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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6월 4일] 사도 2:1-12 / 요한 15:26-27, 16:4-15 성령 충만 그 아름다운 삶!
  • 청지기
    조회 수: 2997, 2006-06-04 22:20:42(2006-06-04)
  • 제가 즐겨 기억하는 표현들이 몇 개있습니다.
    “네가 심겨진 그 곳에서 꽃을 피우라!”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민족보다 강하다.”(존 낙스)
    “믿음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썩는 밀알 되어 열매 맺는 우리들!”도 좋지요?

    그 중에 가장 좋아하는 표현은 “성령 충만, 그 아름다운 삶!”입니다.

    누구나 아름다움, 미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관점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의 모습은 ‘성령충만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충만함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야 하고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먼저 성령님은 누구일까요?
    오늘 복음성경 15:26, 16:7에 협조자라고 말합니다(개역성경-보혜사).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라고 합니다.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를 직역하면, ‘옆에 같이 있도록 부름 받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전쟁 때에 함께 붙어 다니는단짝 전우를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파라클레토스’는 변호인 또는 대언자 곧 변호인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변호인은 요즈음의 변호사들과 같이 법률적인 자문을 하는 것은 물론 늘 함께 다니면서 개인적 일의 자문까지 하는 전천후 후견인이었습니다.

    이렇듯 파라클레토스는 가르쳐주고(teacher), 도와주고(helper), 위로해 주고(comforter), 변호해 주고(advocate), 상담해 주고(counselor), 대신 기도해 주는 중보자(intercessor)이자 힘주고 능력 주는 사람(enabler)이었습니다.
    파라클레토스는 이처럼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글성경에서는 보혜사 협조자로 번역하지만, 영어 성경에서는 보혜사인 파라클레토스의 의미를 한 가지 단어로 제대로 번역하기 어려워서 위의 여러 가지로 번역합니다.  
    그 단어 하나하나가 성령님이 하시는 역할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옆에 같이 있도록 부름 받은 사람’, ‘단짝 전우’가 있습니다. 힘든 인생의 여정, 믿음의 선한 싸움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고 파라클레토스 성령 하느님이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이 teacher, helper, comforter, advocate, counselor, intercessor, enabler 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성령충만’에서 ‘충만’이란 무엇일까요?
    충만이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충만은 수학의 개념과 같습니다. 극소점, 극대점과 같은 극점의 개념입니다.
    속으로 충만하면 그것을 감싸고 있던 겉이 깨지고 흘러넘치게 됩니다.

    이제 ‘성령 충만’이라는 말이 정리가 됩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내 인격 안에, 내 삶 가운데 빈틈도 없이 숨겨져 있는 공간도 없이 가득 찼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에페 5:18에서 성령 충만함을 술 취함에 비유합니다.
    술 취함, 술이 나를 가득 채우면 알콜이 나를 지배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성령님이 나를 통치하시고 지배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성령님이 나의 사고가 되고 나의 판단이 되고 나의 선택이 되고 나의 말이 되고 나의 모든 것이 됩니다.

    이렇게 성령 충만하면 내가 어떻게 변화 될까요?

    첫째, 오늘 사도행전 2장 4절을 보니까, 성령으로 충만해진 성도들은 말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사용하지 않던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이 지배하시는 언어가 나오기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성령님이 내가 오시고 내 안에 충만하면 나를 통제하시고 언어를 지배하시면 성령님이 시키는 대로 말을 하게 됩니다. 언어 사용, 그것이 통치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이 충만하다는 증거가 됩니다.
    어떤 사람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기적을 행하기도 합니다. 병도 고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짜 성령 충만함인지는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능력이 나타나도 엉뚱한 말을 한다면 가짜입니다. 귀신도 능력을 행하고 방언을 합니다. 환상을 보여주며 신비로운 체험을 줍니다. 요즈음 서양인들이 동양종교에 심취하는 이유가 체험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구세주라고 떠듭니다. 이런 일들은 성령 충만함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분명히 요한 15:26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하고 고백하게 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숨어 지내던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 구세주이심을 담대히 선포하는 복음 증거자로 바뀌는 사건이 성령충만함입니다.

