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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11월 20일] 마태오 25:31-46 "왕이신 그리스도의 주일"의 의미
  • 청지기
    조회 수: 2729, 2005-11-21 08:31:58(2005-11-21)
  • "왕이신 그리스도의 주일"의 의미
    종말을 기다리는 신자의 삶


    종말장 25장의 연속성 - 종말을 대비하는 성도의 자세를 교훈하는 3가지 비유

    본장은 24장 성전 파괴를 예언하신 예수님이 올리브 산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설교에 연결되는 내용으로, 자신이 수난당하시기 3일 전에 당신의 제자들에게 세상 끝날에 있을 여러 징조와 주요 사건 및 그에 대한 자제에 대하여 계시해 주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1) 열 처녀의 비유 -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2) 달란트의 비유 - 열심히 하나님 일을 해야 한다
    3) 양과 염소의 비유 -  가장 보잘 것 없는 자를 섬기라

    이 말씀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① 먼저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열 처녀 비유)".
    ② 그러면 깨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
    ③ 우리는 늘 깨어서 "하느님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달란트 비유)".
    ④ 그렇다면 무엇을 하는 것이 하느님 일을 하는 것인가?
    ⑤ 그것은 바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섬기는 것이다 (양과 염소의 비유)".

    25장 전체를 읽으면서 제가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것은

    첫째. 인생에는 결산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6절, 저기 신랑이 온다.
    19절, 얼마 뒤에 주인이 와서 그 종들과 셈을 하였다.
    31절, 왕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시편 90:12, “우리에게 날수를 제대로 헤아릴 줄 알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이 지혜에 이르게 하소서.”

    전도서 12:1, “그러니 좋은 날이 다 지나고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구나!" 하는 탄식 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오기 전, 아직 젊었을 때에 너를 지으신 이를 기억하여라. ”

    둘째, 결산의 때란 예수님이 왕으로 재림하시는 날을 말합니다. 왕으로 오시는 주님은 모든 사람을 다 심판하십니다.

    신랑이 도착함 -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
    주인이 돌아 옴 -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떨치며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게 되면 - 양과 염소

    특별히 오늘은 교회력으로 일년의 마지막 주일인 ‘왕이신 그리스도의 주일’을 보내는데, 우리는 예수님이 왕으로 재림하시어 심판하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심판 앞에서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을 것입니다.

    “모든 민족들을 앞에 불러놓고 ~”

    우리는 이것을 매주일 성찬례 중에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묵시록 20:11~, “나는 또 크고 흰 옥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았습니다.”

    셋째. 여기서 심판의 기준점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행하는 섬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말을 기다리는 신자의 삶이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우화집에 <두 사람>이란 제목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이른 봄날 두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가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사람들과 늘 좋은 관계로 지내는 보통농부로 며느리가 모은 돈까지 여비로 받아 어렵게 순례 길을 떠났습니다.
    여행 중에 집안일은 잊어버리고, 만나는 누구에게도 좋은 말, 하느님이 가르쳐주신 말씀만 하고자 했으며 기쁨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그는 물 한 모금 마시고자 들렸던 농가에서 전염병과 흉년으로 온 가족이 굶주려 병들어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되자 차마 그냥 가지 못하고 도와주다 보니 여비를 다 써버리게 되었고 성지순례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가장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기뻐하며 식구들이 그의 행적을 물었지만, 적당히 얼버무렸는데 그가 없는 동안에 집안일은 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부유한 농부였는데 매사에 엄격하고 빈틈이라고는 없는 성품으로 순례 길을 가면서도 집안 걱정으로 당장 집으로 돌아가 모든 일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리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예루살렘성지 부활대성당에서 주님을 닮은 사람의 환상을 보여주었고 귀향길에 친구의 선행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가 1년 만에 집에 돌아 왔을 때, 아들은 술에 취해 있었고 다른 집안 일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놓은 것이 없었습니다.
    부자 농부는 한숨을 쉬며 자작나무 밑에 서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바라보는데 친구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영락없이 예루살렘 대성당에서의 환상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죽는 그 날까지 우리 인간은 일하는 것보다 사랑과 선행으로써 그 의무를 다하여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던 톨스토이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다른 성품을 가진 두 사람을 통하여
    우리가 삶에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가?
    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
    하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물질은 넉넉하지 않지만 늘 사람과의 관계를 좋게 하고 매사 즐겁게 살며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며 선행으로 살아가니 삶 자체도 넉넉하고 행복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치밀하고 빈틈이 없어 재산은 모았지마는 자신의 재산만 아끼고 선행을 모르고 살다보니 삶 자체가 공허하다는 것입니다.

