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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10월 15일] 마르코 10:13-16 어린 아이를 내게로 데려오라
  • 청지기
    조회 수: 3333, 2006-10-15 21:59:07(2006-10-15)
  •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아이들도 많이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신앙심은 어느 시대나 지극하여서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여성들이 많이 모여들었고, 따라서 아이들 또한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만져주시기를 바래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귀찮은 생각에서였는지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나무랐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자들의 행동을 보신 예수님께서 '하를 내시며' 오히려 제자들을 책망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순수한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셨고 그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기뻐하셨는데, 예수님의 마음을 모르는 제자들이 아이들의 접근을 제재하자 화를 내셨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 구절만큼 생생하게 예수님의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이 드뭅니다.

    예수님이 화를 내셨다는 말은 ‘분히 여기셨다. 몹시 괴로워 하셨다. 슬퍼하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를 묵상하면서 어린 아이들이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마음껏 축복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동시에 어린 아이들이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이 여러 가지 이유로 막힐 때 슬퍼하시고 괴로워하시고 분노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느낍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어린이들이 주님 앞에 나온다는 말은 우리 아이들도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교제하고(놀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알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경험을 가지고 주님의 한없는 축복 안에서 영과 육이 건강하게 자라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실상 우리 어린 아이들이 이렇게 주님 앞에 나와 축복을 누라는 것을 막아서는 제자들과 같은 모습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우리 어른들, 부모들이 꼭 제자들처럼 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생각해봅니다.

    아이들은 부모라는 창을 통해 하느님을 보고 영원한 세계를 보게 됩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부모의 교육을 통해 주님의 정신을 배워 갑니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하느님의 대리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에페소서 6장 4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하고 잘 기르십시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자주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힘으로 그들의 내면을 손상시킵니다. 그리고 이 상처는 아이들의 운명을 결정지어 버립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에 의해 유태인 600만 명이 학살되었습니다. 히틀러가 그같이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된 것은 그의 어린 시절이 불행했기 때문입니다. 히틀러의 아버지가 장사를 하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 그의 어머니는 이웃집 유대인과 불륜의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히틀러는 어릴 때부터 유대인과 여자를 증오하게 되었고 그 결과 성인이 되었을 때 그와 같은 비참한 일을 저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반면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의 어머니는 달랐습니다. 무디의 형제는 아홉 남매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웃 사람들은 그의 어머니에게 아이들을 고아원이나 친척집에 보내어 식구수를 줄이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무디의 어머니는 ?내게 기운이 남아 있는 한 내 자식들은 내 품에서 키울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자녀들을 열심히 주님의 정신, 신앙으로 키웠습니다. 그 결과 무디를 19세기 세계적인 부흥사로 양육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히틀러의 어머니처럼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말고 무디의 어머니처럼 주님의 정신으로, 신앙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데, 솔직히 우리 부모들이 주님의 정신,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무장되어 있지 못합니다. 오히려 세상의 정신으로 오염되어 있거나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아이들을 교육하지않나 생각됩니다.

    예수원 10월 대도록 중에 이런 기도제목이 나와 있습니다.
    “서울의 감성 인지 연구소에 의하면 ‘영유아가 전체 환자의 30~40%를 차지하며 상당수가 조기 교육 등 강압적 학습에 의한 결과’라고 합니다. 한국 사회는 더욱 심한 경쟁 사회로 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폐해가 속출하고 있는데, 주 하나님, 이제 저희 모두가 참된 성공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고 출세 이데올로기라는 우상을 버리도록 도와주소서. ”

    영유아들이 전체 환자의 30-40%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적인 질병의 원인 뒤에는 잘못된 부모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다수가 분명히 교회에 다닐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 것입니다. 비극적인 예수 믿는 것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우리 부모들도 우리의 부모님으로부터 주님의 정신으로 양육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부모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내면에 있음으로 인해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었지만, 그 상처가 뿜어내는 나쁜 영향력을 우리 아이들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보았던 히틀러의 경우를 보듯이 어렸을 때 받은 상처는 내 안에 쓴뿌리로 자리잡아 어른이 되어서도 나쁜 열매를 맺개 만듭니다.

