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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12월 13일]야고 5:7-10, 마태 11:2-11 종말신앙은 ‘오래 참음’으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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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수: 1889, 2010-12-13 20:00:53(2010-12-13)
  •   대림절이란 구체적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을 회복하는 절기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말은 역사적으로 이 땅에 있는 모든 죄와 그로 인한 불의, 죽음 등이 종식되기를 갈망한다는 것이며, 개인적으로는 ‘주님 앞에 서는 삶’을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앞에 선다’는 것은 평소 그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확인해 줍니다. 평소에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관계는 서로 마주 대하는 것이 반갑기만 한데, 평소에 만남이 많지 않았던 관계는 서로 마주 대하는 것이 영 어색하기만 합니다.

      이렇듯 우리가 주님의 재림의 때에 주님 앞에 선다는 것은 평소에 우리가 얼마나 주님과 친밀한 관계였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얼마나 그분의 뜻과 마음으로 살아왔는지를 평가받는 자리가 됩니다.

      그래서 신자의 눈빛은 항상 “하느님 앞에 서는 그 자리” - 천주대전에 닿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천주대전에 닿아있는 눈빛을 지닌 사람은 그 삶에 독특한 태도를 보여주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 앞에 서기까지 인내하는 믿음의 삶입니다.

      오늘 서신 말씀이 말합니다.
      야고보 5:7,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농부는 땅이 귀중한 소출을 낼 때까지 끈기 있게 가을비와 봄비를 기다립니다.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이 왔습니다.”

      농부들이 씨를 뿌리고 열매를 얻기까지 하늘을 바라보며 오래 참듯이 신자된 우리의 숙명은 주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참고 기다리는 것, 인내는 종말신앙을 지닌 신자가 그 삶의 전 영역에서 보여주는 특성이 됩니다.

      저는 종말신앙을 지닌 사람이 보여주는 인내는 다음의 5가지 모습으로 우리 삶을 아름답게 해 줍니다.
      
      1. 인내는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게 합니다.

      야고보 5장 10절에서 선지자들을 본으로 삼으라고 하는데,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 이전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이 등장합니다.

      세례요한은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성전 안에 있지 않고 광야로 나가 살았습니다. 광야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고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하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 삶이 하느님께서 그에게 허락한 소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이 허락한 삶의 자리에서 그 소명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광야가 불편하고 진리를 외치는 것이 괴롭다고 포기하지 않고 인내했습니다.

      마침내 그가 헤롯의 불의를 비판하는 외침으로 교수형을 당하는 비참한 죽음을 당합니다. 그 전에 감옥에 갇혀있지만, 죽기까지 충성을 다했습니다.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바로 이것이 선지자인 세례자 요한에게 배우는 인내의 모본입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을 바라보는 사람은 인내하며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합니다.

      주어진 자리나 사명을 탓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자리는 내가 바꿀 수 없는 나의 운명입니다. 주어진 사명은 하느님이 주신 이 땅에서 내가 맡아야하는 배역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인내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바로 그 삶의 태도로 종말의 때에 나의 인생이 평가됩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소명으로 살다가 끝내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그 소명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천주대전을 바라보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의 목회신념이 있습니다. “심겨진 그 자리에서 꽃을 피워라.”는 것입니다. 오래 참으며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이 신념으로 주어진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때로 지치고 낙심될 때도 있지만, 열매가 얼마가 맺어지던 그것은 주님의 몫이고 저는 한결같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것이 인내라고 생각합니다.

      고전 4:2, “관리인에게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것은 주인에 대한 충성입니다.”

      2. 인내는 자신이 타인을 심판하지 않게 합니다.
      
      야고보 5:9, “형제 여러분,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서로 남을 탓하지 마십시오. 심판하실 분이 이미 문 앞에 서 계십니다.”

      원망한다는 말은 내가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며 심판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종말신앙이란 하느님이 결국은 모든 것을 올바로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기다림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궁극적인 통치를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망도 없고 심판도 없습니다.

      <미국에 이민 간 한인들이 많이 하는 일이 세탁업입니다. 세탁업을 하는 신실한 교민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한 손님이 자기가 아끼는 옷이 없어졌다며 그 동네에 세탁소를 비방하는 나쁜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리고 세탁소 주인에게는 옷을 찾아 내놓으라며 일주일 동안 욕하며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그 세탁소 주인은 전혀 화내지도 않고 그럴 리가 없다며 공손히 대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욕하던 사람의 집에서 그 옷이 발견되었습니다. 얼마나 미안하고 창피했을까요? 세탁소 주인의 태도에 감동받은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습니까? 모욕과 수모을 참고 견디는 것이 믿음이고 전도입니다. 영국의 설교가 스펄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쇠망치를 들고 때릴 때, 크리스챤들은 그 철받침이 되어야 한다.”>

      종말의 신앙은 우리의 일상에 바로 이런 인내를 발휘하게 하는 능력을 줍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셨습니다.
      마태 18:21-22,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3. 인내는 선을 행함에 낙심하지 않게 합니다.

