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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07년 1월 18일] 애덕부제님 설교문
  • 청지기
    조회 수: 3072, 2007-03-03 00:53:29(2007-03-03)
  • 2007-01-28 연중 4주일(다해)

    예레 1:4-10
    4 내가 받은 야훼의 말씀은 이러하였다.
    5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네가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너를 만방에 내 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
    6 "아! 야훼 나의 주님, 보십시오. 저는 아이라서 말을 잘 못합니다." 하고 내가 아뢰었더니,
    7 야훼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아이라는 소리를 하지 마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야 하고, 무슨 말을 시키든지 하여야 한다.
    8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늘 옆에 있어 위험할 때면 건져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9 그러시고 야훼께서는 손을 내밀어 나의 입에 대시며 이르셨다 "나는 이렇게 나의 말을 너의 입에 담아준다.
    10 보아라! 나는 오늘 세계 만방을 너의 손에 맡긴다. 뽑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고 헐어버리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고 심기도 하여라."

    시편 71:1-6
    1 주여, 당신께 피신|합니|다. ∥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게|하소|서.
    2 당신의 정의로 나를 보호하시고 구해 |주소|서. ∥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구해|주소|서.
    3 이 몸 의지할 바위 되시고: 내 목숨 구원하는 성채 |되소|서. ∥ 나의 바위, 나의 성채는 당|신이|십니|다.
    4 나의 하느님, 악인의 손에서 나를 구해 |주시|고, ∥ 흉악하고 포악한 자의 손에서 나를 |구하|소-|서.
    5 주여, 바라느니 당신|뿐이|요 ∥ 어려서부터 믿느니, 주님 |당신|입니|다.
    6 모태에서부터 나는 당신께 의지하였고: 어머니 뱃 속에 있을 때부터, 당신은 나의 힘이|었으|니, ∥ 나는 언제나 당신을 |찬양|합니|다.
    # 영광이 |성부|와 ∥ 성|자와|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 그리고 영|원히,|아-|멘

    1고린 13:1-13
    1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2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
    8 사랑은 가실 줄을 모릅니다. 말씀을 받아 전하는 특권도 사라지고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도 끊어지고 지식도 사라질 것입니다.
    9 우리가 아는 것도 불완전하고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도 불완전하지만
    10 완전한 것이 오면 불완전한 것은 사라집니다.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어린이의 생각을 하고 어린이의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의 것들을 버렸습니다.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이지만 그 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루가 4:21-30
    21 예수께서는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하고 말씀하셨다.
    22 사람들은 모두 예수를 칭찬하였고 그가 하시는 은총의 말씀에 탄복하며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수군거렸다.
    23 예수께서는 "너희는 필경 '의사여,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어 나더러 가파르나움에서 했다는 일을 네 고장인 여기에서도 해보라고 하고 싶을 것이다." 하시고는
    24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잘 들어라. 엘리야 시대에 삼 년 반 동안이나 하늘이 닫혀 비가 내리지 않고 온 나라에 심한 기근이 들었을 때 이스라엘에는 과부가 많았지만
    26 하느님께서는 엘리야를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보내시지 않고 다만 시돈 지방 사렙다 마을에 사는 어떤 과부에게만 보내주셨다.
    27 또 예언자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많은 나병환자가 살고 있었지만 그들은 단 한 사람도 고쳐주시지 않고 시리아 사람인 나아만만을 깨끗하게 고쳐주셨다."
    28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는 모두 화가 나서
    29 들고일어나 예수를 동네 밖으로 끌어냈다. 그 동네는 산 위에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를 산 벼랑까지 끌고 가서 밀어 떨어뜨리려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자기의 갈 길을 가셨다.