    또한 성령의 사람은 칭찬하고 격려하고 축복하는 언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언어를 쓰게 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말을 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말을 사용한다면 성령님이 다스리는 성령충만한 신자라는 증거입니다.
    반면에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그 입술에 부정적인 말이 나온다면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어떤 형제분이 그동안 직장에서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굳이 드러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인생의 문제로 고민하는 직장 동료에게 예수님을 증거하며 기도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 비로소 성령님으로 충만해진 상태가 된 것입니다.

    입술의 고백, 언어의 변화 이것이 성령 충만함이 보여주는 첫 번째 변화의 모습니다.

    성령충만함이 보여주는 두 번째 모습은 분별력 있는 신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무엇이 죄요 의요 심판이지를 알게 해 주신다고 합니다. 이 말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신자로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깨달아 알고 분별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림을 보겠습니다. (21B, 28C)
    첫 그림 - 총으로 사람을 쏴 죽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두 번째 그림 - 많은 돈을 모아 그것으로 무엇이든지 사고 누리려는 삶의 모습입니다. 어떻습니까?
    세상은 부자 되라고 부추기고 부자인 사람들에게 찬사를 보내는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디모테오전서 6:10,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길을 잃고 신앙을 떠나서 결국 격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돈에 대한 이러한 분별력을 갖추고 살아간다면 그는 어느 정도 성령충만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그림 - T.V.를 보고 안락하게 쉬고 있는 그림은 어떻습니까?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인생에 쉼과 안식이 필요합니다.
    마르코 6:31,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함께 좀 쉬자.’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쁜 일은 하지 않지만, 좋은 일도 하지 않으면서 세월을 낭비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이 비록 해로운 일은 하지 않았지만, 무익하게 살아감으로 지옥에 가게 될 수도 있다고 성경은 충고합니다.

    마태오 25:41-43. “이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졸도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으며, 또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세상은 ‘내가 뭐 나쁜 짓 했어?’라고 질문하지만, 하느님은 동시에 ‘내가 뭐 선한 일을 했어?’하고 물으십니다.

    로마서 12:2,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십시오. 이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하도록 하십시오.”

    이렇듯 무엇이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삶인지를 분별하며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을 돕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함이 아름다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분은 아멘 합시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거듭 거듭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면 흘러넘치고 깨져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해집니다.

    우리 신앙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단계마다 충만함의 임계점이 다릅니다.
    패트병의 충만과 드럼통의 충만과 저수지의 충만과 바닷물의 충만은 다릅니다. 패트병은 조금만 채워도 흘러넘칩니다. 패트병의 충만입니다. 드럼통은 더 많이 채워져야 흘러넘칩니다.  

    어떤 단계에서 충만의 임계점에 이르게 되면 흘러넘치고 그 단계의 그릇은 깨지게 됩니다. 처음의 충만은 패트병입니다. 금방 충만해지고 깨집니다. 그리고 그럼통만큼 성장합니다. 그리고 충만해지면 흘러넘치며 깨지고 저수지만큼 성장합니다. 계속 이런 식입니다.

    둑에 물이 흘러넘치면 마침내 둑이 터져 버리듯이 충만해서 흘러 넘쳐야 합니다. 어느 단계에서나 충만해져야 성장이 있습니다. 성장은 한 번씩 깨지는 단계를 거치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로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시는 새 가족 여러분은 아마 그 믿음이 패트병같을 것입니다. 충만하십시오. 그러면 패트병이 깨지고 드럼통만큼 자라나게 됩니다.

    우리 모두 성령충만함으로 거듭 성장하고 성숙하여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 질 수 있을까요?

    먼저 성령님을 인정하고 의지하면 됩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의지한다.’는 말은 내가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없는 연약한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라클레토스 성령님이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와 동행하고 계시는 성령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아이들이 ‘아빠,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듯이 성령님께 묻고 부탁하고 도와 달라고 하면 됩니다.

    잠언 3:6, “무슨 일을 하든지 야훼께 여쭈어라. 그가 네 앞길을 곧바로 열어주시리라.”

    둘째는 진리인 하느님의 말씀으로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진리의 영이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가득 찰수록 합당한 언어를 사용하고 분별력을 날카롭게 해주며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언어가 바뀌고 분별력이 바로 세워져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거듭 거듭 충만함으로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 갑시다.
    오직 성령님을 인정하고 의지함으로 진리인 하느님의 말씀으로 충만해 지기를 바랍니다.

    성령충만 그 아름다운 삶이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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