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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9월 25일] 요한 1:35-42 안드레아 처럼!
  • 청지기
    조회 수: 2621, 2005-09-26 08:45:32(2005-09-26)
  • 추석 지내고 만나니까 두 주 만이네요. 보름 만에 만나는 거네요.
    참 반갑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만나지 못한 사이에 우리 공동체와 우리 주변에 일어난 일들 중에 기억할 것은 화성가정봉사원 파견센타를 섬기시는 방인순 테레사 교우가 유방암수술을 받았다는 것이고 간까지 전이되었다는 데 많은 기도가 필요하구요.
    또 중요한 것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연휴기간이어도, 죽음에는 휴일이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 없으신 거룩한 하느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그 죄 값을 치르셨습니다. “보라, 저기 하느님의 어린양을 보라!”

    또 다른 하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시작하신 이루신 영혼의 구원의 사역을 계속해나가시고자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을 계승하는 교회의 가장 최고의 사명은 천국 복음을 전파함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주변에 여전히 예수님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가는 영혼이 있음을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당포 주인이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게 된 후, 예수님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가는 사람들이 불쌍해서 주위 사람을 전도를 했는데, 하루는 술에 취한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그때 술 취한 사람이 빈정거리며 말했습니다.
    “여보슈, 내가 정말 지옥과 천당이 있다는 걸 확신한다면 당신처럼 이렇게 소신 없이 전도하지는 않겠소. 나는 더 열성적으로 전도할 거요.”
    이 말에 충격을 받은 그 사람은 그 때부터 열렬하게 전도하며 구제활동을 폈습니다. 그가 바로 1878년 영국에서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엄 부쓰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교인들은 술 취한 사람이 윌리암 부쓰에게 퍼부었던 비난처럼 전도에 너무나 소극적입니다.
    아니 소극적이다 못해 전도에 무관심합니다.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지금 구해주지 않으면 곧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봤는데도 그 현장을 외면하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진짜 양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그렇게 죽어가고 있는데,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지난 주일에 읽었던 부자와 나자로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처럼 죽어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계속되는 고통 속에 살아갈 영혼들이 내 옆에 있는데,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불쌍한 마음은커녕 태연하게 외면하며 혼자만 예배 잘 드리고 천국 가겠다면?
    하느님 앞에서 신앙의 양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천국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한다면, 도저히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밀러(Herb Miller)라는 분이 쓴 ‘아스팔트에서의 낚시질’이라는 책을 보면,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평생 평균 6천 번의 설교와 8천 번의 기도를 듣고 2만 번의 찬송을 부르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 자기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소개하고 전도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에 게으른 우리의 모습을 지적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 성경을 보면, 세례요한의 두 제자가  ‘하느님의 어린양’ 되신 예수님을 만나고 ‘와 보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과 함께 지냈습니다. 라삐라고 부르던 것이 메시야로 바뀌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 즉시로 예수님과 함께 지내던 두 사람 중 안드레아는 형 베드로를 찾아가 “우리가 찾던 메시야를 만났다”며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리고 갑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은혜로운 예배와 기도와 묵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눕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 그리스도이시며 나의 주님이십니다.”  
    아멘?

    그렇다면 우리 삶 속에서 당연히 계속되어져야 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안드레아처럼,
    사랑하는 가족, 친척, 친구, 지인들에게 예수님을 알리고 예수님 앞으로 데려오고 예수님을 만나게 해줘야 합니다.

    마치 물에 빠져 죽어가던 사람과도 같았던 지옥의 형벌을 면치 못할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 그분을 믿음으로 구원받아 우리와 함께 천국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양심이 살아있는 신자의 도리입니다.

    롬 1:14-15에 적은 사도 바울로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문명인에게나 미개인에게나 또 유식한 사람에게나 무식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전도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에 계신 여러분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주여, 우리에게 영혼 구원의 열정을 부어주시옵소서!”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님을 알지 못해 지옥 갈 영혼을 구원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안드레아처럼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려와야 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려와 만나게 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누구나 그 인생이 놀랍도록 변화되어 참으로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어부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평생 갈릴리 호수의 어부로 죽어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남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전혀 새로운 존재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시몬이 게파로, 베드로로!
    “십자가에서 내 이름 바뀌었네!”(주보 노래 가사)