    <본기도> -성공회기도서
    의로우신 하느님, 마음이 깨끗하고 겸손한 이들을 축복하시고 세상의 지혜를 부끄럽게 하시나이다. 비옵나니, 우리에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더하시어 주님의 나라를 세상에 전하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하느님이 가라 하시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몇몇 친숙한 얼굴들이 안 보이니까 무척 어색하네요. 자리 중간중간에 있어야 할 분들이 보이지 않으니까 이상하네요. 이스라엘과 캄보디아로 단기선교를 떠난 분들의 자리에 유독 눈에 띄네요. 있을 땐 몰랐는데 막상 그 자리가 비어 있으니까 왠지 빈자리가 더 허전하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이 자리엔 함께 하지 않아도 먼 타국에서 주님의 사역을 하면서 언제나 마음은 우리와 한 마음으로 예배하고 기도하고 있을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과 캄보디아에서 주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면서 더 큰 믿음과 비전을 가지고 돌아와서 자신의 빈 자리 뿐만 아니라 이 성전을 가득 채울 줄 믿습니다.

      이번 한 주간은 다른 때와는 달리 더 바쁘게 지낸 한 주였습니다. 한 주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후딱 지나가 버린 것 같네요. 월요일에는 이스라엘 단기선교팀을 공항까지 배웅했었고, 화요일과 수요일은 이루리 형제의 장례가 있었습니다. 장례를 치루고 와서 수요일 저녁에 수요예배 설교를 했구요. 목요일에는 그 동안 밀린 업무와 짐 정리를 했었고, 금요일에는 제가 파송받은 대안리 교회에 가서 인수인계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어제는 캄보디아 단기선교팀을 공항에서 배웅하고 왔습니다. 그 동안 좀 한가하게 보냈다 싶었는데 이번 주에 한꺼번에 일이 생겨 버리네요. 그 덕에 쓸데없는 생각없이 한 주를 보냈던 거 같습니다.
    .
      이 자리가 제게는 여러분들을 이 교회에서 만나는 마지막 자리가 됩니다. 2005년 2월에 처음 이곳으로 발령을 받아 와서 거의 만 2년이 되어 가네요. 처음에는 무척이나 낯설고 어색했는데 이제는 가장 편하고 익숙한 곳이 되어 있더군요. 이번 한 주간 바쁜 와중에서 틈틈이 지난 2년 동안의 생활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연수리에서 있었던 전교인 수련회도 떠오르고, 지난 여름에 있었던 거제도 전도여행도 떠오릅니다. 루디아 어머니들과 함께 동해에 갔던 것도 기억에 남구요. 그 때 열심히 사진 찍고 필름을 날려버리는 바람에 찍었던 사진을 홀랑 날려버린 것도 기억에 남네요. 어머님들 열심히 포즈 취해 주셨는데...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학생들과의 기억이네요. 제가 와서는 학생들과 왜 그리 싸웠는지.. 야단도 많이 치고 싸우기도 하면서도 그래도 즐겁게 보냈던 거 같습니다. 처음 오자 마자 학생회 놀러간다고 함께 에버랜드 갔었는데 그때 얼마나 어색하던지...

      이 모든 기억들을 추억으로 남긴 채 새로운 임지로 가게 됩니다. 이곳과는 사뭇 다른 작고 조용한 시골 교회로 가게 됩니다. 또 다시 낯선 곳으로 향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새로 만나게 되는 교회에 대한 기대가 제 마음 속에서 뒤섞여 있습니다.

      이번에 제가 가게 되는 대안리 교회는 안중교회의 지교회로서 한적한 시골 마을 내에 있는 조그만 교회입니다. 마을도 작아서 한 60세대에 200명도 채 안되는 작은 마을입니다. 대안리 교회는 예전에는 구진개, 구진교회로 불리다가 작년에 대안리란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교인은 5-6 가정에 주일 평균 8-10명 정도가 출석하는 아주 작은 교회입니다. 비록 작지만 그래도 7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입니다. 저는 이 교회를 맡아서 발령을 받아 갑니다.

      처음 이 교회로 발령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정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막연하고 두려운 심정이 제 마음에 가득하더군요. 더구나 제게 드는 생각은 이제 부제 단지 1년 밖에 안 되는 목회 경험도 미천하고, 또한 교구 내에서 가장 어린 제가 단독으로 목회를 하게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심정이 저를 둘러싸더군요.

