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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3월 23일] (요한 2:13-22) 하느님의 집을 아끼는 예수님의 열정
  • 청지기
    조회 수: 7962, 2003-03-24 14:55:00(2003-03-24)
  • 한주 잘 지내셨나요?  혼란스럽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하느님을 예배하러오신 교우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힘든 한 주였지만,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여 주신분은 살아계신 하느님이십니다. 한 주간 여러분을 지켜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지금도 이 자리 함께 계셔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힘찬 박수로 영광을 드립시다. 주님! 영광을 받으소서! 아멘.

    결국 전쟁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매일 새벽예배마다 평화를 위한 기도를 주님 앞에 드렸지만, 인간의 탐욕은 항상 주님의 뜻을 거스르기에 참혹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보 간지에 있는 이라크 전쟁에 관한 글을 읽어봅시다.  - 미국의 이락크 침공을 보며! (어느 크리스챤의 글입니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독재 정권과 신제국주의가 서로의 몫을 놓고 싸우고 있는 전장에 하느님의 형상, 하느님의 모양대로 창조된 약한 자들, 가난한 자들, 소외된 자들, 잃어버린 자들의 희생이 염려됩니다.  12년전 걸프전쟁의 참상이 무엇인지 저는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작코와 베고바와 추크로자에서의 죽어가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그나마 쇠약한 몸을 가진 자들은 갈곳이 없습니다.  우리 형제의 비탄입니다.   우리 자녀의 아픔입니다.  우리 가족의 고통입니다.   우리가 섬겨야할 예수님의 형상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영혼들입니다. 하루 생활비 1000원으로 사는 자가 12억명인 지구촌에. 미군이 쓰는 전쟁비용이 하루에 6000억원입니다. 소유를 위해 힘센 자가 되고자 몸부림치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무대에서, 자기의 것외에는 돌아보지 않는 패역한 세대가운데서, 나눔의 영으로 하느님의 마음을 흘려보내는 진정한 예배자들의 눈물과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1. 먼저 우리 속에 있는 무정함과 무자비함을 철저히 제하도록, 우리의 아픔으로 느끼며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도하도록 !  
    2. 전쟁이 속히 끝나 무고한 희생이 최소화되도록 !  
    3. 전쟁이후 복구를 위한 과정속에 그리스도의 긍휼을 가진 분들이 많이 참여하여 저들의 상처받은 심령을 위로 하도록 !  
    4. 전쟁 이후 새로운 이라크정권이 하나님의 공의를 존중하는 지도자가 세워지도록 !  
    5. 이 전쟁으로 무슬림들의 서방 기독교에 대한 분노와 편견, 상처와 거부감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하느님의 화해의 영이 임하여 선교에 적대적인 상황이 감소되도록 !  
    6. 미국의 신제국주의적 태도가 변화되도록 !  
    7. 한반도의 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도록 !  기도해야겠습니다

    잠시 기도합시다. 계) 주여 우리 기도를 들으시오며  응) 우리 부르짖음이 주게 사무치게 하소서.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성전정화사건이 이야기입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흠없고 정결한 짐승을 희셍제물로 바쳐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먼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은 그런 짐승들을 가져오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그 불편을 덜어주고자 성전에서 짐승을 팔고 사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만 20세 이상의 유다인 남자들은 반세겔의 성전세를 납부하게 되어 있었는데 (출 30:13, "인구 조사를 받을 사람은 누구나 성전 세겔로 셈하여 반 세겔을 내야 한다. 한 세겔은 이십 게라이다. 이렇게 바치는 반 세겔은 야훼께 드리는 예물이다.")  이를 위해서 로마나 그리스의 화폐를 세겔로 환전해 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선의로 시작한 관행이 점차 부패하게 되었는데, 성전제사장들은 상납금을 받는 조건으로 특정한 장사꾼들에게 허가증을 내어 주었고 자연히 이들은 독점권을 가지고 폭리를 취하게 되는 불의를 낳게 된 것입니다.   성전 제사장들과 장사꾼들은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제사를 빌미로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탐욕의 행위를 일삼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 장사하는 집"으로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부패에 대해서는 계속적인 저항이 있었습니다. 의지가 굳은 사람들은 대중들의 지지 속에 이러한 불의에 맞서 독점권을 없애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데모도 했고 시민단체들의 캠페인도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의지를 보였던 분이십니다. 물론 오늘 복음서에서 보여준 예수님의 행동은 일시적인 효과 밖에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불의는 계속 되어지고 모순은 여전합니다. 하루 이틀 지나면 상점들은 다시 문을 열고 불의는 계속되어지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미움을 사고 십자가 처형을 받게 되는 이유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성전정화사건이라는 무모한 행동을 왜 하셨는가'를 묻는다면, 예수님께는 목적하시는 바가 있었다는 것을 요한복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19절을 읽어봅니다.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하고 대답하셨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성전이란 어떤 곳입니까?

