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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5월 4일 ] 요한 17:1-11 영생은 하느님을 알고 더 알아가는 신자의 삶입니다.
  • 청지기
    조회 수: 3076, 2008-05-05 13:46:10(2008-05-05)
  •   1. 영생이 새로운 삶을 가능케 한다.

      두 주 전 우리는 사도행전 2장 말씀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보여준 새로운 삶의 스타일을 보았습니다.
      말씀 중심의 삶, 예배 중심의 삶, 공동체 중심의 삶!
      이들이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안에 예수 믿기 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안에 들어와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 것은 무엇일까요?
      요한 3:16이 말해 줍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영원한 생명! 성령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이 그들 안에 들어오자 그들은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2. 영생은 하느님을 아는 것이다.

      그러면 신자들로 새로운 삶을 살게 한 영생이란 무엇입니까?

      영생은 단순히 죽음 이후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의 삶만을 말하면 영생을 부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됩니다. 성경은 영생이란 신자들이 이 땅에서도 소유하고 누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한 17:3,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영생은 하느님을 아는 것이다.’

      아는 것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식적인 앎입니다. ‘-에 대하여 아는 것’입니다. 주입된 지식으로 머리로만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해서 교리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해서 교리적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알고 있는 하느님이 여러분의 실제의 삶에 능력으로 역사하고 계시는지요?

      또 다른 하나는 관계적인 앎입니다. 직접 경험함으로 아는 것입니다. 주입된 지식이 아닌 깊이 깨달아 마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루가 1:34에서 성모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처녀라는 말입니다. 남자를 경험해 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영생이 말하는 것은 하느님을 관계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경험을 통해서 직접 알아가는 것, 마음으로 깊이 깨달아 아는 것.
      have knowledge of (of sexual relations Mt 1.25 Lk 1.34); find out, learn, understand; perceive, discern; to have knowledge; acknowledge, recognize; be very certain, remember
      성경이 말하는 하느님을 아는 영생이 바로 이런 관계적인 앎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날 구원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순간,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된 순간부터 영생이 시작됩니다.
      오늘 현재에서 영원하신 하느님과 나와 바른 관계를 맺으면서 사는 것이 영생의 삶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 영생의 완성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알고 바른 관계 속에서 살고 계십니까?
      3. 하느님을 아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다.

      여러분은 중고 자동차 중에도 아주 낡은 자동차를 타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런 차는 엔진소리가 요란합니다. 기름을 많이 먹습니다. 평지에서는 그런대로 달립니다. 그런데 속력을 내야 할 때에 아무리 가속 패달을 밟아도 속력이 높아지지 않습니다. 달려야 할 때에 달리지 못하면 차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특히 언덕길에서는 걸걸걸 거리면서 배기통에서 시커먼 연기를 내며 뒤에 가는 차를 짜증나게 만듭니다.
      나의 신앙 상태가 낡은 중고차와 같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까? 내 삶이 낡은 중고차처럼 맥아리가 없고, 언덕길과 같은 힘든 문제를 만나면 도무지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은 아닙니까? 앞으로 나아가긴 가는 것 같은 데 신통치 않고, 뭔가 답답한 것 같지 않습니까?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삶의 엔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신앙의 엔진이 좀 더 힘이 있었으면 하지 않습니까?
      신자들 가운데 교회를 주유소와 같은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동차에 기름이 떨어지면 기름을 사서 넣기 위해 주유소에 갑니다. 신자들 가운데에도 위로가 필요하거나, 안식이 필요하거나, 삶의 지혜가 필요할 때에 교회에 나와서 ‘가득 채워주세요!’ 하면서 교회를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곳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름만 많이 넣으면 자동차가 잘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엔진이 새롭고 힘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힘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싶으십니까? 성도 여러분, 혹시 요즘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신앙은 왜 자라지 않고 점점 쭈그러드는 신앙일까? 내 신앙은 왜 그리 똑바로 목표를 향하여 가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할까? 내 신앙은 왜 그리 쉽게 흔들릴까? 내 신앙은 왜 그리 힘이 없을까? 언덕길과 같은 삶의 문제를 왜 힘 있게 넘어가지 못할까?”  
      우리의 신앙이 중심이 있고, 힘이 있는 신앙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느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는 말씀은 우리 신앙생활에서 하느님을 알아가고,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 기초요 중심이라는 말씀입니다.
      나무로 말하면 뿌리와 같은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하느님을 아는 것, 예수님을 아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이라는 엔진에 힘을 주는 것은 하느님을 아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 믿음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하느님을 알기에, 영생을 소유했기에, 신앙의 본질을 회복했기에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자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생겨났습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진리의 하느님,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느님,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는 하느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하느님을 아는 지식대로 행해진 것이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 말씀 중심의 삶.
      -모여 찬양하고 떡을 떼고 기도에 힘쓰며 : 예배 중심의 삶.
      -서로 도와주고 : 공동체 중심의 삶.
      
