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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렇게 가르치면 이단이다. 2
  • 1. 엉터리 성경해석 - 창조론

    1) 엉터리 성경해석

    신천지는 어떤 곳인가? 과연 성경대로 믿는 곳인가?
    그들은 창세기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내용이 아니며, 창조기사조차도 모두 비유와 상징적인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비유풀이와 짝풀이를 가르쳤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해석을 정당화시키기 위함이다. 신천지가 실제로 미혹하는 실례를 들어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창 3:14)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흙을 먹을 것이라는 저주를 하셨다. 그러나 신천지는 뱀은 실제로 흙을 먹지 않기 때문에 상징적인 비유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천지는 ‘뱀’이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은 자들을 비유한 것으로서, 오늘날의 ‘목사’를 뜻한다고 가르친다. 마태복음 23:33에서 예수님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뱀과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비판하셨다는 성경을 인용한다. 즉 창세기 3:14에서 뱀이 흙을 먹는다는 것은 곧 기독교의 목사가 교인들을 지옥에 빠트리는 것을 비유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미 비유풀이와 이원론에 빠진 교인들은 이러한 해석이 오히려 재미있다고 반응하며 미혹된다.

    그렇다면 뱀이 흙을 먹을 것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성경에서 ‘흙을 먹는다’는 표현은 주로 비하적인 의미로서, 저주와 패배, 징계를 뜻하는 관용적인 뜻으로 자주 사용된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며 종신토록 흙을 먹는다”는 구절이 그 뜻을 반영하는데, 레위기 11:41-44는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것을 가증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곧 궁핍과 기근으로 파리하매 캄캄하고 거친 들에서 마른 흙을 씹으며” (욥 30:3)
    “광야에 거하는 자는 저의 앞에 굽히며 그 원수들은 티끌(아파르: 공동번역, 표준새번역은 땅바닥으로 번역)을 핥을 것이며” (시 72:9)
    “그들이 뱀처럼 티끌(아파르, 흙)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인하여 두려워하리이다” (미 7:17)
    “열왕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사 49:23)

    2) 창세기의 창조기사

    신천지의 주장은 창세기 1장의 창조기사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된다는 것이며, 모두 기독교와 이만희가 만든 신천지장막교회에 대한 비유라는 것이다. 신천지는 단어 비유풀이를 통하여 하늘은 ‘목자 혹은 장막’으로 해석하고, 땅은 ‘성도’로, 물(바다)은 ‘세상’으로 해석한다. 즉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天地)는 ‘기독교의 목자와 성도’라는 것이다. 그 기독교가 타락하고 범죄하여 흑암과 혼돈이 왔기 때문에 성령이 빛(이만희)을 찾아 세상을 운행하셨다는 것이다.

    - 땅은 흙으로 된 사람을, 하늘은 지도자와 장막을 말하는 것이다. 그곳 선민의 장막에 선민들과 함께하시던 하나님이 떠나가시니 공허요 빛되시는 하나님의 성령이 새같이 날아 왔다가 떠나갔기 때문에 그 장막은 흑암한 것이다.(이만희, 성도와 천국, 42)

    - 뿐만 아니라 계시록 17장에서도 많은 물(바다)을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라고 하셨으니 본문의 수면은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처음 하늘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한 후 빛을 찾아 이 세상에 두루 운행하셨다는 뜻이다.(이만희, 성도와 천국, 43)

    너무나 황당한 해석이지만, 이미 비유풀이에 빠진 성도들에게는 감추어진 영적비밀이라고 믿게 된다. 신천지가 성경을 비유풀이로 가르치는 이유와 목적은 이와 같이 성경을 마음대로 다른 뜻으로 바꾸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를 운행하시느니라”(창 1:2)

