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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06년 10월 8일] 마르코 10:17-31최선이 아니라 전심입니다.
  • 청지기
    조회 수: 2915, 2006-10-09 11:17:46(2006-10-09)
  • 긴 추석 연휴의 끝자락에서 드리는 주일예배인지라 예배자의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와 있는지를 돌아봅니다. 함께 주보 상단에 있는 말씀을 읽어봅시다.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드려야 한다(요한4:2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우리가 자주 들었던 본문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본문을 읽고 본문의 제목을 달아보도록 합니다.

    저는 오늘 성경본문의 제목을 ‘최선이 아니라 전심입니다.’로 정해 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어떤 사람은 루가복음 18:18을 통해 보면 부자청년, 부자관원(어떤 관원)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소위 세상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모든 조건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돈 - 부자,   명예 - 관원,   건강 - 청년

    여기에다가 하느님을 향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보아 믿음도 강한 신실한 청년입니다.

    17절,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수준이 있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다. ‘6. 살인하지 마라.’ ‘7. 간음하지 마라.’ ‘8. 도둑질하지 마라.’ ‘9. 거짓 증언하지 마라.’ ‘남을 속이지 마라.’ ‘5. 부모를 공경하여라.’ 한 계명들을 너는 알고 있을 것이다.”
    1-내 앞에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2-우상을 섬기지 말라
    3-하느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지 말라
    4-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1-4계명, 하느님과의 수직적인 관계 : 유다인들에게는 기본
    그러나 5-10계명은 소홀히 함. 위선적인 신앙의 문제가 있음.
    예 : 마르코 7:11, 코르반

    이에 청년이 감히 대답합니다.
    “선생님, 그 모든 것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보기 드문 청년입니다. 지도자감입니다.
    좀 더 나이가 들면 교회신자회장감입니다.

    돈도 있죠? 사회적인 지위도 있죠? 믿음도 신실해 보입니다.

    예수님도 ‘유심히 바라보시며 대견해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교회 청년들도 아니 우리 모두도 하느님의 계명을 경홀히 여기지 아니하고 순종함으로 주님이 보시기에 대견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태오 5:17-20,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잘 들어라.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예수님이 “형제여, 기특하도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대로 앞으로도 성실하게 주님 말씀대로 살아가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으면 그 청년도 좋고 말씀을 보는 우리도 참 좋을 것 같은데....

    대견스럽게 청년을 바라보시던 예수님이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

    이 말은 우리의 모든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야한다. 혹은 우리의 모든 재산을 다 헌금해야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 말은 우리의 모든 재산의 소유권이 실재로 하느님께 있어서 하느님이 원하시면 언제든지 그것이 집이건 논밭이건 빌딩이건 저금통장이건 적금이건 보험이건 퇴직금이건 모두 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야 실제적으로 주님이 그 삶의 주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주여, 주여 할지라도 실재로는 주님이 주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 당신이 나의 주님이십니다.’라고 입으로 말할지는 몰라도 생활에서 하느님의 주권이 인정되지 않으면 실제로는 하느님이 주가 아닙니다.

    마태오 6: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그래서 탐심이 우상숭배요, 두 마음 - 나눠진 마음이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느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말할지는 모르지만 자기를 기뻐하는 범위 내에서, 자기가 원하고 자기 유익이 되는 범위 내에서 하느님을 기뻐하는 것은 전혀 하느님을 기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기에 요한 웨슬레 신부님은 세 가지가 거듭나야 된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영이 거듭나고, 둘째는 지갑이 거듭나고, 셋째는 성품이 거듭나야 된다고 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주님의 통치권에 들어가야 주님이 진정한 주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자기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며 신실하게 살아왔던 청년은 예수님이 던지신 말씀 한마디에 넉 다운되었습니다.
    22절, “그러나 그 사람은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갔다.”

    예수님은 최선이 아니라, 전심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최선이란 외적인 기준을 얼 만큼 잘 지켰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삶은 쉽지 않기에 계명을 지키는 삶은 주님도 대견스러워 하실 정도로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외적인 행위로 드러나는 최선보다 먼저 마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중심에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있는지를 보십니다. 전심을 보십니다.

