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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8월3일] 로마서 8:17-25고난과 탄식을 넘어 영광의 그날로!
  • 청지기
    조회 수: 3329, 2008-08-04 22:09:50(2008-08-04)
  •   전도여행 성료 - 주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다음 주일 예배 때 전도여행 보고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고난과 탄식을 넘어 영광의 그날로!’라는 제목으로 로마서 8장 17절에서 25절까지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8,
      18절은 17절에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의 상속자가 되지만, 그 삶에는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는데, 왜 갑자기 고난이 언급되고 있는 것일까요?

      이는 ‘성령 안에 거한다’는 것이 우리를 무고통의 삶으로 인도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싸움이란 먼저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 들어와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육신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를 내부적으로 도전해 옵니다.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는 13절 말씀처럼 ‘몸의 행실’을 죽이는 싸움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이러한 도전을 바울은 현재의 고난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믿음이 실재화 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예수 그리스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새사람으로 이미 하느님 나라에 속한 자(상속자)로 구원의 완성을 바라보며 사는 존재들입니다.
      
      로마서 6:3-4,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믿음으로 동참한 것이 실재화 되는 것입니다. 즉 죄 가운데 살아가려는 옛사람, 곧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옛사람이 실제로 죽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신자는 악한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의 정신과 그 가치관에 순종하지 않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기 때문에 받는 고난입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상을 따르지 말고 새 생명을 지닌 하느님의 자녀로서 마음을 새롭게 하고 자신의 하느님께 대한 순종의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것을 따르도록 도와주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바로 이런 삶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이고, 이렇게 살 때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이 됩니다. 이것을 고난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윤리의 출발점입니다. 몸의 행실을 죽이는 성령의 인도함은 신자 개인의 윤리나 신자가 속한 공동체나 사회에서 신자가 지켜야 하는 윤리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 줍니다.

      ‘소 대신 예배를! 즉, 물질보다는 하느님을!’이라는 성경적인 구호를 따르려면 희생과 손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고난입니다.
      새 생명이 들어와 있기에 그 생명을 나누기 위한 복음 전도와 예배의 삶에는 고난이 따릅니다.

      안동에 100년이 넘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유교적인 전통이 강한 곳이 안동인데 100여 년 전에 예수를 믿었다는 것은 곧 가문에서 버림을 받는 고난을 각오하는 것이었습니다.
      
      22-3년 전 저희 어머님이 예수님을 처음 믿기 시작하셨을 때, 지금은 목사님이신 아버님이 어머님을 무척 박해했습니다. 성경책을 집어던지시며 ‘너 교회에 가서 목사랑 살아라.’ 호통 치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어머니는 눈물로 기도하셨고 마침내 집안의 남자들은 다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고난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에서는 드물어 졌지만,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선교지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 그 자체가 고난입니다.
      
      한번 눈 감으면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돈을 벌 수 있는데도 성령님이 허락하지 않아 평생 가난하게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난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대학시절 당시 5공화국 군사정권이 하느님이 허락하지 않는 불의한 권력이었기에 정의로운 정권이 세워지는 민주적인 나라를 만드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강한 소명 속에서 학생운동을 하고 6개월 감옥에도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고난입니다.

      지금도 하느님의 말씀, 그 뜻대로 살려는 성령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러하다고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윤리는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은혜를 받은 자로 사는 것, 이것이 곧 그리스도인의 윤리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순종으로 표현됩니다. 순종은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윤리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순종이 없는, 윤리가 없는 믿음은 미신입니다.

      이것을 ‘제자도’라고 합니다. 제자도란 말이 한국에서 잘 쓰이지 않는데, 이것이 한국교회의 믿음이 미신화 되었다는 가장 큰 증상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 하고 그의 죽음에 하나 되게 하는 제자도의 삶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된 형상으로 날로 변화되는 과정입니다.
      고후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의 새 생명이 우리의 썩어져 가는 몸에 나타나져 가는 과정입니다.
      고후 4: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진정한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에 동참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의 됨됨에 동참하게 합니다. 제자도의 삶은 우리가 예수님의 하느님의 아들 된 그 영광의 형상을 점점 닮아 가는 과정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성화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고난은 소망이 있는 싸움입니다. ‘장차 나타날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영광 말입니다. 이 고난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더 이상 악과 고난과 죄의 시험에 허덕이지 아니하는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완전히 변화시킬 때 종결될 것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영화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생각하건대’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구체적으로 확신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확신 가운데 현재의 고난을 통과하는 사람들에게는 종말의 영광의 빛이 비추어져 자유와 당당함과 기쁨으로 ‘현재의 고난’을 살아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의 삼중시제라는 성경적인 관점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구원의 과거시제 - 칭의 =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23)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사탄을 주라 고백하지 않으며 이 세상의 도 곧 이 세상의 길과 가치를 버리고 예수님이 주이신 것과 그분의 뜻대로 살 것을 고백하고 순종함으로 하느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 이것이 곧 회개요 구원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과거입니다.