      아까 제가 한 주간 바뻐서 쓸데없는 생각 안할 수 있었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제게 주어진 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벽을 깨고 넘어서지 않는 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로, 예수님이 사셨던 그 삶으로 나아가는데 이 벽이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처음 신학을 선택하고 성직을 하겠다고 결심하던,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발령을 기다리면서 그리고 처음 이곳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가졌던 제 첫 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제 삶을 인도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제 삶을 인도하시고 제 앞길을 예비하신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왜 제 마음 가운데 그러한 두려움이 생기는가에 대해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제 안에 있던 것은 편안한 곳, 익숙한 곳에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제 교인들도 다 알고, 업무도 다 파악했겠다, 대충 눈치보면서 편안히 있지 왜 힘든 곳으로 고생하러 가는가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주님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에 머무십시오’하는 마음이 제게 새로운 임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걱정을 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제게 있는 이런 벽이, 막힘이 있지는 않으십니까? 주님에게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지는 않으십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복음 말씀 가운데에도 이런 장애물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야 지방을 두루 다니시며 사역을 하시다가 고향인 나자렛에 이르러서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십니다. 지난 주일 우리가 봤던 그 말씀대로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에게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십니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가 4:18-19)

      그리고 예수님은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고 선포하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어려서부터 보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모가 누군지, 어떻게 자랐는지 잘 알아서 진정 예수님이 성서에서 예언한 메시야임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에 대한 선입견은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몰아내고 산 벼랑에서 밀어 떨어뜨리려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벽이며 장애물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하느님께로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물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또는 여러분들 안에 이러한 장애물을 가지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 장애물 때문에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머뭇거리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 벽을 넘어서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럼 그 벽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요? 오늘 예수님의 모습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그 벽을 넘으셨습니까? 당신 자신이 성서에서 예언한 메시야임을 밝혔는데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당신을 죽이려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성서에는 30절에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자기의 갈 길을 가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을 가로막는 그 벽 앞에서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제가 그 벽 앞에 마주섰을 때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근심했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그 벽 앞에서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근심하고 절망하고 계십니까? 주저앉아 버리시진 않으셨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단지 ‘자기의 갈 길을 가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향해 어떤 원망이나 불평이나 저주를 퍼붓거나 그 앞에서 절망하고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한가운데로 당당히 당신 자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당당히 자신의 길을 가실 수 있으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 안에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신뢰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당신 자신의 때가 이르지 않았고 아버지되신 하느님께서 지켜주실 것을 확실하는 그 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마음 가운데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어떤 길입니까?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요, 고난의 길이요,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죽음이라는 벽 앞에서 두려워하고 절망하고 근심했습니다. 최후의 만찬 후에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시며 예수님이 죽음 앞에서 번민하고 두려워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죽음이라는 벽 앞에서 오직 하느님 아버지를 신뢰했고 그 분 뜻에 따르기로 순종했습니다. 그럼으로 그분은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예수님을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서 죽음이라는 벽을 넘어서게 하시고, 하느님 당신 보좌 우편에 앉히심으로써 영광스런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은 더 이상 고난의 길이 아니라 영광의 길이며, 죽음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먼저 그 길을 걸어가셨고 그 길의 끝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그 길로 우리들을 초대하시고 그 길에 서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가셨던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만났던 여러 벽 가운데 하나 앞에 서 있습니다. 그 벽을 넘어서느냐, 그 앞에서 절망하고 포기하느냐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그 벽이 높고 그 장애물이 험난해서 포기하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알기에, 그리고 그 끝에 어떠한 영광이 있는지 알기에 여기서 주저할 수 없습니다. 그 벽을 넘어서야 할 줄 믿습니다. 그 장애물을 헤치고 건너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그 벽을 넘어서게 하는 힘은 오직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하느님의 우리를 향한 그 크신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구약성서의 말씀은 예레미야 1:4-10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이 예언자 예레미야를 처음 부르실 때의 장면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큰 위로와 희망을 얻었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제 안의 두려움과 근심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부르시며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네가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너를 만방에 내 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두려워하며 말합니다. "아! 야훼 나의 주님, 보십시오. 저는 아이라서 말을 잘 못합니다." 예레미야는 겁이 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벽 앞에서 절망합니다. 그래서 핑계를 대며 포기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아이라는 소리를 하지 마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야 하고, 무슨 말을 시키든지 하여야 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늘 옆에 있어 위험할 때면 건져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예레 1:7-8)

