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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9월 4일] 루가 6:38 나누는 멋진 삶!
  • 청지기
    조회 수: 3713, 2005-09-05 20:10:34(2005-09-05)
  • 교회 비전을 간단히 소개할 분 안계신가요?

    다윗비전, 모세비전, 안티오키아교회비전, 예루살렘교회비전, 브리스카 아퀼라 비전, 넥스트 제너레이션비전!

    넥스트 제너레이션 중 하나 더 나눌 이야기가 있습니다. 청년회 이야기는 기대하십시오. 개봉 박두 - 10월 23일을 청년 주일로 지키면서 청년회 헌신예배로 드라마와 워십, 간증 등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비전 나눔을 마치면서, 지난 주간에는 우리 교회 표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복을 주사 세상을 섬기게 하소서!”

    우리가 받은 복으로 세상을 섬긴다는 것 - 이것이 신자의 삶입니다.
    우리 크리스챤은 복의 통로입니다.

    그런데 표어를 자칫 잘못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아직 복을 받지 못했다? 받을 복의 양이 더 차야한다?’
    ‘어느 정도 받아야 섬길 수 있지, 아직은 힘들다.’
    ‘지금 내 코가 석자다, 그러니 남을 돌아볼 여지가 없다. 상황이 더 좋아지고 나아지면 그 때가서--- ’
    ‘지금은 내게는 섬길 여력도, 섬길 꺼리도 없다?’ 등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로마서 1장 20절을 보면,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신성과 특성를 깨달아 알 수 있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모든 피조세계에는 창조주 하느님의 속성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 만물을 깊이 살펴보며 생겨난 보편적인 원리나 과학적인 사실들에는 하느님을 알 수 있는 진리가 담겨있습니다.

    자연계의 운동 법칙을 살펴봅시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이동하는 중력의 법칙, 농도가 짙은 데서 옅은 데로 이동하는 삼투압의 법칙, 고기압에 저기압으로 바람이 이동하는 대기의 운동 법칙 등.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계의 모든 운동법칙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텅 빈 상태로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함으로서 질서와 균형을 이루고 생명의 풍성함을 유지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자연계의 운동 법칙에 담겨있는 하느님의 법칙을 신앙의 원리로 배워야 합니다.

    여름날 대청마루에 앉아서 내리는 소나기를 바라보다가 예수님을 깊이 만난 분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 꽂히는 빗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합니다.

    딸 바닥에 꽂혀 깨져나가는 빗방울을 보다가
    자기 몸을 십자가에서 찢기신 주님을 만났다고 보았다고 합니다.

    하염없이 낮은 곳으로 마침내 바다로 흘러 내려가는 빗물을 보며
    십자가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신 주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빗물을 생각하다가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신 예수님을 부활로서 다시 높혀주신 하느님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분이고, 자기를 비우시는 분입니다.
    그럴 때 하느님은 높이시고 그 빈 것을 충만케 하셨습니다.

    낮아질 때 높혀 주십니다. 비울 때 채워주십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법칙입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영적인 원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스스로 비우지 않는 한, 충만히 채우시는 살아계신 하느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오늘 루가복음에서 예수님은 끊임없이 ‘주라’고 권면하십니다.
    죄인 된 우리는 주기보다는 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라고 하십니다.

    27.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고
    너희를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고
    29. 누가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 주고
    누가 겉옷을 달라거든 속옷마저 내어주고
    30.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31. 너희가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35. 원수를 사랑하고 남에게 좋은 일을 해 주어라.
    되받을 생각을 말고 꾸어 주어라.
    37. 남을 용서하여라.

    용서해 주라, 도와주라, 구제해 주라 등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주라고만 하실까?

    38절 말씀이 해답입니다.
    “남에게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말에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하게 담아서 너희에게 안겨주실 것이다. 너희가 남에게 되어 주는 분량만큼 너희도 받을 것이다.”

    하느님이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법칙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이웃에게 우리의 것으로 나누고 베풀며 섬기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보상은 우리가 사랑을 베푼 대상 - 그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십니다.

