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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03년 3월 2일] 마르 9:2-9
  • 청지기
    조회 수: 6243, 2003-03-07 18:05:19(2003-03-07)
  •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기념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나 개인적인 기념일, 경축일 등은 양력으로 지키고 또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절기 등은 음력으로 지킵니다.

    이런 기념일들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살이에 어떤 의미와 활력을 부여해 주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사건이나 죽은 과거의 인물을 기념한다는 것은 그 사건의 의미와 교훈, 또는 별세하신 분의 인격적인 존재를 내 삶에 현재화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인생사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 대화하고 그 상관관계로 미래가 만들어지는 역사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가 교회의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신앙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이나 절기, 사람을 기념하는 것이 교회력입니다.

    교회력은 주로 예수님의 생애를 1년 단위로 구성하여 기념하는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성인들을 기념하는 날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그 전체가 인류구원이라는 목적 아래에서 이루어진 생애이기에 그 생애의 어떠한 사전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가장 중심은 역시 성탄과 부활입니다. 이 두가지를 중심축으로 예수님의 생애의 중요 사건들을 배치한 것이 우리가 쓰는 교회력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로 시작해서 성탄절을 지키고, 빛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자기 모습을 드러내신 것을 기념하는 공현절기를 보내고 재의 수요일로 시작되는 사순절을 지키게 됩니다. 그리고 성주간과 부활절,  성령강림절 등으로 진행됩니다.

    우리는 1년 단위로 예수님의 생애를 따라가면서 현재의 나의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의 음성을 들으며 사명를 깨달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여정입니다.

    이제 이번 수요일을 재의수요일 미사로 드리면서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사순절이란 부활전 주일을 뺀 40일간을 말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며 우리의 신앙을 굳게 다지고 성숙시키는 아주 중요한 절기입니다.

    그런데 교회력에 따르면, 사순절을 시작하는 바로 직전 주일이면 해마다 읽도록 하는 예수님의 생애가 있는데, 그것이 오늘 읽은 복음 말씀입니다.

    재작년에는 루가복음으로, 작년에는 마태오복음으로, 올해는 마르코복음으로 읽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을 처음 예언하시고, 나를 따르려는 사람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함을 말씀하신 후, 엿새가 지난 날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오르셨습니다. 12제자 중에 왜 3제자만 데리고 올라가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나면 물어볼 의문점입니다만, 12명 중에도 이 3명을 리더그룹으로 여기시고 특별한 가르침을 주시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산에 오르자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여 새하얗고 분부시게 빛나게 되었습니다. 마태오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의 얼굴이 해처럼 빛났다고 합니다. 그 영광의 빛이 얼굴을 통해서 그 몸을 통해서 새하얗게 빛났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빛이시고 태양도 주님이 창조하신 것이지요. 태양처럼 빛났다는 것은 인간 인식의 경험의 한계가 태양이기에 그 이상 빙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을 정도로 빛나는 분이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영광과 거룩의 빛 - 이적이 예수님의 본질이고 하느님의 모습인데, 모세는 그 뒷모습만 보았어도 모세의 얼굴에 빛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때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루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과 엘리야, 모세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실 일인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서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약의 율법의 시대는 끝나고 새로운 시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되는 은혜의 시대가 시작되기에 아마도 구약시대의 대표자들인 엘리야와 모세가 예수님을 격려하려 내려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때 나서기를 좋아하는 베드로가 예수님과 엘리야 모세를 위하여 초막 셋을 짓고 이 곳에 천년 만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너무나 좋은 것을 경험하면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습니다. 베드로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남녀가 연애하다가 결혼하는 이유도 둘이 있는 것이 좋고 헤어지기 싫은데 영원히 함께 있고 싶어서 결혼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산위에 있는 것이 너무나 좋은 것입니다. 죄많고 다사다난한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가기 싫은 겁니다.