      또한 친히 손을 내밀어 예레미야의 입술에 대시며 "나는 이렇게 나의 말을 너의 입에 담아준다. 보아라! 나는 오늘 세계 만방을 너의 손에 맡긴다. 뽑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고 헐어버리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고 심기도 하여라."(예레 1:9-10)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예레미야의 모습이 제 모습처럼 여겨졌습니다. ‘주님 두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낯설고 무섭습니다.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제게 말씀해 주십니다. ‘내가 너를 어디로 보내든 너는 가야 하고 무슨 말을 시키든지 하여야 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늘 옆에 있어 도와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이 말씀이 또한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 또한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청하여 우리에게 협조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굳게 신뢰하시길 소망합니다. 우리를 도와주시고 친히 구하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 우리를 도와 줄 협조자 성령을 보내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 그리고 친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느님이 우리들에게 닥친 어려움을 이겨내게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약속 뿐만 아니라 그 벽 너머에 있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 벽에 가려져 있어 보이질 않지만 그 벽을 넘어서면 하느님 나라에 더 성큼 다가감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의 바울로 사도의 말씀처럼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이지만 그 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1고린 13:12)

      우리는 그 희망을 가지고 여러분들 앞에 있는 벽을 넘어서야 할 것입니다. 올해 교회의 표어처럼 우리가 그 벽을 넘어섰을 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그 새 일을 기대하고 희망하는 마음으로 여러분들 앞에 있는 문제들을 넘어서게 되시길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 벽을 넘을 수 있게 해 주는 힘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는 그 벽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결코 우리를 벽 앞에서 절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그 벽을 넘게 해 주십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은 사랑에 대한 장입니다. 바울로 사도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믿음과 희망은 하느님 당신의 그 크신 사랑에 의해 생겨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았다면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소망도 아무 부질 없는 것이 됩니다.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이 여러분 마음에 충만하게 되시길 소망합니다.

      하느님은 아무런 조건없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지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느님 당신의 자녀로, 하느님 나라의 일꾼으로 부르셔서 이 세상 가운데 주님의 나라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주님이 주신 우리의 특권이요,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오늘의 본기도를 기억하십니까?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의향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의로우신 하느님, 마음이 깨끗하고 겸손한 이들을 축복하시고 세상의 지혜를 부끄럽게 하시나이다. 비옵나니, 우리에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더하시어 주님의 나라를 세상에 전하게 하소서.

      이제 제 마음 가운데 더 이상의 두려움과 걱정이 없습니다. 오히려 제 마음 가운데에는 제게 베푸신 주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와 저를 통해 이루실 하느님의 새 일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는 오늘로 이 교회의 사역을 마치고 새로이 대안리에서의 사역을 하게 됩니다. 저는 주님의 사랑을 가득 안고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지만 하느님께서는 제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제자교회에 베풀시길 원하십니다. 이 교회를 통해 하느님의 새 일을 행하시길 원하십니다. 단기선교를 통해, 선교비전센터를 통해, 제자 훈련을 통해 하느님은 더 큰 일을 이루시길 원하십니다.

      주저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 앞에 닥친 그 벽을 뛰어 넘으십시오. 아니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처럼 그 벽을 넘어뜨리고 전진하시길 소망합니다.

      이 교회에 베푸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을 신뢰하십시오, 제자교회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새 일을 소망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이 교회를 사랑하시고 이 지역을 사랑하십니다. 그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여러분 마음에 가득 담아 이 교회, 이 지역을 넘어 대한성공회, 이 나라, 열방을 향해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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