    그래서 진정 영원한 생명을 얻기 원한다면, 영원한 생명을 주는 나를 네 인생에 주인으로 삼고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시며 나를 따르려면 네가 지금까지 사랑하던 그 무엇이라도 내려놓고 예수님만이 주님이 되고 전심으로 주님만을 사랑해야 하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은 계명을 잘 지키는 최선을 다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마음은 두 마음이 있었고 마음의 중심에는 탐심이 있었습니다. 탐심 때문에 그는 하느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떤 모습이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태도일까요?

    마르코복음 12장에 나오는 가난한 과부를 통해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몇 주 전 수요예배 설교 때 말씀드린 내용이지만, 다시 말씀드립니다.
    .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헌금드릴 때 헌금바구니로 헌금을 걷으면 사람들이 민망해 할까봐 적당히 넣고 들어오라고 뒤에 헌금함을 놓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헌금할 때 헌금 바구니 돌리는 정도가 아니고, 헌금궤 앞에서 사람들이 차례로 나와서 헌금할 때, 누가 얼마나 헌금하는지 다 들여다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그렇게 했냐면 그들의 신앙에 헌금이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으니까요.

    그 때 부자들이 여럿이 와서 많은 돈을 험금궤에 넣었습니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사람들이 ‘야! 저 양반들 헌금 많이 하는데’하면서 놀라워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별로 놀라워하지 않으시고 그냥 쳐다만 봅니다. 그리고 적게 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도 반응도 없습니다. 또 다른 부자가 나와서 이번에는 더 많이 헌금을 넣습니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또 놀라서 그 사람을 쳐다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듯 헌금(동전)을 넣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보고 계시니 인정도 받고 싶고 사람들의 칭찬을 듣고 싶어 하고, 자기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어떤 가난한 과부가 와서는 겨우 동전 두 개를 헌금궤에 넣습니다. 부끄러워서 가만히 넣고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들어갑니다. 그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가장 가볍고 적은 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는데 예수님께서 그걸 보시고 깜짝 놀라시면서 큰 소리로 제자들에게 말씀하기를 “이것 좀 봐라, 이것 좀 봐라, 이것 좀 봐라. 이 여자가 제일 많이 넣었다. 이 여자가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있는 것을 다 털어 넣었으니 생활비를 모두 바친 셈이다.”
    예수님이 가난한 자를 귀하게 여기시고 부자들은 귀하게 여기시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를 선호하시는 편견도 없고요. 부자들을 배타하는 편견도 없으십니다. 또 하느님 앞에서는 헌금이 많건 적건 전혀 그것 때문에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어떤 분이 주석을 달기를 ‘사람은 얼마를 냈는가를 보는데 하느님은 얼마를 남겼는가를 보신다.’고 했습니다.  

    부자들은 헌금을 많이 냈습니다. 그런데 자기를 위해서 남겨 놓은 것은 그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훨씬 더 많은 걸 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부는 엽전 두 닢밖에 안 넣었지만 그것은 그 여인의 재산 전부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 앞에서는 그것이 가장 많았던 겁니다.

    가난한 과부의 모습이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만일 십일조를 드린다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십이조 십삼조로 자신의 최선을 다하기도 합니다.

    대천덕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법은 십일조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이후로는 십의십이다.”

    무슨 말입니까? 최선이 아니라 전심으로 드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돈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전 영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전 영역에서 예수님이 주인이 되여야 합니다.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진정 주인으로 영접했다면 물질, 시간, 재능, 가족 등 내 삶의 모든 영역을 주님께 드리는 삶이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되게 하라.”
    “하느님을 하느님 되게 하라!”

    지난 몇 주간 저는 리더십에 관계된 하느님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세상을 구원하고 변화시켜야 하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리더로 부르셨는데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섬기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열린 마음으로 타인을 용납하는 관용의 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엄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님게서는 오늘 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신앙의 기본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기본은 최선을 다하는 열심도 중요한 것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를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최선이 아니라, 전심이다.”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찬양합시다.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댓글 1

  • 김장환 엘리야

    2006.10.09 16:52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합니다.
    세상 부귀와 내 생명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합니다.
    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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