    예수님의 수제자로, 예루살렘 교회를 세운 개척자로, 이방인 고르넬리오와 그 가족을 구원한 전도자로, 선교사로, 마침내 복음의 영광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는 순교자로, 가치있고 보람있고 의미있는 가장 멋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비전이 있는 삶, 사명의 삶, 가치 있는 인생, 이러한 베드로의 멋진 인생의 변화는 안드레의 전도와 초대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현재 한국 기독교 이슈들 중에 하나는 70세가 되신 조용기 목사님이 은퇴하실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입니다.
    70만 성도, 세계 최대의 교회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세운 조다윗목사.
    그에 대해서 부정적인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조용기 목사님은 이 시대 하느님께 위대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 중에 한 분입니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폐병에 걸려 골방에 외롭게 격리되어 신음하던 그가 세계 최대의 교회를 세우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은 것,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애당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피를 토하던 말기 폐병환자였던 그는 어느 골방에서 외롭게 죽어갔던지, 배우지 못한 한을 품고 한반도 어느 구석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할아버지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폐병환자 청년 조용기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폐병에서 치유 받고 비전을 받고 멋지고도 가치 있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인생의 변화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시작되었지만, 그에게 예수님을 알려준 전도자가 없었다면 애당초 조용기의 히스토리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골방에서 신음하는 그에게 찾아왔던 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여학생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그 여학생은 청년 조용기에게 예수를 알 수 있도록 성경을 전해 주었고 외로움 가운데 있었던 조용기목사는 성경을 읽으며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전혀 새로운 주님 손에 사로잡혀 놀랍고 멋진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죽어서 천국 가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어떤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베드로처럼, 조용기처럼, 예수님을 만남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멋진 이야기가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아울러 우리도 안드레처럼, 여학생처럼 타인의 삶에 새로운 인생을 가져오게 하는 전도자로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려주고 예수님께 데려온 그 어떤 사람이 베드로처럼, 조용기처럼 위대한 하느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한 그 사람이 하느님께 어떻게 쓰임 받을지를 믿음으로 바라보십시오. 가슴이 벅차고 이 실로 위대한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로는 로마서 1장 10절에서 ‘전도하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것이 섬김이고 파견례의 삶입니다.
    감사성찬례 - 개회예식, 말씀의 전례. 성찬의 전례, 파견례.

    21세기 이 시대는 20불과 20, 30년 전처럼 ‘와 보라’ 해도 사람들이 오지 않습니다. 교회가 사람들에게 신선감이 없고 사람들이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주님의 유일한 꿈입니다. 여전히 교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고 죽은 영혼이 구원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영혼의 허기짐으로 생명의 빵을 찾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서 그 생명의 빵을 찾고 영혼이 충만케 되기를!  

    우리는 기도합니다. 영혼의 메마름으로 목말라하는 심령들이 우리 교회에 흘러넘치는 성령의 강으로 흠뻑 마시기를!

    “여기 생명의 빵이 있고 생수의 강이 흘러넘친다. 와 보라!”고 세상에 외치고 사람들이 몰려오는 부흥을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안드레아처럼 먼저 찾아가야만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관계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나의 인격과 삶을 신용으로 인해 내가 전하는 예수님이 인정되어 지고 교회로 데려오고 예수님을 만나게 해야 합니다.

    전도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 무거운 부담감을 갖고 있습니다. 흔히 전도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영혼을 구원하는 것’, ‘복음을 전파하는 것’ 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중요한 전도에 대해서 거의 모든 성도가 ‘전도공포증’, ‘전도기피증’, ‘전도노이로제’에 걸려 항상 기뻐해야 할 신앙생활을 누리지 못한 채 전도 못하는 죄책감에 짓눌려 불행하게 살고 있다.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전도는 믿지 아니하는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여 등록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문제는 쉽게 풀립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믿음이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진실과 사랑으로 감동을 주어 비신자의 마음을 녹여서 스스로 교회에 찾아오게 하는 전도가 구원의 첫 단계라면, 교회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예배와 설교, 성경공부, 소구룹활동, 사랑의 친교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믿음의 사람이 되고 구원의 확신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부담감을 내려놓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열심히 교회로 초대하십시오.
    안드레처럼 하십시오.
    교회 예배나 샐 모임, 교회 행사에 초대하시기 바랍니다.
    10월 23일 청년주일 행사, 10월 30일 추수감사주일, 11월 5일 SBS 악단장 김정택장로 간증집회 등에 초대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10월 9일을 ‘태신자봉헌주일’로 예배드리고자 합니다.
    한 주간 기도합시다. 전도할 영혼을 바라보며 대상을 정하시기 바랍니다.
    각자 한 명이상 전도할 대상을 정하여 그 이름을 주님에 올려 드립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그분들의 구원을 위하여 릴레이금식기도로 집중적인 중보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주님께 인도한 그 사람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천국 백성이 되어지고  하느님께 위대하게 쓰임 받는 인생으로 살아간다면, 내가 그에게 천만금을 주는 것보다도 가치 있는 일이며, 이 보다 더 보람된 일이 어디 있으며, 얼마나 기쁘고 가슴 벅찬 일입니까?

    이것이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예배이고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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