    본문에 대해서 이만희 교주는 성령이 빛(이만희)을 찾아 세상을 운행하였다고 해석한다. 신천지는 바다가 세상이라고 비유되므로 물도 세상이라는 것이다. 물론 물이라는 단어가 간혹 비유적으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지만, 성경에서 ‘물’이라는 단어 대신에 ‘세상’을 대입하여 보면 신천지의 비유풀이가 얼마나 황당한지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운행한다’에 대해서 이만희는 아마 모터보트나 수상비행기를 연상하는 모양인데, 히브리어 ‘라하프’는 그런 뜻이 아니라, ‘알을 품다, 날개치다, 흔들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공동번역은 ‘휘돌고 있었다’로, 표준새번역은 “움직이고 계셨다”로 번역하였다. 즉 ‘운행하다’를 뜻하는 ‘라하프’는 마치 새가 보금자리에서 알을 품으며 날개짓을 하는 ‘작은 움직임’을 뜻한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창 1:2을 포함하여 세 번이 사용되었는데 신 32:11에서는 독수리가 날개를 “너풀거리다”로 사용되었으며, 렘 23:9에서는 “뼈가 떨린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즉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서 작은 움직임으로 계속 활동하셨다는 것은 독수리가 알을 품는 것을 연상시키며, 즉 성령께서 생명의 잉태를 위하여 창조사역에 동참하셨다는 뜻이다. 이만희 교주는 ‘운행한다’는 단어를 성령께서 이만희를 찾아 온 세상을 헤메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니 심각한 신격모독이다.

    또 이만희는 창 1:2의 ‘혼돈’에 대해서 “두가지 이상의 교리나 사상이 혼합된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혼돈’을 가르키는 히브리어 ‘토후’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영어로 ‘without form’ 혹은 ‘formless’ 로 번역되며 ‘형태가 없음’을 뜻한다.

    또한 이만희는 ‘공허’에 대해서 “원래부터 있었던 것들이 떠나간 상태”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히브리어 ‘보후’는 ‘비어있다’는 뜻으로, 영어로는 void로 번역된다. 문자적으로나 어원적으로 ‘혼돈과 공허’는 함께 사용되어 "아직 형태가 없는 비어있는 상태“를 뜻하며, "아직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로 해석된다. 그래서 이러한 상태를 하나님은 6일 동안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땅”으로 창조를 진행하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람이 거할 수 있도록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18)

    성경에서 ‘혼돈’(토후)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곳은 19곳이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이 ‘광야, 사막, 거친들’이라는 의미의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그 이유는 그 단어의 본래적인 의미가 ‘사람이 살지 못하는 장소’를 뜻하기 때문이다. 또 ‘헛된 일’이라는 의미로도 많이 사용되었는데(삼상 12:21, 사 29:21, 사 40:23, 사 41:29, 사 44:9) 그 이유는 ‘공허’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 허공(욥 26:7), 빈 것(사 40:7), 무익(사 49:4)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또 ‘공허’(보후)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오직 세 번 사용되었는데, 모두 ‘혼돈’과 함께 사용되었다.(창 1:2, 사 34:11, 렘 4:23)

    ‘성도와 천국’이라는 책에서 이만희교주가 쓴 내용을 보면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우리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며, 이들의 궁색한 변명에 대해서 쓴 웃음만 나온다. 성경의 저자들이 한글로 성경을 썼는가? 다른 번역성경이나 영어성경, 특히 헬라어나 히브리어 원문으로 성경을 보면 신천지의 주장이 황당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이만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성경이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기록된 바 그 예언이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질 말씀이라면,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의 말씀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대한민국 사람을 들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로 정확하게 기록했을 터이고, 또한 하나님이 기록된 말씀대로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령의 역사를 믿는 성도라면 아멘으로 화답할 것이다.(이만희, 성도와 천국, 9쪽)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1절), 3절에서는 빛을 지으셨다. 빛을 만드셨다는 것은 그 전에 어두움만이 있었다는(빛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천지는 빛이 떠났으므로 흑암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창 1:2의 ‘흑암’은 ‘빛이 떠나간 상태’가 아니라 ‘빛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성경은 1장2절에서 먼저 흑암이 있었고, 3절에서 빛을 지으셨다고 기록한다. 성경에서 ‘어두움’(darkness)이라는 단어가 때로는 악 혹은 사단을 비유하는 경우도 있지만, 성경은 문맥을 통하여 해석을 하여야 하며, 창 1:2-4의 빛과 어두움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주께서 흑암을 지으셨다고 말하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어두움’을 나쁜 의미로 해석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나오나이다”(시 104:20)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 45:7)

    만일 어두움이 사단과 악이라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할 수 없다.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8)

    물론 신천지에서 가르치는 비유풀이는 이것 외에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저울, 지팡이, 불, 향로, 빛, 등대, 물, 샘, 강, 짐승, 머리, 뿔, 꼬리, 피, 포도주, 감람유, 산, 인과 나팔, 돌과 우상, 생물과 바람, 부활, 신랑, 예루살렘, 이스라엘등등.... 이러한 단어풀이는 요한계시록을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해석하기 위하여 가르치는 예비적인 학습으로 사용되어진다.

