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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7월 20일] 로마 8:12-13몸의 행실을 죽으면 살리라!
  • 청지기
    조회 수: 2722, 2008-07-21 14:15:31(2008-07-21)
  •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축복 가운데 가장 위대한 축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성령님이 내 안에 살아계신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로 예수님을 믿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우리의 죽은 영을 살려 주시어 우리로 영의 생각을 하게 하시고 그것을 따름으로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에는 우리의 썩을 몸도 부활케 하시어 부활하신 예수님과 같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게 해 주십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감사하고 찬양을 올려 드리고 있는지요?

      구약을 보면, 성령님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임하셨습니다. 하느님이 계획하신 하느님의 특별한 일을 위해서 하느님이 택하신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어 하느님의 특별한 일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제사장, 예언자, 왕들이 대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특권층이 아니었습니다. 목동이 있고 농부도 있고 학자도 있고 누구나 하느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가는 거룩한 도구로 부름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그 사명을 행했습니다. 출애굽기 31장을 보면 브살렐이라는 노동자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시고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구약을 연구하다 보면, 특별한 사람만이 아닌 만민이 성령을 받아, 이 땅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느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 하느님의 비전이며 계획이었습니다.
      하느님은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 비전을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33, 그 날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맺을 계약이란 그들의 가슴에 새겨줄 내 법을 말한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그 마음에 내 법을 새겨주어,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에제키엘 36:26-27, 새 마음을 넣어주며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리라. 너희 몸에서 돌처럼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주리라. 나의 기운을 너희 속에 넣어주리니, 그리 되면 너희는 내가 세워준 규정을 따라 살 수 있고 나에게서 받은 법도를 실천할 수 있게 되리라.
      요엘 3:1-2, 그런 다음에 나는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아들과 딸은 예언을 하리라.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리라. 그 날, 나는 남녀 종들에게도 나의 영을 부어주리라.

      마침내 오순절에 이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120명의 신도들에게 성령이 임함으로 이 땅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가고 하느님의 나라가 확장해 가는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 안에는 성령님이 살아계십니다.
      믿습니까?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시며 치료자되신 하느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하느님께서 성령으로 내 안에 살아계신다는 사실, 이것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보다도 더 놀라운, 더 위대한 더 큰 축복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에페 1:13-14,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표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약속하셨던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받을 상속을 보증해 주시고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하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8: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그러므로’ - 성령님을 통해 이토록 놀라운 은혜를 입었으므로 우리는 ‘빚진 자’이다.

      ‘빚진 자’라는 말은 책임과 의무를 지닌 자라는 말입니다.

      공동번역의 말씀대로 우리는‘육신에 빚을 진 자가 아닙니다. 육신의 요구대로 살 의무가 없습니다.’우리는 성령에 빚을 진 자입니다. 성령의 요구대로 살아갈 의무가 있다는 말입니다.

      당대 로마법에서는 빚진 자가 그 빚을 갚지 않으면 감옥에 갇히도록 되어있었습니다(마태 5:25). 신약 시대에는 로마의 상업적인 관습 때문에 대금업자에 관한 기록이 성경에 나옵니다.

      이런 관습을 배경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 빚진 자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마태 18:23-35 ;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종이 백 데나리온 빚 진 친구를 용서하지 못하는 내용으로 죄 사함을 받아 사랑에 빚진 자는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선한 의무가 있다는 교훈.

      바울은 자신의 사도적 신분에 대해서 ‘빚진 자'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와 모든 사람들에게 빚을 졌다는 생각 때문에 열심을 다하여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로마 1:14, 나는 문명인에게나 미개인에게나 또 유식한 사람에게나 무식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전도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공동번역)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개역)

      여러분은 ‘빚 진자’라는 의식으로 살아가고 계시나요?

      오늘날 교회를 보면 이 의식 없이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악한 세상에서 사람이 어떻게 죄 안 짓고 사나?’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글이 하나 있습니다. ‘진정한 부흥은?’이라는 글입니다. 현대 한국교회를 엑스레일 찍듯이 예리하게 분석한 글입니다.

      일부를 옮겨봅니다. 먼저 예수님처럼 살지 못하고 교회를 타락시킨 목회자들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며 글의 일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한국교회의 많은 교인들이 타락했다. 구원받았다는 안도 하에 편의주의적, 물질주의적, 출세지향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인생관에 오염된 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실행할 마음이 전혀 없다.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겠다는 의지도 없다. 그러기에 희생을 싫어하고 부담도 싫어한다. 그저 편하게,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의로운 짐도 지지 않은 채 살아가려 한다. 자신의 주머니에서 물질이 축나는 것을 싫어한다. 목회자의 주목을 받아 짐 하나 덜렁 지워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큰 교회를 찾는다.
      익명주의, 편의주의, 물질주의, 이기주의 때문에...
      물질주의 - 현대인은 물질만능주의에 깊이 빠져 있다. 돈을 너무 사랑한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돈을 많이 갖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의리도, 신의도 초개같이 버린다. 이러한 물질만능의 물결이 교회에도 침투했다.
      교인들은 점점 헌금에 인색해지고 물질적 복, 현세적 복을 구하는 기도는 늘어간다. 헌금에 관한 설교를 매우 싫어한다. 돈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도 버리고 섬기던 교회도 과감히 팽개친다. 교회를 짓는다고 하면 미리 보따리를 싼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도 없이 헌금부담이 없는 교회로 이동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주일예배도 포기한다. 회사에 나가고 장사도 한다. 그나마 좀 양심 있는 교인은 오전 예배를 드리고 오후부터 장사를 한다. 돈을 위해서라면 예수님도 안중에 없다. 아파트 몇 채를 갖고 있어도 많은 줄 모른다. 땅 투기를 하고 사채놀이를 한다. 돈을 밝히고 모으는 데는 세상 사람이나 교인이나 구별이 없다.   장사를 하기 위해서 큰 교회를 선택하는 경우가 흔하다. 돈벌기 위해 개척교회 있다가 큰 교회로 옮겨가는 사람들도 한 두 사람이 아니다. 교회를 장사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이처럼 작금의 교인들에게는 돈을 따라 교회를 선택하는 일이 조금도 낯설지 않다.”

