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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10월 22일] 마르코 10:35-45 섬김은 영혼 구원이다.
  • 청지기
    조회 수: 2726, 2006-10-23 10:56:26(2006-10-23)
  • 믿음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살아가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당연히 세상 속에서 갈등하고 충돌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속의 가치관을 따를 것인가? 성경적인 가치관을 따를 것인가?”

    지난 주간에 북한 핵문제로 시끄러운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던 기사가 있었습니다.
    지난 5월 가정의 달 특집으로 방송된 MBC 휴먼 다큐멘터리 ‘사랑’의 ‘너는 내 운명’편이 큰 감동을 전한 바 있습니다. ‘너는 내 운명’은 당시 간암 말기로 3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서영란(28)씨와 이를 알면서도 결혼한 정창원(37)씨의 이야기입니다.
    그 동안 영란 씨와 생전에 차린 신혼집인 지리산에서 홀로 살고 있다는 창원 씨가 18일 일산 국립암센터의 뜻 깊은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아내가 2년간 투병생활을 했던 국립암센터에서 열린 ‘국립암센터 발전기금 전달식’에서 정씨는 MBC와 동양생명이 공동으로 진행한 공익캠페인 출연료와 MBC가 마련한 특별기금을 모은 3천만원 전액을 아내의 이름으로 기부했습니다. 이번 기증식은 소아암 환우들을 돕고 싶어했다는 아내 서영란 씨의 생전의 바람을 따른 것으로 기부금은 국립암센터의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쓰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강아지 두 마리와 소 한 마리, 그리고 현금 90만원이 전 재산이라는 정씨는 “영란이가 살아 있었어도 나와 똑같이 했을 것”이라며 “이번 기금이 고통을 겪는 소아암 환자와 영란씨처럼 암과 투병중인 젊은 환우 분들께 쓰이길 바란다.”고 전했다고 합니다.

    정창원씨가 그리스도인지는 확인해 보지 못했지만, 세상적인 가치관이 아닌 예수님이 보여준 성경적인 가치관을 보여주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잠언 23장 7절에 “무릇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의 사람됨도 그러하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당에 나와 거룩한 감사 성찬례를 드려도 세상적인 가치관이 그 마음의 생각을 다스리고 있다면 그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 인생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있는데, 나쁜 습관이 아직 남아있어서 혹 육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해서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된다면 그래도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중심을 보시는 주님이 판단하실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지난 몇 주일 계속해서 하느님의 자녀로 구원받아 세상 속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자 도는 종의 도이다. 서번트 리더십.!”
    “타인에게 관용을 베풀고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라.!”
    “믿음의 삶은 최선의 삶이 아니라, 전심이다!”

    오늘 복음 성경은 주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의 마음의 중심에 어떤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몇 주 전 9장에서 살펴본 대로, 예수님의 수난예고를 두 차례나 들었던 제자들이 누가 제일 높으냐는 문제로 다투게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아직 그 마음의 생각이 남보다 더 높아지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세상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상황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됩니다. 예수님과 일행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앞장서서 가시는 그 길은 십자가로 향하는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그 길에 예수님께서 12제자에게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3번째로 자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33-34,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손에 넘어가 사형 선고를 받고 다시 이방인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을 조롱하고 침뱉고 채찍질하고 마침내 죽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렇듯 예수님의 비장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남보다 높아지고 싶은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달아 알아듣지 못합니다.
    9장에서 보여줬던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반복합니다.

    제자 중에 형제지간이었던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가까이 가서는 예수님께서 메시야왕국을 이룩하실 때 높은 자리를 보장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먼 훗날 받게 될 고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만, 그 마음의 생각이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가득 차있는 제자들이 알아들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런데 이 대화를 듣고 있던 나머지 10제자가 야고보와 요한을 보고 화를 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야고보와 요한을 보고 안타 까와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왜 너희 형제가 우리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으려고 하느냐?’는 시기심 때문에 화를 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12제자들을 불러 섬김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이방인들의 통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또 높은 사람들은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섬김에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다시 한번 우리들에게 강조하시는 종의 도는 권력이 아니라, 섬김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마침내 십자가의 죽음으로 섬김이 어떤 것인지를 웅변적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 바로 이 말씀을 통해서 섬김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섬김은 ‘~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는 것이다.’
    “~을 위하여” = “~을 대신하여, ~의 자리에”라는 뜻입니다.

    섬김의 목적은 ‘영혼구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몸값을 치러’, ‘대속 물로 주려’라는 표현이 이것을 말해 줍니다. 이 표현은 상업용어입니다. 어떤 것을 그 값어치에 맞는 돈을 주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죄 없는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주어 죽으시며 무슨 값을 치르신 것입니까?