    필자는 지면상 모든 비유풀이를 비판할 수 없으므로 초등교육에서 가르치는 몇가지의 중요한 비유풀이만을 앞의 2편과 본문에서 설명하였다. 이러한 성경해석은 이만희가 계시를 받은 것도 아니며, 실상의 비밀을 알게 된 것도 아니라, 많은 이단들이 그동안 사용해 왔던 전용수법이다. 특히 통일교나 정명석집단, 전도관이나 장막성전, 하나님의 교회(안증회)등 대부분의 이단들이 사용하는 수법이다. 특히 비유풀이, 보혜사, 이긴 자, 감람나무, 두 증인등의 교리는 전도관 출신에게 모두 발견된다.



    2. 계시록이 봉하여진 비밀인가?

    많은 이단들이 요한계시록이 비밀로 인봉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말세가 되면 그 이단단체의 교주나 지도자만이 성경의 비밀을 알 수가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이단들은 성경이 모두 비유와 짝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계시록의 비밀을 알아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신천지의 결론이기 때문이다.

    - 계시록이 응하고 있는 오늘날은 계시록에 약속한 이긴 자(계 2, 3장, 21:7)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 이를 부인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그 말씀을 믿지 않는 자이며 마귀의 영에게 조종을 받는 자이다. 천하만국은 계시록 10장에 기록한 열린 책을 받아먹은 약속한 목자 앞으로 나아와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소성 받아 하나님과 예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 (이만희, 요한계시록의 실상, 14쪽)

    1) 계시록이 봉하여 졌다는 주장 :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계 5:1-5)

    신천지에서는 위에서 일곱인으로 봉하여진 책이 바로 계시록이라는 주장하며, 계시록이 봉하여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계시록 5장의 일곱인으로 봉하여진 책은 요한계시록이 아니다. 계시록 5장은 구약의 에스겔을 인용한 것이다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겔 2:9-10)

    계시록 5장1절의 책도 안팎으로 썼으며, 에스겔 2장10절에서 책도 안팎으로 썼는데, Johnson 이라는 성경학자는 그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고대에는 두루마리 안쪽에만 쓰는 경우와 양면 모두에 글을 쓰는 경우가 있었는데, 양면 모두에 글을 쓰는 것을 opisthograph(오시스토그라프)라고 불렀으며, 한쪽만 글을 쓰는 두루마기는 매매가 가능하였으며, 양면에 모두 글을 쓴 두루마리는 비매품이었다..... 두루마리는 촛물로 봉하고, 진본임을 보증하기 위하여 도장을 찍었는데, 그 당사자만이 인봉을 떼거나 그 내용을 발표할 수 있었다. 원본은 인봉하였고 보관되었으나, 사본은 그렇지 않았으며 공개되었다”

    2) 그 책은 재앙이 기록된 두루마기이다.

    그 책(비블리온, 두루마리)은 장래의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된 책이다.
    공동번역은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엮어대는 상여 소리"라고 번역하였으며, 표준새번역은 "온갖 조가와 탄식과 재앙의 글"로, 현대인의 성경은 "탄식과 슬픔과 재앙의 말"이라고 번역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 책은 재앙이 기록된 두루마리이다. 실제로 계시록 6장 이하에서는 예수님이 일곱인을 떼면서 인류에 닥치게 되는 재앙이 차례대로 나타난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계 4:1)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보자. 사도요한이 장차 될 일을 환상으로 보고 듣고 쓴 것이 요한계시록인데, 그 환상에서 본 책이 계시록일 수가 있는가? 또 계시록을 쓴 저자가 사도요한이면 그 책의 내용을 미리 알고 있으며 그 인봉을 뗄 수가 있는데 왜 사도요한은 계 5:3-4와 같이 그 봉한 책을 펴거나 볼 수가 없어서 울었는가?
    또한 신천지는 계시록이 봉하여진 비밀이라는 성경적인 근거로 다음 성경구절도 제시한다.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사 29:11-12)

    본문은 요한계시록이 봉하여졌다는 내용이 전혀 아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계시를 알려 주었으나 이스라엘인들이 마치 봉한 책으로 간주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동번역] 이렇듯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계시되었지만, 그것은 밀봉된 책에 쓰여진 말씀과 같다.
    [현대인의성경] 그러므로 모든 예언적인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해진 책과 같을 것이다.
    [표준새번역] 이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밀봉된 두루마리의 글처럼 될 것이다.

