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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4월 30일] 요한 20:19-31 부활하신 주님이 하신 말씀 - 두 번째 이야기
  • 청지기
    조회 수: 3583, 2006-04-30 22:07:56(2006-04-30)
  • 부활하신 주님이 하신 말씀 - 두 번째 이야기

    지난 주일에는 부활하신 주님이 하신 첫 번째 말씀 3가지를 들었습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으라!
    - 샬롬 파송 성령

    한 주간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며 살으셨는지요?
    일상 속에서 증인의 삶으로 에배자로 파견례의 삶을 살으셨는지요?
    이미 내 삶의 돕는 이로 내 안에 와 계신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으셨는지요?

    오늘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보며 주님의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36절)
    여기서 ‘그들은’ 엠마오로 내려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 돌아가 함께 한 열한제자와 다른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 이야기’는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나셨다는 것과 또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는 경험담들을 말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입니까?

    며칠 전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께서 눈 앞에 나타나셔서 대화도 나누고 떡도 함께 먹었으니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는 사건이요 최고의 화제가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그들 중에 한 사람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현대인의 대부분은 아마도 지난주일 요한복음에 등장했던 토마처럼 믿지 못할 겁니다.

    요한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자 토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오늘 루가복음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증언들을 이미 들었음에도 막상 부활의 주님이 그 자리에 나타나니까 ‘그들은 너무나 놀랍고 무서워서 유령을 보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즉 믿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지난 주일 보금 성경 요한복음 20장을 보면 토마도 믿지 못했습니다.
    27절, 토마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28절, 토마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대답하자
    29절,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고 말씀하셨다.

    오늘 루가복음에서  38절,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왜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의심을 품느냐?   39절, 내 손과 발을 보아라. 틀림없이 나다! 자, 만져보아라. 유령은 뼈와 살이 없지만 보다시피 나에게는 있지 않느냐?"  
    40절, 하시며 당신의 손과 발을 보여주셨다.
    41절, 그들은 기뻐하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아서 어리둥절해 있는데  

    이 상황에 대해서 마르코 복음 16장 14절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뒤 열한 제자가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마음이 완고하여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신 것을 분명히 본 사람들의 말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 ”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의 말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의 반을 에대해서 주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부활의 증언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해서 주님은 속상하셨습니다. 그리고 꾸짖으셨습니다. 주님은 안타까와 하시고 책망하십니다.
    “왜 그렇게도 의심을 품느냐?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 그렇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보이지 않아도 손에는 아무 증거 잡히지 않아도 하느님의 말씀이기에 믿을 수 있다면 그것이 참된 믿음이고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결과가 너무나 참혹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성경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성경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종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을 믿지 않았을 때 맞이하게 되는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것입니까?

    창조 이후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경고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2:16-17,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마라. 그것을 따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

    이 말씀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가 죽음으로 집약됩니다.
    영적인 죽음, 육체적인 죽음, 그리고 영원하 죽는 둘째 죽음.

    또 출애굽의 여정에서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 하느님이 내리신 처방의 말씀이 기둥에 높이 달린 구리뱀을 쳐다보는 자가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나 경험에 관계없이 말씀대로 쳐다보는 자는 살았고 쳐다보지 않는 불순종한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출애굽이후 광야를 살았던 이스라엘이 주는 교훈이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하신 약속의 말씀대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어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땅에 이르기까지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면서도 온전한 인내를 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죽기까지 40년 동안 광야를 헤메여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것으로 하여 하느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에 이르지 못하고 죽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불신앙으로 치룬 희생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해 책망하시는 이유 가장 큰 이유가 이것입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고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우리 죄악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성경의 예언대로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구세주가 되시고 생명의 주인이 되셨는데, 이것을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이 복음을 믿지 않았을 때는 불순종의 대가로 영원한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이기에 주님은 안타까와 하시고 ‘왜 믿지 못하느냐? 왜 의심을 품느냐?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보지 않고 믿는 자가 행복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쫒아 3년 동안 예수님의 공생애를 함께 했어도 소용없습니다.  주옥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다 기억한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수많은 기적의 현장에 있었어도 그 많은 기적들을 체험했어도 소용없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대째 성공회 집안이라는 내력도, 평생 교회를 다녔다는 경력도, 많은 성경공부를 했어도, 혹 병고침의 기적이나 신비로운 체험을 했어도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성경말씀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 복음을 믿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로마 10:9-10,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친절하게 제자들에게 말씀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루가 24:25~27, “그 때에 예수께서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시며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