    오늘 서신 말씀이 그 답을 말해줍니다.
    갈라 3:13, “‘나무에 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받을 자다.’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저주받은 자가 되셔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엄중한 창조주 하느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그 말씀을 거역하고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이렇듯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 율법을 지킬 수 없기에 그 죄의 대가인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율법의 저주라고 합니다. 율법의 저주가 되는 죽음의 실체를 히브리서 9장 2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창조주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채로 살아가는 영적인 죽음, 누구나 단 한번 죽게 마련인 육체적인 죽음, 그리고 심판으로 인해 지옥의 영원한 죽음이라는 형벌!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가 이 저주 가운데 죽어 지옥에 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죄 없으신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제물삼아 우리의 죄 값인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몸값을 치르신 이유가 무엇이라고요?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사람을 살리시고자, 나를 구원하시고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섬김의 동기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죽기가지 한 영혼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로마 5:8,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 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또 여기서 우리는 섬김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그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자기 목숨, 생명을 내어주는 것이 섬김의 방법입니다.

    정리하면 섬김은 “ ~을 위하여 = ·을 대신하여, ~의 자리에서 /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는 것”이다.

    나를 위하여, 내가 죽어야 하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생명으로 내 죄 값을 대신 치르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이것이 섬김이고 사랑이고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의 섬김과 사랑을 받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남겨진 인생의 과제는 오직 하나 입니다.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대신하여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주님의 마음, 주님의 생각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어 종의 도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홈페이지 활동단체란 중 학생회 방에 들어가면 학생회 교사로 섬기시는 이연민 선생님이 올려놓은 글이 있어서 읽어드리겠습니다.
    김규항님의 복이라는 글입니다.
    “한국의 교회는 ‘기복(祈福)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사실 그들의 기도는 늘 하느님께 복을 달라는 것이며,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일수록 하느님의 많은 응답을 받은 걸로 선전된다. 그러나 나는 기복적이라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잘것없는 아비인 나도 내 새끼가 복 받길 바라는데 하물며 하느님이 제 새끼에게 복을 주지 않겠는가? 신앙은 복을 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복이 교회에서 말하는 복은 아닌 것 같다. 교회에서 말하는 복은 물질(돈), 명예, 권력 같은 것인데 그건 실은 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돈과 명예와 권력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돈과 명예와 권력에 갇혀 영적으로 파괴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하느님이 그걸 준다면 그건 복이 아니라 저주를 주는 것이다. 게다가 열심히 믿을수록 더 많은 복(저주)을 준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가?
    하느님은 진짜 복을 주신다. 하느님은 부자가 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에게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큰 부임을 알게 하신다. 하느님은 명예를 얻고 싶어 잠을 못 이루는 사람에게 겸손이야말로 가장 큰 명예임을 알게 하신다. 하느님은 권력을 얻고자 눈이 빨개진 사람에게 섬기는 삶이 세상에서 가장 큰 권력임을 알게 하신다.”

    예수님이 주인 된 그리스도인이 지닐 가치관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는 좋은 글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 빠져있습니다. 오늘 35절을 묵상하며 보았듯이 영혼 구원이 예수님의 최고의 가치관이었고 우리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하는 최고의 가치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해가면서 내 생명이라도 내어주고라도 지옥에 떨어져 영 죽을 수밖에 없는 영혼을 섬기며 주님께 인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한 1서 3:16,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생명을 내어주기까지 영혼을 사랑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지옥 가는 영혼을 지옥의 문 앞에서 천국으로 이끌어내는 섬김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영혼을 구원하는 섬김의 삶인지를 간단히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고자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생명은 시간으로 나타납니다. 시간이 곧 우리의 생명입니다. 죽은 자에게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생명처럼 존귀한 것입니다. 이 시간을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쓰는 것입니다. 또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입니다. 곧 생명을 나누는 것이지요. 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고자 시간을 내어 기도하고 시간을 내어 함께 지내는 것입니다.

    둘째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고자 몸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를 하는 것이지요. 마음에 담겨진 것은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해본 사람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자 애를 쓰게 되어 있습니다. 내 몸도 아깝지 않고 물질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 영혼을 구원하고자 기꺼이 몸의 수고, 물질의 허비를 아까와 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는 것이 사랑이고 섬김입니다.

    얘기를 키우는 엄마는 자기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한 밤 중에 아기가 울면 깨어납니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젖을 물리며 아기를 돌봅니다. 아기를 사랑하기에 그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나도록 자기의 잠잘 시간을 내어주고 몸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랑하고 주님의 마음이고 십자가입니다.
    이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 부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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