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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06년 9월 17일] 마르코 8:27-38 성소주일-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 청지기
    조회 수: 2662, 2006-09-18 20:59:25(2006-09-18)
  •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확신이 있습니까?”
    “천국 문 앞에서 천사가 ‘무슨 자격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냐?’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주님은 길을 가시다가 베드로에게 이렇게 불쑥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베드로는 당황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그 대답을 가르쳐줄 친구도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베드로에게 정답을 가르쳐주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던지는 이 질문은 두 가지의 질문이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내 앞에서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모든 인생들에게 던지는 주님의 질문입니다.
    ‘너는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진리 되는 하느님 말씀 앞에서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인류의 지성 - C. S. Lewis의 고백
    “십자가 앞에서 나는 정직하게 나를 보았다. 나의 마음은 완전히 할렘가같은 쓰레기 더미와 같다.”
    정직하게 십자가 앞에 서는 사람은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 나는 정말 내 안에 죄밖에 없는 죄인이구나. 죄의 값이 죽음이고 죽음 뒤에는 심판이 있는 것인데, 나는 죄인으로 심판받아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이구나.’

    마치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앞에 끓어 엎드려 “저에게서 떠나시옵소서.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자기 고백이 있을 때 비로소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 신앙의 위기는 십자가 앞에서 정직한 고백이 아닌 지식적인 교리로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도 봄베이에서 태어난 예수회 신부 앤소니 드 멜로(1931-1987)는 평생토록 피정지도, 영성지도자 양성으로 헌신하며 인도의 로나불라에 있는 '사다나 사목연구소’의 소장을 지냈습니다. 그는 영성과 지혜에 관한 많은 책을 저술했는데, 그의 저서 '종교박람회' 속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 복음서 속의 대화 -
    예수: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시몬 베드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정녕 복되구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시다.
    * 오늘날의 대화 -
    예수: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리스도인: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훌륭하고 옳은 대답이다. 그러나 너는 불행하구나. 하늘에 계신 아버
    지께서 너희에게 그것을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드 멜로 신부가 쓴 이 짤막한 단상은 깊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우리의 대답은 베드로의 고백처럼 반석과 같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대답은 같아도 그 내용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우리는 시험에 나올 문제들을 미리 예상하고 그 정답을 암기하는 그리스도학원의 수강생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그룹의 면접시험에 나올 질문들을 예상하고 모범답안을 미리 준비해놓은 신입 신앙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식적인 믿음으로 살다보니 실제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믿음이 실제 나를 구원하는 능력으로 그리스도이신 예수가 되지 못합니다.

    정작 지금 죽으면 천국에 들어갈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죽음의 문제를 맞닥뜨리게 하면 주저주저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 속에 당연히 담겨있는 영생에 대한 확신이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중보기도회 시간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향해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달린 내 앞에, 절대 진리가 되는 하느님의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서 자기 자신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럴 때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진정 나의 구원자,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지식적인 교리에서 나오는 신앙고백이 아닌, 마음에서 나오는 고백으로 주님을 기쁘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진정 그리스도, 구세주라는 확신 안에 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실제적인 믿음의 고백으로 교회를 세워가라는 주님의 당부입니다.

    신앙은 전염되는 것이기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마음에서 나오는 살아있는 것이면 불신자들과 초신자들에게 전염될 것입니다.

    예수를 전염시키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예수님을 질문은 ‘너의 삶에 있어서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첫 번째 질문과 연결되는 질문으로 예수님이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는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삶에서 예수님은 어느 정도의 비중이나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밥에 묻힌 보물을 찾는 농부의 비유가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소작인이었던 것 같은데, 밭을 갈다가 보물을 찾은 농부는 그 즉시로 자기의 가진 다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 왜냐하면 보물을 발견하는 그 순간, 밭에 있는 보물이 그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그 순간 주님은 단순한 구세주에서 내 인생의 주님으로 자리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금요기도회에서 주님의 주신 말씀 중에 이와 관련된 주님의 음성이 이것입니다.

    “너희의 삶의 전 영역에서 하느님이 하느님 되게 하라!”

    현대 신자들의 신앙에 너무나 많은 타협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닌 세상의 많은 것들이 예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우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아, 재정, 자식, 세상의 것들에 대한 탐심 등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나의 삶에 예수님은 어떤 존재입니까?”

    황소대신 예배를 선택했다는 몽골 이레교회의 청년이 예수님으로 주되게 하신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상의 삶에서 예수님이 주인 되는 믿음의 삶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찬양 -  “약할 때 강함 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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