      2. 구원의 현재시제 - 성화 = 현재의 고난(18) = 제자도
      여기서 ‘현재’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시간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말세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의 첫 열매를 받고 아직 (아직)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는 자로서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 어디에 있든지 내일 종말이 오지 않아도 오늘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산다는 ‘긴장’ 속에서 사는 것이 올바른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믿음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3. 구원의 미래시제 - 영화 = 하느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21) = 양자될 것 우리 몸의 속량(23) = 소망(24)
      종말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이 성화의 과정이 종결되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광된 형상으로 완전히 변화될 것입니다. 이것을 영화라고 합니다. 이것이 구원의 미래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망입니다.

      19-20,
      하느님은 창조하시고 피조물을 사람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아담이 피조물을 통치하는 것을 통해서 하느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런데 아담의 타락으로 피조물도 타락했습니다.

      이제 피조물은 실패한 아담과는 달리 양자의 영을 받은 온전한 하느님의 아들들이 나타나 피조 세계가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창조 - 타락(1) :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
                        ~ 에덴에서 쫓겨나고 피조물이 타락
             회복    : 아브라함을 부르심 ~ 모세 ; 출애굽
                                           / 여호수아 ; 가나안 정복
                                           / 다윗과 솔로몬 ; 성전이 건축
             타락(2) : 이스라엘의 불순종
                        ~ 가나안에서 쫓겨나 바벨론 포로로 잡혀감
             성취    : 예수님의 오심 ~ 성령의 오심 ; 양자의 영
                       ~ 하느님의 아들들이 나타남(1)
                       ~ 새창조의 시작 ; 아브라함 약속의 성취
             완성    : 하느님의 아들들이 나타남(2)
                       ~ 새창조의 완성 ; 아브라함 약속의 완성

      피조물조차도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나타날 영광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대’= 목을 빠고 간절하게 기다린다. 학수고대.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20절)했다는 말은 피조물이‘썩어짐의 종노릇’(21절)과 같은 말입니다.
      여기서 ‘허무’란 피조물이 본래 하느님의 창조 목적에 도달할 수 없음으로 인해 생기는 좌절을 말합니다.

      21절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가 주어지기 전에는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고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한 것으로부터 혹은 썩어짐의 종노릇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은 하느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가 주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은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피조물을 허무한 데 굴복하게 하셨지만, 결국 하느님의 자녀들이 회복되는 것과 동일하게 그 피조물도 회복시킬 것을 계획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2,  22절은 20-21절의 반복입니다.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한다.’는 것은 20절의 ‘허무’에 굴복하게 되었다는 것과 21절의 ‘썩어짐의 종노릇’과 동일한 상황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23,
      우리는 이미 양자의 영 성령을 받아 양자(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지만(15) 양자됨의 온전한 상태 곧 죄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우리의 몸이 온전히 부활의 몸으로 구속되는 순간을 기다리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아직 허무와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피조물처럼 성도들은 온전히 회복되지 못하여 탄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지 때문입니다.

      여기서 ‘탄식’이라는 단어는 절망적인 한숨을 말하는 것이 나이라, 해산의 고통과 비명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산모가 새 생명이 나오기까지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우리의 썩어질 몸이 부활하여 영광의 몸을 입는 그날을 기다리며 애타하는 것을 말합니다.

      24-25,
      소망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면 더 이상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소망을 가졌다면 인내로 기다려야 합니다.

      이 소망이 무엇입니까?
      앞에서 말한 그대로 죄로 인해 썩어져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님이 오실 때 새 몸을 입고 부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이기에 겪게 되는 고난과 탄식이 있고, 받게 되는 영광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고난을 많이 당하게 됩니다. 이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고난을 당할 때마다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를 하면서 이기는 방법입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영광을 바라보면 현재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하는 어려움이라면 가벼운 것이요. 비교가 안 되는 것임을 발견하면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소망이 있습니까?
      주님 다시 오실 때 우리가 누리게 될 영광을 바라보는 소망이 있습니까?
      현재 예수님을 믿는 신자로서 당하는 고난과 탄식이 있습니까?
      이 소망으로 인해 복음을 따름으로 당하는 고난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기뻐합니까?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모든 피조물이 새로워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친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영광의 그날을 바라보며 현재의 고난과 탄식을 이기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 4장에서 한 말을 마음에 새기며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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