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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7월 27일] 로마서 8:14-17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하시는 일
  • 청지기
    조회 수: 3353, 2008-07-29 17:11:03(2008-07-29)
  •   오늘도 로마서 8장을 통해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와 함께 동행 하시는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계신 진리의 성령님이 더 충만하게 우리를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14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4절의 ‘무릇’이라는 말은 영어로  because,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13절에 연결된 말씀입니다. 13절은 12절에 연결되니까 12절부터 14절까지 연결하여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성령에 빚을 진 사람이기 때문에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수 없습니다. 만약에 육신대로 살면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삽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여 주시기 때문에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이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14절에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16절에도 비슷한 표현으로 ‘하느님의 자녀’라는 말이 나옵니다. 16절의 ‘자녀(테크논)’라는 말은 ‘하느님 안에서 거듭 태어난 사람’이라는 말이고 14절의 ‘아들(휘오스)'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아이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모두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101반-등록교인이 되려면’다음 과정으로 210반을 진행합니다. 201-영적으로 성숙하려면, 201반의 과정 중에 ‘성령세미나’를 갖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 자리에 몇 분 빼놓고는 모두 다 201반과 성령세미나를 하셨기에, 여러분 모두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성숙한 하느님의 아들 딸임을 믿습니다.

      전에 있던 교회에서 일대일양육을 했던 새 신자 남자 분의 말이 기억납니다.
    ‘전에는 거래처로부터 접대를 받아도 당연하게 여겼는데, 이제는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아요.’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것이죠. 바로 이 마음에 순종한다면 하느님을 닮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하느님의 아들로 장성해 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님은 개인의 인격 안에 거룩함을 회복하고 성숙하도록 인도하여 주십니다.

      하지만 성령의 인도로 이루어지는 개인의 성화와 영적 성숙은 하느님의 나라라는 하느님의 큰 그림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이 내주하시면, 먼저 거시적으로 내 인생을 향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질문은 하느님의 나라를 향한 하느님의 계획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질문이 됩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나를 이 땅에 보내실 때 가지셨던 계획은 무엇일까? 지금 나의 일을 통해서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은 무엇일까?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 등 등

      하느님 안에서 각자의 인생을 바라보면서 큰 그림을 그리게 하십니다..

      80세에 주님을 만난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출애굽이라는 거대한 하느님의 역사를 이루어 갈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성령 충만했던 고 2 겨울 방학 때 집중적으로 이 질문을 가지고 기도하며 제 인생을 향한 주님의 목표를 갖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30세에 성직의 길을 걷기 시작하며 지금 하느님의 나라의 큰 그림 안에서 성공회 사제로서 섬기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우리 각자의 인생 안에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이 성령님이 인생 가운데 행하시는 거시적인 인도하심입니다.

      그래서 요엘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을 했습니다.
      요엘 3:1, 나는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아들과 딸은 예언을 하리라.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리라.

      그 다음 성령님은 거시적인 인생을 완성해 가도록 미시적으로 매일 매일 인도해 주십니다.

      그런데 매일 매일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전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주신 의 지침서입니다. 네비게이션과 같은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을 알게 해 주십니다.
      시편 119:105, 당신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나의 길에 빛이옵니다.

      성령님은 그것을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우리는 순간순간 성령님을 인정하고 그분께 물어봐야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성령님이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는 그대로 내가 핸들을 돌리고 전진하는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매일 매일 성령의 인도를 받아 주님의 뜻대로 살아감으로 마침내 하느님의 목적을 이루며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을 거룩한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삶을 살도록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이신 것이고 성령님이 내 안에 살아계시며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죄 많고 연약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주님의 뜻 가운데 인도하여 주시는 성령님을 찬양합니다.

      이렇게 사는 삶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15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구원받지 못한 인생들,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인생들은 세속과 정욕과 마귀의 종이 되어 마음 깊이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살아갑니다.

      성령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이사도 맘대로 못해 길일을 잡고,
      결혼도 궁합을 보고 사주팔자를 보고,
      뭐라도 하려면 고사를 지내고 굿 하고,
      조상신에게 잘 보이려고 묘자리 보고 제사를 지내고 등.
      
      과학 문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이렇게 우상의 종이 되어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강대국 문명국가 일본에는 우상만 해도 8만개나 된다고 합니다. 제주도에만 8천개의 신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주도는 이사도 잡신들이 천상에 올라가 회의를 하는 신구간에만 한다는 것 아시죠? 괜히 맘대로 이사했다가 신들에게 화를 입을까봐 말이죠.

      이 모든 두려움은 근본적으로 죽음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니,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지옥의 영원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영혼 안에는 성령님이 아닌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성령을 모신 사람들은 다릅니다. 성령은 양자의 영이시기에 전능하신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살게 해셨습니다.
      15절,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아이들은 무섭거나 힘이 들면 ‘아빠~ 엄마~’하고 소리칩니다. 그러면 든든한 아빠가 내 이름을 부르며 손으로 나를 붙들어 주십니다. 아이들은 신이 나고 기뻐도 엄마 아빠를 부릅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를 향해, ‘아빠’를 부르며 그 품으로 달려갑니다. 아빠는 아이를 번쩍 들어 가슴에 꼭 안아 주십니다.