    남을 잘 판단하고 정죄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스스로도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어는덧 남을 비판하고 있는 자기를 봅니다.

    남을 보면 비판이 먼저 된다는 것은 이미 비판하는 태도가 습관화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한 비판하는 태도는 하느님이 처음부터 그 사람 안에 입력시키신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서 배운 것이며, 그것이 성격과 태도로 굳어진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비판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는 그 부모의 눈과 똑같은 비판의 눈을 가지게 됩니다. 사사건건 사람들을 비판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매우 싫어했다 할지라도, 그래서 나는 절대 저런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고 결심했을지라도 어느 사이 그 사람의 시야는 아버지의 시야를 그대로 닮게 됩니다.
    그 아버지의 시야로 사람을 해석하고 사회를 바라보며 자기 주위의 일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식들을 향해서도 칭찬은커녕 항상 못마땅하고 꾸지람만 줍니다.
    그러면 그 아이도 그렇게 자라나고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악순환입니다. 이 고리를 예수님의 능력으로 끊어내야 합니다.

    어린 시절 상처로 인해 어른이 되어서도 내 안에 형성되어 있는 왜곡된 인격을 심리학적으로 ‘상처입은 내면아이’라고 부릅니다.

    ‘상처입은 내면 아이’는 어린 아이의 호기심을 부모가 억압할 때,
    어린아이의 낙관적 태도가 학대 받거나 수치심을 경험할 때,
    성장하는 아이는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데 의존욕구가 적절히 채워지지 않을 때, 아이들의 감정이 차단될 때,
    내면아이의 탄력성과 융통성이 성장과 자기실현에 사용되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길들여질 때,  자유롭게 놀고 싶은 욕구가 차단될 때,
    특별한 존재임을 양육자가 알아주지 않을 때,  사랑받지 못할 때,
    그 밖에 성적, 신체적, 감정적 학대와 문화적 충격, 영적인 학대 등의 이유로 내면에 자리 잡게 되고 치유되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아이처럼 반응하게 됩니다.

    내면 아이가 있는 어른이 보여주는 증상들은 상호의존, 폭력적, 무절제한 행동, 자기애적 인격장애, 신뢰상실, 마술적 믿음, 친밀감 장애, 중독, 강박적 행동, 사고의 왜곡, 공허감, 무관심, 우울증 등입니다.
    이 상처입은 내면아이가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주님의 품에 안기고 그의 사랑의 손으로 안수 받고 축복을 받으며 치유 받고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건강한 신앙인이 되어 주님의 사랑과 정신으로 우리 아이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통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내 안에 상처입은 내면아이를 주님 앞에 데려오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내적치유세미나를 열게 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상처입은 내면아이가 치유되고 회복되어 건강한 인격으로 내 아이들을 주님의 정신으로 양육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하나님이 보실 때 치유가 필요하지 않은 자는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 가까이 다가가는 성숙한 자일수록 자신의 깊은 죄성을 인식하여 더 깊이 회개하고 자신이 치유가 필요한 병자임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교회는 완전하고 문제없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치유된 사람들의 모임임을 나타내고 그리고 지금도 의사인 하느님 앞에서 치유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줄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바른 이해와 능력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은 치유가 필요 없는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건강한 자라는 성경적 의미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그가 자신의 건강을 잰 척도가 잘못되었을 뿐입니다. 건강한 자라고 자신하면서도 가까운 자를 사랑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고, 하느님에 대한 갈급함이 없으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표면적인 관계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그는 내면에 상처입은 내면아이가 있는 사람으로 주님으로부터 치유의 은혜를 구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 됩니다.

    “너는 치료받아야 한다”라고 먼저 말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심각한 병일수록 자각증상이 없듯이 우리는 내게 치유되어야 할 영역이 있는지 조차 몰랐는데 주님께서 오셔서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주님께서 우리를 치유하기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느님의 사랑으로, 복음의 능력으로 치유받고 온전한 신앙인으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하느님을 보여주는 깨끗하고 투명한 창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케 해주고 주님의 정신으로 양육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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