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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종강님의 글 - 경향신문
  • 하종강


      쌍용차 등 파업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노동자들에 대한 DNA 채취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사회에 그 정도의 이성적 판단이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해 오히려 의아했다. “강력사범과 성격이 다르다고 보고 이들에 대한 법 적용 기준 등에 대해 종합적 검토를 해보겠다”는 검찰의 발표가 당연한 내용인데도 뜻밖으로 여겨졌던 것은 그동안 파업 노동자들에 대해 검찰이 적용한 법률적 잣대가 그만큼 엄혹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 적용이 가능한 배경은 무엇보다 노동자 파업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뿌리 깊은 혐오감이다.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검찰 및 경찰과 ‘용역 깡패’들의 무자비한 대응을 ...대중의 정서가 계속 용납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검찰의 DNA 채취 잠정 중단 소식을 듣던 날, 쌍용차 노동자 77일의 투쟁과 그 뒤의 삶을 다룬 태준식 감독의 <당신과 나의 전쟁>과 <낙인>을 사람들과 함께 볼 기회가 있었다. 사춘기 시절,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에서 징이 울릴 수 있다는 체험을 처음 선사해준 <사운드 오브 뮤직> 이후 같은 영화를 세 번 이상 본 기억은 없다. <당신과 나의 전쟁>은 이번이 다섯 번째 관람이었는데 볼 때마다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고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생각들이 목에까지 차오른다.

      영화 상영 내내 그리고 좌담회에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가슴을 내리눌렀던 것은 쌍용차 투쟁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리고 설득하는 일에 우리가 너무 무력했다는 부끄러움이었다. 그날 모인 수십 명의 사람들이 영화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 거리에 넘치는 더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한 줌의 ‘운동권’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자괴심으로, 말하면서 자꾸 목이 메었다.

      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생계를 보장한다는 도덕적 당위성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왜 사회 전체 구성원들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조목조목 따져 설명하는 일은 사실 노동자들이 감당할 몫은 아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의 일관된 주장 중 하나는, 경제가 어려울 때울수록 도움이 필요한 서민들과 노동자들을 돕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을 뿐만 아니라 부자 감세보다 훨씬 더 경기 부양에도 효과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어 비정규직 노동자가 더욱 많아질 수밖에 없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고, 방사능에 대한 우려를 ‘불순세력’과 ‘좌파단체’의 선동 탓으로 돌리는 집권 여당의 정책위의장은 “국민들의 불안감으로 수산시장이 완전히 죽었다”고 걱정하면서도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짓밟는 일이 되풀이되면 서민 경제가 죽어 ‘건전한 내수’ 창출과 양극화 해소가 요원해질 수밖에 없는 현상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한술 더 떠 고용노동부장관은 “최저임금을 지나치게 인상할 경우 물가 상승 압력이 돼 서민생활에 직격탄이 되고 한계기업 도산 등으로 일자리를 줄이는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고용노동부장관이 재계 대변인인가? 그 말을 전해 듣는 귀가 의심스럽다. 젊은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대로 “어쩔 건데?”

      정의로운 소수를 우선 힘들게 하는 것은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의 무관심이다. 수많은 스탭과 활동가들 공동의 노력으로 일궈진 작품 <당신과 나의 전쟁>의 제작 배급 성과를 바라보면서 이상욱 프로듀서가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되는 거죠?”라고 궁금해했다는 말이 가슴을 벤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억하는 모임에서, 김진숙 씨가 오른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밑에서, 강병재 씨가 홀로 올라가 이슬을 맞는 대우조선 앞 15만4천 볼트 송전탑 밑에서 차곡차곡 울음을 접어 넣은 채 돌아서는 그대들의 가슴 속에 미래를 건설하는 꽃송이들이 피어날지니...

    <경향신문> 201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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