      영통에 있던 시절에 들은 말입니다. YWCA 여성인력개발센터 원장님이 어떤 교회를 출석했는데, 주일 예배 마치고 여자들이 모여서 하는 말이 이런 것이었다고 합니다.
    ‘나는 이번에 피가 얼마 남겼어’라고 자랑하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피를 남길 수 있냐’고 묻고.

      거룩하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거룩한 예배를 드리고 거룩하신 성령을 모신 사람들의 생각은 온통 돈 버는 궁리에 빠져, 그 마음에는 잃어버린 영혼도 없고 - 주님의 피 값으로 세우신 몸 된 교회를 통한 하느님 나라의 부흥도 없고 - 세상의 것들로 가득 차 있다면, 그가 구원받고 성령을 모신 사람일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거룩한 신자일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 학생들이 있는데, 여러분이 ‘내 인생을 향한 주님의 계획은 무엇일까?’ 기도하며 그것을 위해 성실하게 준비하며 살지는 않고, 허구한 날 눈만 뜨면 외모에만 신경 쓰고 - 연예인들 얘기나 나누고 -  - 메이커 옷이나 사달라고 하고 - 인터넷 게임이나 하고 - 공부하는 학생의 본문을 벗어나 살아간다면 조국과 교회의 미래를 책임질 기독학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성경은 이렇게 살아가는 교인들을 향해서  말합니다.
      13절,“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우리가 살기를 원하시기에 하시는 주님의 엄중한 경고입니다.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알곡과 가라지가 같은 밭에서 자라나고 있다고, 추수의 때에 알곡은 곳간에 들여지고 가라지는 불에 태워 버릴 것이라고 동일한 경고를 주고 계십니다.

      가라지인데 알곡이라고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13,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지만 아직 구원받지 못한 몸은 세상과 정욕과 마귀의 유인함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 유혹을 따라가는 몸의 행실을 죄라고 하는 데, 그 죄의 결과는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죽음, 육적인 죽음, 그리고 지옥의 영원한 죽음.

      구원은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기에 함부로 말할 수 없어도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살아간다면 구원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망으로 이끄는 삶이 있고 생명으로 이끄는 죽음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존 스토트 신부님은 이런 삶을‘고행정화’라고 합니다.

      고행정화란 금욕주의도 아니고 자기 학대도 아닙니다. 거룩한 주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죄 되고 악한 것을 분별하고 철저하게 거부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거부하고 죽여야 하는 몸의 행실이란 우리의 몸 - 눈, 귀, 입, 손과 발 - 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지 않고 자기 자신을 섬기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 죄의 고백

      이것은 내가 감당해야 하는 싸움입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성령님이 대신하여 싸워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보혜사입니다. 돕는이, 헬퍼 일 뿐입니다. 내가 싸우고자 할 때 성령님이 도우시고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생한 교훈이 기억납니다.
      마태 5:29-30, 오른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던져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또 오른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 던져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우리가 손대는 것, 보는 것, 가는 곳을 통해서 유혹이 올 수 있다면, 단호하게 그것에 손대지 말고 보지 말고 가지 말아야 하는 것이 성령에 빚진 자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악을 죽이는 단호한 의지와 의에 주리고 목마른 거룩한 갈망이 필요합니다.

      이 단호한 의지와 거룩한 열망을 주시는 분은 오직 성령님뿐입니다.

      이렇게 고행정화의 삶을 살 때, 천국을 소유한 우리가 이 땅에서도 그 영생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할 때 ‘산다.’라는 말의 의미는 이미 6절에서 나온 생명과 평안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하느님의 이버지 사랑을 확신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녀의 삶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공의와 살롬이 넘치는 삶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단지 우리에게 죽음 너머 있는 천국행 티켓을 손에 쥐어주시고자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 이 땅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고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 거룩한 존재가 되라고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에 빚진 자의 삶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을지 간단하게 말씀드리며 마치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이 나의 죽음임을 믿어야합니다.
      로마 6:6, 예전의 우리는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죄에 물든 육체는 죽어버리고 이제는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로마 6:11, 이와 같이 여러분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어서 죄의 권세를 벗어나 그와 함께 하느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시오.
      2. 성령이 내주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로마서 8:13,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인다.
      3. 성경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몸의 행실은 성령으로 죽이는 것인데, 말씀이 성령의 검입니다.
      시편 119:9, 젊은이가 어떻게 하면 깨끗한 길을 가오리이까? 당신께서 일러주신 말씀대로 살면 되오리이다.
      4. 악은 모양이라도 보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살전 5:22, 그리고 악한 일은 어떤 종류이든지 멀리하십시오.

      몸의 행실을 죽임으로 참된 구원의 생명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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