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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3월 16일 고난주일]            마태 27:45-56 찢어진 휘장
  • 청지기
    조회 수: 2824, 2008-03-16 23:41:40(2008-03-16)
  • 오늘은 성지주일,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며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예식 / 성지는 1년 동안 집에 걸어두었다가 ‘재의 수요일’에 불에 태워 그 재를 이마에 바르게 됨.
    ‘인생아 기억하라. 그대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성지는 우리의 욕망을 상징하는 것.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호산나를 외쳤던 군중들은 예수를 자신들의 희망을 성취해줄 다윗 왕과 같은 정치적 메시야로 여겼던 것. 그 희망이 사라지자 이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군중으로 돌변했다.

    성난 군중들에 의해 십자가형에 처해진 예수님, 그는 제자들이 자기를 떠나가고 수제자 베드로도 자기를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마태오 26장 31절-35절을 보면, 이미 자기 목숨을 바쳐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다짐하고 맹세하던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언은 ‘네가 그렇게 나를 배반할 나쁜 놈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호언장담을 해도 상황과 환경에 따라 언제든지 나를 배반하리라는 인간의 연약함을 알게 하시고자 미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와 같습니다. 주일 예배를 시작하면서 고백하듯이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실로 죄를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단 1시간도, 아니 5분조차도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단 말입니까?
    20세기 옥스퍼드대학의 석학이었던 C.S.루이스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나는 단단한 결심을 하고 나 자신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나는 내 자신에게서 경악스러운 것을 발견했다. 욕정의 동물원과 야망의 난장판, 공포의 양육소, 증오들이 귀여움을 받는 할렘.... 내 이름은 군대였다.”

    호산나를 외쳤지만 이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성난 군중들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를 배반하고 떠나는 제자들을 보면서, 한갓 여종 앞에서 예수를 3번이나 부인하는 베드로를 보면서, 그리고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처절하게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 죄인 중의 괴수(딤전 1:15)라고 고백했던 사도 바우로의 고백이 나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는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들입니다.

    하느님이 나를 떠난 것이 아닙니다. 나의 범죄가 나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것입니다.
    이사야59:1-2, “야훼의 손이 짧아서 구해 내지 못하시겠느냐?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겠느냐? 너희가 악해서 너희와 하느님 사이가 갈라진 것이다. 너희가 잘못해서 하느님의 얼굴을 가려 너희 청을 들으실 수 없게 된 것이다.”

    거룩하고 아름다우신 하느님과 우리 죄인 사이에는 커다란 장벽이 가려져 있습니다. 하느님은 멀리 계시기만 한 것 같고 내 안에는 죄책감과 그 죄의 결과인 죽음이 주는 공포와 어둠만이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 모두에게는 죄의 용서가 필요합니다.
    하느님과 우리 인간을 가로 막고 있는 장벽이 제거되어야만 합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오르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하시고자 죽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오르신 예수님이 숨을 거두기 직전에 절규하셨습니다.
    46절, “세 시쯤 되어 예수께서 큰소리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 말씀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늘 하느님을 아버지라고만 부르셨습니다. ‘아바 아버지.’
    창세 이전부터 성부와 나누어왔던 사랑의 교제를 이 땅에 오셔서도 계속 하셨습니다.
    요한 5:19, "정말 잘 들어두어라.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할 뿐이지 무슨 일이나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할 따름이다.

    이토록 아버지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자신을 이 땅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게쎄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기까지 기도하시면서 결단하신 것입니다.
    ‘아버지,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리고 마침내 죄 없으신 그 몸에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오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타락한 아담으로부터 자신이 재림할 때까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지셨습니다. 이제 죄인들을 대표하여 천국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이 되었기에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던 사랑의 속삭임이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절규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처절한 고통 가운데 나오는 고백일까요?
    십자가에 달린 육체의 고통도 참을 수 없을 것인데, 나의 죄로 인해 사랑하는 아버지와 그 친밀한 사랑의 관계가 끊기면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하느님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고통.

