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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9월 10일] 마르코 7:24-30 부르짖는 믿음으로 승리하라! (강해설교)
  • 청지기
    조회 수: 2648, 2006-09-12 23:56:45(2006-09-12)
  • 24절 ;
    띠로는 바알 숭배의 본고장으로 엘리야 때부터 유대인들이 가장 혐오한 지역이었습니다. 주님이 그곳으로 가신 이유를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주님은 그곳에 가시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계시려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인 들과 한판 승부를 벌리셨던 예수님은 유다인 들이 혐오하는 이방 지역에 가셔서 유다인 들의 간섭 없이 제자들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조용히 머무르는 피정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앞에 머무르며 기도하고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으셨습니다. 1장 29-34절을 보면 주님은 밤늦도록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피곤하셨을 텐데 다음 날 새벽 이른 시간에 아버지 앞에 머무르며 기도를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35절).

    하느님 아버지 앞에 머무르며 기도와 묵상 가운데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갖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보여주는 삶의 특징입니다.
    이 시간을 자신의 삶에 우선순위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풍성한 그 심령에 생수의 강이 흘러넘칩니다. 그 인격이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사랑의 능력으로 세상과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최근에 서울교구장 박경조주교님께서 모델로 삼고 배우고자 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Our Savior Ch라는 교회인데 나눔의 집 사제들과 교구 스텝들 10여명이 그 교회에서 하는 10일간의 세미나를 다녀왔고 그 탐방기가 지난 주 성공회 신문에 나와 있습니다. 이 교회를 주목하게 된 이유는 교회 성도가 되려면 2년 정도의 제자훈련을 받아야 하고 훈련을 마치면서 신앙고백 간증과 함께 실천 강령 4가지를 서약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 4가지 실천 강령은 1) 매주일예배를 반드시 참석할 것, 2) 매일 1시간이상 성경묵상과 관상기도의 시간을 갖고 영성생활보고서를 제출할 것, 3) 온전한 십일조생활을 할 것, 4) 소그룹으로 모여 구제와 사회선교활동에 참여할 것 등 입니다.

    오늘 야고보서가 말하는 행동하는 믿음을 보여줍니다.
    매년 서약을 갱신하며 교회 성도가 될 수 있는데, 그래서 이 교회 성도수의 통계는 100명에서 150명으로 해마다 다르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교회가 미국 안에서 영향력이 있는 10대 교회 안에 드는 건강한 교회로 선정됐다고 합니다.

    예배, 기도 등 주님과의 관계를 우선순위로 정립하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다시 성경을 보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만 두지 않습니다. 1장에서도 기도하고 계시는 주님을 제자들이 찾아와서 찾아와 사람들이 주님을 찾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그 지역 사람들이 찾아 왔습니다.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달라는 것입니다.

    25절-26절 ;
    이날 띠로 지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한 인물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로페니키아 여자입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 이 여인을 성경에 기록하게 하신 성령님의 의도가 있는 것이죠.

    이 여인이 주님과 만나는 사건을 통해서 깨닫고 알게 되기를 원하는 주님의 마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여인의 처지를 생각해 봅니다. 성경에 나온 여인의 정보는 이렇습니다. 25절 ‘악령이 들린 어린 딸을 둔 어떤 여자’라는 것과 26절 ‘시로페니키아 출생의 이방인’이라는 것입니다.

    종합하면 ‘악령이 들린 어린 딸을 둔 시로페니키아 출생의 이방 여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들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했다고 합니다. 이방인을 개라고 부르고 개처럼 취급했습니다.

    예수님조차도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는 이 여인을 개와 같다며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이처럼 인종적인 차별 속에 살아가는 사회적인 약자인 이방 여자입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여인의 어린 딸이 악령에 들렸다’는 것입니다.
    악령이 들린 어린 딸이 보여주는 행태가 구체적으로 어떠했을지 모르겠지만, 자식에 걸려 열이 오르고 신음하는 것만 봐도 애간장이 녹는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 여인의 처지가 얼마나 절망적 이었을까요?

    우리 가운데도 ‘악령 들린 어린 딸을 둔 이 여인’의 고통만큼 아픈 고통을 겪고 있거나 겪으셨던 분들이 계시죠.

    백혈병으로 고통 받았던 이루리 청년과 그의 어머니 되신 현순희 자매님의 마음이 이 여인의 마음 같았을 것 같아요. 어려움을 이기게 하시고 건강하게  회복해 ??하시니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는 장면은 이토록 처절한 절망의 아픔 속에 있던 ‘악령이 들린 어린 딸을 둔 시로페니키아 출생의 이방 여인’이 예수님이 소문을 듣자마자 주님 앞에 나와 엎드린 것입니다.

    이 ‘엎드렸다’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이 말의 헬라어 원어는 좀 독특한 뜻이 있습니다. 그냥 엎드린다는 말이 아니고 ‘쳐들어가다, 돌격하다, 돌진하다, 습격하다, 난폭하게 쳐들어가다, 충돌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여인은 귀신들린 어린 딸을 고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밖에 없음을 믿고 돌진한 것입니다. 높은 사람 앞에서 예의를 갖춰 얌전하게 엎드리는 공손한 태도가 아닙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綏?난폭하리만큼 예수님께 달려 나가 소리치며 간구한 것입니다.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오복음 15장 2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제 딸이 마귀가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고 계속 간청하였다."

    묵상 중에 이 여인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대비해 보았습니다.  우리?都?여인처럼 주님만이 구원자이심을 확신하며 달려 나가 외치는 모습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의 목회 경험으로 볼 때 어떤 인생 어떤 가정도 주님의 도우심 없이 살아갈 수 있을 만큼 평탄치는 않은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27절 ;
    그런데 이상합니다. 예수님의 반응이 다른 때와 같지 않습니다.
    그렇게도 친절하게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던 예수님이 오늘은 너무나 매정하게 거절하셨습니다.