    신천지가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대부분 앞뒤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3) 성경은 계시록이 봉인된 책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계 22:10)

    특히 계시록 마지막 22장에 있는 가감에 대한 경고에서 ‘이 책’에 대해서 계시록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계22장에서 말하는 ‘이 책’은 계시록이다. 그런데 “인봉하지 말라”는 정반대의 뜻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18-19)

    4) 반문에 대해서

    신천지는 "계시록이 봉인되지 않았으면 당신들은 계시록을 다 아느냐? 정통기독교는 왜 계시록에 대해서 해석이 다른가?"라고 반문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거의 억지 혹은 무지에 가깝다. 계시록이 봉인되지 않았다고 하여, 우리가 그 내용을 모두 획일적으로 똑같이 알아야만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증거로, 성경에는 사도 베드로도 사도바울의 편지에 알기 어려운 부분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으며, 그것을 억지로 풀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 3:16)

    초대교회의 은사와 직분 중에는 지혜와 지식도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남을 가르치는 교사가 있었다는 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성경을 공부하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배우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비정상이다. 성경은 안디옥에 있는 성도들은 일년 동안 가르침을 받고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 11:26)

    즉 성경이 봉하여지지 않았다고 하여 그것을 독자 모두 획일적으로 이미 알아야만 한다는 주장은 무지에 가까운 주장이다. 성령께서 성도를 진리로 인도하신다는 것은 성경 주석이 되어주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3. 환상계시와 실상계시

    신천지는 계시를 환상계시와 실상계시로 구별한다. 사도요한은 환상계시만을 받고 계시록을 기록하였으며, 이만희 교주는 실상계시를 받았으므로 계시록의 비밀을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계시는 동일한 것일 뿐이며, 환상계시와 실상계시로 구별되지 않는다. 신천지가 주장하는 것은 계시록을 알아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며, 그 환상계시를 해석하기 위하여 이만희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뿐이며, 결과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내용과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하기 위하여 비유풀이를 하는 것뿐이다. 신천지가 비유풀이를 가르치는 이유와 그 결론은 모두 요한계시록을 자신들의 뜻대로 해석하기 위함이며, 그것을 신천지는 실상계시라고 부르며 오직 이만희만이 요한계시록을 실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천지는 계시록을 실제 신천지 교회의 인물과 역사로 비유풀이로 해석을 하는데, 그것이 곧 실상계시라는 것이다. 과연 2000년 전에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한국 땅의 사이비 교주가 나타나서 이루게 되는 신천지 교회를 위하여 계시록을 썼다고 생각된다면 비정상적인 사람일 것이다. 만약 성경이 감추어진 비밀의 계시로 기록되어 있어서 이만희교주를 만나야만 그 비밀을 알 수 있다고 한다면 신천지가 나타나기 전 2000년 교회사의 기독교인들은 모두 구원을 받지 못하였단 말인가? 심지어 이만희의 실상을 몰랐던 예수님의 열두제자들과 그 제자들을 포함하여 초대교회에서 순교를 하며 신앙을 지켰던 성도들도 구원을 받지 못하였단 말인가?

    이만희 교주가 해석한 실상이 계속 바뀌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또 오류가 너무도 많이 발견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예를 들면, 계시록 12:6의 “여자가 광야로 도망가매”에 대해서 실상계시라고 해석하는 것을 들으면 첫째 ‘아이를 낳은 여자’에서 ‘여자’는 첫째 증거장막교회의 유재열씨이며 ‘아이’는 이만희라고 주장하는데, 광야에서 3년반 동안을 도망간 사건의 실상을 유재열씨가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에서 3년반 동안 공부를 하고 신학박사를 받아온 사건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유재열씨는 웨스트민스터뿐 아니라 미국의 어떤 신학대학에서도 공부한 적이 없으며 고등학교 중퇴를 한 학력으로 미국의 신학대학원에서 3년 반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유재열씨가 낳은 아이가 이만희라고 주장하지만, 유재열씨는 현대종교의 인터뷰에서 이만희 교주가 누구인지 잘 기억조차 못하며, 이만희 교주가 자신에게 수없이 많은 편지를 보내 함께 일하자고 하였으나 거절하였다고 말한다.

