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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12월 25일] 요한 1:14 성탄의 이유, 성육신의 목적?
  • 청지기
    조회 수: 3752, 2006-12-25 22:59:04(2006-12-25)
  • 여러분이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거룩하신 하느님이 죄인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성탄의 소식 아닐까요?

    오늘 복음 말씀은 사도 요한을 통해 주시는 성탄 메시지입니다. 요한은 이 땅에 죄인들을 구원하러 찾아오신 예수님을 감격적으로 증거 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이것을 성육신이라고 하고 성육신이 우리가 오늘 기념하는 성탄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한번 깊이 생각해 봅시다.

    여기서 말씀이란 우리가 흔히 아는 대로 ‘로고스’라고 하여 원래는 사물의 존재를 한정하는 보편적인 법칙, 행위가 따라야 할 준칙, 이 법칙과 준칙을 인식하고 이를 따르는 분별과 이성(理性)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 용어였습니다.
    특히 초대교회 당시에는 로고스는 거룩하고 완전하고 선한 것으로 여기고 몸을 뜻하는 사르크스는 불완전하고 천한 것으로 여기는 철학사조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안으로 들어와 영적인 것은 거룩하게 육적인 것은 천하게, 즉 교회는 거룩하고 세상은 악하다고 생각하게 영지주의 이원론이라는 이단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예수님이 몸으로 오셨다는 성탄을 부인하고 마치 홀로그램처럼 말씀이 몸으로 오신 것처럼 보였다는 소위 ‘가현설’을 주장합니다.

    이러한 영지주의는 우리 기독교신앙에 치명적인 왜곡을 가져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십자가의 복음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현설의 논리에 따른 예수는 그 본질이 몸이 아닌 영이기에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요한을 통해 너희가 그토록 거룩하게 여기는 로고스 - 생명의 말씀이 너희가 천하게 여기는 몸이 되었다는 혁명적인 말씀으로 우리 신앙의 본질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아가 영적인 것만 거룩하고 육적인 것은 천하게 여기는 생각을 갖게 함으로 교회 - 성, 세상 - 악으로 여기며 세상 속에서 신앙인의 책임, 교회의 책임을 방기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영지주의 이단은 초대교회가 심각하게 맞서서 싸웠던 것이고 2000년 교회사 속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끼쳐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시켜 왔습니다.

    사실 지난 20세기 한국기독교도 영지주의적인 편향을 가짐으로 외면한 채 내세지향적인 신앙만을 강조하고 세상의 불의나 아픔을 무시함으로 세상으로부터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합니다.

    이에 하느님은 사도 요한을 통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혁명적인 성탄의 메시지를 선포 하게 하셨습니다.
    ‘너희가 그토록 거룩하다고 여기는 로고스가 너희가 그토록 천하게 여기는 몸이 되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이 짧은 표현 속에 우리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성탄의 내용 그대로 성육신의 신앙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말씀이신 성자 하느님이 죄 가운데 죽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몸으로 오신 성탄절에 우리는 성육신의 신앙으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고 남을 섬기고 살리는 겸손으로 살아가며 신자 공동체인 교회도 나누고 섬김으로 세상을 변화시켜가는 본질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낮아지면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부활.
    낮아지는 자를 높이시고 낮은 자를 높여주시는 하느님!
    개그맨 장종철 - 코미디 최우수상 수상 소감!  낮은 자를 높이시는 하느님을 찬양! 우리도 이런 간증을 나눌 수 있기를.
    올해 성탄 행사를 준비하며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웃과 함께 하는 성탄절이 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마땅항 대안이 없는 가운데 공동체 내부적으로 전세대가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더 의미가 있겠다고 판단하여 성탄축하행사라는 내부행사만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재미있고 내용성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엄청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준비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학생회-립씽크 공연,
    주일학교 - 뮤지컬 : 선물 중에 선물 가장 큰 선물, 예수님
    각 셀 - 1, 3, 5, 6, 7, 8 : 다 잘하셨습니다.
    남선교회 드라마 - 힘들고 지쳐
    청년회 - 교회 온 행님 뉴스 : 교회가 교회다워야지 교회지!