    루가24:44-47,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말했거니와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나를 두고 한 말씀은 반드시 다 이루어져야 한다." 하시고 성서를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며 "성서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기쁜 소식이 예루살렘에서 비롯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고 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에 근거한 부활의 신앙을 가짐으로 구원을 받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믿음은 경험이나 자기 감정에 의존하는 믿음이 아니라, 철저히 하느님의 말씀에 기초해야함을 명심합시다. 그리고 당신이 성경의 기록만으로는 믿을 수 없다고 고집하는 사람이라면, 45절의 말씀대로 성령님이 마음을 열어주시어 성서를 깨닫게 되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합시다.

    성령님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십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스러운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을 내려주셔서 하느님을 참으로 알게 하시고”’라고 기도했던 에페소서 1:17의 말씀대로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충만히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책망하신 이유를 한 가지 더 생각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함입니다.
    요한 3:16-17,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부활하신 주님이 가장 먼저 자기를 배반하고 떠나갔건 제자들을 찾아오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배반하고 불신앙 가운데 있는 제자들을 다시 찾아오셨을 때 주님의 마음과 기대는 무엇일까요?
    동일한 것입니다.

    46절~48절의 말씀입니다.
    "성서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기쁜 소식이 예루살렘에서 비롯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고 하였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다.”

    제자들이 부활의 믿음으로 서서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을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됨으로 이 땅에 하느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예수님의 예언 중에 아직 성취되지 못한 예언은 오직 하나 재림의 예언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때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마태 24:24, “이 하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백성에게 밝히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끝이 올 것이다.”

    이 일에 제자들이 증인으로서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이 주님의 기대요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주님의 기대대로 부활의 믿음으로 세워졌고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무장되어 땅끝가지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은 동일한 기대와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를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다 나가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가 되지 못해도 우리 삶 속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 불신자의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미전도종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헌신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는 보내는 선교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파송한 전진건 선교사 후원주일입니다. 새로 나오신 교우들이 많으셔서 잘 모르실텐데 전진건선교사는 우리교회 출신으로 하느님이 주신 선교의 마음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성공회에서 만들어진 글로벌팀즈라는 선교단체의 리더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내일 모레면 한국에 선교세미나를 주관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귀국하게 됩니다. 우리가 전진건선교사를 위해서 더 기도하고 사랑과 관심으로 돌보아 주기를 원합니다.

    또 우리 교회는 이스라엘 악고라는 도시에 아셀의 추수교회를 입양하여 중보하고 후원하고 있습니다. 마태 23:39,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하고 너희 입으로 찬양할 때까지 너희는 정녕 나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는 말씀이 있기에 그 말씀을 믿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동참하며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통해 하느님의 선교는 완성될 것이며 십자사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경말씀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단 하나 남은 예수님을 향한 예언의 말씀 - 주님의 재림의 그 날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부활의 신앙에 굳게서서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06년 4월 30일                                          루가 24:36-48

    부활하신 주님이 하신 말씀 - 두 번째 이야기

    지난 주일에는 부활하신 주님이 하신 첫 번째 말씀 3가지를 들었습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으라 !” - 샬롬 파송 성령

    한 주간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셨나요?
    일상의 삶 속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파견례의 삶을 살으셨는지요?
    이미 내 삶의 돕는 이로 내 안에 와계신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으셨는지요?

    우리가 사순절 기간동안 하루 7번 화살기도를 했었는데, 화살기도를 드리듯이 저는 때때로 성령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물론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지만, 성령님을 인정하고 초대하고 의지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누군가를 만나는 약속이 있으면, ‘성령님 제가 누구를 만나는데, 그 만남을 성령님께 맡깁니다.’ 어떤 모임을 하게 되면, ‘성령님 제가 모임을 주관하게 되는데, 그 모임을 성령님이 주관해 주세요.’

