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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06년 10월 1일] 마르코 9:38-50섬기는 리더십 2
  • 청지기
    조회 수: 3657, 2006-10-02 13:32:29(2006-10-02)
  • 할렐루야! 서로 인사합시다. 당신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지난 주일 왕 같은 제사장이 모인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앞으로 2년간 섬길 교회위원이 선출되었습니다.

    우리 성공회 교회가 선거를 통해 교회의 핵심적인 리더를 선출하는 방식은 철저히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회중들 안에 역사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목회자의 기준도 아니고 어떤 훈련에 따른 수준에 따른 것도 아니고 회중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누가 교회의 리더십이 되어야 하는가?’ 생각하고 기도하는 중에 성령님이 주신 마음에 따라 선택한 것이기에 그 결정은 곧 바로 주님의 음성인 것입니다.

    선출된 교회위원들은 주님이 선택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선출된 위원들은 하느님께서 나를 주님의 일꾼으로 인정해 주셨다는 감격 속에 감사와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오직 순종과 헌신으로 섬길 것입니다.  또한 교회 성도들은 선출된 위원들이 주님이 택한 일꾼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협력하여 교회와 주님께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왕 같은 제사장들이 모인 교회가 주님의 기대대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리더들이 훨씬 더 많아져야합니다.

    교회법에 의해서 숫자가 제한되어 있는 제도적인 한계로 인해 선출되지 못한 여러 교우들도 직분을 떠나 나를 구원하시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자원하는 마음으로 온전히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리더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하느님께서는 교회위원 선거와 맞물려 지난주일에 이어 오늘도 교회의 리더십이 가져야 하는 신앙적인 품성을 살펴보게 하십니다.

    지난 주일에는 섬기는 사람, 서번트 리더십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35절,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37절,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곧 나를 보내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섬기는 리더십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기억하시죠?
    날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을 주님을 영접하면 내 안에 그 분이 주시는 사랑의 능력이 솟아납니다. 그러면 주님의 능력으로 영적으로 어린 지체들을 친절하게 섬기며 함께 제자로 서가는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를 계속 가르치십니다.

    첫째, 36-41절에서 말씀하시는 ‘관용’이라는 품성입니다.

    누가 더 높으냐고 다툰 제자들에게 섬기는 사람이 되라는 주님의 교훈이 마쳐질 쯤, 가장 나이 어린 제자 요한이 주님께 보고를 드립니다.

    38절,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우리와 함께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사랑하는 그의 충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깊이 감쳐줘 있는 질투심의 발로로도 보입니다.
    9장 14절을 보면, 제자들은 악령에게 사로잡혀 발작하고 있는 아이에게서 마귀를 쫒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19절)라고 하시며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런 것을 쫓아낼 수 없다’(29절)고 훈계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다니는 자신들도 못하는 일을 어떤 사람이 했다는 그 말에 자존심도 상하고 질투심도 일어날 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으로 귀신 쫓아낸 사람을 나무라고 금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적어도 자기들처럼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정도는 되어야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정통이 되지 않겠냐는 영적으로 교만한 생각, 그렇지 않은 것들은 정통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과 정죄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요한은 이 보고를 드리면서 은근히 예수님의 칭찬을 듣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전혀 의외였습니다.
    39절, “말리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나를 욕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요한이 보여주는 편협한 생각에 일침을 가하시는 말씀입니다. 요한처럼, 벤뎅이 소갈딱지 같은 저희에게도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처럼 속이 좁거나 편견에 치우치지 않으셨고 편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편에, 라인에 서있는가 보다 예수님께 속했는가를 보고 계십니다. 진실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주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주님이 주시는 사랑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행하고 있는가에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꼭 나와 함께 하지 않아도 이렇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사람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한국교회는 예수님 앞에 설 면목이 없습니다. 개신교의 많은 교단이 같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천주교를 이단이라고 합니다. 글쎄 우리교회 애다 사제님이 사역하시는 용인정신병원의 신우회 회장님이 순복음교회 신자인데 천주교는 이단으로 성공회는 그와 유사하다고 애다 사제님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장로교 자체만 200개가 넘는 수많은 교파로 갈라져 있듯이 서로의 작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갈라서고 분열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한 지역교회 안에서도 일상 일어나는 일이 되어 있습니다.
    지역교회 안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40일 금식기도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농담 속에 편협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한국교회의 단면이 담겨져 있습니다.

    신앙적인 열심을 갖다보면 은연중에 영적 교만과 자기 의에 빠져 자기처럼 못한다고 자기와 다르다고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무시합니다.