    내년에는 성탄의 본질 그대로 우리 사회의 낮은 곳을 찾아가는 성탄절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부족하지만, 나눔을 위한 작은 돈 모으기, 노숙인을 위한 헌 옷 모으기 등에 여러분이 정성으로 참여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이번 성탄을 맞이하며 감동했던 것은 익명의 교우께서 백혈병 투병 중에 있는 이루리 형제를 위해서 1000만원을, 고통 중에 있는 탈북자들이과 북한의 지하교회를 위한 선교헌금으로 1000만원을 봉헌해신 것입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섬기기를 원하는 주님의 마음을 지닌 사람은 자연스럽게 몸으로 또 물질로 섬기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나눔과 섬김의 사랑으로 성육신의 믿음을 실천하는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 성육신, 즉 성탄하시어, ‘우리와 함께 계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이 성탄의 목적입니다.

    여기서 “함께 계셨다”(개역 - 거한다)는 말은 ‘텐트를 치고 거주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날 때에
    이스라엘의 한 가운데 하느님의 천막(텐트)이 위치하셨다는 것과 똑같은 표현입니다.

    하느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텐트를 치시고 함께 거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을 알면 성탄하신 예수님이 죄인 된 인간들과 함께 하신 이유를 알게 됩니다.

    하느님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하신 이유 그것은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함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목적하는 곳은 약속의 땅 가나안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에 가려면 광야를 통과해야 합니다.

    출애굽기는 우리 신앙의 여정을 미리 보여주는 책입니다. 구원받았지만 천국을 누리기 위해서는 광야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 한 가운데 텐트를 치신 하느님은 광야의 여정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습니다.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수많은 적들을 물리쳐 주시고 한 걸음 한 걸음 광야의 여정을 인도해주셨습니다.
    마침내 요단강을 건너게 하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에도 이미 가나안을 차지하고 있던 적들을 이기게 하시고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그들의 유업으로 누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시어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고자 함입니다.
    대속의 십자가를 통해서 죄인된 인생들에게 구원받는 깃을 열어 주셨습니다.
    믿는 자의 영혼을 구원해 주실 뿐만 아니라, 광야 같은 인생의 여정을 함께 하시며 도와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광야길 같은 우리의 인생 여정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목말라 물 달라고 부르짖으면 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터져 나오게 하십니다.
    배고파 밥 달라고 부르짖으면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적이 나타나 괴롭힘을 당해 부르짖으면 적을 멸하여 주십니다.    요단강같은 인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어 부르짖으면 요단강을 건너가는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늘 함께 하시면서 우리가 부르짖으면 들으시고 도와주십니다.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여 주시고 천국 가는 그 날까지 광야 같은 인생 여정을 인도하여 주시고자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광야같은 인생 여정을 가면서 천국을 미리 경험하도록 구원의 은총으로 역사하십니다.
    믿습니까?
    이것이 성탄하시어 텐트를 치듯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이유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주님의 목적이 또 하나있습니다. 성육신하신 주님은 우리도 성육신하여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주님의 계획을 이루어 주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지 50째 되는 날, 하느님께서는 시나이 산에 나타나시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말씀 계명을 주시며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신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9:4-6,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너희를 어떻게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로 데려왔는지 보지 않았느냐? 이제 너희가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준 계약을 지킨다면, 너희야말로 뭇 민족 가운데서 내 것이 되리라. 온 세계가 나의 것이 아니냐? 너희야 말로 사제의 직책을 맡은 내 나라, 거룩한 내 백성이 되리라. 이것이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줄 말이다.”

    “너희가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준 계약을 지킨다면,”
    말씀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 성육신입니다. 성탄입니다.

    성육신하면? 성탄하면?
    “너희야 말로 사제의 직책을 맡은 내 나라, 거룩한 내 백성이 되리라.”

    우리와 함께 하시며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포기할 수 없는 동일한 기대가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두운 데서 여러분을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널리 찬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우리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주님을 의지할 때마다 하느님을 경험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됨으로 하느님을 더 깊이 알고 경외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주님은 우리를 이 땅을 복되게 하는 축복의 통로로 세워 가십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성탄의 기쁜 소식이 알리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천국을 경험하고 확장해 가는 증인의 삶입니다.

    성육신되는 우리의 삶을 통해 성탄의 기쁜 소식이 땅 끝까지 이르러 전파되고 주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마침내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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