    그 때 구름이 내려와 그들을 덮더니 하느님의 음성도 들려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

    예수님의 말씀만 들어 왔었는데, 하느님의 음성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산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경이롭기만 합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도 보고 하느님의 임재 가운데 하느님의 음성도 듣습니다.

    이토록 놀라운 경험을 한 후에 3명의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머물고 싶었던 높은 산을 내려 왔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이들에게는 악령에게 사로잡혀 있는 아이를 구원해 줘야 하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순절을 시작하기 전 주일 이 말씀을 보는 이유에 대해서 전통적인 해석은 우리가 사순절 동안 극기와 절제의 신앙 훈련을 잘 해야 베드로 야고보 요한 3제자가 보았던 주님의 영광을 볼 수있다는 것입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No Cross, No Crown.  No Pain, No Gain. 이라고 하죠.
    부활의 영광을 맛보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희생과 고통을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이 해석이 맞는 것은 아닙니다.

    대가를 지불한 만큼 얻게 된다는 것, 이것이 우리 인생의 보편적인 진리이기도 합니다만,  연약한 우리는 먼저 주님의 거룩한 모습을 보지 않고는,  부활의 영광을 먼저 경험하지 않고는 결코 십자가의 희생과 고난을 통과할 수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지가 강렬한 사람은 영광을 바라보고 고난을 기겨낼 수 있겠지만, 제 경험으로는 제자 먼저 주님의 영광을 경험하지 않고는 희생과 고난의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제게 없음을 제가 압니다.

    주님의 거룩한 빛을 본 만큼 어둠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경험한 만큼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의 영광을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산 아래 마을에는 여전히 죄와 죽음에 위해서 짖눌인 인생들이 있습니다. 산 아래 마을에는 나를 살려달라는 마귀들인 인생의 절규가 있습니다.  산아래 마을에는 내가 짊어지고 가야하는 인생의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십자가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 주님의 영광을 보지 않고는 피터지는 산아래의 인생사 속에서 주님의 뜻대고 살아갈 수 없기에 먼저 산위로 올라가 그분의 영광을 보며 소망을 갖고 영적인 새힘을 공급받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산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어떤것일까요?

    내 영혼에 생기를 주고 내 인생에 소망과 힘을 주는 주님의 영광을 보는 일, 주님의 임재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지난 금-토 우리 중고등부 학생들이 알파 성령피정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보고 하느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왔습니다.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보며 자신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되고 주님이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심을 경험하며 돌아 왔습니다.  

    확신컨대 당분간은 우리 학생들은 그들이 경험한 주님의 영광의 힘으로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머지 않아 이내 옛 모습이 나오는 은혜를 잃어버린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기도원을 가기도 하고 영적인 집회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번 3월 15일부터 성령세미나를 개최하는 분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보고자, 하느님의 임재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함입니다.

    교우 여러분, 한분도 빠짐없이 참여하십시오. 영광의 주님을 깊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간절한 소망은 우리가 지금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영광스러운 주님의 모습을 보기를 원합니다. 하느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주일예배를 통해서 주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일예배를 통해서 하느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내 영혼을 살리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매 주일 드리는 주일예배에 주님의 영광의 빛이 없다면, 하느님의 임재가 없다면, 우리가 주일예배를 통해서 주님이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결코 우리는 이 세상의 삶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당부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일예배에 나오십시오. 결코 습관적이거나 의무감으로 오지 마십시오.

    우리 예배 가운데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기대감으로 집에서부터 준비하여 나오시기 바랍니다.

    주일을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맞이하도록 하시고 집을 나서기 전 예배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예배 집전자이자 설교자인 저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자신의 영혼에 주님의 은혜가 가득 채워지기를 기도하십시오.

    확신하며 말씀드리지만, 준비된 마음으로 기도하며 주일예배에 나올 때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그 영광의 빛을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비쳐주시고 주님의 임재함 가운데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산 아래 있는 고난에 찬 인생들을 위한 우리의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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