    더욱이 신천지에서 ‘두 증인’이며 ‘두 감람나무’라고 가르치는 홍종효씨는 자신을 자칭 예수라고 주장한 이단 중에 하나이며, 더욱이 2012년에 사망하였다. 자신을 자칭 예수라고 하는 자가 신천지의 증인으로 불리운 자체가 신천지의 증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계시록 2-3장의 실상 해석에서 이만희는 일곱교회라고 하는 실명의 사람들에게 실제로 편지를 썼다고 주장하며 그 일곱 사람의 이름을 열거하는데, 두 증인이며 두 감람나무라고 불렸던 홍종효씨는 이만희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하여 “당신이 밧모섬이라고 주장하는 반포아파트에서 언제 일곱사람에게 편지를 썼느냐”고 반박하였으며, 기독교 방송에서는 “일곱교회라고 주장하는 일곱명의 사람들은 그당시 모두 죽거나 없었는데, 누가 어떻게 편지를 받을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4. 결론 - 신천지의 비유풀이는 의도적인 거짓 조작이다.

    물론 이만희 교주의 성경적인 오류와 무지, 그리고 엉터리 해석과 거짓말은 수없이 발견된다. 그의 이단적인 주장은 역대 이단들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베끼거나 모방한 것으로서, 그는 남을 속이는 방법만 배웠을 뿐이며, 거의 성경적인 기초조차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가 계시를 받고 비밀을 아는 자일까?
    몇가지 웃지 못할 예를 들어 보자

    ➀ 시내산 : 과천을 성지라고 주장하기 위하여 이만희 교주는 “청계산의 ‘계’라는 글자가 시내산의 ‘시내 계’자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시내산의 ‘시내’는 한글이 아니라, ‘시나이’라는 히브리어를 음역한 것이다. 하나님께 계시를 받았다는 자가 ‘시나이’ 산이 한글인 것으로 알았다는 자체가 코메디 중에 코메디이다.

    ➁ 그룹 : 또 천사중에서 ‘그룹’을 영어단어 group으로 해석하여, 천사가 4개의 그룹으로 분류된다고 가르치는데, ‘그룹’은 영어단어가 아니라 히브리어 ‘케루빔’을 음역한 것이다. 혹시 이만희 교주는 ‘스랍’(세라핌)을 책상 설합으로 해석하지 않는가?

    ➂ 기름파는 자 : 열처녀의 비유에서 ‘기름파는 자’를 이만희와 홍종효의 두 증인과 두 감람나무라고 해석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웃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미리 기름을 준비한 다섯처녀는 혼인잔치에 들어갔고, 이만희에게 기름을 사러간 다섯처녀들은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기름 파는 자들 역시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제 두 증인 중에서 한 사람은 죽고 없지 않는가? 열처녀의 가장 중요한 멧세지는 단어의 비유풀이가 아니라, 예수의 재림이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이며, 언제 오실 줄 몰라도 우리는 항상 재림을 준비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➃ 아들과 또 아들: 주어조차 구별 못하는 이런 성경해석도 있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눅 10:22)라는 성경구절에 대해서, 이만희는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를 잘못 이해하여 <아들과 또 아들>을 주어로 해석하여 ‘아들’은 예수이고 ‘또 아들’은 요한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해석은 <계시록의 진상, 34페이지>에 있었으나, 최근에 새로 발간한 책에서는 삭제되었다.

