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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3월 25일] 요한 12:1--8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얼음냉수!
  • 청지기
    조회 수: 3222, 2007-03-30 12:04:00(2007-03-30)
  •   옛날 어느 마을에 효자와 불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마을에서는 효자에 대한 칭송이 대단했습니다. 반면 불효자에 대한 비난 또한 그 만큼 심했습니다.
      어느 날 꾸지람만 듣던 불효자가 ‘나도 그 효자처럼 행동해서 칭찬을 받으리라.’하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효자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효자가 하는 행동은 뜻밖에도 아주 쉬워 보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버지의 옷을 입고 있다가 옷이 따뜻해지면 아버지에게 내어 드리고, 밥상이 들어오면 음식이 상했나 먼저 먹어 보고, 밤에는 아버지의 잠자리에 누워 잠자리를 따뜻하게 해 드리는 일 등이었습니다.
      “뭐야, 아주 쉬운 일이잖아.”
      자신을 갖고 집으로 돌아온 불효자는 효자에게서 본 바를 그대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그런데 칭찬은 웬걸, 전보다 더한 호통을 들었습니다.
      “이 무례한 놈아 어디 감히 어른의 옷을 입어.”
      “점점 못된 짓만 하는 구나. 어른보다 먼저 수저를 들다니.”
      “이제는 어른보다 먼저 따슨 잠자리마저 차지하려는구나.”
      “당장 나가거라. 이놈아!”
      불효자는 그 행동에 따른 효심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효심이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녀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언 25장 13절에 보면,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효심이 깊은 효자가 부모의 마음을 만족시켜 주듯이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신자는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릴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오는 마리아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흡족케 해주는 사람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곧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의 종착지입니다.

      죄로 인해 지옥의 형벌을 면치 못할 잃어버린 영혼들을 다시 아버지께 화해시키고자 인류의 죄를 대신하는 희생제물로 자기 몸을 바치고자 십자가로 오를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이제 그 날이 다가 왔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바로 구원을 기념하는 과월절 명절에 예수님은 자기 몸을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로 드림으로 모든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완전하게 해방시키는 구원을 이룰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이 가야만 하는 사명의 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인간이신지라 죽음 앞에서 그 마음이 두렵고 무겁습니다.
      이에 잠시 발길을 돌려 베다니아에 있는 친구의 집으로 가십니다. 죽은 지 나흘 만에 다시 살아난 친구 나자로의 집입니다.
      나자로의 집은 예수님께서 언제든지 들리면 함께 먹고 마시며 우정을 나누고 쉴 수 있는 사랑의 교제가 있는 친구의 집이었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예수님과 나누는 사랑의 친교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나자로의 집에서 주님이 편하게 먹고 마시며 우정과 사랑을 나누었듯이 우리도 예수님과 만나 사랑을 나누는 인격적인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요한묵시록 3:20, “들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

      우리 삶을 찾아와 심령의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을 외면하지 마시고 환영하고 영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 예수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 나자로는 환영 만찬을 베풉니다. 마르타는 시중을 드느라고 바쁩니다. 그 때 보이지 않던 마리아가 한참 흥에 겨운 식사자리에 나타납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당시 처녀들이 결혼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순나르드 향유 한 근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그 발을 닦아드립니다.  

      이것을 본 제자 중 한 사람 유다는 “이 향유를 팔았더라면 삼백 데나리온은 받았을 것이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었을 터인데 이게 무슨 짓인가?" 하고 투덜거렸습니다.
      
      삼백 데나리온 - 일 데나리온이 당시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니 그것의 값어치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아까 왔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유다의 질책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내 장례일을 위하여 하는 일이니 이 여자 일에 참견하지 마라.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지만 나는 언제나 함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을 보면, 정작 예수님과 3년 반을 지냈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지를 알지 못했고 마리아는 예수님이 가시는 그 길을 알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제자들은 ‘야 이제 3년 고생 끝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때까지도 여전히 제자들은 예수님을 다윗왕 같은 정치적인 메시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왕위에 등극하시면 잃어버린 국가 주권을 회복하고 자기 동족을 해방시켜줄 것이고 자기들도 한 자리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루가 22장을 보면, 이런 생각을 지닌 제자들은 십자가의 죽음이 있지 하루 전에 벌어진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조차도 ‘누가 제일 높으냐?’고 옥신각신했다고 합니다.

      이미 3번의 십자가 수난예고를 들었음에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자기 생명을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로 바쳐 영혼을 구원하는 것임을 가르치셨음에도, 제자들의 마음의 중심에 자신들의 욕심, 야망이 꿈틀거리고 살아있었기에 깨달아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세상 권력이나 총칼이 아닌 십자가의 사랑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겸손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음에도 알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들은 주님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고 있나요?
      내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깨닫고 있나요?
      나를 향한 주님의 마음, 우리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마음, 이 땅을 향한 주님의 마음이 어떨지 헤아리고 있나요?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이 이제 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지를 알았습니다. 그 길을 가야만 하는 예수님이 왜 자기 집에 왔는지, 지금 예수님의 마음이 어떤지를 헤아렸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있는 예수님께 자기가 가진 최고의 것을 드리며 위로해 드리고 싶고 가시는 그 길을 축복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있는 가장 값진 순 나드르 향유를 주님께 부어드리며 자기의 마음을 전해드렸습니다.

      3년 반 동안이나 예수님과 함께 지낸 제자들은 알지 못했던 주님의 마음을 마리아는 어떻게 헤아리고 알 수 있었을까?  

      혹 오빠 나자로를 다시 살리실 때 깨달아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한 11:25-26,  “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그런데 루가복음 10장을 보면, 어떻게 마리아가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오히려 주님께 위로가 되어주는 친구가 될 수 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전도여행 중에 나자로의 집을 들리셨을 때에 그때도 마르타는 시중을 들었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 말씀을 귀담아들었습니다.  언니 마르타는 마리아가 일도 안한다고 예수님께 불평했지만,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루가 10:42,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실상 필요한 것?’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깊은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자기 욕심이나 이기적인 동기로 주님 발치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 발치에 앉아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였기에 마리아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십자가에 있다는 것을 알았고 지금 자기 집에 찾아온 주님의 마음이 어떤지를 헤아릴 수 있었고 그 아픈 주님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력으로 우리는 사순 5주일입니다. 기도와 금식, 구제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훈련하는 사순절을 벌써 31일 보냈습니다.
      그 동안 하루 7번 화살기도를 드리면서 주님과 눈을 맞추어 왔고, 매일 묵상과 특별새벽기도회를 드리며 우리도 마리아처럼 ‘참 좋은 몫’을 택해 왔습니다.

      이렇게 달려온 우리에게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마리아 같은 내 마음을 헤아려 알아주는 친구가 되어주지 않을래?’

      매일 매일 주님의 발치에 앉아 주님과 눈 맞추고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예수님의 마음이 어떤지를 헤아리고 그 분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친구를 찾고 계십니다.

      여전히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으로 인해 아파하는 주님의 마음!
      
      그분의 피 값으로 세운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통해 이 땅을 치유되고 회복되기를 원하는 주님의 마음!

      이런 주님의 마음을 알고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무더운 여름철 얼음냉수 같은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통해 주님이 위로를 얻으시고 기뻐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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