    십자가 위에서 고통당하신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고 그 사랑을 느끼고 성주간이 되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마음이 느끼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성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우리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이 절규와 함께 숨을 거두시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51절입니다.
    “바로 그 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지고”
    여기에 엄청난 은혜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 휘장은 성전의 지성소 앞에 걸려 있던 것입니다. 지성소는 오직 제사장만이 일 년에 딱 한번 들어갈 수 있었던 하느님의 임재 장소입니다. 함부로 들어가면 곧 죽음일 뿐이었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은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러 지성소에 들어갔다가 죽었습니다(레 16:1).

    휘장이란 그 자체가 분명한 선포였습니다.
    출입금지!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도저히 만날 수 없는 거리 밖에 하느님이 계시고 도저히 가까이 함께 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죄로 인한 하느님의 진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확실한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중보자로 죄인 된 우리와 하느님을 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딤전 2:5, “하느님은 한 분뿐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도 한 분뿐이신데 그분이 바로 사람으로 오셨던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느님과 진노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화해시켜주시고자 예수님이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당신과 네게 문이 열리는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사건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히브리 10:19-20,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예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는 마음 놓고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새로운 살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셨습니다. 그 휘장은 곧 그분의 육체입니다.”

    예수님의 몸이 휘장이었습니다.  ‘휘장이 곧 저의 육체니라.’
    예수님의 몸이 가시에 찢기고 십자가에 달린 무게로 몸의 구멍으로 찢겼습니다.
    그러나 처참하게 찢긴 그의 몸을 통해 영광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몸을 찢기시며 하느님과 우리 죄인을 가로 막고 있던 휘장을 걷어내셨습니다.

    이 휘장의 크기는 자그만치 높이가 18.3m였고 넓이는 9.1m였습니다. 십자가 앞에 있던 사람들은 멀리 보이는 휘장이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찢어져 둘이 되는 광경을 목도한 것입니다.

    휘장이 찢어졌다는 말은 더 이상 지성소와 사람들 사이에 장벽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필요 없고 제물이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느 때이든 어느 곳에서든 자유롭게 하느님의 임재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하느님 사이를 갈라놓았던 장벽을 하느님이 제하셨습니다.
    죄의 장벽이 없어졌습니다.
    하느님 그분이 휘장을 걷어치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장벽을 쌓아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이 되어 스스로가 숨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걷어치운 휘장을 다시 쳐서 숨어버리는 것입니다.
    스스로 죄책감의 휘장을 치고는 다시는 하느님과 가까워질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양육을 하면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을 확신하냐고 물으면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어떤 분은, 입으로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다른 신자들이 사는 모습을 보니 가당치도 않아 자기는 도저히 구원받았다고 말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맞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에요.
    성경책을 끼고 교회를 다니면서, 나처럼 예수 믿고 구원받아 복 받으라고 전도하면서 전혀 성도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도 울화통이 터집니다.

    한국교회가 오늘날 사회에서 지탄을 받는 이유가 구원받았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도답게 살지 못했기 때문이쟎아요.  

    하지만 여러분, 우리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만 보면, 나 자신의 행실을 보면 관 속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5분조차도 의롭게 살 수 없는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들이니까요.

    바로 우리의 이 연약함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죄와 허물이 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구원받았다. 내가 너를 용서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찢어진 휘장의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당신은 다시 하느님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당신을 언제든지 반겨주신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든지, 하느님은 당신을 피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밀쳐내지 않으십니다.
    휘장은 찢어졌습니다.
    문은 열려 있습니다.
    하느님이 당신을 그분의 임재 가운데로 초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의 양심을 믿지 마십시오.
    자신의 행위를 보지 마십시오.
    십자가를 믿으십시오.
    예수님이 당신의 그 연약함을 위해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몸을 찢기셨습니다.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몸을 찢기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는 언제든지 하느님의 임재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은혜이다.
    이 은혜를 누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함께 찬양하며 하느님의 임재로 들어가 주님이 주시는 자유함과 풍성함의 은혜를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나의 삶의 문이 열렸네.  저 어둠의 권세는 힘이 없네. 주보혈의 능력으로  원수가 날 정죄할 때도 난 의롭게 설 수 있네.  난 더 이상 정죄함 없네. 난 주 보혈 아래 있네.  난 주보혈 아래 있네그 피로 내 죄 사했네.  하나님의 긍휼 날 거룩케 하시었네.  난 주보혈 아래 있네.
    난 원수의 어떠한 공격에도   더 이상 넘어지지 않네. 난 주보혈 아래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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