    마태 6:4,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그 자선을 숨겨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하느님이 주실 때, 말에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하게 담아서 안겨주신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속성이 주는 분이시기에,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시기에, 하느님은 우리를 복의 통로로 부르셨기에, 우리가 베풀고 나누고 섬기기는 사랑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고 그럴 때 주님은 기뻐하시고 하느님이 직접 갚아 주시되 넘치도록 우리 품 안에까지 안겨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진정 믿는다면 우리는 이 시간 이후 즉시로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것입니다.

    주는 것을 사람들은 물질로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렇습니다. 물질이 중요합니다.
    네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예리하게 우리의 심보를 파헤치신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 마음이 가는 곳에 우리의 물질은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말씀에 마음을 조정하여 물질을 주는 결정을 하고 행동하는 실천이 중요합니다.

    살림이 어려운 교우들을이나, 가난한 친척과 이웃, 사회복지시설이나, 북한 동포, 미전도 종족, 오지에서 섬기시는 선교사님 등 등.
    다만 얼마라도 자기의 것을 아끼고 절제하며 물질을 흘러 보내기로 결정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그 만큼 비워지는 것이고 그에 상응하는 하느님의 은혜를 갑절로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줄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줄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다못해 웃음을 줄 수 있고 남을 안아 줄 수도 있습니다. 밥을 지어 줄 수 있고 병원이나 사회시설 등에서 자원봉사를 살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격려의 편지를 쓸 수 있고 따뜻한 안부의 전화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손길과 우리의 웃음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사랑에 목마른 사람이 있고 친구가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의 전기를 읽어 보면, 더 이상 세상을 살 소망을 잃어버리고 자살하기 직전에 테레사를 찾아온 사람이 거리에서 죽어가는 행려자들을 돌보아 주는 일을 하면서 소망을 회복하고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고 건강한 인격으로 회복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몸으로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진짜 삶이 무기력해지고 소망이 없을 때는 몸으로 타인을 섬긴다면 충만케 하시는 생명력을 맛볼 것입니다.

    태어난 지 며칠 안 되는 쌍둥이의 불가사의 한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쌍둥이 중에 한 아이가 심장에 큰 결함을 안고 태어나 죽기 직전이 되었는데, 그 때 한 간호사가 쌍둥이를 하나의 인큐베이터에 함께 넣자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의사는 고민했지만, 결국 엄마 자궁처럼 두 아이가 함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건강한 한 아이가 팔을 뻗어 아픈 형제를 감싸 안았습니다. 갑자기 아무런 이유 없이 아이의 심장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고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호전되어 현재 두 아이는 완전히 정상이 되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소문을 들은 한 신문사가 인큐베이터 안에서 서로를 포옹하고 있는 쌍둥이의 사진을 찍고는 ‘생명을 구하는 포옹’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지금 누군가가 우리의 포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의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손과 목소리에는 치유와 회복의 능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여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치료와 사랑, 승리를 주시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너 자신을 비우고 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제 더 이상 자기의 것만을 채워가는 자기중심적인 삶은 그만합시다.

    사냥꾼이 원숭이를 잡을 때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박스 안에 바나나를 놓고 손 하나 들어갈 만큼 구멍을 뚫어 논다고 합니다. 그러면 원숭이 손을 집어넣어 바나나를 움켜쥐고는 손을 빼지 못해 바둥거립니다. 비록 사냥꾼에 잡힐지라도 한번 움켜잡은 손은 펴지 않는 것이 패망으로 가는 원숭이의 미련함입니다.

    내 기대와 욕심의 기준에 맞게 어느 정도 채워졌을 때 나누고 섬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 시간 그 생각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조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생각으로는 아마도 평생 나누고 섬기며 누리게 되는 하느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줄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스스로 하느님의 복을 놓칠 뿐만 아니라, 남의 복까지 빼앗는 사람입니다. 나를 비우고 나누며 섬기는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나눔으로 비우고 비움으로 충만히 채워주시는 주님을 만나는 은혜를 누리는 멋진 삶을 사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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