      이 삶이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행복한 삶입니다. 신앙의 본질이 회복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삶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필립 3:8에서 ‘나에게는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요?

      래잇 앤더슨은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가?]라는 책에서 “우리 인생의 첫 번째 목표는 더 많은 지혜를 얻는 일도 아니요, 더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며, 더 강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하느님을 아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가장 차원이 높은 과학이자 가장 위엄 있는 철학은 그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위대한 하느님의 이름과 본질과 인격과 사역의 행하심과 존재하심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면서 넘치도록 마음을 고양시키는 것이 있다. 그것은 너무 광대한 주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생각들이 그 광대함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 주제가 너무나 깊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자랑이 그 무한함 속에 묻혀 버리게 된다.
      여러분은 자신의 슬픔을 잊으려 하는가?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의 가장 깊은 바다에 빠뜨려 보라. 그의 무한하심 속에 빠져 보라. 그러면 여러분은 휴식의 침상에서 원기를 되찾고 다시 힘이 넘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에페 1장 17절에서 이렇게 기도했던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느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한 영생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4. 하느님을 아는 지식은 자라나는 것이다.

      미국의 위대한 성령의 사람 A.W. 토저는 그 책 [경건생활의 기초]에서, 우리 신앙생활이 저조하게 된 원인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배양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강함과 약함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얼마나 많이 얻었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하느님을 아는 지식은 자라나야 하는 것입니다.
      벧후 3:18, 여러분이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입고 또 그분을 앎으로써 계속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을 아는 지식은 다음 3가지의 영역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1)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2) 예배를 통해서  3) 공동체 관계

      이것은 이미 영생을 소유함으로 초대교인들이 살아간 새로운 삶의 스타일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말씀 중심의 삶, 예배 중심의 삶, 공동체 중심의 삶으로 살아간 이유는 바로 이런 삶을 통해서 하느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영생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 말씀 중심의 삶에는 묵상과 순종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나는 이런 하느님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또한 ‘나의 이 세상을 향한 계획은 이렇다.’ ‘세상을 움직이는 섭리는 이렇다.’ 고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또 우리가 성령의 감동으로 받은 말씀에 순종할 때 그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하느님을 경험하게 되면서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2)‘ 예배 중심의 삶 : 하느님은 예배 가운데 그분의 임재를 통해서 하느님의 백성을 만나주십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찬양하며 주님 앞에 나아갈 때, 하느님은 찬양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만져주시며 그분의 사랑과 거룩함으로 채워주십니다. 성찬례를 통해서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고 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채워갑니다.
      예배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입니다.
      영생을 소유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가장 뚜렷한 특징은 하느님을 예배하고 싶은 열망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을 예배할 때 하느님은 우리의 심령을 깊이 만져주시고 회복시켜주시며 새 기운을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예배에 성공하는 사람이 인생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3)‘ 공동체 중심의 삶 : 공동체는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 안에서 자라나라고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하느님의 허락하신 공동체는 가정과 교회입니다. 천국을 경험하고 천국을 확장해 가는 가정과 교회가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하느님을 알게 하는 하느님의 통로입니다. 사랑으로 양육하고 주님의 말씀으로 훈계하는 아버지와 부모님을 통해서 자녀들은 하느님을 알아갑니다.
      교회공동체에서 서로 용납해주고 용서해주는 사랑을 경험하고 배워감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돌봄과 서로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을 알아갑니다.
      공동체는 용서받은 죄인들이 하느님을 알아가고 의롭게 세워져 가는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A.W. 토저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운데서의 발전은 우리 개인의 체험 속에서 얻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성장과 정비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아는 삶”, “하느님을 갈망하는 삶”, “하느님을 추구하는 삶”을 아주 강조합니다. 토저는 바로 하느님을 점점 더 많이 알아가야 하느님을 깊이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풍성히 알고 경험하기 위해서 시간을 내야 합니다.
      묵상하는 삶에, 예배의 삶에, 소그룹 공동체에 더 많은 시간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느님을 점점 더 알아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더 깊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영생은 하느님을 알고 바른 관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고 우리 인생을 힘 있게 살게 합니다. 초대교인들은 영생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사는 힘 있는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더 깊어지고 신앙의 삶이 더 풍요로워 지기를 원하십니다. 말씀 묵상과 말씀에 순종함으로,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드림으로, 그리고 주님의 몸된 교회의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더 깊어지고 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함께 찬양합시다. ‘목마른 사슴’
      이 찬양을 하면서 우리에게  주님을 향한 갈망이 부어지기를,   주님을 추구하는 삶이 되기를, 주님을 더 깊이 아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찬양의 가사처럼, 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참 소망이 되는 은혜의 삶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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