    톨스토이가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는 ‘지금 이 순간’ 이요, 가장 필요한 사람은 ‘지금 당신 앞에 있는 바로 그 사람’ 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선행을 베푸는 일’이다.”

    오늘 양과 염소의 비유의 메시지 그 자체입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누구일까요?
    가정 : 노인
    교회 :
    사회 :
    온 세계 :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이 결코 구원의 근거로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로서의 삶을 제시하시는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에서의 봉사생활로 심판의 기준을 삼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의롭게 사는 봉사행위가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봉사생활이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제시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선행자체가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만 에페소서 2:8-9을 보면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입고 그리스도를 믿어서 된 것이지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이 구원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이렇게 구원은 사람의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고 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 자체가 천국에 들어가는 방편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에서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제시된 봉사생활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라기보다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삶의 내용에 관한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은 그 행함으로 그 존재특성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그 특성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속에 관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들어와 있는지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존 칼빈(John Calvin)이 그의 책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적인 결론을 내린 것이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위에 따라 갚으신다. 왜냐하면 각 사람은 그의 행위에 의하여 신자인지 불신자인지 증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심판 주로 오실 때에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판단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부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터툴리안(Tertullian)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er)는 “너희가 도움이 필요한 형제들을 볼 때 그것은 주님을 보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본문에서 예수님과 동일시되고 있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모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두고 말한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른 편에 서 있던 사람들은 바로 이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마지막 날 심판 때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단어에는 구제하고 봉사하고 섬기는 것이 포함된 것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그 인격에 들어가면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양무리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25장, 3가지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심판주로 오시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참된 종말신앙은 현실 도피적이거나 이기적인 기복신앙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주님은 ‘지금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을 구체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제시하심으로서 교회 신앙공동체가 철저히 서로를 돌아보고 채워주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확인하게 됩니다.

    교회는 교제입니다.  성령의 코이노니아.
    그런데 이 코이노니아를 이루기 위해서 내가 돌아보아 몸으로 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44절, “우리가 언제 돌보아드리지 않았는가?”

    ‘돌본다.’는 말은 교회의 본질 중에 하나인 섬김과 봉사 ‘디아코니아’로 공동체내부와 교회 밖의 하느님의 백성들을 돌아보는 디아코니아가 코이노니아를 완성해 주는 것입니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작은 섬김이라도 실천에 옮겨 보기를 바랍니다. 소그룹 셀 공동체 안에서 구체적인 돌봄을 나눠봅시다.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을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을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오늘 셀 단위로 모여 앉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관계가 피상적인 관계가 아닌 주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초대교회 예루살렘교회가 보여준 비전입니다.

    지난 11월 1일, 서울교구장으로 승좌하신 박경조프란시스 주교님이 제창하는 서울교구의 선교방향이 있습니다.

    “나평생운동”입니다. 나눔, 평화, 생명운동의 줄임말입니다. 우리 대한성공회가 비록 작지만, 이 땅의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미물들을 향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는 말입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작은 섬김을 실천에 옮겨보기를 바랍니다. 외롭거나 소외당한 사람들이나 병든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 할 수도 있고 작은 카드나 편지를 통해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격려할 수 있습니다.

    홀로 살면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시장을 봐 주거나 편부모의 가정에 가서 아이들을 잠깐 돌보아 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등진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노숙자, 무직자, 에이즈 환자, 재소자와 그들의 가족, 과부, 고아, 이혼한 사람들을 향한 작은 사랑과 관심을 나누어 봅시다.

    함께 있어 주고, 울고 웃어 주면서 그들의 필요를 조금이라도 채워줍시다. 겨자씨와 같은 우리의 이러한 작은 섬김은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우리의 이웃과 세상을 밝고 훈훈케 하며 우리로 하여금 작은 섬김이 주는 커다란 축복을 경험케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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