      이 든든함, 이 친밀함, 이 자유함!
      이것이 양자의 영을 받은 우리가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성령님은 내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거해 주십니다.

      성무일과 시간이 아닌 하루 중, 이 일 저 일 분주하게 지내다가 괜히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 마음을 따라 성당 안으로 들어와 제단 뒤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조용히 주님 앞에 머무르며 ‘아버지’라고 부르면 하느님 아버지의 따뜻함, 그 사랑이 마음에 밀려옵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것뿐이에요.
        사랑한다.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내 딸아! 네게 축복 더 하노라.’

      16절이 바로 이 말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만이 지닌 특권입니다.
      요한 1:14,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러나 그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이 은혜를 모르며 살아가는 인생들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이 특권을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성령님은 우리로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시며 평안과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로 하느님 앞에 서게 해 주십니다.
      17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주후 1세기 로마에서 입양된 아들은 그를 입양한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보존하지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선택한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상속된 아들은 추호도 친아들보다 열등하게 취급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도 하느님으로부터 예수님과 동일한 유업을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상속자로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을 유업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하심으로 시작되는 새 하늘과 새 땅, 하느님 나라에서 우리가 받게 될 그 모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벧전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그리고 여러분을 위하여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도 않는 분깃을 하늘에 마련해 두셨습니다.)

      요한묵시록 5:10, 당신은 그들로 하여금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한 왕국을 이루게 하셨고 사제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들은 땅 위에서 왕노릇 할 것입니다."
      
      한 가지,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유업은 하느님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 자신이 유업, 기업이 되신다는 개념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생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레위인들은 하느님 자신이 그들의 기업이 되시기 때문에 아무런 기업, 땅을 분배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향해 하느님만이 그들의 유업, 기업, 분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73:25-26, 하늘에 가도 나에게는 당신밖에 없사옵고 땅에서도 당신만 계셔주시면 그에서 무엇을 더 바라리이까? 이 몸과 이 마음이 사그라져도 내 마음의 반석, 나의 몫은 언제나 하느님,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닌 하느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주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가 너무나 크기에,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아닌 오직 한분 주님만을 사랑하고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인생이 하느님의 자녀요 하느님의 상속자의 삶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편 17:15, 나는 떳떳하게 당신 얼굴을 뵈오리이다. 이 밤이 새어 당신을 뵙는 일, 이 몸은 그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시편 27: 4 야훼께 청하는 단 하나 나의 소원은 한평생 야훼의 성전에 머무는 그것뿐, 아침마다 그 성전에서 눈을 뜨고 야훼를 뵙는 그것만이 나의 낙이라.

      한 지체의 간증 글을 읽어 드리며 마치겠습니다.
      “ 답답했다. 나를 깨어나게 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때로는 허무하기도 했고...다윗은 그 때 죄를 범했다고...
      작년에 나는 힘들었다. 직장에서 어려운 보직을 맡아 그것을 감당하기가 힘이 들었다. 체력적으로도 힘들었고 무엇보다 처리해 가야 하는 일들과 매일 씨름하는 것이 나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눈만 뜨면 한숨부터 나오고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올 해는 그와는 정반대이다. 하느님의 계획하심이 있었나보다. 작년보다 훨씬 한가한 보직을 맡게 된 것이다.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지만 작년에 비하면 거의 없는 셈이다.
      작년에는 이 상황만 벗어났으면 했는데 현재에 만족하며 사느냐 하면 자신 있게 답을 못하겠다.
      바쁘지 않은, 그리 큰 굴곡이 없는 내 삶에 점점 싫증을 느껴가는 것 같다. 이런 시간을 보내면서 드는 생각은 바쁘게 산다고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해서 하느님 앞에서 잘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또 세상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지 못한다고 해서 하느님 앞에서 잘 살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속아왔던 것 같다.
      지난주에는 이런 답답한 모습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 하느님께 나아갔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도무지 깨달을 수조차도 없는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시기를...’
      하느님께서는 이런 나를 받아주셨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이 아닌 하느님 한 분 만을 구하는 것이 가장 먼저 임을 알게 하셨다. 사람도, 섬김도, 때로는 사명도 그것보다 앞설 수 없음을 알게 하셨다.
      우리 삶은 끊임없는 문제의 연속인 것 같다. 진로, 결혼, 재정, 사람들과의 관계 등등. 이런 인생의 문제들 앞에서도 이 진리가 적용되는 것 같다.
      하느님을 구하는 것, 더욱 추구하는 것, 더 뜨겁게 사랑하는 것 이것이 우리를 이 많은, 끊임없는 문제들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것 같다.
      우리 공동체에 하느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또 하느님께서 약속해주신 대로, 우리 인생의 문제가 하느님의 때에 하느님의 방법으로 해결되었다는 고백을 함께 나누고 함께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아들, 딸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오직 성령의 인도함 가운데 하느님의 얼굴을 구하며 하느님의 길을 걸어가며 하느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노래 - 아버지 주 나의 기업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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