기의 욕심과 만족을 위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게 되면서 죄는 시작된 것입니다.
      성경은 하느님 중심의 삶이 아닌 자기중심의 삶을 죄라고 합니다.
      사람은 이제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느님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함부로 지구를 개발해오면서 환경이 파괴되고 이제 인류는 하느님의 심판 이전에 스스로가 파멸을 맞이하기 직전의 상황에 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바로 잡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인간의 탐욕과 그로 인해 파괴되어진 인간사회와 이 땅을 하느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시고자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구원의 이름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주장하며 살아가는 그 모든 죄를 지닌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며 살아간다는 말은 여전히 나를 흔들어 버리는 이 모든 죄를 거절하고 하느님 앞에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것으로 존중하고 겸손히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여전히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아가 주인되어 살아가고 있다면 그 믿음은 가짜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의 믿음이 다 같은 수준에 있지는 않습니다.
      영적인 생명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영적인 어린아이가 있고 어린이 단계, 청년의 단계, 보다 성숙한 아비의 단계가 있습니다. 각기 수준에 따라 하느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범위가 다를 것입니다.

      아이들은 다 자기 것으로 움켜지려고 합니다. 죄성에 강하게 지배받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건강하게 자라난다면,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갖게 됩니다.

      자기 자신과 자기 주변의 것들에서 점차 하느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많아지는 것이 성숙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와 자기와 관계된 것들을 좀처럼 하느님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교회생활을 예를 들면‘내가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많습니다.
      내가 믿어주는 것이고, 내가 예배에 나와 주는 것이고, 내 힘들게 벌은 돈으로 진짜 아깝지만 얼마라도 헌금해 주는 것이고, 바쁘고 피곤한데 그래도 내가 시간을 내서 봉사하는 것이고...
      이렇게...다 나의 것이지만 내가 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도 그래도 교회에 나오는 이유도 자기 자신에게 어떤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평화? 보다 선한 삶? 인간적인 보람? 결정적으로는 하느님을 인생의 위기의 때에 의지하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이 결코 나쁜 것들은 아니지만, 이 단계에 머무르는다면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영적으로 자라나는 사람들은 이런 의식들이 달라집니다. 점짜 ‘내가’가 ‘하느님’으로 바뀝니다. 자기 중심의 삶에서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데, 하느님의 은혜로 선택받고 구원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제 돌아보니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하느님의 은혜입니다.
      이렇게 은혜 안에 들어오니 어느 것 하나 하느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아내도 하느님이 내게 주신 선물입니다. 존귀한 존재입니다. 아이들도 하느님이 내게 주신 선물입니다. 참으로 존귀한 존재입니다.
      내 몸도 내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의의 병기입니다.
      시간도 하느님이 허락한 새로운 기회입니다.
      재물도 하느님이 주신 것입니다. 나 자신과 내가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은 하느님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주신 하느님의 것들입니다.
      예수님이 인생의 주인이 됩니다. 나는 자발적으로 그분의 종이 되어 그분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럴 때 내게 참된 만족이 있고 안정감이 있고 무엇보다도 주님께 쓰임 받는 멋진 인생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온 바리사이파 사람과 헬롯당 사람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주어라!”

      이 말은 인생들이 살아갈 삶의 태도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하느님께 드리는 삶을 사는 것임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교훈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전혀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단순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예수님이 주인 되는 삶을 살아야 그 삶에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가 있고 상급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인 된 사람은 어느 것 하나 자기의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그것으로 하느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주인 되는 삶이란 그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표식이 있습니다.
      돈입니다.

      예수님은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물질이란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주인인지, 그 사람이 무엇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표식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애인을 위해서는 몇 십 만원 카드를 긁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더 쓸 돈이 없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는지요?
      주님의 피 값으로 세우신 교회를 사랑하여 헌물을 드리고 더 드리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여러분 안에 있는지요?
      주님이 사랑하는 영혼을 사랑으로 섬기고 구원하는 일들에 힘껏 여러분의 물질이 흘러나가고 있는지요?

      예수님은 십일조를 꼬박 꼬박 바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아니라 의무감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주머니에 있는 전 재산 엽전 두 닢을 낸 과부를 칭찬하셨습니다. 비록 여인이 낸 헌금은 작을지라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살아가는 믿음으로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하느님께 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기뻐 받으시고 반드시 풍요로운 은혜의 삶으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사랑한다는 현대 크리스챤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셔 들이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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