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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06년 3월 19일] 요한 2:13-22
  • 청지기
    조회 수: 2616, 2006-03-22 07:48:23(2006-03-22)
  • - 남자를 파는 가게(퍼온 글)

    자신이 원하는 이상형 남자를 선택하여 살 수 있는 가게가 문을 열었습니다. 이 가게는 5층으로 되어 있으며 일단 어떤 층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더 이상은 올라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자신의 이상형인 남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또한 이미 거쳐 왔던 층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두 여자가 꿈에 그리던 이상형인 남자를 사려고 1층에 당도하니 안내문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직업이 있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음, 더 올라가 보아야지’하며 2층에 가니, 안내문에
    “돈을 잘 벌고, 아이들을 좋아하며 잘생긴 남자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흠, 아주 좋아. 그래도 위층에 어떤 남자들이 있는지 확인 해보아야겠지? ㅎㅎ’

    3층 안내문에는 “돈을 잘 벌고, 아이들을 좋아하며, 아주 잘생겼고 집안일을 도와주는 남자”라고 적혀 있습니다.

    ‘우와! 하지만 위층에는 더 괜찮을 것 같은데? ㅎㅎㅎ’ 하며 4층을 올라갔습니다.

    4층에는 “이곳에는 돈을 잘 벌며,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주 잘생겼고, 집안일을 잘 도와줄 뿐 아니라 아주 로맨틱한 남자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4층이 이 정도라면 위층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들은? 상상조차 안돼! ^^ 아우~ ’
    두 여자는 두 주먹에 힘을 쥐며 벅찬 마음으로 서둘러서 5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5층을 들어가는 문의 안내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5층은 비어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출구는 왼편에 있으니, 계단을 따라 쏜살같이 내려가세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사람들의 욕심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욕심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사순절에 새겨볼 만한 글이어서 읽어 드렸습니다.

    사순절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실 줄로 믿습니다.

    이번 사순절에는 하루 7번 화살기도를 다 함께 하고 있는데, 어떠세요?

    이제 사순 3주일입니다. 오늘은 “순종만이 진정한 믿음을 갖게 합니다.”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일명 성전정화사건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삶의 중심이요, 구심점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날마다 희생제물과 번제물을 봉헌했을 뿐만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바쳤습니다(사도 3,1).

    유대인의 삼대 축제인 오순절, 과월절, 초막절에는 온 백성이 성지순례를 하며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는데, 최소한 일 년에 한 번 적어도 유월절에는 성전에 올라가는 것은 유대인의 의무였습니다(루가 2,41).

    성전에서 과월절을 지낼 때 어린양을 제물로 바쳐야 했고, 그 때 봉헌된 어린양은 가정에서 과월절 의식을 거행하면서 먹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행하던 의식들을 몸소 준행하셨습니다. 다만 성전에서 거행되던 예배를 세속적으로 오염시키는 형식주의와 상업주의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단죄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예수께서는 격분하시어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을 성전에서 내쫓으십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성전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의미-하느님을 예배하고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는 것이 결코 퇴색되어서는 안 된다는 웅변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본질적인 곳을 향합니다.

    18 상인들을 몰아내자, 그 때에 유다인들이 나서서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데, 당신에게 이럴 권한이 있음을 증명해 보시오. 도대체 무슨 기적을 보여주겠소?” 하고 예수께 대들었습니다.
    (상황 설명과 예수님의 엉뚱한 대답)
    19  이 때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동문서답의 대화)
    20 그들이 예수께 "이 성전을 짓는 데 사십육 년이나 걸렸는데, 그래 당신은 그것을 사흘이면 다시 세우겠단 말이오?" 하고 또 대들었다.”

    그런데 21절을 보면, 19절에서 말한 성전이 예수님 자신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정화 사건을 당신 자신을 계시하는 기회로 삼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이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곧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느님과 화해되는 구원이 이루어져 하느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성전정화사건을 소개하는 본문의 마지막 구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22절,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뒤에야 이 말씀을 생각하고 비로소 성서의 말씀과 예수의 말씀을 믿게 되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비로소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성서의 모든 말씀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한 주 본문을 묵상하며 하느님께서는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깨닫기를 원하시는 영적인 원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만이 살아있는 믿음을 갖게 된다.’는 원리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때, 그 말씀대로 일하시는 하느님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하느님의 어떠하심(성품)을 알게 되며 살아있는 믿음으로 세워진다는 말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살리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죄를 사함 받는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느님께 돌아가는 진정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예배가 회복되어 졌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이 구원과 참된 예배를 이 땅에 가져온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면서 비로소 19절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말씀이 사실이고 하느님을 더 깊이 알고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먼저 믿음이 있어야 말씀을 순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없어서 순종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일면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어떠하심(성품)을 아는 진짜 믿음은 먼저 말씀을 순종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공생애 3년 동안 얼마나 많은 말씀을 들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순종이 말씀을 믿는 참된 믿음으로 갖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많은 말씀을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머리 속에 기억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 속에 있는 그 말씀들이 삶 속에서 살아나지 않습니다. 경험되지 않습니다.

    지난주일 예수님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고 거역하지 말라고 하시며 온전한 순종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말씀이 사실이고 실재라는 것을 경험하게 하려고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은 형제들이 주님 말씀 그대로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하느님을 경험하고 만나는 신나는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시기에 말씀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느님을 실재로 경험하면 그 사람의 믿음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 까요?

    지난주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기억해 봅시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그냥 머리 속에 담아두지 않았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하느님을 더 깊이 만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새로 만난 하느님은 ‘야훼 이레 하느님’이었습니다.
    그전에는 알지 못했던 하느님의 새로운 성품을 알게 된 것입니다.

    혹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역동적이지 못하다면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아 하느님을 더 깊이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경험하지 못하니까 삶의 중심에 주님을 향한 믿음이 확고하게 서 있지 못하고 세상 속에서 흔들리는 힘든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느낌이나 감정이 아닙니다.
    찬양할 때 필이 느껴져서 눈물을 흘린다고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말씀대로 살 때 경험되는 하느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 말씀에 순종하려면 마치 십자가에서 죽는 것과 같은 자기를 부인하는 아픔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욕망과 경험과 충돌하게 됩니다. 그리고도 말씀대로 순종하려면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의 아픔을 겪게 됩니다. 나를 그 말씀으로 조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마치 예수님이 사흘 동안 무덤에 있었던 것처럼 어둠의 시간을 통과해야 합니다. 말씀이 성취되기까지 인내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다시 아브라함을 생각해 봅니다. 그가 아들 이삭의 등에 땔감을 지게 하고 걸어갔던 사흘길이 무덤 속에 있던 것과 같은 어둠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아들 이삭에게 칼을 들어 내리치기까지 말씀 그대로 순종하기 위해 아브라함이 겪어야 했던 무덤과 같았던 고통과 어둠을 생각해 보십시오.

    말씀에 대한 순종은 십자가를 요구합니다. 하느님이 다시 살리기까지 무덤 속에 갇혀있는 것과 같은 고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화석화된 믿음으로 지식적인 믿음으로 냉담한 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같은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고 같은 주님의 말씀을 듣지만,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풍부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느님을 만나는 아무런 경험도 없이 지루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차이는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십자가에서 죽는 것과 같고 무덤 속에 갇히는 것 같은 고통이 있을지라도 인내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우리는 말씀 그대로를 성취하시는 하느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럴 때 주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살아있는 믿음이 생겨납니다.
    그 믿음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순종을 통해 하느님을 경험하고 보다 살아있고 역동적인 믿음으로 신나는 삶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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