    ‘자녀들이 먹는 빵을 강아지들??주는 것은 옳지 않다.’

    도대체 왜 주님은 고통 속에 처절한 심정으로 자기 앞에 나온 이 여인의 마음을 후벼 파는 매정한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여인의 믿음을 확인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상황이라면 어땠을까요?
    응답이 한 없이 지체되거나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요?
    이럴 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실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만이 구원이시며 피난처 되시며 능력이심을 신뢰하며 나가는 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믿음을 우리??부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찾아 와 있는 수많은 군중들을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26절,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28-29절,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6장 끝에 보면 예수님을 찾아왔던 군중들은 결국 주님을 버리고 자기 갈 길로 가버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8절 ;
    하지만 여인은 예수님께서 보길 하셨던 바로 그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갔습니다. 그 믿음의 고백이 이것입니다.
    "그래도 그 여자는 ‘선생님, 그렇긴 합니다만 상 밑에 있는 강아지도 아이들이 먹다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얻어먹지 않습니까?’라고 간청하였다."

    이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루가복음 18장이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비유 가운데 밤낮으로 부르짖고 기도해서 마침내 응답을 받아냈던 과부가 떠올랐습니다.

    특별히 여인의 한 말 중에 ‘상 밑에 있는 강아지’라는 표현 속에는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말은 먼저 나도 주님의 구원을 받을 백성임을 고백하는 믿음의 선포입니다. ‘나는 길가에 버려진 주인 없는 들개가 아니라, 주인집 상 밑에 있는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다’라는 말입니다.

    로마서 1장 16절을 보면, "나는 그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들?? 그리고 이방인들?逃沮?믿는 사람이면 누구?道?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이방인이어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적자 유대인은 아니고 서자 이방인이지만, 나도 하느님의 백성이며 주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말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또한 ‘상 밑에 있는 강아지’라는 말에는 주님의 주재권을 인정하는 신실한 믿음의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상 밑에 있는 강아지의 유일한 소망은 오직 상 밑으로 부스러기가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상 밑에 있는 강아지는 상에 기어오를 수도 없으며 또 기어올라서도 안 됩니다. 그저 주인이 일부러 떨어뜨려 주는 것이든지 아니면 주인이 잘못해서 떨어뜨리는 것이든지 부스러기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밥일 수도 있고 때로는 먹다가 남은 생선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살코기를 발라 먹고 남은 가시일 수도 있지만, 상 밑에 있는 강아지는 전적으로 주인의 손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상 밑의 강아지는 굶어 죽을 염려가 없습니다. 상 밑을 떠나지만 않다면 큰 어려움을 당할 염려가 없습니다. 만족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인생은 전적으로 상 밑에 있는 강아지와 같은 입장입니다.
    하느님의 처분만을 바라보는 처지입니다. 인생을 살아보면 사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내 힘과 능으로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신으로만 가능한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느님,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느님, 천지를 심판하실 하느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느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존재인 줄 알고 오직 하느님의 도움만을 바라보는 주님의 주재권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오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여인은 바로 이 믿음으로 주님 앞에 있습니다.
    "나도 주님의 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주님만이 내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기에 주여 나의 인생을 도와주십시오.
    주여 저??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기리에 엘레이숀"

    29-30절 ;
    마침내 믿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와 부르짖은 여인은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을 확인하신 예수님은 즉시로 그녀의 간구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오히려 이 여인의 말을 듣고 감탄하셨습니다. 결코 물러서지 않고, 부스러기 은혜라도 달라고 하는 이 여인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차례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며 살아가지만 고단한 인생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모두의 삶에는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 하느님 아버지 앞에 머무르며 아버지의 사랑을 공급받고 음성을 듣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아버지와의 교제의 시간이 나의 일상의 삶에 최우선순위로 자리매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악령이 들린 어린 딸을 둔 시로페니키아 출생의 이방 여인’이 보여준 믿음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주님 앞에 달려 나가 엎드려 부르짖는 강청기도로 응답받고 축복받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실 우리 각자?鍍?‘악령들인 사랑하는 어린 딸’ 같은 고통스럽게 하는 인생의 문제가 있습니다.

    반복되는 죄의 문제 !   재정의 문제 !    구원받지 못한 가족의 영혼 !  
    자녀의 문제 !   사업의 문제 !   부부사이의 문제 !   가정의 문제 !

    또한 개인의 문제를 뛰어넘어 있는 교회의 부흥의 문제, 우리 성공회 교단의 문제, 한국교회의 문제도 나??‘악령들인 사랑하는 딸’과 같은 기도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이 나라 이 민족의 문제, 세계선교의 완성도 나의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불신앙과 태만, 영적인 나태함은 예수 이름으로 끊어질 지어다.
    위선, 체면, 겉치레 따위는 예수 이름으로 벗겨질 지어다.

    사람들이 "뭐 저렇게까지 부르짖고 기도할 것까지 있어?" 조롱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혹 다른 사람이 나를 개로 취급하고 주님마저도 나를 개로 취급한다고 할지라도 아멘 !, 아멘 ! 하면서 예수께 나아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해답이며 구원자이십니다.

    주님 앞으로 달려 나가 그 발에 엎드려,
    "나도 주님의 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주님만이 내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주여 나의 인생을 도와주십시오.
    나??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악령 들린 사랑하는 나의 딸을 고쳐주소서."

    믿음으로 외치며 부르짖을 때 주님은 응답하십니다.

    다 함께 이사야 12:2를 큰 소리로 고백합시다.

    "진정 하느님은 나의 구원이십니다. 내가 당신을 의지하니,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야훼는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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