    생활 속에서 성령님을 인정하지 않고 의탁하지 않으며 스스로 할 때는 무척 힘이 든데, 진심으로 성령님을 인정하고 의탁했을 때는 담대함과 평화가 있고 주님이 나를 통해 일하고 계심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가 성령님을 인정하고 의지하며 살아갈 때 주님이 주시는 안정감과 담대함, 그로인한 평화가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일상의 삶 속에서도 내 노력과 수고가 아니어도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그래서 삶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자로 사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보며 주님의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36절,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엠마오로 내려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 돌아가 함께 한 열한제자와 다른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 이야기’는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나셨다는 것과 또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는 경험담들을 말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입니까? 3일 전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께서 눈앞 에 나타나셔서 대화도 나누고 떡도 함께 먹었으니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는 사건이요 최고의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그들 중에 한 사람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현대인의 대부분은 아마도 지난주일 요한복음에 등장했던 토마처럼 믿지 못할 겁니다.
    요한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자 토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오늘 루가복음의 스토리를 보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증언들을 이미 들었음에도 막상 부활의 주님이 그 자리에 나타나니까 ‘그들은 너무나 놀랍고 무서워서 유령을 보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즉 믿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다른 복음서를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는 증언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믿지 못했습니다. 토마도 그랬고 오늘 루가복음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의 말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의 반응에 대해서 주님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토마가 말만 듣고는 믿기 어렵다고 하니 주님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토마의 믿음을 일으켜 세워주셨는데, 오늘 루가복음의 현장이 아마도 요한복음에서 토마를 찾아오셨던 그 현장과 같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요한복음 20장을 보면 토마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27절, 토마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28절, 토마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대답하자
    29절,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고 말씀하셨다.

    오늘 루가복음에서
    38절,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왜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의심을 품느냐?
    39절, 내 손과 발을 보아라. 틀림없이 나다! 자, 만져보아라. 유령은 뼈와 살이 없지만 보다시피 나에게는 있지 않느냐?"  
    40절, 하시며 당신의 손과 발을 보여주셨다.
    41절, 그들은 기뻐하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아서 어리둥절해 있는데  

    이 상황에 대해서 마르코 복음 16장 14절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뒤 열한 제자가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마음이 완고하여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신 것을 분명히 본 사람들의 말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부활의 증언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해서 주님은 속상하셨습니다. 그리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성경말씀으로 자세히 풀어 설명해 주시면서 예수님에 부활에 대한 믿음을 세워주셨습니다.

    우리도 이미 부활의 증언들을 들었습니다. 성경 속에 수많은 증인들의 이야기, 그리고 교회의 역사 속에서 살아나오는 많은 증언들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안에는 제자들처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안타까워하시며 책망하십니다.
    “왜 그렇게도 의심을 품느냐?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 그런데 이 말을 사실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보이지 않아도 손에는 아무 증거 잡히지 않아도 하느님의 말씀이기에 믿을 수 있다면 그것이 참된 믿음이고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결과가 너무나 참혹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성경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성경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종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을 믿지 않았을 때 맞이하게 되는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것입니까?

    우리는 성경에서 불신앙으로 인하여 희생을 당하였던 많은 결과들을 보아 왔습니다. 이 일은 인간사의 처음인 에덴동산에서부터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 두셨을 때 그들은 하느님의 축복 속에서 풍성한 과실을 먹으며 하느님과의 교제 속에서 행복한 나날을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 중에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어서는 너희가 정녕 죽을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직 인간이 알지 못하는 지식으로 인하여 그들이 피해를 받을까봐 미리 알려주신 하느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 당시 아담과 하와는 우리와 같이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죄를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에덴동산에는 악과 선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 안에 악을 감지하는 프로그램이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악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먼저 우리는 그 당시 아담과 하와는 배고품을 위하여 무엇을 먹어야 하는 상태가 아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동산 나무의 실과들은 하느님의 형상과 모양을 유지하기 위한 영양소들이 들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동산 중앙에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과실나무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그것을 먹으면 악이 우리 안으로 들어가서 죄성의 인간이 될 것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만약 이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으셨다면 하느님은 공평한 하느님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때 사단의 추종을 받은 뱀이 하와를 유혹하므로 하와는 하느님의 말씀에 의심을 갖게 되고 결국 불순종의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죄악이 인간에게 미친 것은 인류의 조상 아담이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불신앙에서 초래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불신앙으로 말미암은 희생을 성경에서 보았습니다. 우선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에서 떨어져 죽음에 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먹을 것을 위하여 땀 흘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남편을 사모하며 그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야 했고 또 해산의 고통을 통하여 자식을 낳아야 했습니다. 그후 아담과 하와는 자기가 낳은 아들이 형제를 죽이는 죄악을 목격해야만 했습니다.