    첫째  성전은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거룩한 처소입니다. 출애굽기 25장을 보면, 출애굽하여 광야를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은 그를 예배하는 처소로 성소를 지을 것을 명령하십니다. 우리의 예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길 원하시는 주님, 그분 주님께 예배하는 거룩한 처소가 성전인 것입니다.

    둘째로 성전은 유다인들 뿐만 아니라, 야훼 하느님을 믿는 이방인들도 와서 기도하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이사야 56:6-7을 읽어 드립니다.  ""6 외국인들도 야훼에게로 개종하여 나를 섬기고, 야훼라는 이름을 사랑하여 나의 종이 되어 안식일을 속되지 않게 지키고 나의 계약을 지키기만 하면, 7 나는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에 불러다가 나의 기도처에서 기쁜 나날을 보내게 하리라. 그들이 나의 제단에 바치는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내가 즐겨 받으리라. 나의 집은 뭇 백성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  동일한 성전정화사건이 기록되어 있는 마태오복음 21장 12-13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2 예께서는 성전 뜰 안으로 들어 가 거기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다 쫓아 내시고 환금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13 그리고 그들에게 "성서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리리라' 고 했는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 로 만들었다" 하고 나무라셨다."  

    세번째로 하느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곳입니다.  하느님은 그의 백성이 모여 예배하고 기도할 때 그 곳에 임재하시고 그 영광을 나타내시며 하느님의 백성들을 만나주십니다.

    역대기하 5장을 보면, 솔로몬이 다윗이 환상에서 본 하느님의 계시에 따라서 성전을 짓고 하느님께 봉헌할 때 하느님께서 영광 가운데 임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5:13-14, ""13 이들은 다 같이 나팔을 불고 노래를 불렀다. 야훼를 찬양하고 감사를 드리는 그 소리가 한 소리처럼 들렸다. 나팔과 바라와 그 밖의 악기에 맞추어, "야훼 어지셔라, 그 사랑 영원하여라" 소리높여 찬양하는데, 야훼의 성전에는 구름이 가득 찼다. 14 구름이 어찌나 짙었던지 사제들이 더이상 예식을 계속할 수 없을정도였다. 그만큼 야훼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찼던 것이다"  이처럼 성전은 하느님의 백성이 예배하고 기도하는 곳입니다. 이럴 때 하느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곳입니다.

    사실 예루살렘성전은 정직하지 못한 성전제사장들과 불의한 장사꾼들에 의해서 성전은 허물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에 의해서 이방인들이 출입하지 못함으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집이 시장터로 전락하였으며 유다인들 조차도 하느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처소를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에서도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을 위한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는 이렇듯 허물어져 가는 성전을 회복하고픈 하느님의 집을 아끼는 열정이 솟구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허물어뜨리는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금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환금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그리고 비둘기 장수들에게 "이것들을 거두어 가라.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하고 꾸짖으셨습니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의 머리에는 '"하나님이시여, 하나님의 집을 아끼는 내 열정이 나를 불사르리이다' 하신 성서의 말씀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솔로몬 성전같은 어떤 특정한 건물이 아닌, 하느님 아버지의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시고 싶은 불같은 열정으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바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우시는 하느님의 새로운 거처는 더 이상 생명없는 돌조각이나 나무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력있는 건축물이며 그리스도의 신비하신 몸입니다. 하느님의 새로운 거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주님과 자기 자신을 하나로 결합시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세례를 받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묻혔으며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난 하느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이들이 성령께서 지어주신 새로운 성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흘만에 새로 세우시겠다는 성전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 자신이 하느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믿으십니까?  나 자신이 하느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며 하느님 아버지가 거하시는 성전이 되게 되기를 갈망하시는 열정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나의 몸을 주님의 성전삼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열정이 우리에게 느껴지길 원합니다. 그래서 나의 삶이 순결하고 거룩해지기를 원합니다.  "하느님, 내 삶에 내 몸에 임하시고 거하소서. 저를 주의 성전으로 봉헌합니다."  또 예수님이 세우고자 하신 성전은 우리 교회입니다.  건물이나 조직으로서가 아닌 믿음과 사랑으로 연합된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말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예수님의 피값으로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는 우리교회 안에 세상의 논리나 자기 잇속을 차리려는 세속적인 계산이 자리잡지 못하도록하고 오직 예수님의 사랑만이 우리 교회 안에 충만하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거룩하고 순결해진 각 사람이 예수님 십자가의 사랑으로 온전히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공동체,  하느님께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하는 공동체,  함께 모여 뜨겁게 기도하는 공동체,  그래서 하느님이 임재하시고 그 거룩한 영광이 가득한 교회.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꿈꾸시고 그 열정으로 자신의 몸을 바차심으로 보기 원하셨던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그 열정으로 이땅에 하느님의 새로운 성전을 세우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열정을 품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임재하시는 새로운 성전을 세워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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