      지난 주간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보도가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꽃제비로 살아가던 한 처녀의 죽음에 관한 보도였습니다. 23살인 이 처녀는 가족도 없고 거처도 없이 토끼풀을 뜯어 먹으면서 연명하다가 지난 10월 옥수수 수확철에 옥수수밭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연평도 사건이후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많은 이들이 전쟁을 불사하더라도 북한을 응징해야 한다고,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군사력 증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분단과 군사적 대치 상황에서 안보를 강화하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실제 우리의 동포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것에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굶주려 죽어가는 동포들을 살리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들이 없습니다. 오히려 쌀을 보내고 생필품을 보내주던 정책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크리스챤 조차도 구제와 돌봄보다는 전쟁을 운운하고 있습니다.
      
      날샘 12월호 34페이지에 나오는 글의 일부를 읽어드립니다.
      “북한의 형제들이 남한의 형제들에게 ‘우리 가족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죽을 때 풍족한 삶을 살고 있던 너희는 무엇을 했는가?’라고 물을 때 우리가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25:40,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북한 동포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섬기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한 주 한 끼, 금식을 잘하고 계시죠?
      4주 모은 돈이 적을지라도 그것을 구제헌금으로 봉한하고 모으면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성탄에는 캐롤링을 통해 교회 어르신과 지역관공서 어려운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나누고, 또 오산 지역 몰래 산타 활동과 수원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타 등을 돕고자 합니다.

      갈라 6:9-10,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선을 행합시다. 꾸준히 계속하노라면 거둘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회 있을 때마다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합시다. 믿는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4. 인내는 하느님의 공의를 위해 실천하게 합니다.
      
      신문을 보니까 국회에서 통과된 2011년 예산안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되고 있습니다. 4대강 예산 확보를 위해 날치기를 하다보니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권익을 보호하는 예산이 날라갔다는 것입니다.

      “결식 아동 급식 지원금 541억 전액 삭감 / 저소득층 에너지 보조금 903억 전액 삭감 / 일자리창출 지원금 340억 삭감 / 노인 일자리 예산 190억 삭감 /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비 예산 1,100억 전액 삭감 /  한시적 생계구호비 4,181억 전액 삭감 / 실직가정 대부사업비 3,000억 정액 삭감 / 저소득층 의료비 지원비 880억 삭감 / 저소득층 긴급복지비 1,000억 삭감 / 장애아동 무상보육 지원금 50억 삭감 / 서울시 독거농인 도시락 지원금 116억 삭감 / 보육시설 확충비용 104억 삭감”

      당내에서 조차도 비판이 나오기에 예비비를 통해 이런 복지예산을 일정정도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국회위원 중의 1/3 이상이 크리스챤이라고 하는데 하느님의 마음을 담아 하느님의 뜻을 펼치는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현실에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 시편을 보십시오. 우리 하느님은 ‘억눌린 자들의 권익을 보호하시고 굶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묶인 자들을 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려면 정치가 바로 서고 정의로운 법이 입안되고 세워져야 합니다.

      정치를 외면하는 것은 신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신자는 오래 참고 기다리는 가운데 정치지도자들이 하느님의 공의를 세워가는 종들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성공회 기도서에는 대통령, 정치인, 공무원들을 위한 기도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정직하고 바른 일꾼들이 선출되도록 투표해야 합니다. 이것은 시민의 권리이자 건강한 신자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영국에서 노예법을 폐지한 윌버포스는 법안을 제출하고 부결되면 또 제출하면서 평생 하느님의 공의를 위해 싸워왔습니다. 인내를 통해 하느님의 공의를 위해 헌신한 위대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시편 146:7, “억눌린 자들의 권익을 보호하시며, 굶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야훼는, 묶인 자들을 풀어주신다.”

      5. 인내는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와 섬김을 계속하게 합니다.

      저의 가족이 아버님 어머님 포함해서 모두 8명입니다. 저희 가족이 모두 예수님을 믿기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이것도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가정의 복음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는데, 어머님이 새벽기도와 철야기도를 다니시며 아버님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실 때 어머님께서 아버님께 당하신 고난이 많았습니다. 아버님이 성경을 집어 던지시며 ‘가서 목사와 살라’고 구박하시고 여러모로 어머님을 힘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님은 아버님의 구원을 위해서 금식까지하시며 아버님이 술에 만취되어 오시면 씼겨 주시고 다음날 계란에 해장국에 보약에 정성으로 아버님을 섬기셨습니다.

      고난이 많았지만, 인내하는 믿음의 기도와 섬김은 마침내 아버님을 주님께 인도하였고 나중에는 아버님이 신학대학까지 편입하셔서 목사 안수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천국에서 내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이 땅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비극이겠습니까? 거꾸로 천국에서 주님 앞에 섰을 때 내가 전도한 영혼들이 함께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와 섬김에 지치지 마십시오.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와 섬김은 특별히 더 인내를 요청합니다.
      
      이렇듯 종말신앙을 가진 사람은 ‘인내’라는 삶의 인격을 지니게 됩니다. 인내는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게 하고 / 주님께 맡기며 자신이 심판하게 않게 하고 /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않게 하고 / 하느님의 공의를 세우는 일에 참여하게 하며 / 영혼구원을 위한 기도와 섬김을 쉬지 않게 하며 마침내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받게 하며 생명의 월계관을 받게 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 오실 그날, 주님 앞에 서는 그 자리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인내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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