    창조 이후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경고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2:16-17,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마라. 그것을 따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

    이 말씀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가 죽음입니다.
    영적인 죽음, 육체적인 죽음, 그리고 영원히 죽는 둘째 죽음.

    또 출애굽의 여정에서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 하느님이 내리신 처방의 말씀이 기둥에 높이 달린 구리뱀을 쳐다보는 자가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나 경험에 관계없이 말씀대로 쳐다보는 자는 살았고 쳐다보지 않는 불순종한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출애굽이후 광야를 살았던 이스라엘이 주는 교훈이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하신 약속의 말씀대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어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땅에 이르기까지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면서도 온전한 인내를 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죽기까지 40년 동안 광야를 헤메여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것으로 하여 하느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에 이르지 못하고 죽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불신앙으로 치룬 희생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해 책망하시는 이유 가장 큰 이유가 이것입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고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우리 죄악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성경의 예언대로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구세주가 되시고 생명의 주인이 되셨는데, 이것을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이 복음을 믿지 않았을 때는 불순종의 대가로 영원한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이기에 주님은 안타까워하시고 ‘왜 믿지 못하느냐? 왜 의심을 품느냐?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보지 않고 믿는 자가 행복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믿음은 경험이나 자기감정에 의존하는 믿음이 아니라, 철저히 하느님의 말씀에 기초해야함을 명심합시다. 당신이 성경의 기록만으로는 믿을 수 없다고 고집하는 사람이라면, 45절의 말씀대로 성령님이 마음을 열어주시어 성서를 깨닫게 되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합시다.

    성령님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십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스러운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을 내려주셔서 하느님을 참으로 알게 하시고 ’라고 기도했던 에페소서 1:17의 말씀대로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충만히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책망하신 또 한 가지 이유를 생각해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함입니다.

    요한 3:16-17,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부활하신 주님이 가장 먼저 자기를 배반하고 떠나갔건 제자들을 찾아오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배반하고 불신앙 가운데 있는 제자들을 다시 찾아오셨을 때 주님의 마음과 기대는 무엇일까요?

    46절~48절의 말씀입니다.
    “성서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기쁜 소식이 예루살렘에서 비롯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고 하였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다.”

    제자들이 부활의 믿음으로 서서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을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됨으로 이 땅에 하느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예수님의 예언 중에 아직 성취되지 못한 예언은 오직 하나 재림의 예언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때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마태 24:24, “이 하늘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백성에게 밝히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끝이 올 것이다.”
    이 일에 제자들이 증인으로서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이 주님의 기대요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주님의 기대대로 부활의 믿음으로 세워졌고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무장되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은 동일한 기대와 마음으로 우리 교회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를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다 나가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가 되지 못해도 우리 삶 속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 불신자의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미전도종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헌신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는 보내는 선교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파송한 전진건 선교사 후원주일입니다. 새로 나오신 교우들이 많으셔서 잘 모르실텐데 전진건선교사는 우리교회 출신으로 하느님이 주신 선교의 마음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성공회에서 만들어진 글로벌팀즈라는 선교단체의 리더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내일 모레면 한국에 선교세미나를 주관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귀국하게 됩니다. 우리가 전진건선교사를 위해서 더 기도하고 사랑과 관심으로 돌보아 주기를 원합니다.

    또 우리 교회는 이스라엘 악고라는 도시에 아셀의 추수교회를 입양하여 중보하고 후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말씀에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향해 노래할 때 재림하신다는 말씀이 있기에 그 말씀을 믿는 우리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회복을 위해서 선교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마태 23:39,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하고 너희 입으로 찬양할 때까지 너희는 정녕 나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

    이 모든 일들을 통해 하느님의 선교는 완성될 것이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경말씀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날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부활의 신앙에 굳게 서서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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