    ➄ 거짓말을 하라는 모략교리 : 특히 소위 ‘모략교리’라고 하는 거짓말을 하라는 성경적인 근거는 완전한 조작이다.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롬3:7)

    신천지가 성경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거짓말을 할 수가 있으며, 그러한 거짓말을 하여도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가르친다고 한다. 그들은 이러한 거짓말을 "모략 교리"라고 부르며, 하나님을 위하여 모략을 잘 사용하라고 가르친다. 과연 성경본문이 그러한 뜻일까?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면 정반대의 뜻이다.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롬 3:5-8)

    개역성경은 성경번역에서 부호나 점을 표시하지 않는다. 헬라어 자체에 부호가 없으므로 정확한 번역을 하기 위해서 쉼표나 따옴표(“ ”)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번역성경들은 따옴표를 사용하여 직접 화법으로 표시를 하였다. 성경본문은 외부사람들이 비방을 하기 위하여 바울이 그렇게 말했다고 조작을 한다는 내용으로서 실제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

    [공동번역] 또 "나의 허위가 오히려 하느님의 진실을 더욱 드러내고 하느님의 영광에 보탬이 된다면 왜 내가 죄인으로 단정을 받아야 하느냐?" 하고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예 선을 드러내기 위해서 악을 행하자." 하는 말이 나옴직도 합니다. 사실 내가 바로 그런 말을 한다고 하면서 나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단죄를 받아 마땅합니다.

    [표준새번역] 또 "나의 거짓으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서, 그분에게 영광이 돌아간다면, 왜 내가 여전히 죄인으로 판정을 받아야 하느냐?" 하고 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이 생기라고, 악한 일을 하자" 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그런 말을 한다고 비방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현대인의성경] 또 어떤 사람들은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진리가 더욱 드러나서 그분께 영광이 되었다면 왜 내가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고 말했다면서 우리를 헐뜯고 다니는데 그들은 당연히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합니다.

    ➅ 이긴자: 계시록 2-3장의 ‘이기는 자’에 대해서 신천지는 이만희가 ‘이긴 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계 2-3의 ‘이긴 자’는 과거적인 시제의 ‘이긴 자’가 아니라 ‘이기는 자’라고 기록하였으며,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세상을 이기는 성도를 말한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요일 5:5)

    또 자칭 이긴자인 이만희 교주는 자신이 생명나무이며, 과실은 교훈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책을 보면 “이긴자와 그의 교훈과 제물은 생명나무와 그 과실임을 구별해야 한다”(이만희, 도서출판신천지, 계시, 57)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계 2:7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긴 자가 이만희이며, 생명나무도 이만희라면 자기가 자신을 먹게 되는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계 22:2에는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만희 교주는 강 좌우에 있는가?

    ➆ 보혜사 : 보혜사(保惠師)란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를 한문으로 음역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기독(基督)’이라고 하며, 베드로를 ‘피득’(彼得)이라고 한문으로 음역한 것처럼 보혜사(保惠師)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이 단어는 ‘파라’(옆에)와 ‘칼레오’(부르다)라는 합성한 명사로써 문자적으로는 ‘옆에서 부르는 사람’의 의미를 갖으며, 이 단어는 헬라어 법정용어로서 ‘피고측 변호인’을 뜻한다. 그러나 이만희는 보혜사(保惠師)를 한문으로 풀이하여 ‘은혜로 보호하는 스승’이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이만희는 요일 2:1의 ‘대언자’(파라클레토스)에 대해서 ‘하나님을 대언하는’ 자신으로 비유하는데, 그 대언자라는 뜻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성도를 대언하는’ 피고측 변호자로서의 예수님의 중보사역을 말한다. 그래서 다른 번역성경들은 모두 변호자로 번역하였다. 그래서 ‘파라클레토스’는 예수 자신이 되시며,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이 보혜사가 되신다(요 14:16-17). 누군가가 자신이 보혜사라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곳은 사이비집단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이러한 웃을 수도 없는 성경오역과 거짓 해석은 이만희 자신의 책과 설교에서 수없이 발견된다. 또한 신천지의 교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바뀌거나 감추어지고 있다. 이와같이 해석과 교리가 바뀐다는 자체가 결국 이만희가 계시를 받았다는 것이 모두 거짓말임을 명백히 증거하여 준다.

    이러한 황당한 비유풀이에 미혹되는 성도들이 많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가르치지 않으며, 특히 정통신학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고 본다. 물론 정통신학 자체에 구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통신학은 구원을 가르치는 손가락이 될 것이며, 그 울타리가 되어진다. 성경적인 정통신학은 교회와 신앙의 표준이 되어지며, 양들이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막고 보호하는 울타리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성경 66권은 이단교리를 짜맞추는 방법과 수단이 되는 책이 아니며 이단교주를 신격화는 책이 아니다. 성경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사를 기록한 책이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뿐이며, 구원은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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