    주님의 마음이 아픕니다.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 안에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기를 원하시고 연합하여 선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교회 안에서는 일치를 깨뜨리고 하나 됨을 무너뜨리는 모든 말과 행동은 사탄의 도구로 간주해도 될 만큼 심각한 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체들을 향한 모든 신앙적인 판단과 정죄를 멈추고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관용과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정원목사님이 쓰신 좋은 글이 있어서 읽어드립니다.
    [‘변화의 도구’라는 글입니다.

    사람을 코너에 몰지 마십시오. 옳은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옳은 말은 멍청한 말보다 더 사람을 찌르고 아프게 합니다.
    온유한 사람에게 못됐다고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상처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못된 사람에게 못됐다고 하면 그는 상처받고 폭발합니다.
    그는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에게 잘난척한다고 말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는 웃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높아지기를 원하는 이에게 교만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는 전혀 변화되지 않으며 당신을 원수로 알 것입니다.
    사람을 코너에 몰지 마십시오. 그것은 누구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당신도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상대를 공격하지 마십시오.
    오직 자신의 부족함만을 나열하십시오.
    정 화를 내고 싶으면 상대를 포용하지 못하는 자신의 옹졸함을 인하여
    화를 내십시오.

    바르고 정확한 말 그것은 사람을 죽입니다.
    그러므로 똑똑하고 영리하며 많은 배우고 옳은 사람이
    사람의 영혼을 효과적으로 죽이는 것입니다.
    아주 짧은 시간에 몇 마디의 말로 사람을 확실히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가 약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공격하고 정죄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입니다.
    주님이 당신을 받아주신 것처럼 당신도 그들을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사람들의 허물을 사랑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자신을 아파하면서
    주님의 사랑의 눈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머지않아 주님의 응답이 오며 당신은 비로소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모든 허물들이 진정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리고 비로소 당신은 그들을 도울 수 있으며 그들을 축복하며
    변화시키는 도구로 쓰여 질 수 있는 것입니다. ]

    우리는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리지 말라”는 말씀을 열린 마음을 가지란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더 큰 사랑과 은혜를 받는 비결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리더십에게 요구되는 것은 관용 - 열린 마음입니다.

    세 번째 말씀은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다른 사람을 용납하고 포용할 줄도 알아야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철저히 다스려야 할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잘 잘못을 따지고 판단하고 정죄하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대충 대충 넘어가고 적당히 얼버무리고 관용하는지를 표현한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를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냉혹하리만큼 철저히 다스려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르치시기를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 하나가 상대방에게 엄청난 영향과 결과를 미칠 수 있음을 말했습니다.

    그것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해서 물 한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상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를 우리를 보고 계시는지요.
    그런데 그 만큼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이 보잘 것 없는 사람-소자-믿음이 연약한 영적으로 어린아이들 중 하나라도 죄짓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고 할 정도였습니다(막9:41~42).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우리 성도들의 작은 행동 하나가 모든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우리의 작은 친절과 도움을 통해서 예수 이름이 드러나고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주님의 교회가 크게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보든 보지 않든지 언제라도 긍정적인 말을 하고 칭찬하는 말을 하고 감사하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약간의 친절이나 위로의 말씀도 어린 성도들에게 큰 용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보다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해야 합니다. 신앙의 관리 곧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자기에 대해서 냉혹하리만큼 분명해야 합니다.

    이 본문에서 예수님은 다소 섬직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만일 손이 범죄 하거든 손을 찍어버리라! 차라리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 발이 범죄 하거든 찍어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발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낫다. 눈이 범죄 하면 눈을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막9:43~47).

    만약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는 다면 아마 우리 중에 아무도 성한 몸을 가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벌써 양손, 양발이 잘리고 두 눈이 뽑혀 버렸을 것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손을 자르듯, 발을 자르듯 눈을 뽑는 아픔을 가지고 결단력을 가지고 단호하게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것을 너무나 쉽게 그리고 너무나 자기중심적으로 적당히 믿으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지나치리만큼 의의 잣대를 가지고 심판 하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관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주님이 가르치신 대로 다시 한번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용납하고 형제가 죄를 범했으면 일흔 번의 일곱 번까지 용서할줄 알아야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손, 발을 자르는 듯한 아픔으로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죄를 미워하되 피 흘리기까지 미워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된 습관을 잘라버려야 합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언제나 주님께 속해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탄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자기 연단과 자기 정결을 위해서 불로 소금을 치듯 해야 합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우리를 부르심 주님의 엄중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섬기는 사람이 되어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열린 마음으로 타인을 용납하는 관용의 사람이 되어라!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엄한 사람이 되어라!

    바로 이 모습이 우리가 닮아가야 하는 예수님의 모습 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설 때 우리는 세상을 다스리는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가는 주님의 제자, 왕 같은 제사장, 리더가 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주님이 영광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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